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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7

제8장 어린아이는 사고를 쳐야 어른이 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선자는 매우 똑똑한 개였다.
인간의 지능으로 치자면 일곱에서 여덟 살 어린아이는 될 것이다.
그 어린아이가 어떤 사고를 치고 다니는지를 곱씹자 치미는 울화가 약간은 가라앉았다.
밀가루 포대를 뜯어 주방 바닥을 어지럽히고 본인은 손가락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 아기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딱 그거다. 신문지 뜯어놓고, 소파 갉아먹고, 꽃병 깨뜨리고, 현관에 똥싸놓고, 이어폰 줄 씹고, 휴지통 뒤엎고, 냉장고 문 열어놓고, 액자 떨어뜨리고, 거울 박살내고, 빨랫감 어지럽히고, 침대 위에 쉬하고. 개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네 죄를 알렸다 눈빛으로 쏘아보자 선자는 하품을 하는 척하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종아리를 노렸다.
얘는 진짜 날 깨무는 걸 너무 좋아해서 문제다. 아무래 무는 힘을 조정한다고 해도 날카로운 이빨로 물면 피를 보는 건 순리다.

“선자야. 이것아!”
씹는 장난감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부드러운 나무토막을 골라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 적이 있다.
가대와 달리 반응이 대단히 시큰둥했다.
버리기가 아까워 나무토막으로 멀리 던지고 다시 가져오기 놀이를 했는데 얘가 덩치로 사람을 치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니까 재앙이 따로 없었다. 마치 볼링 핀들을 쓰러뜨리는 것 같았다.
다시는 나무토막 물어오기를 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다친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과하고 다녔다.
그동안 선자는 모란을 가꾼 화단 한 가운데로 질펀하게 똥을 싸는 것으로 나에게 엿을 먹였다.

“우리 진짜 잘 해보자. 제발.”
애원에도 불구하고 선자는 하품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응, 그래. 니 똥 굵어.”
돈을 억만금을 줘도 아무나 못 키운다는 영견은 똥 치운다고 쭈그리고 앉은 내 등에 대고 뒷발차기를 하며 흙을 덮는 시늉을 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PD에게 제보하고 싶다.

밥을 챙겨주는 것도 까다로웠다. 이 세계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사료가 있겠냐고.
그 말인 즉, 주방에서 식재료를 따로 얻어 선자가 먹을 밥을 직접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다.
사람이 먹다 남긴 잔반을 섞어 대충 만들어주면 당연히 먹지 않는다. 그리고 털을 세워가며 진심으로 화를 냈다. 애가 은근 입이 고급이었다.
그 먹는 문제로 사고를 치는 일도 있어 골치가 아팠다.
애초에 ‘닭을 잡아먹지 않도록 잘 감시하라.’ 지시를 왜 했겠는가.
닭고기를 좋아해서 라기 보다는, 순수하게 사냥본능을 일깨워 닭을 쫓아다니는 걸 즐기는 눈치였다만... 일주일에 한 번씩 축사가 뒤집어졌다.
그때마다 불호령이 떨어지고 나는 분노한 인민 앞에서 자아비판 시간을 가져야 했다.

“불쌍한 닭들은 내버려두라고 그랬잖아.”
때린다고 말을 잘 듣는 건 아니니까 귀한 영견에게 주먹만 보여줬다.
버르장머리가 개판이라 내가 뭘 잘못했냐며 선자가 왕왕 짖었다.
“시끄러! 사고는 네가 쳐도, 축사 담당자에게 혼쭐이 나는 건 나라고!”
개의 양쪽 귀를 잡고 이리저리 비틀어대면서 나도 같이 울부짖었다.
개와 사람이 동격으로 싸우는 거냐며 금릉이 어이없어 했지만 평소 예뻐해 주기만 하고 관리는 전혀 하지 않은 도련님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거다.
“네 개는 진짜 사람 말을 안 들어, 도련님.”
“당연하지. 얘는 내 말만 듣거든. 꼬마 선자야, 앉아.”
으이그, 선자 저 못된 것.
밥 한 번 준 적 없는데도 제 주인이라며 금릉 앞에서 꼬리를 흔들어대는 걸 보니 배알이 뒤틀렸다.
개에게도 표정이 있다. 분통을 터뜨리는 날 보고 선자가 씩 웃었다.

