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36

※ 푸스코는 리스에게 반말을 할 것인가, 존댓말을 할 것인가. ※


《HR 수사가 깔끔하게 마무리 되질 않으니까 FBI가 엉뚱한 우물을 파려고 하고 있다고. 이젠 행방불명된 스틸스를 조사할 거래. 난 이제 어쩌지.》
라이오넬의 목소리가 간절하다. 벌벌 떨고 있는 것도 같다. 아니면 단순히 화가 나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원망이 섞여있는 건 확실해서 존은 무의식적으로 쥐고 있던 핸드폰의 위치를 왼쪽 귓바퀴로 옮겼다. 그는 왼손잡이다.
『자네나 나나 스틸스가 몸통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잖아.』
사람 손바닥만한 크기의 바퀴벌레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봐도 꿈쩍도 하지 않을 차분한 목소리에 푸스코는 더 열불이 나는 듯했다.
《FBI는 그걸 모르니까 문제라는 거지! 이놈이 잠적한 우두머리인가 보다 착각하고 파고, 파고, 또 파다가 시체가 나오면 내 인생은 그 날로 끝장이란 말일세.》
『저런. 그 친구들의 실력을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닌가, 라이오넬. 우리가 안다면 그들도 알고 있어. 잡아당겨서 뭐가 나오나 확인을 해보는 것 정도니까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될 거야.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아 시체가 튀어나오게끔 허술하게 처리한 것도 아니잖아.』
《무, 물론 그렇기는 하...》
달래며 낮게 소곤거리는 리스의 목소리는 독약처럼 달콤했다.
『게다가 남미 상틸루스 카르텔에게 당한 것처럼 미끼를 뿌려댔으니 FBI 녀석들은 시체 찾을 생각을 안 할 거야. 콜롬비아 친구들이 작정하고 미국의 부패한 경관을 손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분해해서 흔적 자체를 없애버린다는 걸 잘 아니까. 운이 좋으면 손가락 뼈 하나 정도 건지는게 전부인데 그들이 그 많은 사막과 늪지를 부지런히 뒤지려 할까?』
사람의 시신을 난도질하여 분해하는 광경을 상상한 듯했다. 소심한 형사는 숨을 들이마셨다.
《허억.》
『그러니까 라이오넬...? 긴장 풀어.』
용건을 마친 리스는 별 감흥 없이 통화를 종료하려고 했다.
그러다 순간 뭔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닌데 입이 간질거리는 그런 종류의.

『있잖아. 화가 난 친구에게 사과를 하려면 어떻게 하는게 좋아?』
《실례. 지금 무어라 했수?》
눈에 띄게 당황한 푸스코가 손가락으로 귓밥을 팠다. 하지만 오른쪽 귀로 내용을 들으면서 왼쪽 귓구멍을 후벼봤자 도움이 되어줄리 만무하다. 그래서 작전을 바꾼 그는 애꿎은 핸드폰을 향해 매서운 따귀를 두어 번 내리쳤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혼잣말처럼 푸념도 했다.
《혼선이라도 된 건가. 망할 기계가 제 값도 못 하고 말이야.》
『어이, 어이. 난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는데, 라이오넬.』
《뭐요? 방금 전 내가 들은게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거요?! 당신이 사과를 한다고? 아침에 이상한 거 집어 먹었어요? 그런 건 옥상에 매달아놓고서 발바닥을 마구 때리기 전에 생각을 해봤어야지! 아니면 무릎에 총알을 쏘아대기 전에 고민을 해보던가!》
이어지는 건 신란한 비난이었다.
존은 괜히 물어봤다 후회했다.

