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드디어 미쳤나 보다. 짧고, 가볍게. 일단 시작만 하고 나중에 폭파시킬 수도. ※
나사로야 나오너라 누군가 외쳤다. 무덤에서 부활하는 걸 거부해도 괜찮겠습니까. 상관 없다면 이대로 계속 죽어있었으면 하는데요 - 젠슨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모로 돌아누웠다. 그는 원래 잠이 많은 사람이다. 일단 잠들면 시체였고, 눈을 토끼처럼 새빨갛게 충혈되게 만드는「부활의 약」은 달갑지 않았다. 『젠-슨.』 예수는 막무가내였다. 그거 참 짜증나네. 기적을 행하는 것도 좋지만 물로 포도주부터 만들고 나서 나를 부활시키면 안 되는 겁니까 - 싫든 좋든 꿈의 가장자리에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손등으로 비벼가며 하품을 참았다. 조증 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사람 답지않게 이상하게 무표정인 제러드가 그런 그를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명종은 아직 안 울렸어, 제러드. 난 아직 잠들어 있을 권리가 있다고. 미국의 수정 헌법에 의하면...』 『헌법 같은 소리! 집 샀다면서요.』 『앙?』 『집. 여기. 캐나다에.』 『목 말라서 그래? 형이 냉장고 열어줘야 하니? 아참, 럭키 참스는 진작에 다 떨어졌다.』 『젠슨. 나는 샘이 아녜요. 그러니까 잠꼬대 하지 말고 나를 위해 현실로 돌아와줘요.』 『널 위해? 차라리 날 죽여. 딱 10분만 더, 아니, 20분만 더!』 『젠슨...!!』
이젠 진짜 안 되는가 보다. 젠슨은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까 집이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것도 같은데. 잠결에 날벼락이라고 눈은 감은 채인 젠슨은「파달렉키 어쩌고가 모처럼 심각한 걸 봐선 우리 집에 불이라도 났는가 보다」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뭐, 어쩌다 가끔 파김치가 된 몸으로 기어들어가는 곳인데다, 보험에 들어야만 했던 귀중품이라곤 요만큼도 없다. 홀라당 탔어? 그런가보지. 사람만 안 다쳤으면... 『불 안 났어요.』 제러드는 퉁퉁거렸다. 『그럼 부기맨이라도 출동했다든.』 『부기맨은 안 나타났지만 수퍼맨은 출동했군요. 톰 웰링은 집으로 초대했다면서요!』 『초대하지 않았어. 어쩌다보니 우연하게...』
그 즉시 제러드의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 이상을 올라갔다. 『수퍼맨만 초대하는게 어딨어요! 게다가 그는 아직 쫄쫄이 바지도 안 입었는데! 그런데 왜 나는 초대 안 해요! 우리 사이에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요! 난 젠슨이 집을 샀다는 것도 몰랐는데! 나의 베스트 프렌드는 다른 친구만 초대하고, 나는 따돌리고, 그러고도 캥기는 거 없다는 식으로 쿨쿨 잘만 자고, 머그컵이 필요할 거예요. 에스프레소 머쉰이랑 같이 세트로, 내일 7시, 오케이? 아니라고 하면 그냥 레슬링이다. 그런데 젠슨은 딸기 무늬 좋아해요? 나는 좋아해요.』 『이봐! 너 지금 주어랑 서술어랑 제대로 나열한 거 맞냐. 네가 횡설수설해 하면 어쩌자는 거야. 잠에서 방금 깨어난 쪽은 나라고. 그러니까 요점은 에스프레소 기계를 사서 집으로 갈테니 초대를 해달라는 것 같은데. 맞아?』 『와. 역시 젠슨은 머리가 좋아.』
씨익 웃지 좀 마라. 젠슨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억지로 깨어난 탓도 있지만 일정에도 없는 초대는 반갑지가 않다. 여자친구를 데려가는 것도 아니니 청소를 하네, 커튼을 새로 다네, 식탁보를 까네 부산을 떨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주일에 무려 나흘 이상이 텅 비어있는 곳이고, 젠슨은 먼지 구덩이 속에서 친구와 같이 웃고 떠들며 축구 중계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일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책을 읽는다던가, 최신 DVD 영화를 본다거나, 잠을 잔다거나... 아아, 마지막이 제일 좋아. 따라서 젠슨은 이미 마음을 정했고, 그 점은 이미 표정으로 드러난 상태였다.
