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18)

분량 적습니다. 순서 엉켰습니다. 끈적임 없습니다.


존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핀치는 그 심정을 이해했다. 곤경에 처한 학교 선생님을 도왔는데 결과는 인생의 목표라고는 복수밖에 없는 남자를 세상에 풀어놓은 꼴이 되어버렸다. 그는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통해 적들을 배우는데 몇 년을 소비했으며, 원하는 정보를 얻고자 리스와 어린 아기를 정상 작동 중인 냉동 트럭 안에 가둬두기도 했다. 세상의 어느 악인이 젖먹이 어린애를 얼려 죽이려 시도한단 말인가. 이건 적장의 머리를 베어내어 그 두개골로 승리의 술잔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잔혹했다.

『러시아 마피아가 그를 잡아 죽이든 말든 내버려뒀어야 했어요, 핀치.』
리스는 자신의 실수를 곱씹어 저주했고, 일라이어스의 이름이 표면으로 떠오를 적마다 주먹으로 머리를 치곤 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라이어스 때문에 다치고 죽게 되는 걸까... 피해자의 숫자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이건 모두 그의 책임이다.

핀치는 현명했기 때문에 침울해하는 리스 앞에서「일라이어스」이름을 화제로 올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듀이십진분류법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책은 크기나 커버의 색깔별로 구분하여 책꽂이에 꽂아두는게 아닙니다, 미스터 리스. 그러니 즉시 동작을 멈추세요. 국제 십진분류법과 국내 십진분류법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만, 10가지의 주류로 세분한 고유의 번호에 따라 책들은 각각 제 자리를 가지고 있답니다. 1876년도에 멜빌 듀이가 고안한 방법으로는 000번이 컴퓨터 과학이나 정보, 총류. 100번대가 철학과 심리학. 200번대가 종교, 300번대가 사회과학, 400번대는 언어, 500번대는 과학, 600번대는 기술, 700번대는 예술과 레크리에이션, 800번대가 문학, 900번대가 역사와 지리입니다. 이걸 다시 강목과 요목으로, 다시 세목으로 순차 세분을 하지요.』

버려진 건물임을 위장하고자 1층은 폭격 맞은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누군가 림보 안으로 들어온다면 그들은 흉물이 되어버린 각종 인테리어 내장재와 겹겹이 쌓인 먼지, 그리고 분서갱유를 목전에 둔 듯한 책들과 종이 뭉치를 보고 기겁을 하게 될 것이다.
2층도 사정은 그리 썩 좋지는 않다. 음... 그래도 먼지가 덜 있고, 공사용 방수포가 덮힌 곳이 많다. 서가에 꽂힌 책들은 중고로 헐값에 팔아치울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최소한 구둣발에 밟힌 흔적은 없었다.
핀치와 리스가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은 3층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1층과 비교해서 먼지는 더더욱 적었고, 특이한 지도나 색인철, 지구본 같은 엔틱한 소품이 몇 가지 눈에 띄었다. 아울러 이쪽에 있는 책들은 상태가 괜찮았고 독서가 취미인 인간에 의하여 제법 정리가 되어 있는 편이었다.
물론 무너진 바벨탑에서 떨어져 나온 벽돌인양 바닥에 차곡차곡 쌓아놓는게 정리가 과연 맞느냐 하는 부분에서는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고민이 왜 필요합니까, 핀치. 그건 정리가 아니죠.』
책 무더기를 두 팔로 끌어안은 모습 그대로에서 리스는 정색했다.
『이것들은 죄다 엉망진창입니다.』
『그러니까아아~ 모양은 허접해도 십진분류법으로 나눠놓았다니까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핀치가 대들었다.
『수퍼마켓에서 통조림 진열하는 것처럼 해선 안 되는 거예요, 미스터 리스.』
『그치만 책들은 통조림이 아닌데요.』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바로 그것입니다, 미스터 리스.』
『좋아요,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군요. 그럼 이것들을 빨리 치워버리도록 합시다.』
『리~스으~으~!!』
『정리정돈은 좋은 거예요, 해롤드. 머리가 맑아진다고요.』

오늘 존의 스트레스 수치는 말도 못하게 높은게 분명하다.
고용주가 하지 말라 난색을 표했음에도 리스는 당당히 두 팔을 걷어올리고 책들을 책꽂이에 꽂아넣는 일에 정신을 집중했다. 간격을 잘 맞춰서, 흐트러짐이 없도록. 열중 차렷.

그러다 애매한 크기의 포켓북 한 권이 리스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동작 그만 상태에서 콧잔등에 자잘한 주름이 졌다.
『무슨 책인데요.』
십진분류법 따위는 포기해버린 핀치가 책의 제목을 보기 위해 고개를 길게 뺐다.
『뭔데 그럽니까? 제가 볼 수 있도록 해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 호오, 이게 뭐람. 다이어트 설명서군요. 기적의 감량 식단... 조엘 펀먼 박사 저. 피토케미컬 요법과 동물성 단백질의 위해성에 대한 정보, 본격적인 체중 감량을 위한 6주 플랜으로 구성... 그런데 이게 왜요?』

리스는 이러쿵저러쿵 설명도 없이 손으로 턱을 만졌다.
한참을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빙글 돌려 핀치를 위아래로 흝어보았다.

뜯어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핀치는 긴장했다.
『리스. 갑자기 왜 그러는 겁니까.』
그의 고용인은 귀가 안 들린다는 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잘 모르겠어.』
핀치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엇을 모르겠다는 겁니까? 리스.』
『눈으로 봐선 모르겠다고요. 그러지 말고 두 팔을 옆으로 벌려보겠어요? 핀치.』
『네?』
『두 팔을 벌려봐요.』

신종 고용주 괴롭히기인가.
그가 머뭇머뭇 팔을 벌리자 리스는 몸수색을 하는 요령으로 핀치의 몸을 재빠르게 흝었다.
『왜, 왜요.』
『음... 5파운드 정도. 이럴 수가. 나는 전혀 몰랐어.』
『지금 뭐라고요?』
『핀치! 살쪘어요. 오늘부터 치즈 종류는 무조건 금지입니다!』

Posted by 미야

2012/06/01 13:28 2012/06/0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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