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49

※ 연장자 우선의 법칙...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만약 네이슨이 살아 이 모습을 보았다면 사내는 진작에 도망쳤을 것이다.
그리고 윌리엄이 수단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었다면 청년은 머리를 쥐어뜯으며「위험하니 모두 뒤로 물러서세요!」경고부터 했을 거다.
불행하게도 두 사람 모두 림보에 있지 않아 리스는 아무런 주의도 듣지 못했고, 따라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까마득히 몰랐다. 그 탓에 CIA 전직요원은 해체가 불가능한 폭탄을 무신경하게 툭툭 건드렸으며, 심지어 몇 가닥 남은 안전장치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휘발유가 가득 들어간 드럼통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엑스타시에 취한 고용주가 불꽃을 토하는 전자렌지 앞에서 막춤을 췄다는 걸 귀로 들어 알고 있었어도 리스는 막연히「설마, 그래도 핀치인데」이러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알콜은 고루한 문학과 같아요, 미스터 리스.』
『문학이라고요?』
『단어들을 눈으로 보고 입력해도 졸리거나 피곤하면 그게 머리에서 문장으로 조합이 되질 않죠. 두뇌의 활동에 일종의 제약이 발생하면 책을 아무리 읽어도 혼란된 마법사의 주문처럼 의미가 사라져요. 잘못된 구문으로 스크립트 에러가 발생하는 거예요. 나는 이걸 뇌의 흑질과 선조체에서 신경충적의 전달을 억제하는 것으로 그 효과를 바꾸려고 해요. 그러니까 문장을 단어로 해체하려는 거죠. 통증은 머리로 전달되지만 인식을 하지 못하니까 흡혈을 하지 않는 클라리몽드가 되는 겁니다. 들어봐요, 미스터 리스. 그게 제대로 된 책이겠냐고요.』
『핀치?』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리스 앞에서 핀치는 책상을 탕탕 두드려댔다. 목소리도 올라갔다.
『뭐냐, 지금 그 찌푸린 표정은. 어렵게 설명하는데 감히 짐에게 투정을 부리겠다는 거냐.』
『그런게 아니라 무슨 말인지 도무지...』
『바스티유에 당장 투옥을 해야 마땅하나 날 아저씨라 부르면 용서하겠다! 아저씨라 부르도록.』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리스를 보며 핀치가 황급히 손은 흔들어댔다. 고개가 아파 머리를 흔들 수 없으니 대신 팔을 흔드는 것이다. 알콜의 힘으로 단절되었던 몇 개의 신경회로가 제자리를 찾자 통증과 같이하여 이성이 돌아왔다. 흐려졌던 눈빛이 살짝 밝아졌고, 에헤헤 소리를 흘리며 헤프게 웃던 입술은 일그러졌다.
어렵게 숨을 고르고 설명에 들어갔다.
『R.J는 매우 심한 편집증 환자더군요. 2년 전까지만 해도 정신병적 증후를 보일 정도는 아니었는데 방아쇠가 당겨진 건 아무래도 여자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탓인 것 같습니다. 빗길에 버스가 미끌어져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죠. 악천후와 정비 불량이 맞물려 불운으로 닥쳤습니다. 세 명의 승객과 운전수가 크게 다쳤고, 헤나는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을 거뒀어요.』
평소의 핀치의 모습이었지만 리스는 무서워하며 저출력 인공위성처럼 적당한 거리에서 맴돌았다.
『핀치? 당신 지금 괜찮아요?』
『어허! 아저씨라고 부르라니까.』
리스와 핀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심호흡했다.

이야기는 다시 계속되었다.
『그걸 R.J는 사고가 아니라 선량한 미국인들을 노린 테러리스트의 음모라고 생각했어요. 증거를 수집한답시고 버스 회사에 침입해서 컴퓨터와 장부를 훔치고, 도촬을 하고, 아랍계 직원을 폭행했습니다. 그리고는 경찰서에 테러계획을 발견했다며 신고했어요. 폭행 및 불법침입으로 약식 기소되었다가 정신과 치료를 명령받고 벌금형에 처해졌습니다. 하지만 망상은 더 심해져... 후. 심해져서. 아이, 어지러워.』
말을 끊고 출력된 인쇄물을 리스에게로 내밀었다. 홈페이지에서 바로 뽑아낸 것 같은 자선단체 홍보물이었다. 메마른 시골 풍경을 뒤로하고 여덟에서 열다섯 살 정도의 어린이들이 공책과 연필을 들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이 정면에 박혀 있었고, 중간에는 후원계좌 및 후원회의 목표가 적혀 있었다. 단체는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필기구 및 교과서를 보내는 운동을 했다.
『R.J는 이게 사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이들은 산수와 국어를 배우는 대신 코란과 총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들은 모집된 자살 테러리스트들이고, 후원금은 테러 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거죠. 그는 이 단체에 기부하는 아랍계 미국인들 전부를 비난하기에 이르러... 마침내 국토보안부에 한 식당 주인을 고발했는데. 어. 그게...』
불행하게도 이쯤해서 정보 영역과 연결된 신호가 단선되었다.

