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14

수업이 끝나 교문 밖으로 어슬렁 걸어 나오기가 무섭게 검은 양복의 사내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투명한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쇼핑봉투는 아니었다. 증거물 보호 백에는 손전등이 하나 들어가 있었고, 제이크는 그게「악귀는 물럿거라」이러고 집어던졌던 자신의 물건임을 한 눈에 알아차렸다.


소년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깟 싸구려 손전등 하나만 가지고 여기까지 추적해 왔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다. 아이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증거물 백으로 향했다가 다시 리스에게로 돌아왔다. 표정만 봐도 뭘 생각하는지 다 드러나고 있다. 이대로 도망을 칠 것인가 -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판단한 듯하다. 아이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대로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있는 편을 선택했다. 똑똑한 친구다.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어요, 소리를 지르면 눈자위가 벌겋게 된 학부모들은 그 즉시 리스를 찢어 죽이려 들 거다. 사실 지금도 리스의 머리꼭대기부터 발끝까지 힐끗거리며 노려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리스의 외모는 학교 운동장이나 놀이터와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나에겐 비상 카드라는 것이 있지.」
옷자락을 살짝 들쳐 고인에게서 탈취한 뱃지가 드러나게 했다.
순간 분위기 역전.
제이크의 뺨에 경련이 일어났다.
경계하던 학부모들은 그 즉시 이질적인 리스의 등장을 기꺼이 수용했다.

『안녕, 제이크.』
『안녕하세요, 형사님.』
『네가 잃어버린 물건을 돌려주러 왔어.』
『정말 친절하시네요.』
아이가 팔을 뻗어 증거물 백을 잡으려 했다.
키가 큰 리스는 아이의 손이 닿지 않게끔 비닐봉투를 하늘 높게 들어올렸다.
『음, 음, 음!』
헛기침 속에는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게 네 물건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 맞지? 도로 가져가는 건 어림도 없네요, 그 전에 나에게 할 말은 없냐, 기타등등. 보통 이 단계까지 가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주눅이 든다.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을 어른에게 들켰고, 그것도 경찰관에게 들켰고, 보나마나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무지하게 야단을 맞을 것이고, 어쩌면 외출 금지를 당할 것이고... 블라블라. 리스는「아저씨,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이렇게 빌게요.」라는 문장을 기대하며 제이크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눅은커녕 짜증을 냈다.
『돌려주기 싫어요? 그럼 가져요. 어차피 99센트 샵에서 산 싸구려니까.』
리스는 살짝 동요했다.
『하지만 이건 네 물건이지 내 물건이 아닌데.』
『오, 그래요? 미안합니다, 형사님. 그런데 이렇게 자세히 보니 제 물건인지 확실하지도 않군요. 워낙에 흔한 물건이라서. 이게 과연 제 손전등인가요? 그걸 어떻게 확인을 하죠? 아... 그렇군. 지문! 스위치에 지문이 묻어 있겠군요. 하지만 거기에 묻은 지문이 제 지문과 일치한다는 걸 우리 엄마 동의 없이 어떻게 확인을 하죠?』
『...』
코딱지만한 소년이 골리앗을 닮은 리스를 쏘아붙였다.
『나는 미성년자예요, 형사님.』
뭔 놈의 자식이 이렇게 되바라졌지 - 리스는 두 눈을 꿈뻑거렸다.

『부모님에게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그치만 얘야, 네가 한밤중에 거리를 아무렇게나 쏘다니는 걸 아시면 분명 걱정하실 거다.』
『첫째, 우리 엄마는 날 걱정하지 않아요. 제가 알아서 잘 하거든요. 둘째, 저도 생각이라는 걸 해요. 한밤중에 아무데나 쏘다니지 않아요. 난 가고 싶은 곳에만 가요. 그건 차이가 있죠. 셋째, 난 형사님이 염려하는 종류의 나쁜 짓은 저지르지 않았어요.』
『위험한 곳을 늦은 시간에 혼자 돌아다녔으니 충분히 나쁜 짓이야.』
리스는 다시 한 번 비닐 백을 코앞으로 들어보였다.
이제 슬슬 무서운 이야기를 꺼내어 아이를 겁먹게 만들어 보도록 하자.
『이 아저씬 강력 사건 전담반 소속이란다. 살인 사건을 수사하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니?』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니까.』
『그래서요?』
씨알도 안 먹힌다.

슬슬 리스도 열 받았다. 그렇다고 애를 번쩍 들어 뒤로 메치기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네가 어제 기웃거린 장소가 사건 현장이라는 생각은 안 드니?』
『호오.』
『그래. 나쁜 사람들이 널 다치게 할 수도 있어.』
『그렇군요.』
『그래서 앞으로는 늦은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하는데.』
『조언 고마워요.』
『내가 하는 말은 콧잔등으로도 안 듣고 있구나.』
『형사님도 참. 코로 소리를 어떻게 들어요.』
제이크는 덤벼들다시피 해서 손전등이 들어간 비닐 백을 잡아챘다.

《CIA에서 사용하던 회유와 설득의 기술은 어디로 도망갔나요, 미스터 리스?》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던 핀치가 불만을 표현하며 쪼잘거렸다.
《전혀 설득을 못 했잖아요.》

Posted by 미야

2012/11/01 11:29 2012/11/01 11:29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702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509 : 510 : 511 : 512 : 513 : 514 : 515 : 516 : 517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19487
Today:
1193
Yesterday:
133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