『기각.』 『우와악?!』 『와봤자 볼 거 하나 없다고. 노총각 혼자 사는 집구석에서 뭘 바래.』 『그치만!』 『끝!』
젠슨은 성가신 제러드의 머리를 옆으로 밀어내고 임시방편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음 촬영까지 앞으로 1시간 20분. 뜨겁게 덥힌 커피와 구운 토스트를 먹을 시간이었다.
Posted by 미야
2007/11/0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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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마우스를 움직여 윈도우를 닫아주세요. 제가 워낙에 까칠한 성격이다보니 글의 성격도 덩달아 신경질적입니다. 이걸 못 받아들이고 화내는 분이 간혹 계신데 그것에 대한 저의 공식적인 답변은「내가 알 바 아녀」라는 거예요. 으허허, 미안혀요! ※
그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적에 제일 먼저 알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몸이 좁은 철제 침대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다는 거였다.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허리를 가로질러 여러겹으로 꽁꽁 동여맸다. 더러움이 섞인 회색의 벽과 냉골인 바닥. 눈치껏 보자면 아무래도 일반 병원은 아닌 것 같고. 피가 잘 통하지 않은 손목이 쓰라려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딘은 턱을 최대한 안쪽으로 바짝 당겨 자신을 묶은 끈의 매듭 모양이 어떤지부터 확인했다. 빌어먹게도 묶은 솜씨가 전문가다. 무작정 세게 흔드는 것 정도로는 쉽게 풀리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 요행을 바라기엔 줄의 굵기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변태 쌩쇼 플레이야... 거기 누구 없어요?!』 꽉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외쳐봤자 누가 알아줄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딘은 억지로 침을 삼킨 뒤에 다시 한 번 더 도움을 간청했다. 『샘! 거기 있니? 새미?!』 서늘한 촉감의 고요함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추측하자면 샘은 가까운 곳에 없는 모양이었다. 딘은 그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를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억지로 치켜들었던 머리를 도로 내팽개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뭐, 행운인 걸로 치자고. 샘이 이런 기분 나쁜 곳으로 어슬렁거려서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녀석에게 당장 도움을 못 받게 생긴 건 상당히 끔찍하지만, 저 멀리 밖에서 샘이 안전하게 있다면야 나야 따따봉이지.」 그리고 딘은 샘이 자신을 찾으러 오기 전에 마술사 후시디처럼 쨘 하고 탈출할 작정이었다. 물론 그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형이었고, 그 사실은 딘으로 하여금 단단한 쇠붙이도 위장에서 거뜬히 소화시키게 만들었다. 그는 불을 토할 것이고, 하늘을 펄펄 날 것이다. 아울러 결박의 구속도 끊을 것이다. 가죽끈을 내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두 다리로 걸으리라. 일곱 번째 날에 일곱 바퀴, 커다란 나팔 소리. 딘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흉터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손목을 계속해서 비틀어댔다. 참아라.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아리하의 성은 무너질 것이다. 그리하면 그는 성벽의 잔해들을 내려다보며 큰 소리로 외칠 것이다. - 나는 형이다, 이것들아! -
그런데 여기서의 문제가 하나 있다. 그 대단하신 형님께서 도대체 무슨 영문으로 미친 사이코 흉악범들을 가둬두면 딱일 것 같은 장소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의식이 끊기기 전의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모텔 방에서 특대 사이즈의 피자를 주문했고, 샘이 실수로 방귀를 껴서 난리가 났고, 훔친 신용카드를 긁어 임팔라에 기름을 채워넣었고, 괜찮은 외모의 술집 바텐더에게 지분거렸다. 뭐야, 이거. 딘은 허리가 개미처럼 날씬했던 섹시한 바텐더의 이름이 파멜라였다는 것까지 기억해낸 뒤에 끅끅거렸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딘이 더듬어야 할 부분의 기억은 여자 화장실에서 부랴부랴 치뤄낸 파멜라와의 스탠딩 섹스가 아니라 그보다 한참 나중에 위치하고 있었고, 지랄맞게도 그 중요한 부분의 레코드는 불가사의한 세력에 의해 이미 깨끗하게 말살되어 있었다. 완전한 공백. 표백제를 붓고 뜨거운 물로 한바탕 삶아낸 행주처럼 깔끔했다.
