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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4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형장과 사추가 걱정했다.”
거기까지 말한 함광군은 묵묵히 입을 다물어버렸다.
길게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나는 손을 떨었다.
세간에서 칭송하는 명사라고 이러깁니까.
내가 먼저 나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기엔 함광군의 표정이 지나치게 근엄했다. 무심의 경지에 도달한 지장보살의 얼굴이어서 떠들기는커녕 옆에서 같이 침묵수행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백을 강요하는 압박감도 같이 느껴졌다. 고해성사! 그러니까 딱 그거다.
트레이너님, 제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야식을 주문해 먹었습니다. 참회하는 의미로 스쿼드 20회 추가하겠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손톱만 튕겼다.
그런 나를 함광군은 색이 연한 눈으로 뚫어져라 응시했다.

없던 위궤양 증상이 발현하기 일보 직전, 머리에 꽃 단 아이가 함광군의 부어오른 손가락에 자기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아이는 생전 엄마에게 배웠던 대로 아픈 거 빨리 날아가라며 숨을 호호 불었다. 어떻게 보면 함 흐뭇한 광경인데 숨을 부는 아이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솜털이 쭈뼛 섰다.
사특한 존재라고 생각한 함광군이 지니고 있는 보검으로 베어버리면 그건 성불이 아니고 파훼다.
아무리 귀신이라지만 어린아이가 박살나는 걸 목격하긴 싫었다.
나는 계속 신호를 보내 에비, 지지, 당장 떨어지라 했다.
하지만 함광군이 매우 잘 생겼기에 내 말이 먹혀 들어갈 리 없었다. 애들은 본능적으로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한다. 미인인 유치원 선생님의 다리를 붙잡고 ‘선생님, 결혼했어요?’ 물어보는 건 만국 공통이다. 나도 어릴 적에 못생긴 아버지 버리고 잘 생긴 옆집 형 따라 목욕탕에 간 적이 있다.

내 얼굴이 새파래졌다 하얘졌다 다시 빨개지자 함광군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표정인데 이쪽이 목이 턱 막혔다.
“저기, 손가락이 많이 부으셔서.”
“......”
“아프실 거 같은데.”
“......”
“아니, 뭐 그렇다고요.”
물집이 잡히는 것만으로도 그게 얼마나 쓰라린지 알고 있는데 본인은 그리 마음에 두지 않는 눈치다.
그리고 다시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택무군과 남사추가 내 생사여부를 궁금히 여겼다. 그래서 문령을 반복하여 확인하러 왔다. 끝.
살려줘, 살려달라고.

이런 유형의 사람과 무인도에 단 둘만 남으면 이틀만에 입으로 피 토하고 죽는다.
조난을 당한 사람이라면 무릇 SOS 신호를 어떻게 보낼 것이며, 불은 어떻게 피울 거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식수는 어떻게 해결할 건지 옆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비행기 추락에서 살아남은 동지가 석고 틀에 부어 만든 딱딱한 얼굴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이러는 거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계속. 그럼 헬리코박터균이 없어도 위가 아파지게 된다.
심지어 그는 습격에 대해 캐묻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죽었는데 무리에서 나 혼자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수사들을 파견했는데 왜 피하고 돌아다닌 건지, 운심부지처로 돌아올 생각은 있는 건지, 궁금해서 물어볼 법도 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무사했음 되었다.”
“네.”
“......”
그리고 다시 기괴한 대치가 계속되었다.
아니, 진짜지. 이 사람과 정상적으로 대화하려면 화술 스킬 레벨이 어디까지 올라야 하냐고.

