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15

외곽 CCTV 화면을 응시하는 핀치의 표정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제이크는 기어코 쇠톱을 구해와 도서관 입구를 잠군 자물쇠를 썰기 시작했다.
『집요한 성격이군.』
그러나 생전 처음 해보는 톱질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고, 더욱이 아이의 손목은 또래의 것보다 훨씬 얇아 힘에 부쳐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톱에서 손을 떼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작은 화면만 가지고는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핀치는 아이의 이마가 땀에 푹 젖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배낭을 열고 물을 꺼내 마시는데 그 갈증이 여기까지 전달되었다.

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큰일 났다고 알려야 할까. 그러기엔 사안이 지나치게 사소한 건 아닐까. 그러지 말고 카터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도서관의 위치를 다른 사람에게 노출시킬 수는 없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많이 흥분한 탓이다.
그 초조함의 냄새를 맡은 베어가 머리를 빳빳하게 세우고「반드시 지켜내야 할 포동포동한 양 한 마리 - 최근엔 스트레스로 체중이 살짝 줄어든」를 올려다보았다. 베어는 아직 건물 밖에 등장한 작은 침입자의 존재는 모른다. 그래서 핀치의 반응이 의아한 눈치다.

이보게 토실토실한 친구, 뭘 보고 그리 겁을 잡수셨는가.
의문을 담아 베어가 왕? 하고 짖었다.

『쉿! 조용히 하려무나.』
숨죽인 목소리로 개를 야단치고 서브 모니터의 전원을 내렸다. 딱 하나 켜놓은 메인 모니터 위에는 불빛이 멀리 퍼져나가지 않도록 양복 상의를 씌워놓았다.
CCTV 화면 속의 아이는 다시 톱질을 시작했다.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물쇠 하나 뜯는다고 소년이 림보 안으로 침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 강박관념을 가진 핀치는 그깟 자물쇠 하나에 그들의 안전을 올-인하진 않았다 - 닫아놓은 출입구는 의외로 많다 - 경보장치도 달렸고 - 리스는 간단한 트랩을 몇 가지 설치를 해놓기도 했다. 밟으면 터지는 지뢰 그런 건 물론 아니고 - 3층까지 올라오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거다.
『허어, 이걸 어쩐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에 리스는 이름, 혹은 가명, 별명 그따위는 전혀 모르지만 얼굴만은 잘 알고 있는 사내와 격하게 싸움박질을 하고 있었다.
『이야아압~!!』
기합을 추임새로 넣어가면서.
얼굴에 길게 상처가 난 사내가 리스의 옆구리로 주먹을 찔러넣었다. 인간의 갈비뼈는 측면으로 가해지는 충격에 대단히 취약하다. 그걸 알기에 배를 노리지 않고 일부러 옆구리를 집요하게 노렸다. 한 방, 두 방, 세 방. 고통으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렇다고 이대로 오그라들 수는 없어서 무릎 올려차기로 반자동 브라우니의 급소를 가격했다. 낭심이 차이자 흉터의 사내가 힘을 잃고 휘청거렸다. 바로 지금이다 하고 그를 걷어찼다. 균형을 완벽하게 잃은 남자가 와장창 굉음을 내며 골목길 쓰레기통과 같이 넘어갔다. 리스는 넘어진 사내에게 곧장 몸을 던져 절반은 깔아뭉갠채 주먹으로 얼굴을 치기 시작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뚝심이 대단한 자다. 코피가 터졌음에도 기회를 노리고 팔꿈치를 휘둘러 리스의 옆얼굴을 쳤다. 순간 별이 번쩍였다. 찰나를 놓치지 않고 몸을 비틀어 리스에게서 벗어남과 동시에 구둣발로 머리를 때렸다.
우아함? 그런 건 없다. 전력을 다하여 물고, 뜯고, 할퀸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적의 목을 향해 주먹을 찔러 넣는다. 가까스로 이를 방어하고 박치기를 해온다. 골이 흔들린다. 귀에서 띠잉 소리가 울린다. 두 눈을 꿈뻑이지만 시야가 흐릿하다. 아랑곳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팔꿈치를 세워 가드를 올린다. 그 즉시 몽둥이로 후려치는 찌릿한 통증이 덮친다. 반자동 부라우니가 찌그러진 쓰레기통을 들어 리스의 몸을 때린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냄새가 장난 아니다.

『두목은~!!』
흉터의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꺼야~!!』
지지 않고 리스 또한 쓰레기통 뚜껑으로 사내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누가 할 소리! 체스를 같이 두자고 요구한 건 일라이어스가 먼저잖아! 나도 못해봤는데!』
그리고 삿대질했다.
『경고하는데 두 번 다시 체스 어쩌고 그러고 치근덕거리지 말라고 그에게 전해.』
『네놈 두목이 우리 두목에게 정중하게 부탁하러 왔다는 건 잊어먹었나, 존.』
『네놈이야말로 우리가 찰리 버튼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건 잊어먹었나. 빚은 갚아야지.』
『가만있자... 그건 진작에 갚은 것 같은데. 여기서 더하기 빼기 다시 공부해야 할까?』
『젖먹이 아기와 같이 날 냉동트럭에 집어넣었잖아. 그걸로 없었던 일로 되었다고.』

퉷, 하고 침을 뱉자 피가 섞여있다. 이가 살짝 흔들리는 감각이다.
상대방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찡그린 표정으로 오른팔을 붙잡고 있다. 금이 갔거나 관절이 비틀렸을 게다. 두 사람 모두 암묵적 동의 하에 총이나 칼 없이 주먹으로만 싸워 역설적으로 몸을 더 상했다.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던지 흉터의 사내가 뒤로 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리스 또한 양복 깃을 바르게 잡아당겼다.
그렇게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가면서 두 사람은 동시에 악에 받쳐 외쳤다.
『He's mine.』

Posted by 미야

2012/11/02 10:49 2012/11/0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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