핀치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미안합니다. 호출 클라이언트의 보안 토큰을 가장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네?』
『우... 속이 메슥거려요, 미스터 리스.』
『그럼 화장실로! 일어설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아니다 말없이 핀치는 양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손을 잡아 일으켜달라는 보편적인 제스츄어가 아니었다.
『그냥 업어주라.』
『뭐라고요?』
『업어줘.』
『해롤드!』
『싫냐? 커다랗게 생겨서 쪼잔하긴. 아님 나 여기다 막 토한다? 으흐흐.』
취기 탓에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건 맞지만 하는 행동으로 봐선 아직 토할 단계는 아니다. 핀치는 악당처럼 웃으며 손가락에 침을 발라 그걸 키보드와 모니터에 문질러댔다. 내버려두면 코도 후벼 팔 기세다. 아닌게 아니라 검지손가락을 콧구멍에 찔러넣었다.
이런 식으로 위협을 받을 거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리스는 당연히 멘붕 상태였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서툰 전직 CIA 요원은 이도저도 아닌 막연한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혼자서 잘 놀게끔 그냥 내버려둘까. 아님 살살 달랠까. 포기하고 억지로 끌어내어 바닥에 쓰러뜨려?
고용주의 안색을 살피고자 자세를 낮췄다.
핀치 역시 리스의 눈치를 보며 아까처럼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쨌거나 일단 화장실에 갑시다.』
『넵.』
『팔을 잡고 부축을 해줄게요. 의자에선 혼자 일어설 수 있지요?』
『고럼.』
『하나, 둘, 셋 하면 일어서는 거예요. 이해했습니까?』
리스는 핀치의 안색을 보다 자세히 살폈어야 했다.
이해는 무쉰.
소리를 내어 숫자를 세고 있는 사람을 예고도 없이 확 잡아당긴 핀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사람의 입에 번개처럼 키스했다. 놀란 그는 본능적으로 핀치를 뒤로 떠밀려고 했다. 하지만 사장에게 멱살이 잡혔다는 건 둘째고 이로 아랫입술을 물렸다. 이 상황에서 강제로 떨어지려 했다간 피부가 찢긴다.
애매하게 끌려가며 신음했다. 어쩌겠는가.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없었어도 호소할 수밖에.
『아파요. 놓아주세요.』
눈으로 보지 않아도 핀치가 씨익 웃는게 느껴졌다. 그는 진실로 좋아 죽으려 하고 있었다.
「설마, 이 양반이 지금 이걸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쪽에서 몸부림치자 세게 물고 있던 걸 관두고 대신 쪽쪽 빨기 시작했다.
낯간지러운 소리와 같이하여 입술에 눌러지는 압력이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했다.
「이 술주정뱅이가!」
리스는 핀치의 양팔을 잡고 그만 뒤로 물러서라는 의미로 힘을 주었다.
그게 제법 아팠던 것 같다. 핀치가 침을 꿀꺽 삼키는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손아귀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그걸 동의의 의미로 착각한 고용주는 다시 신이 나 리스의 입술을 꽤 심각하게 탐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혀가 들어왔을 적에 - 리스는 에라 모르겠다 눈을 감았다. 시작은 분명 핀치가 했으니 비난받을 일은 없다.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아니라면... 알게 뭐람. 혀를 얽으며 핀치의 뒷목으로 손을 둘렀다. 달아오른 호흡이 콧잔등을 타고 올라 안경알에 서리가 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 모두 안경의 존재를 잊었다. 체온과 체온이, 그리고 뛰는 서로의 맥박이 입술의 얇은 피부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에 열중하느라 호흡도 잊은 마당에 그깟 안경이 무슨 대수라고.

Posted by 미야

2012/12/28 11:26 2012/12/28 11:26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801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432 : 433 : 434 : 435 : 436 : 437 : 438 : 439 : 440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20137
Today:
1843
Yesterday:
133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