난처한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내 화술 스킬은 노멀 등급이다.
“그게, 설명이 어려운데... 진심으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있어요.”
속이 답답했다. 그런데 이 답답함은 시원한 물 한 잔 마셔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유가 있는데, 그건... 믿을 수 없어서예요.”
널 못 믿는다는 말을 듣고도 함광군의 표정에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았다. 솔직히 원숭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도 모르는 척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일절 관심이 없어 보였고, 어떤 의미에선 지루해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런데 벌겋게 변한 손가락은 그와 상반되는 시그널을 보냈다. 고금 연주에 단련된 사람이 손가락이 저지경이 되도록 오랫동안 줄을 튕겨가며 문령을 한 거다. 온전히 날 찾기 위해서.
“괜찮다.”
이것으로 저 사람이 말하는 ‘괜찮다’ 의 무게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확실했다.

돌연 함광군이 들고 있던 고금을 소매 안에 넣었다.
진정한 도라에몽의 수납공간이었다. 그 커다란 물건이 아무렇지도 않게 스윽 사라지는 걸 보면 게임 인벤토리 같은 기능을 가진 듯했다. 새삼 여기가 판타지 세계라는 게 실감났다.
머리에 꽃을 단 아이가 깨달았다며 박수를 짝, 하고 치더니 급히 어디론가 뛰어갔다.
따라가 보니 나무뿌리가 엉킨 곳으로 작고 연약한 뼈가 보였다. 언제부터 여기에 누워있었던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뻥 뚫린 두개골의 눈구멍으로 다리가 많이 달린 벌레가 지나갔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쭈그리고 앉아 벌레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어린아이다운 호기심을 드러내며 벌레를 향해 손가락을 꾹꾹 찔러댔다.

두 팔을 걷어붙였다.
여기는 지옥이다. 지옥 같은 곳이다.
삽 같은 적절한 도구가 없어 함광군이 자신의 보검 피진으로 나무뿌리를 끊어냈다. 그 옆에서 나는 맨손으로 뼈를 정리했다. 부드럽고 작은 뼈들은 이미 다수가 소실되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일부는 들개 같은 짐승이 먹이로 인식하고 둥지로 물어갔을 것이다.
뼈에 붙은 몇 가닥 남은 머리카락을 예쁘게 정리해주고 흙을 덮었다.

“혹시 마차 몰던 마부를 조사해보셨나요.”
“그 사람은 금린대 사람이다.”
“그건 내부적으로 정보가 공유되었기에 마부에 대한 조사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인가요?”
“다른 가문의 일이라는 뜻이다. 염방존에게는 적이 많다.”
많이 생략된 내용이었지만 돌아가는 그림은 대충 머리에 들어왔다.
염방존은 도중에 계획을 바꿔 실력 있는 수사들과 같이 무리에서 이탈했다.
마차는 비어있었고, 마부는 암살자가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마부석에서 뛰어내렸다.
운심부지처 사람이 무리를 따라가다 휩쓸려 죽었지만, 혹은 죽었다고 추정되었지만, 사건 조사는 금린대 사람들이 도맡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함광군이 질문했다.
“왜 마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나 빼고 유일한 생존자잖아요.”
“아니다. 그 사람은 죽었다.”
“엑?!”
누군지 몰라도 마부를 빨간 마티즈에 태웠다. 신속한 꼬리 자르기였다.
애초에 날 납치한 무리와 한패이기는 했을까. 그 또한 이용당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이용을 당했지?

약양 상씨 일족 참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설양이 음호부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
효성진 도장이 그 음호부를 빼돌렸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

손가락을 접어가며 헤아려봤다. 위치가 높다. 권력이 있다. 비밀리에 사람을 죽여도 의심을 받지 않는다.
나 같은 건 언제든지 처치 가능할 거다. 그러나 건드리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함광군 같은 운심부지처 사람들이 날 부지런히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본 전제조건이 마음에 걸린다.
난릉 금씨와 고소 남씨는 짝패다. 실제로 염방존과 택무군은 서로 형님, 아우 하는 관계다.
효성진 도장은 나에게 이 두 가문을 믿지 말라고 전언을 남겼다.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어딘가 묘하게 아귀가 맞지 않는다.
 