만약에 두 손이 자유로웠더라면 수염이 자라난 얼굴을 북북 문질렀을 것이다. 납득할 수 없었다. 최소 하루, 최대 일주일치의 기억이 날아간 듯했다. 앞뒤가 맞지 않다. 누군가가 휘두른 몽둥이에 맞은 거라면, 그 이전에 거친 몸싸움이 있었을 것이고, 딘은 다섯 방 가량의 주먹을 날렸을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기억했을 것이다. 싸움... 있었던가. 헤집어봐도 수줍게 웃는 샘의 얼굴밖엔 안 떠올랐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에게 몰래 약을 먹인 건가. 아님 전기 충격기를 사용해 기절시켰나. 모르겠다. 샘과 같이 공원에서 구운 소시지를 먹었던 기억밖엔 안 났다. 둘은 매운 겨자 소스를 발랐고, 그 유명한 입맛 깍쟁이 새미가 맛있다고 말했다. 동생의 그 말에 어쩐지 즐거워져서 딘은 충동적으로 풍선을 사고 싶어졌다. 샘은 소시지를 베어물다 말고 깜짝 놀라는 눈치였고, 풍선은 자신들과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더듬거리는 어투로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그건 모르는 소리, 해봐야 알지. 딘의 강압적인 요구로 빨간색 풍선을 억지로 쥐고 있었던 샘은 정말이지 깨물어주고 싶도록 깜찍했다.
「형! 이러고 있으니까 내가 게이처럼 보이잖아!」 「난 마음에 들어. 정말 멋져.」 「그럼 형이 풍선 들고 있어!」 「어허라, 새미. 소리 지르지 마. 다람쥐들이 놀라잖아.」 「형은 내가 소중해, 아님 다람쥐들이 더 소중해?! 지금 다람쥐를 걱정할 때야?!」 「다람쥐는 걱정 안해. 하지만 네가 막 성질을 부리고 그러니까 아기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아줌마들이 다들 까무라치고 있잖니. 오, 부인. 염려 마세요. 얜 그냥 풍선이 좋을 뿐이예요. 흥분해서 그러는 거니까 무서워하지 마세요. 운동하기엔 좋은 날씨죠? 안녕히 가세요.」 샘은 벌 받는 기분으로 풍선을 두 시간이나 들고 있었고, 결국 처치 곤란의 골칫덩이를 나무에 매달고 도망쳤다.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별 생각 없이 맥주 캔을 땄을 적에 딘은 솟구치는 내용물을 머리 위로 홀딱 뒤집어 써야만 했다. 『아냐, 아냐. 그 일로 싸운 건 바비에게서 책을 빌려오기 전이라고.』 그들은 바비 아저씨의 오두막을 방문했고, 반나절 가량을 머물렀다. 이거, 느낌이 좋다. 딘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해보자.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더라... 샘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났다. 산더미처럼 책을 골라 임팔라 트렁크에 실었고, 출발할 무렵엔 해가 져서 어두웠다. 그랬다. 밀려오는 땅거미들을 보고 불안감을 느낀 바비가 어차피 서둘러봤자 거기서 거기니까 내일 아침에 떠나는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만사가 느긋한 딘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샘은 고개를 부드럽게 가로저었다. 그들에겐 할 일이 많았고 - 읽어야 할 책들이 넘쳤고 - 바비네 오두막엔 침실이 딱 하나였다. 덩치 커다란 사내 셋이서 발을 뻗고 눕기엔 좁아도 너무 좁았다. 「왜? 난 맨 바닥에서도 잘 수 있어, 새미. 쿠션만 있음 된다고.」 딘은 툴툴거렸다. 「알아. 하지만 바비 아저씨는 쿠션이 빠진 매트리스에서 주무시기엔 허리가 안 좋아.」 그걸로 끝. 딘은 운전대를 잡았고, 바비는 허리가 나빠 보인다는 샘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나서는? 딘은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내가 졸음 운전을 한 건가. 아닌데. 분명히 모텔에서 체크 인을 하고 트렁크에서 꺼낸 책을 샘과 같이 안으로 옮겼단 말이야.』 점점 더 혼란스러웠다. 기억은 다시 쳇바퀴를 돌았다. 