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30)

리스는 단골 가게를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번 새로운 가게만 찾아다니는 건 아니라서 가끔은 종업원이 그의 말쑥한 얼굴을 기억하고 먼저 인사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는 동료분과 같이 오셨군요.』
사람을 상대하는 장사꾼들은 유달리 인상착의에 대해 기억력이 좋다.
『흠,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왼쪽 눈썹 위로 피어싱을 한 이 젊은이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꽤 자주 방문했던 모양이니 어떤 메뉴가 맛있는지 저에게 추천해줄 수 있겠군요.』
메뉴판을 집어 올리던 핀치가 묘한 어투로 비꼬았다.
그렇다고 종업원 앞에서 입씨름을 할 수도 없는지라 리스는 무난하게 대응했다.
『이번이 세 번째라 아직 잘 모릅니다. 그러니 이번엔「내부자 고발」로 가도록 하죠.』
그러니까 가게에서 추천해주는 걸로 고르겠다는 뜻이다.
종업원은 싱긋 웃으며「금요일 만찬」이라는 제목을 가리켰다.
언뜻 듣기에 최후의 만찬 리메이크 판인가 싶어 기분이 찜찜했으나 메뉴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생선 요리일 것이다. 아직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이유로 금요일에는 육류를 먹지 않는다. 리스는 멎적게 웃으며 금요일 만찬 세트 2개와 자신을 위한 요거트 샐러드, 그리고 핀치를 위한 초컬릿 케이크 조각을 추가로 주문했다.

『케이크...요.』
『고백해봐요, 핀치. 당신, 단 거 엄청 좋아하죠?』
좋아한다, 싫어한다, 일언반구 없이 핀치는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언제는 차에 넣는 설탕 한 스푼에 경기를 하더니 이제는 저에게 고칼로리 음식의 대명사이자 현대 인류의 적그리스도 취급을 받고 있는 초컬릿 케이크를 권하는 겁니까.』
리스는 그게 문제가 되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제가 신경을 쓰는 부분은 당신의 체중이 아니라 건강 상태입니다. 지금 당신은 당분을 섭취한 후 의자에 기대앉아 한숨 돌려야 할 사람처럼 보여요.』
『오호라, 제 몰골이 흉악함을 완곡하게 표현해줘서 정말 고맙군요, 미스터 리스. 두통이 좀 있지만 어젯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게다가 전 커피의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분명 몸 상태가 안 좋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초컬릿 케이크라니.
주문을 받아 적던 젊은 종업원의 입술이 순간 실룩거리며 미세하게 움직이는 걸 놓치지 않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입맛이 꽤나 별난 중년 남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케이크는 어린아이와 어린 소녀들을 위한 음식이다. 적어도 네이슨은 그렇게 여겼...

거기까지.
단단하고 거대한 방어막이 양갈래로 뻗어나가려던 연산 작용을 강제 중지시켰다.
표면으로 올라온「네이슨」이라는 이름에 반응, 왜앵왜앵 울어대는 경고등 소리를 환청으로 들으며 핀치는 자신이 의외로 많이 지쳐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피로감은 연달아 나오고 있는 번호들 때문은 아니다.

『돈 떼먹고 도망간 애인을 손보려던 남자는 제가 잘 처리했습니다, 핀치.』
주문한 음식의 서빙을 기다리던 중에 리스가 간략한 업무 보고를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목격자를 살해하려던 뺑소니 운전자는 붙잡아 카터에게 넘겼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주전 멤버로 발탁하지 않았다고 화내던 사커 맘도 적절히 설득했어요.』
『어떻게요.』
『축구부 코치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대리 시험이라던가 성적표를 조작한 일들을 교육 위원회와 교장 선생님에게 일러바칠 거라고 알려뒀지요.』
『순순히 물러나던가요.』
『경고의 의미로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메일로 보내줬어요. 단순히 협박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면 섣불리 나서지 않을 겁니다.』
『그러기를 바라야겠군요.』
『자신이 근무하던 수퍼마켓을 털려던 현금출납원도 조처했습니다.』
『경찰에 넘겼나요.』
『조용히 접근해서 아이의 병원비를 그렇게 구하려 하다간 복지국에서 아이를 빼앗아갈 거라고 충고했죠. 애 엄마가 하도 서럽게 울어서 준비한 수술비는 소파 아래 그냥 숨겨두고 왔습니다. 그런데, 핀치. 언제 나에게 말해줄 겁니까?』

핀치는 납덩이처럼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요.』
『지금 한숨을 쉰 이유요. 그리고 당신 눈밑으로 다크 서클이 생긴 까닭도요.』
핀치는 시치미를 잡아뗐다.
『말했잖아요, 리스. 두통이 있어요.』
리스의 눈매가 험악해졌다.
『핀치. 그들과 달리 당신은 나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거짓이 아닙니다, 미스터 리스. 지금 제가 두통이 없는데 머리가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건가요.』
『꾀병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두통 탓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손가락을 깍지 끼고 리스는 핀치를 지긋이 응시했다.
『말해요, 핀치.』
리스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했다.



* 이야기가 안 끝나... 제목도 없이 룰루랄라 저질렀는데 이건 무슨 일일 드라마야. 안 끝나...;;

Posted by 미야

2012/06/29 15:05 2012/06/29 15:0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531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 Previous : 1 : ... 653 : 654 : 655 : 656 : 657 : 658 : 659 : 660 : 661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19298
Today:
1004
Yesterday:
133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