머리를 헤집었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권모술수에 약하고 사람의 이중적 속내를 파악하는 일에 재주가 없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고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다, 아니. 이었다. 사내정치를 못했기에 양쪽에서 치이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내가 음모론 어쩌고 이러고 고민해봤자 답이 쉽게 나올 리가 없다.
머리에 꽃을 단 꼬마가 눈치를 보더니 내 이마로 손을 댔다.
아픈 거 훠~어이 날아가라.

“어쩌죠, 함광군. 계속 도망쳐야 할까요?”
함광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언을 해줄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고, 선택은 오롯이 내 몫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판단을 마칠 때까지 종용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제7장 나라카(地獄),  끝.

Posted by 미야

2021/12/21 11:08 2021/12/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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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3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언젠가 부터인지 혼자 걷고 있는 게 아니라 옆에 한 명이 따라붙었다.
사실 한 명이라기보다는 한 귀신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오른쪽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왼쪽 눈으로 봤을 적엔 머리에 꽃 장식을 한 어린 소녀가 보였으니까. 병원에서 시력검사 할 때처럼 잎맥이 넓은 나뭇잎으로 한쪽씩 눈을 가려가며 시험도 해보았으니 착각은 아니다.
예쁘장한 아이였다. 그리고 너무 작아 덜컥 겁이 났다.
‘귀신이라도 부모가 있을지 모르는데, 이러다 약취유인 유괴범 취급 받는 건 아니겠지.’
아이는 가끔씩 콧노래를 불렀고 옹알옹알 알아듣기 어려운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바짝 붙어 날 따라왔다.

“도와줘, 온서염!”
온서염은 들은 척도 안 했다.
흉살스런 종류도 아니고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내버려 두라는 의미인 듯했다.
그것보단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난 것도 같았다.
아니, 그런데 이건 많이 억울했다. 왼쪽 눈에 비친 나루터의 모습이 더러운 마포걸레가 덕지덕지 붙은 모양새라 저리로는 가지 않겠다고 한 것뿐이다. 척 봐도 그건 좋지 않은 것들이었다. 세탁기 속에 넣어두고 30년 동안 존재를 잊어먹은 가발 느낌인데 그게 사람에게 이로운 존재일 것 같진 않았다.
어차피 배 삯도 없고, 그래서 돌아 나왔다.
그런데 온서염은 엄마와 살던 집에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일종의 태업 중이었다.
이쪽에서 세 번 부르면 한 번 대답하는 걸로, 그것도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하는 것으로 복수를 하고 있는데 진짜 찌질한 성격이었다.
그가 걸람이고 내가 온서염이니 누워 침을 뱉는 것과 마찬가지이긴 한데, 아무튼 찌질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내면의 짝꿍으로부터 도움을 얻는 건 포기하고 왼쪽 눈으로 어린애를 관찰했다.
아이는 전반적으로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입에 담기도 역겨운 흉악한 일을 당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외모로 보아 굶어 죽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베시시 웃자 윗니가 없었다. 이갈이 중이었다.
“아니, 이렇게 어려서 귀신이 되면...” 성불은 언제 하는 거냐고.
따라오지 말라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며 턱에 힘을 주고 으음! 소리를 내었더니 웃기만 한다.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알아듣지 못했다.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며 따.라.오.지.말.라.고. 모양을 잘 보라 설명해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쟤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애기야. 나랑 여기에 있음 안 돼. 엄마 어딨어, 아빠 어딨어?”
물어봐도 장난을 치며 마냥 노느라 바빴다.