그러니까 모텔 방에서 특대 사이즈의 피자를 주문했고, 샘이 뿡 소리를 내고 방귀를 껴서 난리가 났고, 셀프 주유소에 들려 임팔라에 기름을 채워넣었고, 괜찮은 외모의 술집 바텐더에게 발정하여 지분거렸다. 뭐야, 이건. 딘은 끙 소리를 내곤 결박된 손을 당겼다 놓았다 했다. 마음에 안 든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기껏 힘들게 머리를 굴려 제자리냐. 이럴 수는 없다. 더 중요한게 있다.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을 떠올리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새미...』 입술이 탔다. 속이 바싹 말랐다. 『제기랄,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짜증에 겨워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를 억지로 버둥거렸다. 덕분에 끈이 힘껏 당겨졌고, 살갗이 쏠려 무척 아팠다. 그리고 그 아픔이 그를 더욱 환장하게 만들었다. 『새미, 새미, 새미~!! 날 여기서 나가게 해줘. 날 풀어줘~!! 샘~!!』 그리고 네 웃는 얼굴을 보여줘. 아마도 그럼 난 기분이 순식간에 좋아질 거야.
짐승처럼 낮게 으릉거리며 방안을 다시 살폈다. 가로 세로 약 5미터. 무척 좁았다. 창문엔 블라인드가 내려져 이렇다 할 정보를 주지 않았다. 밤인지 낮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딘은 고개를 옆으로 하고 베개의 냄새를 맡았다. 눅직하게 습기를 머금은 천에서는 희미하게 소독약 냄새가 났다. 그런데 깨끗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더럽고 불길하게 느껴졌다. 뭐랄까, 죽음의 천사가 내뿜는 호흡 같아서 딘은 얼른 베개로부터 코를 떼어냈다.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야... 절대로 아니라고 해야 해.』 무서워졌다.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나라에서는 사람을 무작정 납치해서 장기를 떼어간다고 한다. 노숙자나 부랑자, 가출한 어린이들은 쉬운 먹잇감이다. 사람을 팔고 사는 조직은 거대해서 때로는 경찰도 한통속이다. 제일 인기 있는 부위는 신장이다. 다음이 간, 그리고 심장, 눈알, 허파... 모든게 다 돈이다. 심지어 그들은 피부도 벗겨간다. 뼈마저 뜯어내 이식용으로 팔아치운다. 당신이 페니스를 크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주입하는 지방은 죽은 자들로부터 추출해낸 기름이다. 의사는 혹시라도 모를 수술 후 부작용에 대해서는 기꺼이 설명을 해주겠지만, 당신 몸에 집어넣는 부드러운 물질이 어디서부터 왔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할 것이다. 어차피 당신은 진실에 직면하긴 싫을테고, 의사 또한 하체를 드러낸 환자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걸 원치 않을테니 말이다. 『싫어! 난 장기 이식에 동의를 하지 않았다고!』 신장은 온전히 두 개 다 있어야 한다.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인 맹장을 떼어가겠다고 해도 남에게 공짜로는 주지 않겠다. 딘은 호흡했다. 호흡해야만 했다. 이건 위기다. 딘 윈체스터가 위기에 처했다. 그는 뱃가죽에 힘을 주었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제발 풀려나라. 바둥대며 몸을 뒤집으려 기를 썼다. 철제 침대가 달카당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그러나 그를 묶은 매듭은 느슨해지기는커녕 되려 바짝 조여졌다. 샘이 음흉한 목소리로, 순전히 딘을 겁주기 위해, 그런다고 누가 반응을 할 것 같냐, 신문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1992년 3월, 콜롬비아에서 오스카 라파엘 헤르난데즈라는 이름의 넝마주이가 바랑키야 자유 대학교의 경비들이 작당하는 바람에 해부 실습실 실험 재료로 팔릴 뻔했...