일반인의 사고방식은 잘 모르겠다. 철이 들고 나서부터 군인이 되었고, 임무를 수행했고, 외국에서 지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모종의 집단에 스카웃 되었고...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겠다, 가족 드라마를 시청하는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어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늘 낯설었다. 엄마 아빠가 세탁물을 찾아오는 순서를 두고 서로 싸우고, 툴툴거리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저녁이 되자 언제 싸웠느냐며 평범하게 화해하는 과정을 옆에서 볼 기회 자체가 없었던 탓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말싸움 끝에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아는 내용이 없었다.
《꽃을 사요.》
『어.』
《여자들은 꽃을 좋아해요, 존.》
카터는 리스가 사과하기 바라는 상대가 미모의 여기자, 내지는 언젠가 스치듯 만났던 금발의「계약 아내」라고 착각한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식사 약속을 잡았다가 바람을 맞추기라도 한 거예요? 그렇담 악당들을 유리창 밖으로 던져버리느라 바빠서 그랬노라 사과하면서 풍성하게 장식된 꽃을 줘요. 알았죠?》
그 상대가 걸어 다니는 전자사전이라는 걸 고백할 수 없었던 리스는 얼랑뚱땅 알겠다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싫든 좋든 꽃을 사는 남자는 눈에 띈다.
꽃을 고르려고 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나는 꽃에 대해 잘 몰라요」이러는 남자는 더더욱 눈에 띄는 법이다.
부끄러워하는게 분명한 그 모습에 피식 옷음이 나오려 했지만 노련한 장사꾼인 에밀리는 화예 전문가의 근엄한 표정으로 전신을 무장하고 쭈삣거리고 선 남자에게로 접근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남자는 대답했다.
『꽃이 필요합니다.』
이래서는 마치 공구상에 들러 십자드라이버를 원한다 말하는 꼬락서니다.
에밀리는 진열된 수십 종류의 꽃들을 둘러보라 눈짓하며 꽃 중의 꽃을 권해봤다.
『그럼 장미를 드릴까요.』
장미는 여자들의 꽃이다. 아무리 몰라도 그 정도는 안다. 리스는 곤란하다며 도리질했다.
『안 돼요.』
『저런. 받는 분이 특정 화초에 알레르기가 있나요?』
『그런 건 아니고.』
옳거니. 장사 15년이면 절반은 점쟁이가 된다. 남자는 화려한게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수수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종류가 좋을 것이다. 짐작대로 그는 색색의 데이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보였고, 고르기가 무섭게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보수적이고도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은 아버지들처럼 말이다. 슬픈 노릇이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구분하는 법에 대해 잘못 배운 그들은 꽃의 아름다움을 외면하는 걸 미덕으로 잘못 알아서 똑바로 쳐다보기라도 하면 게이가 된다 오해하고 있다.

어쨌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있기 마련.
꽃을 예쁘게 포장하기 위해 작업대로 자리를 옮긴 에밀리는 고개를 길게 빼고 물었다.
『메시지 카드는 직접 작성하실 거죠?』
『오.』
남자는 보기 좋게 허둥거렸다.
『직접 작성을 해야 합니까?』
『물론 카드에 적을 내용을 불러주시면 제가 대신 써드릴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대필하는 걸 받는 분이 좋아할 것 같진 않군요.』
그래서 리스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카드를 책상에 내려놓고 그 앞에 앉았다.

무어라 적으란 말이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소리를 질러 미안해요. 존으로부터.
적은 메시지를 단추구멍 눈으로 훔쳐본 에밀리가 왓, 이러고 외마디 고함을 질러댔다.
『안 됩니까.』
『하여간 남자들이라니!』
다시 적으라며 에밀리가 새 카드를 내밀었다. 허튼 짓을 하면 날려버리겠다는 식으로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때 제가 소리를 질러댄 건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 기각.
화가 났다면 화를 풀기 바랄게요 - 기각.
당신이 좋아하는 인도 요리를 먹으러 같이 가요 - 기각.
이번 주 베어 산책은 저 혼자서 할게요 - 기각.
에밀리는 클래식을 연주하는 지휘자의 자세로 손을 둥글게 둥글게 움직였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보다 풍요롭게. 뿜겨져 나오는 사랑의 감정을 가득 담아! 그녀가 가슴을 부풀리며 외쳤다. 당신은 할 수 있어!

《당신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데이지 꽃다발도 그렇지만 카드의 내용 또한 낯간지러웠다.
핀치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었다.
『이거... 지금 저에게 청혼하시는 건가요, 미스터 리스?』

Posted by 미야

2012/12/06 12:29 2012/12/06 12:29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770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458 : 459 : 460 : 461 : 462 : 463 : 464 : 465 : 466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18851
Today:
557
Yesterday:
133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