죄 지은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쨌든 나는 결백하다. 나는 맛있는 거 준다한 적 없고, 같이 놀자 꾀지도 않았다.
턱을 괸 자세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수풀 속에 주저앉자 애기도 따라 옆에 앉았다.
“뭐야, 이번엔 소꿉장난이야?”
풀을 잘게 조각내고 꽃잎을 하나하나 따서 흙과 섞더니 그걸 나뭇잎에 넣고 만두를 빚었다.
그 모양이 하도 웃겨 나뭇잎 만두를 집어 들어 입에 넣는 척하고 냠냠 소리를 내었더니 까무러치며 좋아했다.
그래, 음식 솜씨가 좋구나. 나중에 만두장사를 해도 대성을 하겠어.
아이의 웃는 모습이 좋아 만두를 하나 더 집어 입에 넣는 척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정말 다행이었다. 남들이 이런 내 모습을 봤음 단단히 실성했구나 여겼을 거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도 내가 미쳤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입안으로 흙 맛이 돌고 어금니 틈새로 풀이 끼고 있는데 귀신을 부추겨 만두 하나만 더 달라고 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닌 거 맞다.

《저걸 궁기도까지 데리고 갈 거야?》
온서염이 성가신 걸 끌고 다닌다며 잔소리를 했다. 도와달라며 내 쪽에서 애원했을 적엔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다.
“얘기가 안 통하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나는 분명 쟤더러 따라오지 말라고 말했다.”
나 또한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었다.
소꿉장난에 심취해 있던 아이가 재빨리 반응하며 벌떡 일어나 내 옆으로 가까이 붙었다.
마음대로 하라지. 어깨에 올라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궁기도는 지명으로 찾으면 나오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상고시대부터 궁설, 혹은 궁기도라고 불린 옛길로 그런 이름이 붙은 연유는 궁기라는 괴물이 살았던 곳이었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궁기(窮奇) 괴물 이름에 길 도(道)를 붙여 궁기도가 되었다.
궁기가 뭐냐는 내 질문에 온서염은 개의 울음소리를 내는 날개 달린 호랑이라고 했다.
‘또 호랑이냐. 지긋지긋하게 호랑이가 얽히네.’
궁기는 불효를 조장하고, 악한 사람에게 보물을 선물하며, 착한 사람을 잡아먹는 악신이라서 고대의 영웅이 무려 여든하루 일에 걸쳐 퇴치를 했다고 한다. 그 궁기를 죽이고 천제께 제사를 드린 곳이 궁설이고, 몇 백 년 전까지는 일종의 관광명소처럼 인식되었던 듯하다.
하지만 애초부터 농사가 불가능한 척박한 지형이라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
온서염의 말로는 바위와 자갈이 가득인 곳이라고 했다. 땅이 그 정도로 척박해진 이유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궁기의 독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 서염 오빠가 하는 말 들었니? 거긴 꽃이 없대.”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나는 무당이 아니라서 귀신과의 대화에는 소질이 없었다. 절대 상대가 여자아이여서가 아니다.
“풀도 자라지 않아 아까처럼 소꿉장난 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 어쩔래. 그래도 따라올래?”
아이는 빠진 이를 자랑하듯 헤실 웃기만 했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제풀에 지치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그보다는 지도에도 안 나온다는 곳을 온전히 온서염의 오래되어 빛바랜 기억에 의존하여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솔직히 내 생각으론 미션 성공 확률은 바닥이었다.

“차라리 배를 타고 외국에 가보고 싶다.”
이 시대에도 해상무역은 있을 거다. 이 세상이 역사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은 없어도 – 좀비가 있으니 내가 아는 실제 역사가 아니라 십중팔구 판타지다 – 외국으로 소금이나 도자기를 팔러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다. 담이 작은 탓에 거상이 된 내 모습은 상상이 가질 않았고, 침침한 눈으로 물건의 개수와 포장된 상자를 하나하나 세고 있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배 멀미를 하면 어쩌지.
서른네 살 회사원 안선준은 멀미를 안 했다. 멀미를 했다면 그토록 장시간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하지 못했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탔을 적에도 괜찮았다. 하지만 걸람은 얘기가 다르다.
“서염은 혹시 바다를 본 적 있어?”
《없어.》
그렇다면 버킷 리스트로 만들어두자. 해변에서 모래장난도 하고 배도 타야지. 이 시대에 해상으로 유럽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말레이시아나 베트남이라면 가능할 - 여기까지 생각하다 의식의 흐름이 뚝 끊겼다.