《그렇게 억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돌연 하얀 마스크를 쓴 남자가 물끄러미 눈을 맞춰왔다. 한참을 발버둥치다 말고 딘은 질겁했다. 문이 열리는 기척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당신, 누구야!』 남자는 침착한 태도로 딘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딘은 멀리 달아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재갈은 물리지 않겠습니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당신, 누구냐니까!』 《하는 수 없군요. 당신은 너무 시끄러워요. 아래층에서 항의가 들어오면 곤란합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소독한 거즈 - 아마도 그럴 거라 짐작되는 - 가 입안으로 돌진하여 들어왔다. 딘은 그 재수 없는 걸 어떻게든 뱉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남자는 꽤나 노련했고, 천 덩어리를 쉬지않고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역겨운 천조각은 금새 목구멍을 틀어막았고 딘은 이러다 질식사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었다. 아니, 상황을 직시하자. 사실 그보다 천 배는 더 심각한 요소가 있었다. 하얀 마스크의 남자는 척 보기에도 날카롭게 생긴 손도끼를 들고 있었다.
「맙소사. 그걸로 나에게 뭔 짓을 하려고?!」 딘은 지금처럼 겁에 질린 적이 드물었다. 동공이 바늘처럼 오그라들었다. 그는 남자가 든 손도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금방 끝납니다. 긴장 푸세요.》 그러니까 뭘 시작하려는 거냐고! 두려움에 끙끙거리는 그를 향해 총알과도 같은 속도로 도끼가 내려왔다.
하느님. 남자는 천연덕스럽게 딘의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흉기를 휘둘러댔다. 퍽 소리가 나면서 피부와 근육이 동시에 쪼개졌다. 가닥가닥 헤어진 신경과 살점이 매끄러운 절단면을 따라 해초처럼 흔들렸다. 딘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제발 멈춰! 제발!」 도끼날이 천장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으악!」 그것은 드러난 뼈를 힘껏 찍었고, 앞뒤로 흔들었고, 벌겋게 드러난 생살을 엉망으로 후벼팠다.
그만두라고 애걸하며 울었다. 아프다. 딘은 있는 힘을 다해 결박된 팔을 흔들어댔다. 제발 놓아줘. 나를 그만 보내줘. 어째서야?! 이렇게나 아픈데도 왜 나는 기절할 수 없는 거지?
《왜냐하면 이것은 꿈이기 때문입니다.》 도끼를 든 남자가 높낮이가 없는 이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은 제정신을 놓고 있어요. 알고 있나요? 여기는 현실이 아닙니다.》 마스크를 쓴 그가 몸통에서 떨어져나간 남의 허벅지를 무슨 보물인양 품에 안았다. 《엄중히 경고합니다. 당신은 죽어가고 있어요. 속히 돌아가는게 좋을 겁니다.》
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설명따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남자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다시금 도끼를 휘둘러댔고, 돼지를 도살하듯 내리치는 동작은 정확히 열 여덟 번 반복되었다.
