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44)

※ 최초 원고에서는 토요일 시카고 다운타운 거리의 항의 집회 이야기(5월)를 등장시켰다가 3월달 이야기로 급히 수정했습니다. 타임 라인을 헷갈려하면 워쩌자는 걸까욤.


칼로리따윈 무시하고 에그 베네딕트를 주문한 뒤 신문을 펼쳤다.
지난 16일 금요일에 서명된 국가 방위 대책 시행령에 대한 논평이 실렸다.
식량, 물, 석유, 교통시설 같은 미국의 주요 자원을 전시와 같은 국가 위기 상황 뿐만이 아니고 평화시에도 대통령이 이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한 시행령이 통과되었다. 대통령에게 전례 없는 권력을 부여하는 이 시행령을 두고 이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백악관 공보비서 제이 칼니는
「표준적이고 통상적인 업무입니다. 그러니 소란 떨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진위를 캐묻는 기자들을 물 먹였다.
그렇다면 리스가 비밀리에 통과된 법률을 곱씹고 있었느냐, 천만의 말씀이시다.
눈으로는 활자를 읽고 있었지만 머리로는「스포츠 마사지」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바빴다.

핀치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하지만 칭송받아 마땅한 그의 부지런함은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자기 몸 관리 항목으로 들어가면 점수가 형편없게 추락해버린다. 불규칙적인 수면, 만성적 운동 부족, 스트레스 조절 실패, 설탕에 대한 갈망, 그리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불신... 원래부터 건강한 체질도 아닌데다 사고 후유증이 악화되어 이러다 조만간 자리 보전하고 누워버리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해질 때가 있다.
허리가 마음대로 구부러지지 않는다며 끙끙거리는 걸 목격한게 한 여섯 번 정도 되려나... 리스의 심장이 흉곽 안쪽에서 난리굿을 치는 것과 동시에 핀치는 재빨리 차렷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목격한 걸 두고 보지 못했노라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를 걱정시키기 싫었던 핀치는 프로그래머의 직업병이 어쩌고 한참을 설명했고, 구체적 근거도 없이 곧 상태가 좋아질 거라 낙관했다. 허나 딱딱한 의자에 오래 앉아만 있어서는 낫던 병도 도로아미 타불이다. 허리가 아프니까 다리 근육까지 당기고, 다리가 말썽을 피우니 뒤뚱거림이 더 심해진다. 가엾은 사람... 이번 일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카우치 소파와 침대를 들여놓는 문제를 슬슬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핀치를 매트리스 위에 엎드려 눕게 한 뒤에 어깨부터 발목까지 차근차근 지압 마사지라는 것을...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던 핀치를 반 강제적으로 때려눕 - 아니, 앉혀놓고 꾹꾹 주무르는 상상에 빠져 있던 터라 낯선 인기척에 반응하는게 늦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구나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위를 쳐다봤을 적에 둥근 접시에 풍성하게 올라간 잉글리쉬 머핀과 홀렌다이즈 소스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등장한 건 허락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합석부터 하고 보는 남자였다. 리스의 한쪽 눈썹이 타원형으로 구부러졌다.
인상적인 얼굴 흉터가 외면부터 내면까지 그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요즘 같은 시대엔 성형으로 어렵지 않게 흉터를 지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부러 칼에 깊게 베인 상처자국을 과시하며 돌아다닌다.

『이게 무슨 짓인가.』
분명히 하도록 하자. 낮게 끓어오르는 목소리는 리스의 것이 아니었다.
『자네는 문명인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행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군.』
편의상「무소음 반자동 브라우니」로 호칭되던 사내가 펄쩍 뛰며 화를 내었다.
『샤워하면서 오줌 싸지 말 것, 속옷 차림새로 정원에 나가지 말 것, 여자에게 암퇘지라고 욕하지 말 것, 구두를 꺾어서 신지 말 것, 그리고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앉아 사람을 상대로 총질을 하지 말 것! 이렇게 다섯 개란 말일세, 다섯 개!』
리스는 빙긋 웃으며 식탁 아래에서 남자의 고환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미안, 워낙에 무식해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쳇, 마음대로 하라지. 실수로 방아쇠만 당기지 마시게.』
반자동 브라우니가 썩은 미역줄기를 씹었다며 인상을 구겼다.

그나저나 의외의 인물 등장이다. 일라이어스의 부하가 밥 먹는 장소에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는 짐작도 못 해봤다. 그것도 보통 부하가 아닌 오른팔이다. 리스는 까닭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 종업원이나 주인이 일라이어스와 무슨 깊은 관련이라도 있는 것일까. 글쎄다. 간판과 메뉴판만 봐선 마피아의 냄새는 어디에서고 나지 않았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일세, 존.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뭐 하고 있냐니. 난 이제 막 아침을 먹으려던 참인데.』
반자동 브라우니가 그것도 대답이라고 하고 앉았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봐, 이봐. 내가 물은 건 그런게 아니야. 쉽게 예로 들어 새 양복과 새 구두를 필요로 하는 청년이 있다고 가정을 해봄세. 이쪽은 센스 있게 언제부터 새 직장에 출근하느냐 물어봤는데 자네는「내 구두가 낡았어요」라고 대답하고 있잖아.』
그래서 존은 남자의 요청대로 스마트해지기로 결심했다.
『모텔 주방에서 통조림을 데워먹는데 질렸어.』
『...』
반자동 브라우니가 무참히 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얼굴도 문질렀다.

『이거 미치겠군. 자네와 나는 상성이 안 맞아. 정말 안 맞아. 그러니 그냥 우리 보스의 질문을 그대로 옮기겠네.』그리고 그 즉시 사내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존, 혹시 가욋일이 필요해질 정도로 당신들 상황이 나빠진 건가요, 애들 장난에 끼어들고 무슨 일이죠.』
리스는 복화술 흉내를 내는 사내를 향해 얼굴을 찡그렸지만 반자동 브라우니는 리스가 대항하기도 전에 서둘러 말했다.
『자네 성격에 예의 고용주를 버리고 새 직장을 구하는 중이라고는 생각치 않아. 그래서 우리 보스가 신경이 무진장 예민해졌어. 이게 뭔 소리인지 알지?』
리스는 모르는 척했다.
『아니.』
『그래... 끝까지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흥, 이런 놈에게 보스가 왜 그렇게 신경을 쓰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 나쁜 놈, 밥을 다 처먹으면 영어라도 가르치러 탄자니아로 냉큼 가버려.』
사내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B5사이즈 크기의 마닐라 봉투 하나를 팽개치듯 집어 던졌다.

Posted by 미야

2012/07/30 21:25 2012/07/3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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