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47

※ 낙서 식으로 짧게 이어가고 있는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번호는 작성 순서를 의미할 뿐으로 연속되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


택시기사는 패닉에 빠졌다.
눈 멀쩡히 뜨고 차를 가로등에 처박기 전에 그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운전 중인 사람을 총으로 위협해봤자 좋을 거 없습니다. 그가 의식을 잃으면...』
핀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말라붙은 입술에 침을 발랐다. 여기서《총알로 만약 그의 머리를 날려버린다면》이러고 과격한 표현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라미시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성난 벌떼를 내쫓는 시늉을 하며 비명을 질러댈 거다. 그러니 보다 완곡한 어법으로 에둘러 표현하는게 좋을 것이다.
『운전자가 의식을 잃으면 뒷좌석에 앉은 우리도 크게 다칩니다. 그건 그쪽 입장에서도 그다지 환영할 일이 아닌 듯한데요. 그러니 흥분하지 말고 총구를 보다 아래로 내리는게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차라리 절 위협하는게 어때요. 네?』

한손으로는 가방을 꽉 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운전석을 권총으로 겨누던 불청객이「이것 좀 봐라?」이러며 핀치의 제안에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흥분한 것처럼 보여?』
순간 핀치의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솔직히 말해볼까?
전혀.
신호대기 중인 택시에 능숙하게 올라타 승객과 운전자를 총으로 위협하며 이대로 똑바로 직진하라 을러대고 있다. 강도인가 보다 짐작하고 돈을 가져가라 했더니 푼돈엔 관심 없댄다. 대신 사내는 따라오는 차량이 없는지 계속해서 주변을 힐끔거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는데 이게 또 정신없이 허둥거리는 모양새라고 하기 어려웠다. 총을 든 자세는 안정되어 있고, 무엇보다 손 떨림이 없었다. 초짜 강도, 탈주 중인 수배범 등등의 가설을 하나 둘 접으며 핀치는 이 사내의 분위기가 리스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폭력에 익숙하고 스트레스에 강하다. 흥분하면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심장이 빠르게 뛰며 숨이 차오르는 법인데 이 자는 헐떡거리며 호흡하고 있지 않다.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남자는 짧게 끊었다가 잠시 후 길게 내뱉는 식으로 숨을 조절하고 있다.
이런 남자가 아드레날린 과다분비로 고통 받고 있을 것 같은가.

『택시 기사는 흥분한 상태입니다.』
방향을 다르게 해서 다시 접근해봤다. 그러니까 설득이다. 설득을 해보자.
『이봐요. 나는 다른 걸 원하는게 아녜요. 우리 모두 안전하길 원해요.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저 사람은 기절을 할 거고, 그러면 십중팔구 사고가 날 겁니다. 그러니 제발 총을 치우고 그가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자고요. 어... 그러니까 기사분 성함이?』
『라미시 바르하이야.』
『라미시 바르하이야 씨가 긴장을 풀고 운전에 집중하게 해주자고요.』
남몰래 연결되어 있던 리스가 핀치를 칭찬했다.
《잘 했어요, 핀치. 라미시 바르하이야가 운전하는 택시 번호를 조회했어요. 현재 위치가 브룩클린에서 퀸즈 경계이군요. GPS 정보를 따라갈테니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상대를 너무 자극하지 말아요. 총구를 나에게 겨눠 - 이딴 거 하지 말고요.》
그래봤자 어차피 그들의 돌발 동승자는 핀치의 제안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눈치다. 운전석을 겨누는 총구의 방향은 변함이 없었고 압력은 아까보다 더 낮아지지도, 높아지지도 않았다.
그 상태에서 남자가 곁눈질로 뒤쪽을 관찰했다. 핀치의 관심도 뒤편으로 쏠렸다.
『누가 따라오고 있는 겁니까.』
《핀치, 제발. 자극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듣고 있던 리스가 야단을 쳤다. 하지만 핀치는 약간의 정보를 캐내고자 위험부담을 기꺼이 감수했다.
『혹시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건가요.』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코웃음만 쳤다.
『당신, 지나치게 관심이 많군. 그래서 다음엔 내 이름이 뭐냐 질문할 거야?』
순간 주먹이 날아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닌게 아니라 팔을 들어 입을 때리려고 했다. 핀치는 각오를 단단히 한 채 질끈 눈을 감았다.
못 견디고 애원한 건 라미시 쪽이었다.
『학교 선생님이라서 그런 거예요. 당신도 알잖아요. 선생님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러니 화내지 말아요, 화내지 말라고요! 얌전히 입 다물게요. 협조한다고요!』
남자는 시늉만 했을 뿐으로 핀치에게 직접적인 손찌검은 하지 않았다.