Posted by 미야
2007/11/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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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까지나 건전을 지향하는 (응?)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저장고를 뒤져봐도 해당 문서가 없길래 죄다 날렸나 아침부터 울부짓고... 휴. ※
1분은 60초다. 1부터 60까지의 숫자를 또박또박 헤아리면 1분이 된다. 그렇게 따지면 참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60이라는 숫자는 결코 작지 않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1분이 얼마나 짧은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졸린 눈을 부비며 하품을 지긋이 하고, 코를 만지고,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봤다가, 발을 꼼지락거리면 어느새 1분이 흐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라서 목깃을 세운 회색 코트 차림새의 수상한 사내가 남의 호주머니를 뒤져 몰래 훔쳐간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60의 숫자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송두리째 증발하고, 그런 까닭으로 당신의 수명은 방금 전에 1분이 줄었다.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샘은 넋을 잃었고, 무릎의 휘청거림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자리에 주저앉았다. 방금 전에 그는 60초와 1분의 시간이 아닌 나머지 수명 전부를 한꺼번에 도둑 맞았고, 그 탓에 떡갈나무를 닮은 추레한 노인이 되었다. 모든 생명력은 고갈되었다. 머리는 백발이 되었으며, 홍채는 탄력을 잃어 뻣뻣해졌다. 좁아지고 흐려진 시야는 오로지 그의 낡아빠진 신발만을 비췄다. 바짓단 사이로 드러난 마르고 덧 없는 발목이 조소를 자아냈다. 지팡이 없이는 체중을 지탱할 수도 없는 몸은 앞으로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치욕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칼, 살육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은 소멸한다. 정명의 대로에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간다. 『샘! 빨리 와서 날 도와줘!』 날카롭게 울리는 이명. 그것은 끔찍스런 바다의 범람을 닮았고, 들판에서 황충이 날개를 펴고 덤비는 소리와도 같았다. 『샘!』 싫다.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무엇을 도우라는 건가. 박살난 피붙이의 머리 조각을 수습하라고? 시체를 씻기고 염을 하라고? 부릅뜬 눈을 편히 감겨주라고? 관에다 못질을 하라고?! 못 한다. 안 한다. 그런 일을 할 각오따윈 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나중에까지 그럴 것이다. 물에 젖은 눈꺼풀을 닫은 샘은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었다. 뿔로 만든 악기를 불어 빨리 달리기를 종용해도 그는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이름을 부르지 마요!』 만약 태어난 순서대로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아들은 아버지를 땅에 묻어야 하고, 동생은 그 형의 시신을 물에 띄어 흘려보내야 한다. 소중한 사람들은 언젠가 정해진 수명을 다하고 야훼가 아담을 저주한 바 그대로 흙으로 돌아간다. 장례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들의 육체는 서서히 썩어간다. 싫든 좋든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다. 『싫어요! 싫다고요!』 그런 현실따위... 개나 먹으라지.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불에 태운게 엊그제 같다. 그런데 이번엔 형의 시체마저 태우라는 건가. 『날 그냥 내버려둬요!』
정작 중요한 순간이 되면 요-만큼도 도움이 되어주지 않는 녀석. 끌끌 혀 차는 소리를 낸 리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 확실한 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모두를 대신해서 소매를 걷어올렸다. 교통 사고에서처럼 한 눈에 보기에도 많이 다친 것이 확실한 환자의 경우 섣불리 만지지 않는게 제일 좋다고 전문 응급요원들은 설명한다. 도움을 준답시고 손을 내밀었다가 반대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아주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문제는 단순히 눈으로만 보고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최소한 맥을 짚어야 심장이 뛰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낼 수 있고, 눈꺼풀을 뒤집어야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일단 손을 대기 시작하면 급한 마음에 애들에게 사탕이나 팔던 구멍가게 주인이 돌팔이 야메 의사로 돌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뒤숭숭하고 혼란스러운 교통 사고 현장의 분위기는 그런 잘못된 행동을 부채질을 하면 하지, 결코 말리지는 않는다.