선자를 훈련시켜야 하니 금린대 밖으로 따라오라는 금릉의 명령에 하늘이 노래졌다.
여기선 개에게 목줄을 채우는 습관이 없다.
민가로 내려오자 선자는 말 그대로 펄펄 날았다.
가판대를 세워두고 만두를 팔던 상인이 기겁을 했다. 그래도 똑똑한 개라 만두를 먹겠다며 가판대를 뒤엎는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녀석은 만만한 내 몸통을 장사꾼을 향해 밀었다.
“사탄 같은 놈!”
이러다간 만두 팔던 상인과 뒤엉켜 쓰러지게 생겼기에 원하는 걸 들어 선자의 주둥이로 넣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 만두 상인 또한 체념의 향기를 풍겼다.
“사탄 같은 놈!”
다 먹고 입맛을 쩝쩝 다시는 녀석을 향해 재차 욕설을 퍼부어주었다.
상인은 개의 털이 검으니 가루석탄(沙炭)이라 부르는 구나 여겼지만 아무튼 쟨 사탄이었다.

“걸람~!!”
금릉과 사전에 언질을 주고받은 건지 남사추와 남경의가 나타났다.
“진짜로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예상도 못한 일이기에 깜짝 놀랐다. 택무군은 그렇다 치고 날 불량아 취급하던 남계인 선생님이 학생들과 내가 만나도록 허락을 했단 말이야?
기본적으로 결벽증을 장착하고 있는 남씨 사람이면서도 이번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한 건지 남경의가 덥석 날 끌어안았다. 옆에서 사추는 감정이 벅차올랐던지 눈물을 글썽였고, 조금 지나자 코를 흘렸다.
쳐다보는 시선들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길 한복판에서 이러는 거 아니라며 금릉이 서둘러 우리들을 음식점 안으로 떠밀었다.

닭고기 요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인지 지지고 볶는 맛있는 냄새가 입구서부터 진동했다.
미리 예약이 되어 있다며 웃으며 달려 나온 직원들이 준비된 장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하인인 내가 들어가서 공자들과 동석을 해도 되는 건가 걱정이 앞섰지만 포커페이스가 장기인 점원은 내 옷차림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움찔한 쪽은 다른 손님들이었다. 누가 봐도 신분이 낮은 내가 명가 출신 도련님들과 식탁에 나란히 앉으려 하자 표정이 굳었다. 빌어먹을 신분제 사회 같으니라고.
그 와중에 선자는 무료한 표정으로 마을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금릉은 그러라며 자기 개를 내버려 두었다. 훈련을 핑계로 마을로 내려오면 늘 이런 패턴이었는지 꼬리를 세우고 걷는 선자의 뒷모습은 위풍당당했다.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습관대로 반말을 하다 살짝 눈치가 들었다.
“커, 흠! 두 분 공자님들, 여기까진 어떻게 오신 건가요?”
“솜털 곤두선다. 뭐라고 안 할 테니 평소 하던 대로 해.”
남경의가 소름끼친다며 팔뚝을 쓰다듬었다. 예절을 중시하는 남씨 가풍에 전면 위배되는 행동이었지만 나라는 존재가 워낙에 비일상의 연속이었기에 편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덕분에 마음 편하게 터놓고 반말했다.

