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과 달라 꾸밈이 없고 천진난만하여,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지 아니하며...
소문이 빠르게 돌아 벌써부터 나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오는 도중 강도를 당해 가진 재물은 전부 빼앗기고 수행하던 자들은 전부 도망갔다더라, 도움을 구하는 편지를 집으로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더라, 신발이 헤어졌는데 창피하게도 그걸 모르더라, 듣자하니 서남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바가지 하나 들고 구걸행색하며 돌아다녔다더라, 기타 등등.
누군가 고의로 내 등을 세게 밀쳤다. 흠칫하여 돌아보니 언제 그랬느냐며 딴청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옆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번엔 실수인 것처럼 해서 다시 어깨를 때렸다.
「시비를 걸고 있구나.」
또다시 등을 떠밀리기 싫어 몸을 사리자 이번엔 교묘히 다리를 뻗어 발잔등을 세게 찍어 밟았다.
눈물이 쏙 우러나왔다.
아파서 한참을 겅중거리는데 예의 불쾌한 키득거림이 따라붙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눈에 잘 보이질 않아 그만 실수를 했네. 어디서 콩알을 밟았나 했는데 그게 사람이었군. 고의는 아니니까 용서해줘.』
『......』
『얼씨구? 눈초리가 고약하군. 왜 노려봐? 이렇게 사과까지 했건만. 성미가 나쁘구나.』
『후후후. 단순히 품성만 나쁜게 아니고 어쩌면 가난뱅이라서 예절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지.』
『흐음... 그 말도 그럴 듯하군. 야! 다들 봐봐. 이 녀석, 우릴 또 노려본다.』
애들은 어른과 달라 천진난만하고 꾸밈이 없다고?
앞뒤 가리지 않아 즉흥적이고, 마음의 가책을 느끼는 일 없이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날벌레의 머리를 손톱으로 잡아 뜯으면서도 그게 바로 살생의 행위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재밌다 생각하면 그뿐,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벌레는 연못에 흘려 개구리가 먹게 내버려둔다. 그리고 개구리가 벌레를 먹으면 다시 그 개구리를 붙잡아 혀를 빼어낸다. 그게 바로 어린이들의 체험이고 놀이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두 팔을 들어 날 에워싼 무리에게 진정하라는 몸짓을 해보였다.
『내가 언제 노려봤다고 그래.』
『아냐, 방금 노려봤어. 모두 다 같이 봤다고. 그러니까 고개 숙이고 사과해.』
이놈들은 완전 정신 나갔다. 사람을 때려놓고 사과까지 받으려고 하다니.
『사과라니. 그쪽에서 먼저 발을 밟았잖아.』
『밟았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방금 전 밟은 건 콩알이었어.』
『그럼 피멍이 든 내 발잔등은 투명 인간의 짓이라는 거니?』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데 또 다시 등을 떠밀렸다. 도대체 누구 짓인가 확인하려 하자 이제는 대놓고 뒷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얼얼해진 뒷통수를 감싸쥐자 실례, 이러고 또 등을 떠민다. 이거 아주 된통 걸렸다.
『표정이 그게 뭐냐. 사과해, 사과하라고.』
『아프니까 그만해. 아파!』
『순서가 틀렸잖아. 아프다고 울기 전에 정중하게 머리 숙여 우리에게 사과부터 해. 잘못했습니다, 빌어.』
『그런게 어딨어!』
이렇게 한참을 옥신각신하는데 짜증 섞인 목소리가 방해하며 끼어들었다.
『야! 너희들! 성가시다. 저리 가라.』
보다 못한 의전관이 참견을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 많던 의전관들은 앞줄에 선 아이들에게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여 뒷줄 무리에서 벌어지는 혼란에 대해선 귀와 눈을 감을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앞줄로 세워진 이들은 내로라하는 굴지 명문가 집안의 자제들이었고, 조금이라도 더 황제의 눈에 띄었으면 하는 욕심에「잘 봐주세요」사전 청탁도 들어간 상태였다. 금품이 있는 곳으로 눈길도 가는 법, 두툼한 무게를 지닌 정체불명의 복주머니를 선물 받은 의전관들은 가난한 하급 관리의 자녀들이나 나 같은 외국인에겐 일절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귀가 멀었냐. 저리 가라고 그랬다.』
아는 얼굴이었다. 멀미가 심해 이사실로 오는 도중 몇 일이고 토하던, 이쪽에서 일부러 말을 걸자 자신과 친해지려 해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며 쌀쌀맞게 굴던 바로 그 소년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 뼉다구가 괜한 참견을... 컥!』
『부끄러운 줄 알아.』
냅다 찌른 주먹에 뒷말은 자연스레 끊어졌다. 상대의 턱을 위로 올려치는 동작은 신속하고도 정확했다. 게다가 겉으로 봐선 별 거 아닌 가벼운 타격으로 보였지만 그게 기를 모아서 친 거라서 그 충격이 머리에 이르렀을 적엔 제법 커다란 진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둥근 파문이 멀리 뻗어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맞은 곳은 턱이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뇌다. 두개골이 종처럼 뎅뎅 울리며 진동하는 탓에 시비를 걸던 소년은 독한 술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려 하는 동료를 부축하며 그들이 외쳤다.
『너!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이러는 거냐?! 내 아버지는 장무서리소장으로...』
주먹 찌르기를 시전한 소년이 다 듣지 않고 내뱉듯 말했다.
『몰라.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너희들이 누군지 알고 있어야 할 까닭이라도 있냐?』
『윽!』
『그럼 다음은 누굴 손봐줄까. 널 손봐주랴?』
그가 손칼로 무언가를 후려치는 동작을 해보이자 아이들은 전형적인 악당의 대사를 읊으며 사라졌다.
『이이익! 어디 두고 보자!』
『오냐! 기대하마.』
이 모든 걸 지켜보며 나는 그저 속눈썹만 깜빡거렸다.
『그리고 너.』
이번에는 화살이 나에게로 튀었다.
날 보려고 하지 않고 계속하여 정면만 응시하던 소년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얼핏 보아하니 예전 의식의 춤을 제법 괜찮게 따라하던 것 같던데. 나는 이런 거엔 서툴거든. 괜찮으면 시범을 보여줬음 하는데.』
그러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미 구면이지?』
『그래.』
『오던 길에 좋지 않은 일을 당했다고 들었다. 운이 나빴군.』
글쎄다. 단순히 운이 나쁜 거라고 치부하기엔 그간 겪은 이야기가 너무나 구구절절했다.
그렇다고 한들 이 소년 앞에서 신세 한탄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진 않았다. 하여 짧게 수긍했다.
『그러게. 운이 나빴던 것 같네.』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럼 정식으로 인사하지. 나는 예당국 련 가의 린청이다. 잘 부탁한다.』
『나는 빈사국에서 온 지리가 가의 안즈라고 해.』
나고 자란 장소의 관습에 따라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뒤로 올려 묶은 소년의 시선이 그제야 내 얼굴로 향했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호의를 담은 차분한 시선이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