아메 의사도 때론 납작한 들창코를 클레오파트라의 코로 만들 수 있다드라. 믿으면서 아멘한다. 최대한 조심해가며 쓰러진 딘의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를 받친 손바닥이 피로 흥건히 젖지 않은 걸로 봐선 시작이 좋았다. 그러나 리는 쓸데없는 희망으로 현실을 장밋빛으로 왜곡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22구경 탄환의 경우는 두개골처럼 단단한 뼈를 쉽게 관통하지 못한다. 더듬거려 확인한 뒷통수의 모양새가 온전하다고 좋아하기엔 아직 이르다. 머리 속으로 들어간 총알이 뇌를 고속으로 휘젖다가 부드러운 젤리가 된 덩어리들과 같이해서 가라앉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코나 입으로 피를 흘리지 않고 있는 걸 눈여겨 보며 짧게 다듬은 머리카락을 신중한 태도로 위로 쓸어넘겼다. 하지만 검댕이 많이 묻은 탓에 사입구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짐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쳇 소리를 내며 더러운 머리카락을 다시 반대편으로 헤집었다. 동시에 골똘히 생각했다. 총성이 먼저였던가, 아님 딘 윈체스터가 쓰러지던게 먼저였던가. 동시였던 것도 같고, 쓰러지던게 먼저였던 것도 같다. 어쩌면 이도저도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의 감각이라는 건 여차하면 혼동을 일으키고 잘못된 정보를 진짜인 것처럼 받아들이기 일수다. 그러니까 파르르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눈꺼풀도 어쩌면 단순한 시각적 착각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헐떡거리는 입김이 닿아 속눈썹이 살짝 흔들린 것일 수도 있다. 심장이 멎었음에도 시체의 손가락은 꿈틀거린다. 속단을 내리기엔 정보가 부족하다. 『헤이! 내 말 들려?』 귀에 가까이 대고 이름을 불러보았다. 빌어먹게도 그의 가슴은 아직 따스했다. 『이봐! 딘 윈체스터!』
그러다 문득 딘의 오른손으로 시선이 갔다. 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했다. 총을 쏘고 자살하려 했다면 손에 총을 쥐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의 손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대신 손등으로 빨갛게 눈에 띄는 자국이 보였다. 동전 하나 크기였고 모양은 둥글었다. 마치 날아오는 돌에 세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리는 돌연 기묘한 운명 같은 것에 사로잡힌 듯한 기분을 느꼈다. 운명은 그들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포위하고 있었고, 강력했고, 사람의 자유의지라는 것 자체를 비웃게 만들었다. 퍼득 어떠한 가설이 머리를 스쳤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고,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설마.』 딘이 떨어뜨린 권총은 5m 앞으로 굴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낯선 물건이 덤으로 하나 더 놓여져 있었다. 묵직한 부피의 남성용 시계, 시곗줄이 망가진... 그녀는 신음했다. 이젠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히 알았다. 가까이에서 보지 않았음에도 그놈의 망할 시계의 상표가 짝퉁 론진일 거라는데 흔쾌히 100달러를 걸 수 있었다. 예의 브래드 피트를 닮은 뱀파이어 남자가 끼고 있던 바로 그 시계다.
윌리엄 텔은 아들의 머리 위로 사과를 올려다놓고 멀리서 화살을 당겨 단번에 명중시켰다. 일개 산적도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하물며 상대는 사람보다 감각이 수 십배는 월등한 뱀파이어다.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아이의 머리 위로 올라간게 사과가 아니라 훨씬 작은 포도알이었다고 해도 너끈히 쏘아맞출 수 있다.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는 남자의 손등으로 손목시계를 집어던져 훼방을 놓는 것쯤은 애들 장난이다.
어둠 속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는 고개를 들어 거기겠거니 싶은 쪽을 쳐다보았다. 허나 모습은 없었다. 《맹세하는데 자비를 베풀려던 건 절대 아니야. 당신도 잘 알겠지만 앞으로가 더 큰일이니까.》 그 존재감은 너무나 작아서 리는 그 목소리가 순전히 환청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 시계는 어차피 수리가 불가능할 것 같으니까 그냥 버린 걸세.》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리는 그가 애매하게 한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수줍어하는 것도 같았고, 필요도 없는 진공 청소기를 실수로 주문하기라도 한 것처럼 난처해 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왜, 내지는 어째서, 라고 묻지 말게.》 촛불이 흔들리듯 점차 말꼬리가 희미해졌다. 자신감 없는 음성은 후~ 하고 숨을 부는 작은 바람에도 갈기갈기 헤어졌다. 《그런데 그 시계는 짝퉁이 아니야. 정말로 밀라노에서... 거금을 주고...》 그 마지막은 거품이 꺼지는 소리를 많이 닮았다. 불이 꺼졌고, 기척은 곧 사라졌다.