“우리가 걸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금릉이 힘을 써줬어요. 고마운 일이죠. 수살귀를 조사한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으니 돌아가서도 수살귀 보고서를 쓸 겁니다. 그런데 얼굴의 붕대는 왜 그런 건가요?”
남사추의 질문에 금릉이 대신 답했다.
“변장이야.”
그러면서 오늘에야말로 크리스마스 선물포장을 뜯어보겠다며 붕대 끝을 쥐었다.
왜 이런 거에 집착하는 건지 모르겠다. 건들지 말라는 의미로 금릉의 손등을 찰싹 후려쳤다.
“왜! 말액도 아니잖아! 남씨에게서 이상한 것만 배워와서는.”
이번에도 금릉은 화를 벌컥 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밥상 앞에서는 누구든지 변장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 말이 맞느냐며 남사추에게 물어봤더니 사추는 이렇게 대답했다.
“운심부지처에서는 식사 시 금언입니다만, 금린대에서는 변장풀기가 규칙인가 보죠. 한 번 속아준다 셈치고 풀어보세요.”
“의원 앞이면 모를까, 밥상 앞에서? 굳이?”
아웅다웅하는 와중에 요리들이 속속 도착했고 나는 젓가락을 들어 금릉을 찔렀다.
하지만 남경의와 남사추도 궁금해 하는 눈치인지라 결국 왼쪽 눈을 가리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것 봐, 멀쩡하잖아. 내가 말했잖아. 다 변장이라니까.”
금릉은 별 거 아니라는 투로 그렇게 말했지만 남씨 자제 두 명은 심각해졌다.
확실히 금릉보다 나이를 더 먹었더니 눈치도 귀신이었다.
“걸람... 그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나요? 잘 보여요? 어쩌다 그런 거래요? 치료는 제대로 한 거예요?”
“하나씩 물어봐. 다 말해줄게. 그런데 먹으면서 듣기엔 입맛 떨어질 텐데.”
맑게 끓인 닭볶음탕이 주 메뉴였다.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 매콤하게 조리했음 풍미가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매운맛을 즐기지 않아 소금으로 간을 하여 단백하게 끓여냈다.
살을 발라내어 입에 넣으니 쫄깃하고 맛있었다. 국물은 마늘 향을 살짝 품어 시원했다.

“일단 재수가 없어 눈을 다친 거 맞고, 치료는 저절로 잘 되었고, 운이 좋아 여전히 앞을 볼 수 있어. 그런데 사람의 눈에는 조리개라는 것이 있어 빛에 따라 동공이 커지거나 작아져서 눈을 보호하거든. 운이 나빠 내 경우 그게 잘 되지가 않게 되었어. 이러면 밝은 곳에서 눈을 다치기 쉬워. 그래서 붕대로 빛을 보지 못하게 가린 거야.”
남경의가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눈만 동공이 확 풀린 상태라 상당히 기이하게 보였을 거다. 거울을 봤을 적에 나조차 이상하다 여겼으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쩌다가? 진짜로 강도에게 당한 거야?”
“강도라면 강도겠지. 그보다... 금릉아. 닭 뼈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버리지 말렴.”
“어? 그럼 어디다 버려?”
“거기 접시에 모아둬.”
물론 중세시대 서양에선 먹고 남은 뼈를 바닥에 버리는 게 매너였다. 식탁에 쌓아두면 배우지 못해 무식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배운 자라면 무릇 뼈를 바닥에 버리고 국물이 묻은 손가락을 테이블보 모서리에 문질러 닦아야 했다. 꺼지라고 해라. 나는 그런 꼴 못 본다.

“방금 네 말은 강도가 아니라는 것처럼 들려, 걸람.”
“그럼 그게 강도겠냐. 어느 간덩이 부운 강도가 염방존이 타고 가는 마차를 노리겠어. 택무군이 마차를 타고 가는데 강도가 덤볐다고 하면 너네는 믿을 거냐.”
남경의가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칼처럼 부정했다.
“택무군은 마차를 타지 않아.”
부정하는 쪽이 거깁니까. 택무군에겐 강도가 안 덤빈다고 해야지!

“범인이 상주 허씨라던데.”
“응?”
“소문이 그래. 종주에게 반기를 들고 그 의지를 보인다며 금릉의 작은아버지 암살을 계획한 거라던데.”
뼈를 주섬주섬 정리하던 금릉이 자기도 들은 적 있다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응! 나도 들었어!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상주 허씨를 전부 잡아들일 거라고 했어!”
이번 얘기는 좀 놀라웠다. 금릉은 이제 겨우 열셋이다. 염방존은 겨우 열셋 나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조카에게 자신이 암살당할 뻔했고, 그 범인인 상주 허씨에게 보복할 거라고 사실대로 말해줬다는 거다.
열다섯 살의 남경의가 술을 시켜도 되겠느냐고 물어볼 정도니 이 세계의 상식이 내가 아는 상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만, 피 냄새 진동하는 암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어린 녀석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나는 질색했다.

Posted by 미야

2021/12/27 15:18 2021/12/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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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6

제8장 어린아이는 사고를 쳐야 어른이 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의 가장 적절한 반응은 사람 살려 울부짖으며 우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바라는 것도 그거였다.

