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34

두 눈을 무겁게 꿈뻑거리더니 손등으로 눈꺼풀을 비비기까지 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잤나, 아님...」
키보드를 정신없이 두드림과 동시에 곁눈질로 리스를 관찰했다.
옆에서 보니 흰자위가 새빨갛게 충혈된게 보인다. 정도로 짐작하자면 질병의 징후로 결막에 염증이 생긴 건 아니고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 희한하게도 오른쪽보다 왼쪽의 상태가 더욱 좋지 않아 짝눈이 되었다. 덕분에 잘생긴 얼굴이 오늘따라 희극적으로 보였다.
「쯧쯧... 한쪽으로 엎드려서 잤나.」
가볍게 킁, 이러고 콧소리를 내자 리스가 거기에 반응하여 얼굴에서 황급히 손을 떼어냈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도 아니건만 뻘쭘한 표정이다. 구석으로 얼굴을 감추고 몰래 손가락으로 코를 파다 걸린 것도 아닌데 제법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핀치의 머릿속으로 노란색 전구가 켜졌다.
『어젯밤 뭘 했나요? 미스터 리스.』
『호오, 제가 뭘 했는지 궁금한가요, 핀치.』
이것 봐라? 능구렁이처럼 웃는 리스의 대응에 좁은 세탁실을 밝히던 전구가 활주로를 밝히는 대형 헤드라이트 수준으로 확 불타올랐다. 깃발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는 안전요원이 미친 사람처럼 양팔을 휘젓고 있다. 위험, 위험, 위험. 당장 기수를 돌리시오. 그러나 미지의 개척지를 탐구하는 학자는 재앙의 경고 따윈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법이다. 폭발하려면 폭발하라지. 최근 들어 그는 파트너의 심기를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는 단계까지 올라섰다. 침대 밑으로 더러운 양말을 숨겨놓은 거라던가, 서랍 속에 도색 잡지를 넣어둔 것 정도는 금방 건져 올릴 수준은 된다. 물론 리스는 세탁물을 바구니에 모아놓는 대신 그것들 전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으며, 여자들의 발가벗은 몸뚱이에 그다지 반응하는 일이 없다. 아무튼. 단단한 등껍질을 가면처럼 뒤집어쓴 전직 CIA 요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딘가에 있을 빵부스러기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은 직구.
『눈이 충혈되었어요.』
의외로 리스는 핀치의 지적에 쉽게 수긍했다.
『그러게요. 속눈썹이라도 들어간 것 같아요. 아침부터 상태가 영 좋질 않네요.』
『흐르는 물에 씻어봤어요? 아님 식염수를 넣어보지 그래요.』
이리 가까이 오라고 손을 까딱까딱 움직이자 키 큰 사내는 별 의심 없이 순진하게 다가왔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은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서자 핀치는 한 번 더 손짓했다.
리스는 고용주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다지 내켜하진 않았지만, 한 걸음 더 앞으로 움직였다.
고개만 돌리면 귀에 대고 귓속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들이마시고 내쉬는 상대방의 숨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그대로 시선을 위로 하고 가만히 있어 봐요.』
『왜요.』
『속눈썹이 들어갔는지 찾아볼게요.』
『어, 그건.』
핀치가 제안에 리스는 싫습니다 - 이러고 재빨리 뒤로 몸을 뺐다. 하지만 핀치는 왈츠의 스탭으로 재빨리 따라붙어 거의 몸을 밀착시키다시피 했다. 리스는 그걸 못 견뎌했다. 그러나 핀치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빤히 한 곳을 쳐다보며 혹시라도 미세한 이물질의 그림자가 보이지는 않을까 주의를 온전히 거기로 집중시켰다. 그런 까닭으로 눈치를 못 챘다. 근사한 케이크를 눈앞에 둔 공룡의 뜨거운 콧김이 핀치의 피부에 닿아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말 그대로 남의 얼굴에 대고 잔뜩 거칠어진 숨을 뿜어대고 있다는 걸 깨닫자 리스는 발작이라도 일으킬 지경이었다. 호흡을 참아야 할까? 얼마나 참아야 하지? 이러다 질식해서 죽는 거 아니야? 질겁해서 뒤로 다시 몸을 뺐다.
『저도 거울을 보고 한참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핀치.』
『그러게요. 안 보이네요.』
『저어, 그만했음 좋겠는데.』
『물구나무서기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사람이 참을성이 없어요.』
여전히 핀치는 그의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리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시선을 입구 방향으로 돌리고 있어 봐요. 아뇨. 고개를 거기로 돌리라는게 아닙니다.』
나더러 어쩌라고!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 코가 시원쌉싸름한 코롱의 냄새를 맡았다. 어쩌면 코롱이 아니고 고급 비누일 수도 있다. 그쪽으로는 문외한에 가까운 리스는 핀치가 애용하는 화장품의 종류가 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남들에게서는 잘 맡을 수 없는 종류라는 거, 그리고 적당히 달고 시원하다는 것만 알았다. 백화점의 고급 남성용 향수 코너를 수백 번 지나쳐도 맡을 수 없던 냄새다. 그리고 좋아하는 냄새다. 리스의 몸은 열성적으로 반응했다.
「이제 숨을 힘차게 뿜어대는 거에 그치지 않고 콧구멍까지 벌릉거리고 있겠군.」