어떤 의미에선 장관이었다. 그러나 억새풀이 장관인 그런 풍경은 아니었다. 비비면 덧난다는 걸 알았어도 눈을 세게 문질렀다. 그런들 사라질 종류는 아니었다만, 어째서인지 들판 가득 혼백들이 바다 거품처럼 일렁였다. 마치 무허가 공장들이 오염수를 무단으로 방류하여 강이 포말로 뒤덮였다던 해외토픽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오래되어 부서지고, 그러다 바람에 떠오르고, 마지막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가라앉고.
물결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속이 메슥거렸다.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격하게 동감한다.
허공에 밧줄이 늘어져있고, 그 밧줄마다 시커먼 인영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숫자가 서른을 넘어갔다. 그들의 정체가 무고한 사람들인지, 붙잡혀 벌을 받은 도적들인지는 알 재주가 없다. 너무 오래 전에 죽었고, 마냥 곱씹고 있기엔 세월이 길었다. 나무조차 뿌리가 썩어 쓰러졌건만 나뭇가지에 묶인 몸은 계속해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것들과 시선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사방이 지뢰밭이다.
안달을 내며 공중에 매달린 것들에게 팔을 뻗는 여자아이를 향해 지지는 만지는 거 아니라고 주의를 주고 길에서 벗어났다.

Take me home, Country roads.

옛날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며 저무는 해와 노을이 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집에 가고 싶다.”
내게는 집이라고 떠올릴만한 곳이 없는데도 막연히 그리웠다. 이 드넓은 천하에 누울 곳 하나 없다.
“누나 보고 싶다.”
택배로 김치 보냈다고 전화해주던 누나가 그립다. 돈은 언제 모을 것이며, 여자 친구는 언제 만들 거냐고 윽박지르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눈물은 나오지 않는데 코가 고춧가루 버무린 것처럼 맵다.
“국물 떡볶이 먹고 싶다.”
기왕 코가 매운 거, 혀가 얼얼한 정도로 뜨끈한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고춧가루 한 스푼에 고추장 한 스푼, 설탕 세 스푼에 진간장 두 스푼. 양배추에 소시지 넣고.
지금처럼 땅속 암반 500미터 아래로 추락한 기분일 적엔 맛있는 걸 상상하면 괜찮아진다.
이참에 버킷 리스트 하나 더 추가다. 어떻게든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먹어본다. 여기서 고추를 재배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만약 없음 남방으로 배를 타고 내려가 직접 찾아보자. 고추는 더운 지방이 원산지라서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부 쓸데없다.

옆에서 풀깍지를 만들며 놀던 작은 아이가 갑자기 환히 웃었다. 꼭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 목소리를 들은 아이처럼 굴었다. 그러더니 다섯 걸음 뛰어가 멈춰 서서 손짓하고, 다시 세 걸음 뛰어가 멈춰 서서 손짓했다.
하는 동작이 따라오라 하는 것 같아 아이가 하자는 대로 했다.
《그러다 귀신에게 홀린다.》
온서염이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간만에 듣는 웃긴 얘기였다. 누가 누굴 조심하라는 건지.

한참을 앞서 나가던 아이가 얼마 후 제자리에서 종종 뛰었다.
잔뜩 신이 난 것도 같고, 칭찬을 바라는 것처럼도 보였다. 미리 꺾어둔 꽃을 흔들며 나를 가리켰다.
그런 아이의 앞에 영하 20도 냉동창고에서 금방 빠져나온 것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커다란 고금을 들고 서 있었다.

