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43)

추수감사절 식탁에 앉아 입안 가득 달콤한 과일을 베어 물었을 적의 기쁨이었다.
충만함, 풍요로움, 만족감, 포만감 기타등등의 단어들을 가져와 벽걸이 장식으로 만들어 높은 곳에 걸어두었어도 이 기분을 정확히 묘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각 다른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콘을 양손에 쥐고 번갈아 핥아먹어도 어른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는 유쾌한 날이었다. 리스는 팔을 뻗어 상대방의 손을 붙잡았고, 그 손은 따뜻했다. 코로 세탁물의 상쾌한 향이 맡아졌다. 아니면 샴푸 냄새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깨끗하고 기분 좋았다. 그르렁 신음소리를 내며 투정을 부리는 어린애처럼 뺨을 가져가 비비고, 문질렀다. 부족함 없이 가득 채워진 사람의 체온이 담요처럼 그를 에워쌌다. 리스는 손바닥이 아닌 손등으로 소중한 사람의 넓적다리를 숭배하며 쓸어내렸다. 소유욕이 달궈진 프라이팬 위로 올라간 계란 노른자처럼 단단히 그 형태를 잡아갔다. 허벅지를 쓰다듬는 손길이 더욱 분주해졌다.
「기분은 어때요. 좋아요? 핀치.」
잠이 확 달아난 건 그 다음이었다.

쇼크 상태인 채로 뚜껑을 내린 변기에 올라앉아 머리통을 쥐어뜯어도 그럴 듯한 답이 안 나왔다. 목이 칼칼했고, 공복인 위장이 제법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내왔다.
혹시 상태 호전에 도움이 될까 싶어 찬물로 열심히 세수를 한 뒤에 다시 변기 위에 앉았다.
괜찮아 졌느냐고? 졸음이 말끔하게 가시자 오히려 나쁜 방향으로 악화되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자기혐오는 그를 대서양 한 복판까지 떠밀고 갈 참인 듯했다. 리스는 당혹감에 허우적대며 물 내리는 손잡이를 힘껏 눌렀다. 그리고 두 번 더 눌렀다. 이대로 다 떠내려 보내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달각달각 눌렀다. 그렇다한들 해석이 난감한 꿈의 잔상은 그를 구석으로 몰았고, 하느님 맙소사 - 10살 가까이 연상인 고용주에게 - 그것도 남자 -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든 꿈에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또한 모든 꿈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길게 풀린 두루마리 휴지를 목에 둘둘 감고 나서야 리스는 그럴싸한 답을 구했다.
『옳아. 그건 스포츠 마사지였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마른 지푸라기라도 잡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리스는 마침내 변기 뚜껑에서 몸을 일으켜 양치를 하고 면도를 했다.
림보로 나가지 않은지 이제 27일 째의 아침이다.