키는 큰 편이다. 그런 부분이 역시 리스를 떠올리게 했다.
입고 있는 점퍼는 평범했고 워커 부츠를 신었다. 나이는 30대 중반이거나 후반.
말투나 행색으로는 추측할 꺼리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꽉 쥐고 놓으려 하지 않는 가방에는 아마도 많은 돈이 들어가 있는 듯하다.
이때 라미시가 우는 소리를 냈다.
『이봐요. 또 직진해요? 신호 대기가 길어질 것 같아요. 차가 많아졌어요.』
『그럼 우회전.』
『어디로 가고 싶다는 목적지는 없어요?』
『말해주면 미터기를 꺾을텐가.』
『미터기는 이미 꺾인 상태인뎁쇼. 저어... 그러고 보니 요금이.』
핀치는 신음했다. 타인의 강요에 의해 뉴욕을 가로지르면서 돈까지 지불해야 하다니. 비록 그가 천문학적인 갑부라고 해도 이런 무의미한 지출은 억울하다.

『저어, 있잖아요!』
택시기사는 핀치가 요금을 내지 않겠다고 우길까봐 걱정이 된 모양이다.
핀치는 될 대로 되라 식의 기분이었다.
『라미시, 돈 걱정은 나중에 합시다.』
『돈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걸 봐요! 보라고요!』
전방으로 오토바이가 한 대 나타났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짝 긴장했다.
생김새로 보아 경찰은 아니고.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다. 어... 아니다. 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흔한 오토바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했다. 눈을 시리게 하는 은빛 몸체를 보고 라미시가 짧게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크게 소리를 지르려 했는데 뱃속에 공기가 부족해 도중에 잘려나갔다는 느낌이었다. 오토바이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그들을 향하여 곧장 달려오고 있었다. 충돌을 피하고자 라미시가 중앙선이 아닌 인도 방향으로 바짝 붙으려 하자 오토바이도 택시의 움직임을 따라했다.
『미친!』
술에 취했거나 제정신이 아닌 거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속도가 줄지 않은 상태에서 오토바이가 넘어졌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일부러 넘어진 것처럼 보였다. 최소한 라미시가 보기에는 그랬다. 여기서「부드럽게」라는 표현을 써먹는게 안 어울린다는 걸 잘 알지만 커다란 철제 몸체가 부드럽게 측면으로 15도 각도로 뒤틀리며 쓰러졌다. 오토바이 운전자 역시 쓰러져 관성의 법칙에 의해 쭉 미끌어졌다. 오토바이 또한 지면을 맹렬하게 긁으며 택시를 향해 돌진해왔다.
이건 뭐 흡사 미사일이다. 그것도 불꽃을 튕기는 미사일이었다.
『씨발!』
라미시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고, 상체가 앞으로 휙 소리를 내며 쏠렸다. 머리통을 겨누고 있는 권총은 순간 잊었다. 이대로 낮은 자세로 돌진해오는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충돌하면 쇳덩이는 자동차의 본네트만 찌그러뜨리는게 아니라 허공으로 붕 솟구쳐 앞 유리창을 덮치게 된다. 그러면 어떨 것 같은가. 야구방망이에 이마를 얻어맞는 것보다 훨씬 심각해질 터,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세 사람 전부 그들이 처한 위험을 깨달았다.

『숙여!』
총을 들고 있던 남자가 비행기 추락에 대비하는 요령을 시전하며 몸을 낮췄다.
핀치만 곤란해졌다. 허리가 아파 상체를 구부릴 수가 없었으니까.
『당신도!』
얼어붙은 그의 목덜미로 차가운 손바닥이 닿았다.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면 목이라도 숙이라는 의미인가 보다.
「그래봤자 전혀 도움이 되어줄 것 같지는 않은데... 리스 씨! 이건 너무 과격하다고요!」
속으로 비명을 질러대며 아무거나 붙잡고 보았다.
쾅 하고 충격이 왔다.

Posted by 미야

2012/12/26 12:37 2012/12/2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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