금목현의 시선은 하늘로 올라간 연이 아니라 내 얼굴을 향해 있었는데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아무리 의젓한 척해도 아직 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이 몸뚱이는 눈물샘이 고장 나 울지를 못한다. 게다가 뇌신경 프로세서가 엉겨 붙어 울음이 나와야 하는 순간에 웃음이 터진다. 이게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여러 번 죽고 되살아난 탓에 맹독성 화학약품 통에 빠지고 난 뒤에 훼까닥 돌은 DC 빌런처럼 되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 듯하다. 금목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아냐, 너 비웃은 거 아냐. 자존심 긁으려는 의도 아냐.
마음의 외침이 닿지 않은 탓에 금목현의 격려(?)에 따라 화살 재장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이번에야말로 연을 떨어뜨리겠다며 서둘러 화살을 쐈다. 마음이 급했으니 조준은 더 엉망이었고 애먼 화살에 얻어맞을 위기에 처한 나는 말 그대로 연의 줄을 쥔 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연의 움직임은 거의 미친 망아지 수준이었고, 소년들은 독이 바짝 올라 거의 폭발 일보직전까지 이르렀다. 무리 중 활을 가장 잘 쏜다던 금목현도 연을 맞춰 떨어뜨리는데 실패하자 울컥하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게 내 탓이냐고! 나 또한 울컥했다.
고함과 야유가 터지는 와중에 금목현이 승부욕을 보이며 활 두 개를 한꺼번에 줄에 끼웠다.
“그래! 날려버려!”
“본때를 보여줘!”
그들이 노리는 게 연이 아니라 꼭 나인 것 같아 줄을 놓고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닐까 고민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랬다간 화살이 내 등짝에 꽂힐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아까부터 귀 따가워 죽겠네. 누가 오리처럼 꽥꽥거리는 거야!”
누군가 짜증을 내며 시끄럽다 타박을 하는 것과 동시에 금목현이 당겼던 줄을 놓았다.
찰나의 순간 약간의 삑사리가 난 것 같았지만 어쨌든 화살 하나가 성공적으로 연을 꿰뚫었다.
나머지 하나는... 음, 담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다.
“진짜 못 쏘네.”
화려하게 장식된 화살 통을 메고서 날아가던 화살의 궤적을 지켜보던 소년이 밥상 위로 올라온 국이 짜다는 투로 툭 내뱉었다.
금릉이 하던 말을 듣고 있던 금목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호기롭게 두 개의 화살을 걸어 한 번에 쐈는데 그 중 하나만 명중했으니 그렇게 안 하니만 못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하기에 금목현은 남 탓을 했다.
“저 하인 놈이 연을 제대로 날리지 못해서 그래.”
멈추지 않고 광역 스킬을 걸어 공격의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이 방법으론 활쏘기 수련이 잘 되는 것 같지도 않아. 우리가 잘 아는 어느 분께서 말씀하시길, 운몽 제자들은 연을 맞추는 걸로 활쏘기를 배운다고 해서 따라 해봤더니 우리 금씨에겐 영 안 맞는 것 같단 말이지. 방식이 별로야. 후져. 역시 금씨에겐 금씨의 방식이 있고, 강씨에겐 강씨의 방식이 있는 거겠지. 뭐, 누구는 금씨 방법은 내버려두고 강씨 방식으로 수련하는 걸 좋아하지만 말이야... 난 관둘래. 나랑 맞지 않아. 연습을 해도 실력이 안 늘잖아.”

