낙서-일상생활68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13번과 느슨하게 연결됨 ※

리스가 훈련받은 전문가의 존재를 배제하고 노숙자를 거론한 건 다 까닭이 있었다.
저 너머로 아기 레일라의 둥지가... 아니, 박물관에서나 보았던 공룡알의 둥지가...
손전등 불빛이 닿은 곳으로 책들을 벽돌처럼 쌓아 만든 수제 성곽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청결함과는 거리가 먼 이불을 빙 둘러서 책들을 듬성듬성 쌓아 올렸는데 그 재료는 1층 로비에 굴러다녔던 쓰레기들인 것 같았다. 파손된 형태로 보아 책꽂이에서 빼온 종류는 아니다.
핀치가 또 어린아이를 납치해왔을 리는 없고.
둥지의 좌우를 손전등 불빛을 비추어 샅샅이 확인해봤다.
곳곳에 종이가 널렸음에도 불을 피운 흔적은 없다. 다만 이쪽에도 다 먹고 버린 과자봉지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빈 물병도 찾았다. 그리고 닳아버린 건전지도 몇 개 밟았다.
『......』
어지른 모양만 보자면 노숙자가 맞기는 맞다만.
둥지 바닥에 깔린 이불에 손을 대고 온기를 체크했다. 진작에 식어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이걸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장소를 떠난지 제법 오래다.
『허어, 나 모르게 들어와 나 모르게 빠져나갔다?』
이걸 과연 북부의 추위를 피하고자 한 노숙자 짓이라고 판단해야 옳을까? 본능은 그러지 말라 충고했다. 리스는 참고할만한 단서를 찾아 신중한 자세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둥지를 만든 인간이 어느 구멍으로 들어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반드시 밝혀내야만 한다.

『리스~ 미스터 리스? 어디에 있나요?』
묘하게 퉁탕거리는 발소리와 같이하여 핀치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까지 내려왔다.
순간 목덜미가 쭈삣 곤두섰다. 핀치는 아직 이곳에 와선 안 된다.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다.
자기 집 부엌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잠옷 차림새로 아래층으로 내려와 전등 스위치를 올리는 순진한 여편네들 -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최소한 야구 방망이로 무장이라도 했음 말을 안 한다. 맨손인데다 부주의하기까지 해서 스키마스크를 쓴 도둑과 정면에서 마주친다. 서로의 눈이 휘둥글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도둑은 재빨리 부엌칼을 꺼내들어 여자를 위협하기 시작하고.
잠옷 차림새의 부인이 한 권의 책을 끌어안은 핀치로 둔갑하자 이성이 말라붙었다.
갈라진 목소리로 경고했다.
『여기서 나가요! 당장!』
『아하, 찾았다. 리스? 역시 거기에 있었군요.』
뒤뚱거리는 걸음새로 다가오던 핀치는 기이할 정도로 평정심을 보였다.
『나가라니까! 이리로 오지 말아요!』
『다 들리거든요. 그러니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깜빡 잊고 미처 해두지 못한 말이...』
『말 좀 들엇~!!』
리스가 화가 나서 명령조로 외치자 그제야 멈칫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얘기는 리스를 거의 미치게 만들었다.
『어, 지금 제 다리에 무슨 끈이 닿았는데... 리스?』

아마도 리스가 몸을 날리는 것과 거의 동시였을 거다. 도서관 직원들의 사물함으로 사용되었을 철제 캐비넷이 굉음을 내며 옆으로 고꾸라졌다.
화들짝 놀란 핀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는데 사실 그 상황에선 그다지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여차하면 자세를 최대한 낮춰라 - 귀가 닳도록 옆에서 말해주었음에도 정작 중요한 순간이 되면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그는 달리기도 하지 못하며, 다리를 들어 울타리를 뛰어넘지도 못한다. 위험이 닥쳐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다. 낚아채서 던져봤자 토막처럼 구르지도 않는다.
『해롤드!』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캐비넷이 딱 하나만 쓰러졌다는 것. 그리고 넘어진 물건이 핀치의 머리를 노리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아무래도 캐비넷 하단부로 벽돌 한 장을 끼워 넣은 범인은 사람을 다치게 만들 의도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소리만 요란했을 뿐으로 찌그러진 쇠붙이는 엉뚱한 방향으로 벌렁 누워버렸다.
한 손으로 핀치의 뒤통수를 감싼 자세로 요란한 슬라이딩을 펼친 리스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쓰러진 사물함을 노려보았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불을 붙였다. 잡히기만 해봐라. 오랜만에 사람 목을 비틀어 꺾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치솟았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핀치.』
『와... 눈앞에서 별이 번쩍이는데요.』
『혹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나요.』
『아픈 곳이 많아 잘 모르겠습니다, 미스터 리스. 당신이 절 뒤로 밀쳐 쓰러뜨렸다고요.』
『좋아요. 그럼 오늘이 무슨 요일입니까.』
『것보다 당신 몸무게는 얼마인가요.』
무거워 죽겠으니 어서 비키라는 의미로 리스의 팔뚝을 툭툭 쳤다.
하지만 리스는 핀치의 몸을 깔고 엎드려 누운 자세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덕분에 불안해졌다.
핀치는 다시 한 번 반복하여 리스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리스?』
『쉬! 조용히.』
『무슨 문제라도?』
『방금 전 부비트랩은 제가 설치한게 아닙니다, 핀치. 도서관에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알아요.』
『뭐라고요?』
『그러니까 자세히 설명할테니 일단 좀 옆으로 비켜주셨으면... 돌에 깔린 것 같아 힘듭니다.』
『지금 뭐라고요?』
『당신, 골렘처럼 무겁다고요.』
『아니, 그거 말고.』
리스는 인상을 구긴 채 깔고 누운 핀치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에게 무척 난감한 자세였지만 머리가 복잡한 나머지 당장은「부적절한」접촉을 인식하지 못했다.
설명할 수 있다? 알고 있었다? 팔꿈치를 사용해 상체를 살짝 들었다. 무겁게 짓눌리던게 완화되자 핀치가 보다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다고 해도 리스는 당장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곳에 누가 들어왔는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네.』
『그게 누굽니까.』
그게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핀치는 살짝 웃었다.
『음... 한니발?』
리스의 숨소리가 낮아졌다.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 하기엔 무언가 흉흉하다.
아쉽게도 핀치는 그런 변화를 눈치를 못 챘다.
『당신이 한니발을 여기로 데려온 겁니까.』
『그럴 리가요. 그 아이가 입구 자물쇠를 기어코 뜯어냈을 적에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아울러 제가 말한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장군이 아니고 토마스 해리스가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이제는 정말 비켜줘야 한다며 핀치가 리스의 어깨를 툭툭 힘주어 때렸다.
『쇠톱을 들고 여기 입구 자물쇠를 자르려 했던 작은 아이를 기억하지요? 당신 얼굴을 향해 중국제 싸구려 손전등을 던졌던 아이요.』
그러고 보니 그런 적이 있었다.
리스의 머리로 몇 가지 단어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가출소년. 아이큐 높음. 반항적. 도서관 대출 카드.
『제이크?』
『맞습니다. 소설 한니발에 기이할 정도로 애착을 보이던 그 아이요.』
『그 녀석이 이 안까지 들어왔었다고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당신은 그걸 나에게 말하지도 않았고?!』
『별 거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그건 뭐랄까. 소년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핀치는 리스를 향해 이제 그만 일어나 앉고 싶다는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거칠게 밀침을 당했다. 아차하는 순간 또 다시 뒤통수가 바닥에 닿았다.

Posted by 미야

2013/01/29 14:50 2013/01/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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