아이가 앞니 빠진 입을 열어 무어라 종알거리자 고금의 줄이 디잉, 딩 하고 높은 음으로 울렸다.
찾는 귀신. 여기.
문령으로 아이의 말을 알아들은 함광군이 연주를 하도 오래해서 빨갛게 변한 손가락을 줄에서 천천히 떼어냈다.

Posted by 미야

2021/12/16 19:53 2021/12/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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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2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물결에 일렁이는 태양을 본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음을 깨닫는 건 거의 동시였다.
주변에서 큭큭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높이가 허벅지 정도밖에 오지 않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바나나를 밟고 넘어진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가 발생한다. 웃음이 터지는 거다.

한참을 허푸거리며 몸을 세우자 높이가 낮은 점방 다리가 보였다. 큰 비가 오면 쉽게 떠내려가도록 설계된 점방 다리는 허름한 모습과 달리 지나가는 통행인이 제법 있는 편이었는데 이 근방의 물살이 약하고 물의 깊이가 낮아 먼 길을 돌아서라도 구태여 이쪽으로 건너가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는 그 다리 위를 걷다 아무래도 발을 헛디디고 떨어진 것 같다.
“젊은 놈이 대낮부터 술에 취했냐? 아하하!”
짐을 지고 가던 지게꾼이 내 꼬락서니를 보곤 배가 터지도록 웃느라 바빴다. 여인들도 마찬가지로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어지간히도 모양 빠지게 굴렀던 모양이다.

귀에 들어간 물을 빼기 위해 머리를 탁탁 소리 내어 때렸다.
웃긴 건 웃긴 거고,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여.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구경꾼들의 웃는 소리가 요란한 중에 물살을 가르며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옷을 입은 채로 물기를 쥐어짜고 있자 그제야 사람들이 구경을 멈추고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필름 중간이 깨끗하게 잘려져 나갔는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거?
‘금린대로 가는 길에 습격이 있었고, 눈을 베였고, 납치를 당했고, 고문을 당했고...’
강가 주변을 두리번거려봤다. 당연한 얘기지만 생전 처음 와보는 낯선 곳이었다.

그도 그렇지만 시선의 높이가 평소보다 높아 뭔가 잘못된 듯해서 걱정스럽다.
입고 있는 옷의 소매 길이가 졸아든 연근처럼 짧았고 바지도 발목이 드러났다. 이래선 동생 옷을 잘못 입고 나온 몰골이다. 운심부지처에선 튼튼하고 좋은 옷감을 쓰는 줄 알았는데 물에 젖으면 확 줄어드는 성질이 있었던 걸까, 혼방이 아닌 면 재질의 옷을 잘못 빨면 줄어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
‘햇볕에 말리면 지금보다 더 줄어드는 거 아냐? 그럼 곤란한데.’
근처 나뭇가지에 겉옷을 잘 펴서 널어두고 근처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앉고 나서도 시선의 높이가 예전 같지 않아 어쩐지 어색했다.

“어이, 거기! 다리에서 떨어진 덜 떨어진 놈!”
가죽 보호구를 착용한 남자 둘이서 손을 깔대기 모양으로 만들어 입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물 많이 먹었냐? 다친 곳은 없고?”
방범대원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군사훈련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치안조직 소속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 옆구리에 소박한 모양의 칼을 하나씩 차고 있었고, 소속감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멋을 내기 위함인지 감청색 망토 같은 걸 두르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팔을 흔들어 보였다.

