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11

오랫동안 파트너로 같이 일해 온 캐라는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병맛이어서 그녀가 총에 맞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캐라는 결코 부러지지 않는 막대기와도 같았고, 날카롭게 다듬어진 칼날과 닮았으며, 때로는 미친 야생동물처럼 보였다.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 떨어뜨려 놓아도 어떻게든 오아시스가 있는 곳까지 기어나올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리스는 어쩌다 파트너가 뒤로 처지는 일이 생겨도 그녀의 생존 여부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세상에, 존. 내가 구덩이에 빠지면 날 구하러 오지 않을 거예요?」
「임무를 망각하고 뒤돌아 당신을 구하러 가면 화를 낼 거잖습니까.」
「물론 내 앞가림은 알아서 할 거예요. 그래도 빈말이라도 좀 할 것이지.」
2천 달러짜리 명품 구두에 발을 밀어 넣으며 캐라가 투덜거렸던 말이다.


훈련받지 않은 사람과 임무를 같이 한 경우는 많지 않았... 아니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던 풋내기 종군기자를 끌고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팔루자에서 빠져나왔던게 거의 유일했던「일반인과 함께하는 명랑한 총알 피하기 투어」가 아니었나 싶다. 무자헤딘 소속의 과격파가 미군의 시체를 유프라테스강 철교 위에 거꾸로 매달아 두었던 장소에서 겨우 1km 떨어진 곳이었다. 펜이 총보다 강하다고? 사진 찍다 얼굴에 총알이 박히면 그런 얘긴 쏙 들어간다. 종군기자의 목덜미를 쥐고 위아래로 탈탈 흔들면서 리스가 했던 말도 바로 그것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요. 죽으면 버리고 갑니다.」
총도 쏘지 못하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한다는 건 일종의 책상을 복도로 내다놓기, 내지는 강제된 은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그때부터 품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민간인과는 얽히지 말 것.」
살아남으려면 그 편이 좋다고 리스는 깨달았다.

자! 이제 핀치로 돌아와 보자.
다리가 불편해서 달리기가 안 된다.
총을 사용할 줄 모른다.
헤엄은 칠 줄 안다. (본인 주장)
사과를 깎다 손가락을 베였다.
현장에 나갔다가 주먹으로 얻어맞기도 했다.
결론 : 도서관 의자에 그냥 앉혀놔야 속이 편하다.


스턴건을 하나 샀다. 작동법을 숙지시키며 시험 삼아 버튼을 눌러보라고 시켰다. 핀치는 불편한 표정을 짓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제기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잘도 천하통일을 하겠다. 결국 리스가 장만한 스턴건은 서랍 어딘가로 처박혀 그대로 영수증 처리가 되어버렸다. 들고 설치다가 오히려 상대에게 뺏겨버릴 것 같아서 - 마지못해 리스는 핀치의 의견에 동의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핀치는 호루라기를 불다 호흡곤란을 일으킬 스타일이다.

『그렇게 인상 쓰지 말아요. 그래도 제가 조심성 하나는 많답니다, 미스터 리스.』
어느 정도 인정을 할 부분이라고 리스도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존은 핀치가 살고 있는 집이 어디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완벽하진 않아서 미행을 하면 다섯 번에 세 번 정도는 눈치를 못 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르는 녀석이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는데 눈을 감는 사람이 어딨어요.』
『맹세하는데 눈 안 감았습니다.』
『그럼 눈 뜨고 고스란히 당했단 말예요?!』
『워낙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고요.』
『그럴 적엔 상대방의 발잔등을 있는 힘껏 짓밟아버리라고 가르쳐 주었잖습니까.』
『당황해서 잊어버렸어요.』
그런 기억력을 가지고 MIT는 무슨 재주로 졸업을 한 거야 - 버럭 고함을 지르려다 숫자를 하나부터 다섯까지 헤아렸다. 침착, 침착하게. 화내지 말고. 어쨌든 다 지나간 일이니까... 그런데 점점 더 발끈하고 있는 까닭을 모르겠다. 잔뜩 부어오른 핀치의 입술은 언뜻 보기에도 색정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열 받았다. 나라면 저렇게 무식한 짓을 하지 않아. 최초의 접촉은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며 부드럽게 해야... 이쯤해서 리스는 으르렁대며 발을 굴러댔다. 그것도 이성을 라면 국물에 말아 잡수시고 쿵쿵 굴러댔다.

『밟아요. 밟는 겁니다. 이렇게, 이렇게! 꼭 기억해둬요.』
『아, 네. 네.』
박력에 밀려 핀치가 말을 더듬거렸다.

Posted by 미야

2012/10/29 11:15 2012/10/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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