금목현이 지목한 그 어느 분이 아무래도 금릉인 것 같았다.
금릉의 예쁜 얼굴이 왈칵 찌푸려졌다.
그러나 이런 식의 시비가 늘상 있던 일인지 금릉의 대응은... 음, 소인배 그 자체였다.
시비에 비아냥으로 대응했다는 얘기다.
“그런가? 평소에 시시덕거리며 연습을 하니 실력이 안 느는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뭐라고?”
“뭐긴. 네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네 수준으론 방식이 안 맞았던 거야. 고정된 과녁으로 연습을 해야 하는 단계인데 움직이는 연을 무슨 재주로 맞추겠어. 내가 생각이 짧았어. 평소에도 실력이 좋다 하도 과시하기에 그만 착각했지 뭐야.”
응, 이러면 맨주먹으로 싸우자는 거 맞지.
키 큰 소년들이 저보다 작은 금릉을 둥글게 에워쌌다.
그리고 우리 금릉은 참지 않았다. 다수를 상대한다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일련의 망설임 없이 자기가 먼저 주먹을 날리고 보았다.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한 마리 치와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했느냐고?
연줄을 감아 정리하고, 떨어진 연을 줍고, 땅바닥에 꽂힌 화살을 뽑았다.
높으신 도련님들끼리 싸울 적에 천한 것이 함부로 끼어드는 거 아니다.
자기들끼리 바쁜 것 같으니 알아서 꾸벅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아니, 뜨려 했다.
“야! 도중에 가긴 어딜 가려고!”
금목현이 내 목덜미를 덥석 쥐었다.
소동을 눈치 챈 어른이 싸움을 말리려고 여기까지 달려오면 금릉이 먼저 주먹질을 날렸노라 확인을 시켜줄 목격자가 필요하단다.
그런데 내가 왜?
나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모두 앞에서 얼굴에 빨갛게 세로줄 그어진 소년을 지목했다.
줄을 제대로 당길 줄 몰라 화살 한 번 쏘아보지 못했던 소년은 분함과 억울함에 뒤로 넘어가려 했다.
그게 뭐. 내 얼굴에 붕대 감은 거 안 보여? 마무리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눈을 다쳐 사물이 흐릿한데다 전부 같은 색의 옷을 입고 계시니 감자바위 같고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나 빼고 자리에 모인 감자바위 전원의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야!”
“예, 도련님. 따로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턱 아래가 벌겋게 부어오른 금릉이 의원에게 치료받으러 간다면서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너, 구린내 맞지.”
“아닌데요.”
“어쭈? 이것 봐라. 맞잖아, 구린내. 얼굴 절반을 붕대로 감았어도 내 눈은 못 속인다. 네가 죽었다고 남씨네 것들이 광광 울던데 전부 거짓말이었네?”
길을 가로막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덕분에 넘어질 뻔했지만 그보다 금릉은 내 눈을 가린 붕대에 관심이 쏠린 상태였다. 하지 말라는데도 계속 손을 가져가 풀려고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도 아닌데 붕대 끝을 잡은 손끝이 집요했다.
“뭐야, 뭐야. 어째서 그따위로 변장까지 한 거야? 붕대는 영 아닌데. 야, 왜 자꾸 피해.”
“제 이름은 구린내가 아닌데요.”
“그래. 오늘은 몸에서 냄새 안 나네. 그런데 네 이름이 뭐더라.”
“안선준입니다.”
“이게 누굴 속이려 들어. 걸람이잖아, 너.”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으면서 괜히 한 번 찔러본 거냐, 홧김에 붕대 끝을 쥐고 있는 손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치와와는 참지 않는다. 금릉도 지지 않고 내 팔뚝을 찰싹 때렸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얼마나 맵고 따가운지 맞은 자리를 세게 문지르며 신음했다.

“아오, 아파라. 얘가 은근히 손맛이 맵네. 맨날 싸워서 단련이 잔뜩 되어 있구먼.”
“그래서 뭐. 너도 다른 애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설교하려고?”
“미쳤냐? 그런 싸가지들과 뭐 하러 친하게 지내. 그런 놈들은 이쪽에서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 호구 잡을 것들이야. 적당히 거리를 두고 너나 엿 많이 잡수세요 해야 뒤탈이 없다고.”
금릉이 눈을 끔뻑거렸다. 지금까지 싸우지 말라는 말만 들었지, 나처럼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나보다.
“어... 그렇지.”
“그리고 너처럼 다굴 당하면 안 되는 거야. 그게 싸움의 기본 원칙이라고.”
“다굴이 뭔데?”
“아까처럼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는 거.”
“그럼 거기서 꼬리를 내리라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해야 할 때도 있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딱 한 놈만 골라 줘 패. 이놈도 때리고, 저놈도 때리고, 힘들게 노력해봤자 피해가 분산되잖아. 그러니 딱 하나만 노려.”
골목대장 놀이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조언이라고 떠들고 앉았으니 내 얼굴 두께도 참 두껍다.