두 사람이 자기네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통제를 할 필요가 있겠어. 다리도 너무 흔들려.”
“괜찮아. 점방 다리는 원래 흔들리는 법이니까. 균형을 못 잡고 떨어지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염곤 나루터에서 수신귀가 나타났다고 해서 다들 이쪽으로 몰려오는데 통제까지 하면 더 혼란해져.”
“상황을 더 두고 볼까나. 그래도 다리에서 떨어진 사람이 있다고 보고는 하는 게 좋겠어.”
“보고를 하는 김에 확실히 하자고. 어~이. 거기 홀딱 젖은 놈! 누가 밀어서 떨어진 건 아니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났다. 어쨌든 다들 웃었으니 남들과 시비가 붙은 건 아닐 거다.
나는 재차 팔을 흔들어 걱정하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고 표현했다.
누가 밀어서 라기 보단 눈이 흐릿해서다. 상처는 거진 나았어도 시력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발을 헛디뎌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나마 빠진 곳의 깊이가 얕아 다행이었다. 최근 비가 내린 적이 없는 거다. 청수오는 평소 수량이 적었지만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날엔 수위가 급격히 올라...

“잠깐. 이건 내 기억이 아닌데?”
쓰게 웃으며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는 요령으로 머리통을 툭툭 쳤다. 라디오 채널이 엇나가 잡음이 잔뜩 섞인 느낌이었다. 옆에선 간첩들이 난수방송 중이고 바늘을 미세하게 조정하자 라디오 DJ의 말소리와 음악소리가 겹쳐서 들려오는 거다. 이쪽에서 클래식 음악을, 저쪽에선 성인 가요 타임이다.
이를 어쩐다.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꿈이 아니었고, 머릿속으로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여긴 어렸을 적에 살았던 곳과 가까운 장소라 잘 아는 것뿐이야.》
“저기요? 온서염 씨?”
《왜.》
“진짜로 온서염이네.”
완전 망했다. 도대체 무엇부터 잘못되었다고 해야 할지 짐작도 안 갔다. 사실 전부 잘못되었다.
콧물인지 강물인지 모를 국물을 들이마시고 침착함을 가장했다.
그래봤자 온서염이 나고, 내가 온서염이다.

“차근차근 하자고. 일단 여기가 어디야.”
《형주.》
강원도라고 하면 내가 알아 듣냐고! 삼척, 동해, 강릉, 이런 식으로 압축해줘야지!
“보다 자세하게 안 되겠어? 정신을 차렸는데 장소도 모르겠고, 날짜도 모르겠고,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황당하잖아. 눈치껏 보아하니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동안 잘만 돌아다닌 눈치인데 이거 전부 네 짓이지?”
《그럼 네가 기절해 있는 동안 다리 뻗고 누워 있으라고? 열흘이나?》
“열흘?!!! 그럼 깨웠어야지!”
《항의는 저쪽에다 해. 깨우고 싶어도 깨울 수 없었어. 초혼을 한답시고 네 혼을 들었다 놓았거든.》
“초혼?”

습격이 있었다고 보고가 올라갔을 거고, 하인들 대다수가 살해당했다. 나는 실종상태였다. 아니, 시체만 못 찾은 상태였다. 나 홀로 살아남았을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혼백이라도 불러 사연을 들어보자며 운심부지처 사람들이 걸람을 부르며 초혼을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꿈인지 생시인지 어두운 방안으로 택무군과 남계인 선생님, 함광군, 그리고 세 명의 다른 수사들이 기괴한 음률로 고금을 튕기고 있었다.
‘나 아직 안 죽었거든요?! 빈사상태이긴 한데 안 죽었거든요? 당장 멈추라고, 멈추라고! 이 개새끼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택무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초혼의식을 서둘러 중단시켰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철썩 때렸다. 그것도 꿈이 아니었다는 거지, 미치고 환장하겠네.
욕설을 듣고 남계인 선생님 거품 물었겠군. 그것만으로도 이미 사형 확정이다.