이젠 진짜 시간이 없다. 리는 너무나 생생한 꿈에서 방금 깨어난 사람처럼 현실감을 되찾았다. 돌연 복부에서 뭔가가 폭발했고, 모든 지각능력이 신축성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았어. 시계는 진짜 론진이고, 빚졌다고 치지.』 물 먹은 솜덩이처럼 축 늘어진 딘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샘!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선택은 딱 두 가지다. 나는 네 형을 이대로 편히 죽게 해줄 수도 있어. 그는 아픔은 하나도 느끼지 않을 거야. 약속하지. 물론 우린 포기하지 않고 딘을 살려낼 수도 있어. 대신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끔찍스럽게 고통스럽다는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자! 어떻게 할까. 응?』
한쪽 저울에는 편안한 죽음. 그리고 그 반대편 저울로는 고통스런 삶이 올라가 있다. 무엇을 집어들 것인가. 둘의 가격은 똑같다. 교활한 장사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선택하는 고객의 손을 응시했다.
샘은 손등으로 벌겋게 변한 눈가를 슥슥 문질러 닦았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샘은 그 입을 야무지게 다물었다. 『그는 살아야 해요.』 「딘이 살았으면 좋겠다」, 내지는「딘은 이대로 끝내기를 원치 않을 수도 있다」가 아니었다. 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했다. 죽어선 안 된다. 칼날 위를 맨발로 걷는 듯한 고통은 알 바 아니다. 육지로 올라온 인어가 겪어야만 했던 처참한 저주따윈 신경 안 쓴다. 샘은 어떻게든 딘이 살기를 원했고, 자신의 옆에 있어주길 바랬다. 행여라도 편안하게 떠나가길 희망한다고 해도 놓아줄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다. 밧줄로 휘감아 끌어당길 것이다. 너무 심하게 잡아당겨 팔뚝 하나가 잘려나간다고 해도 상관 없다. 샘은 모든 비난을 감수할 것이고, 미움받을 준비도 했다. 샘은 선택의 저울에서 전갈의 독이 발리워진 삶을 망설임 없이 들어 올렸다.
리는 그 선택이 정확한지를 확인해야 했다. 나중에 어색하게 웃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하면 그것처럼 난감할 일은 없을 터. 이건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교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가 너에게 총구를 겨누었다는 걸 결코 잊으면 안돼, 샘. 쉽게 생각했다간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총을 쏘려 했다는 것도...』 채 듣지 않고 샘은 차가운 형의 손을 얼른 붙잡았다. 조금이라도 더 그에게로 온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쓰다듬고, 호호 입김을 불고, 손가락을 깍지꼈다. 『설명은 됐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정나미 떨어진다는 눈길로 샘을 내려다보던 리는 이윽고 항복의 의미로 고개를 흔들어댔다. 『알았다. 일단 장소를 바꾸자. 네 형의 머리를 잘 잡아. 그리고 네 형의 혈액형이 뭐지?』 『나랑 같아요.』 『넌 바보냐?! 그건 답이 될 수 없지!』 기다렸다는 식으로 순찰차들이 달려오는 요란한 경적소리, 그리고 구급차들과 소방차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는 어둠을 훼방하는 파랗고 빨간 불꽃들을 향해 힐끔 시선을 주었고, 허리를 굽혀 딘이 떨어뜨린 권총을 찾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차, 잊으면 안 되지.』 그리고 자칫 깜빡 잊을 뻔했다는 투로 박살난 남성용 시계를 따로 챙겼다.
2층의 창문이 쨍그렁 소리를 내며 깨졌다. 샘은 상체를 숙여 혹시라도 모를 파편으로부터 딘을 보호했다. 불길이 사방에서 이글거렸고, 그 모습은 마치 모의 재판과 처형으로 막을 내리는 참회의 화요일 축제 (* 마디그라) 와도 같았다. 그렇다면 1년치 재앙을 피하기 위해 모닥불을 뛰어 넘도록 하자. 샘은 정신을 잃은 딘의 얼굴과 목, 그리고 어깨를 어루만졌고, 무척이나 작아 보이는 그를 품에 안았다. 『형,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만약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바로잡을 테니까...』 그 난장판 속에서 샘은 놀랍도록 침착해지는 자신을 깨달았다. 『날 믿어.』 단호하게 말한 샘은 커다란 손으로 딘의 뒷통수를 촘촘한 그물처럼 잘 감쌌다.
Posted by 미야
2007/11/04 19:38
2007/11/0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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