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렛? 이건 좀 아니잖니

89년도엔 대세가 엿이었다. 그것도 진한 갈색의, 망치로 두둘겨도 잘 깨지지 않는 초강력의 엿 덩어리가 배포되었다. 애들은 입안에 잘 붙지 않는 안전한 하얀 엿을 먹고 싶어했으나 (허겁지겁 입안으로 엿을 굴리다 이가 빠지면 대략난감이다) 대문 앞에 죽치고 선 판매상이나 부모님들은 오로지 갈색 엿만 선호했다. 땅콩이 들어간 맛있는 엿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불순물이 들어가면 부정타는 겁니까?
질문해봐도 답은 없다.

게중에는 휴대용 열 기구를 가져와 엿을 대문에 붙이고 도망가는(?) 범죄도 벌어졌다. 요즘엔 이런 바보 짓은 잘 안 하는 것 같았다만, 어느 시대나 이런 극성 부모는 있다. 아울러 그 극성 부모의 머리털을 붙잡고 바닥으로 패대기치며 [네년에게만 수험생이 있니? 우리도 있다!] 라며 고함을 지르는 부모도 나왔다. 모르긴 해도 대단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고전 100번인 찹쌀떡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주요 선물이었다. 하지만 입시 당일날 떡을 먹고 체한 나머지 시험을 망치는 아이들이 제법 나왔던 관계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찹쌀떡을 보여만 주고 먹게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햄버거가 취향인 꼬질쟁이 자녀들은 큰 불만을 못 느꼈다. 하여 떡은 신주단지처럼 거실에 진열되곤 했다.
그럼 이걸 누가 먹었느냐고? 엄마가 먹었다.

90년도에 접어들자 휴지나 이쑤시개가 나왔다. 작은 삼지창까지 넣어 모듬 세트라고 포장해서 팔았다. 그렇지만 내 기억엔... 90년대 초엔 초코는 없었다. 초코는 발렌타인 데이에만 선물되는 물건이었다. 단 음식을 먹으면 뇌 활동이 활발해지니까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속설은 그때도 돌긴 돌았으나 수험생 선물 세트로는 팔리지 않았다. 엿과 찹쌀떡, 아울러 애교성 장난감 몇이 전부였다. 전통은 중요시되었다.

어제 P제과점에 가봤더니 떡과 초코가 반반이다. 아니, 초코가 더 많은 것 같다. 엿은 아예 취급 안 한다. 인기가 없는 거겠지.
음... 어쨌든 무얼 먹든 시험만 잘 보면 되는 거니까... 라고 해도.
앞으로 10년 뒤엔 아예 엿을 선물하는 풍습이 없어질 것 같다.

아무튼 다들 시험 잘 보도록.
이건 명령이다.
고로 시험을 못 보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음화화.

Posted by 미야

2006/11/15 09:11 2006/11/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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