상대방을 미행하며 뒷조사를 하던 때와는 양상이 다르다.
「우리는 미끼를 풀었고, 그쪽에서 물어주길 기다리고 있지요. 다시 말해 당신과 내가 적의 접근을 유도하며 그의 시야에 일부러 노출되어야 하는데 상대가 언제,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나타날지 아는 내용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이 경우 미리 준비하기도 어렵고, 대처하기도 까다롭다.
리스는 두 팔로 책상을 짚은 자세에서 핀치와 시선을 맞췄다.
「나야 성대한 환영 파티를 열어줄 자신이 있어요. 하지만 핀치, 당신은 그렇지 않죠.」
리스의 지적에 핀치는「제가 원래 파티를 안 좋아하긴 하죠.」퉁명스레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미스터 리스.」
리스는 안전가옥으로 사용하던 세 군데의 싸구려 원룸을 신속히 정리하고 장기 투숙이 가능한 모텔로 잠자리를 옮겼다. 비용은 현금으로 처리했다. 그 장소가 어디라는 건 고용주에게 비밀에 부쳤다. 그리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고 하지 마라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기분이 이상한데요. 저는 당신의 사생활을 항상 존중해왔습니다.」
「이건 제 사생활 문제가 아닙니다, 핀치.」
리스는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였다.
「당신과 나는 최소한으로만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이 적의 시야에 노출되는 걸 원치 않아요. 당신은 나에게 문자를 보내선 안 됩니다. 전화도 안 됩니다. 직접 만나러 와도 안 됩니다.」
「허. 꼭 헤어지자고 하는 여자 친구처럼 말하고 있군요, 미스터 리스.」
「글쎄요. 듣고 보니 별거를 선언하는 남편 비슷하긴 하네요.」
「그렇담 전 위자료를 청구하겠어요.」
농담을 농담 같지 않게 말하면서 핀치는 뒷목을 주물렀다.
「그동안 번호가 나오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우체국 사서함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보내세요.」
「당신에게 제 도움이 필요할 적에는요.」
「당분간 카터와 후스코를 못 살게 부려먹을 겁니다.」
「반대로 제가 당신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요.」
「핀치... 제발. 혼자서 어디 나가지 마요. 부탁이니 절대 혼자 움직이지 마요.」
리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로서는 낚시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존 프라이드는 지금까지 네 번의 킬링-체크 인 게임에 참가해서 만족스러운 스코어를 기록하며 연승을 기록했다. 존은 자기 자신에게 돈을 걸었고,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대하여 허풍을 떨기도 했다. 무료 플래시 게임 사이트 게시판에「나는 곧 떼부자가 될 거다」적어놓았다. 이에 반응하듯 저녁 늦게 이스트 사이드 주소가 적혀진 초청장을 하나 더 받았다. 상단에는「배틀 로얄」이라는 글자가 적혀져 있었다. 이번에는 통도 크게 여러 명이서 죽고 죽이는 시늉을 하려는 듯했다. 원하던 바대로 판이 커졌다고 생각한 리스는 즉석에서「YES」라고 답신을 보냈고, 존 프라이드 명의의 계좌에서 1,500달러를 인출해뒀다. 이번에도 자기 자신에게 돈을 걸 작정이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카운터라는 불리우는 레게 머리가 늘 나타난다.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앞니에 천박해 보이는 보석을 박았다. 이 자는 돈을 관리한다. 그리고 실탄이 장착된 총을 소지하고 있다. 권투나 레슬링 종류의 훈련을 받은 적이 있어 몸의 움직임이 좋다.
카운터의 부하로 여겨지는 다른 녀석들이 세 명 더 있다. 이들은「선수」들과 접촉을 꺼린다. 주로 하는 일은 현장 정리 및 감시이고 경찰에게 뒷돈을 찔러주는 일도 한다.
돈을 받은 경찰은 8번서 소속이다. 부패 경찰은 부패 경찰과 뜻이 잘 맞을 것 같아 공중전화를 사용해 후스코에게 넌지시 뒤를 캐달라 부탁을 해뒀다.

「아이고,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요즘 뭐 하고 돌아다니는 거죠.」
「목소리가 왜 그런가, 라이오넬.」
「글쎄요, 내 목소리가 왜 그럴까요. 당신이 직접 말해보시구려.」
「그러니까 카터에게 당신 아들이 학교에서 치어리더와 키스하다 들켰나요, 이렇게 직구를 던지지 말았어야지.」
「그걸 어떻게 알았... 아니, 것보다! 제기랄.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는 다르게 성적으로 조숙하다고만 했을 뿐이라고요!」
「그래도 잘못했다고 빌고 사과해, 라이오넬.」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카터가 도끼눈을 뜨고 쳐다볼 적마다 마실 것을 찾는답시고 책상에서 달아나곤 하잖아. 언제까지 그럴 건데.」
「내 맘이에요. 흥.」
불만도 많고, 말도 많은 작자지만 시키는 일은 착실하게 잘 한다.
조사된 내용은 곧바로 핀치에게 E메일 형식으로 전달될 것이다.

『그럼 슬슬 아침 식사를 해야겠군.』
통조림을 데워먹는 건 이젠 질렸다. 그리고 건강에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옷을 챙겨 입은 리스는 방에서 나오기 전 거울을 보았다.
거울 저편에선 웬 날건달 하나가 열쇠를 손가락에 걸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12/07/29 21:45 2012/07/2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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