“그래서 열흘 동안 의식불명이었다고?!”
물이 줄줄 흐르는 바지를 쥐어짜며 물어보았더니 온서염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 혼이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혼자 남은 온서염은 도주를 결심, 예전에 어머니와 같이 숨어 살던 집을 떠올리고 거기로 찾아가려 했단다.
“거기가 어디인 줄은 알고?”
나로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초혼의 실패로 내가 안 죽었다고 밝혀진 셈이니 고소에서 수사들을 풀어 내 행방을 미친 듯이 찾고 있을 텐데 얘는 엄마와 살던 집에 가겠다고 제멋대로 딴 짓 중이었다. 도중에 강에 빠져 물이나 먹고. 자~알 한다.
《시끄러. 너도 고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잖아.》
“당연히 아니지. 고소로 잡혀가면 죽어. 거기 사람들이 사술을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데.”
꿈이라고 여겼지만 주시를 잡아먹은 기억이 있다. 어쩌면... 산 사람도 먹은 것 같다.
토기가 올라오려 했다. 실제로도 헛구역질을 했다.
《먹지 말라고 했을 적에 말을 듣지 않은 건 너야.》
“됐고요. 그만 꺼지세요.”
혼선된 주파수를 어떻게든 고쳐놓던가 해야지. 졸지에 이중인격자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마르지 않아 쉰내가 진동하는 겉옷에 팔을 꿰었다.
외지인의 몸으로 물가에 앉아 혼잣말을 하고 있음 사람들 눈에 너무 띈다. 지금도 점방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다수가 내가 있는 방향을 흘끔거리고 있다. 일단 다리는 안 건너는 것이 좋겠다. 고개를 숙여 땅만 쳐다보며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옛날 숨어 살던 곳이 어디라고?”
《꺼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온서염이 단단히 삐진 투로 말했다. 나는 살살 달래는 목소리로 산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죽은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겠냐며 재차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옛날에도 숨었으니 지금도 숨을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그리 말했다.

온서염의 어머니는, 그러니까 내 어머니는... 이쯤해서 혀를 깨물었다.
어머니는 이릉노조 위무선처럼 일종의 마법사였던 것 같다. 아들이 병사하자 남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음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어쩌면 ‘훔쳐내어’ 주시로 되살려냈다.
그리고 은밀한 곳에 아들을 숨겨뒀다.
사실을 캐묻자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아들이 있는 방에 밀어 넣었다.

앞만 보고 걷는 속도가 나도 모르게 빨라졌다. 다리가 엉킬 지경이었지만 속도를 줄이진 않았다.
남편을 죽이고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도 여러 가문의 수행자들을 잡아 아들에게 먹였다. 당시는 전쟁 중으로 – 나도 모르게 나뭇잎을 잡아 거칠게 비틀었다. 엿본 기억이 전부 망상이나 꿈이 아니라고 한다면 온서염이 먹어치운 사람은 두 자리 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그래서 병사를 풀어 모자를 잡아 죽이려한 거다.
신음이 터져 나왔다.
쫓기고 쫓겨 어머니는 결국 죽었다.
여자는 자신의 최후를 짐작했던지 도중에 아들을 흙속에 파묻었다.
‘기혈을 눌러 반 가사상태로 만들기는 개뿔...’
직접 온서염을 죽여 묻었던 게 아닐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자신의 얘기지만 객관적으로 접근해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여섯 살로 추정되는 걸람은 지저분한 모습으로 소산 거리를 방황하다 사람들 눈에 띄었다.
채소 가게 아들이 이거나 처먹으라며 썩은 과일을 던졌다.
걸람은 과일을 먹고 탈이 단단히 났다. 열이 펄펄 끓었고 의식이 없었다. 그 상태로 의장에 던져졌다.
그래서 죽었다. 아마도 그랬을 거다. 탈수증이 왔는데 자연치유가 되었다고? 그럴 리 없다.
그렇게 몇 번이나 죽고, 몇 번이나 되살아나고, 다시 죽고, 다시 살아나고... 자리에 우뚝 서서 원망을 담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기는 지옥이다.
나는 이 세계에 갇혀버렸다.

Posted by 미야

2021/12/14 16:18 2021/12/1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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