궁여지책으로 손바닥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그걸 핀치는 다른 방향으로 오해했다.
『어제 술 마신 건가요, 미스터 리스. 알코올 냄새는 안 나는데.』
덥지도 않은데 땀이 날 지경이다.
『그럴 리가. 혼자서는 마시지 않아요.』
『저번처럼 형사님들과 같이 마시러 간 거 아녜요?』
『안 마셨다니까요. 카터나 푸스코는 요즘 바빠서 제가 전화하면 화부터 내요.』
이번에는 핀치의 콧구멍이 벌릉거렸다. 그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 순간 리스는 오늘 아침 비닐포장을 뜯은 새 셔츠를 꺼내 입고 나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동시에 자신에게서는 어떤 체취가 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걸 핀치가 좋아해줄지도 궁금했다.
그러다 퍼득 깨달음이 왔다.
좋아할 리 없지. 먼지와 화약 냄새가 날 테니.
손으로는 코와 입을 막았고, 체온은 1도 정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동시에 눈에 띄게 풀이 죽은 사내는 다시 한 번 더 뒷걸음질 쳤다.
이번에는 핀치가 그의 움직임을 좇아 따라오지 않았다.

『속눈썹은 없어요, 미스터 리스.』
핀치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언제나처럼 무덤덤했다.
어째서 - 이유를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는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화가 났다라기 보다는 속상했다. 까닭은 모른다. 어쩐지 우울했고, 가슴이 답답했다.
핀치가 그의 냄새를 싫어할 거라는 걸 깨달아서? 그건 너무 웃기는 변명이다.
그런게 아니라.
뭐랄까.
설명이 난감하다.
리스는 감정기복이 심한 사춘기 소년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벽속에라도 숨고 싶어졌다.

『그 증상은.』
고용주는 어쩐지 산만한 몸짓을 보이는 리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필요하다면 주의를 끌기 위해 물결에 흔들리는 해초처럼 손도 흔들었을 거다.
『안구 건조증이에요.』
『네? 지금 뭐라고요?』
『안구 건조증이라고요, 미스터 리스. 밤새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뭘 했던 거예요? 고백해 봐요. 인터넷 도박을 했어요, 아님 나 몰래 무슨 조사라도 하고 그랬나요. 어느 쪽이든 내 맘에는 안 드는데.』
찡그린 표정으로 핀치가 팔짱을 꼈다.

Posted by 미야

2012/12/04 12:15 2012/12/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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