화살 통을 메고 가는 내 옆에서 도련님이 뒷짐을 지고 걸었다.
“구린내, 너도 사촌들과 자주 싸웠어?”
“싸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어. 자주 왕래를 안 했거든.”
내뱉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건 온서염이 아닌 안선준의 기억을 토대로 나온 이야기였다.
온서염은 소산 거리에서 발견된 이후 고아처럼 자랐으니 왕래고 뭐고 친척 자체가 없었다.
안선준의 가족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만 왕래했는데 사촌과는 연령대도 맞지 않고 서로 교차점이 없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했다. 한선준이 중학생이었을 때 사촌은 대학생 졸업반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적에 장례식장에서 담배 심부름을 시켰던 기억이 났다. 그 정도뿐인 얄팍한 관계였다.
“뭐야.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싸우는 요령에 대해 날 가르치려 들어?”
내게서 화살 통을 도로 빼앗아 들면서 금릉이 어이없어 했다.
음, 그렇게 따지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 보이곤 금릉에게 얼른 의원에게 가보라고 했다. 붓기가 빠지기도 전에 멍이 들 텐데 위치가 또 애매하게 턱 아래라서 밥 먹을 적마다 쑤실 거다. 그러니 약초든 뭐든 미리 잔뜩 발라놓는 게 좋았다.

“어쨌든 내가 먼저 주먹질한 거 아니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별 말씀을.”
“그런데 그 자식들 나중에 보복하러 올 수도 있어. 그... 뭐냐. 금목현은 꽤 치사해.”
“내가 봤을 적에도 그럴 것 같더라. 하지만 괜찮아. 그래봤자 애들이잖아?”
“웃기고 있네. 너도 애거든?!”
여기까지만 하고 우리들은 헤어졌다. 서로 길게 대화를 나눌 처지도 아니었고, 나만 보면 짜증을 내는 유수관이 날 발견하자마자 아까부터 계속 놀고만 있을 거냐며 내 귀를 잡아 뜯으려 했기 때문이다.
살아 움직이는 과녁 역할을 하다 화살에 맞을 뻔했어도 유수관 입장에선 놀이에 불과했다.

“너를 어디다 써먹어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설거지, 물 길어오기, 청소하기, 짐 나르기, 가리지 않고 힘든 일은 다 시키더라.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일주일이 금방 흘러갔다.

이 와중에 금릉이 은밀하게 손을 쓰기라도 한 건지 개 한마리를 돌보는 일이 내 앞으로 떨어졌다.
“귀한 개다.”
압니다. 그리고 내 종아리 씹는 걸 대단히 좋아하는 놈이기도 하죠.
꼬마 선자는 ‘꼬마’ 타이틀을 붙이고 있기가 민망하게 커다랗게 자랐다. 처음 봤을 적엔 주먹밥 크기였던 선자는 대형견 아프간하운드보다 덩치가 더 커졌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움찔하게 될 크기랄까, 털은 촘촘했고 짧은 편이었다. 목덜미에 검은 갈기가 있어 늠름한 수컷의 위용을 보였는데 사실 얜 암컷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거기로 불알이 안 보이니까 아는 거지 그게 뭐 대단한... 음.
주인을 닮아 처음부터 시비조다. 이번에도 선자는 어김없이 내 다리를 와앙 물었다.
썩을 놈의 유수관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아무 것도 못 본 척했다.
“밥을 주고, 털을 빗겨주고, 똥을 치우고, 닭을 잡아먹지 못하게 지켜보면 된다. 참 쉬운 일이지.”
“그보다 식자재를 운반하고 싶습니다만. 그냥 포대자루 옮길게요.”
“안 돼!”
선자를 돌보는 일이 설렁설렁 해치우는 종류가 아니라 일종의 벌칙수행이라는 건 유수관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21/12/23 13:47 2021/12/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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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5

제8장 어린아이는 사고를 쳐야 어른이 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운심부지처가 그 자체로 산이었다면 금린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성이었다.
서울로 올라와서 여의도 63빌딩 처음 보는 시골뜨기가 되어 입을 벌렸다. 건축기술의 한계로 하늘을 찌르는 높이까지 지붕을 올리지 못한 관계로 규모를 옆으로 늘려 크기가 무지막지했다. 화려하고도 웅장한 기세가 그냥 한 나라의 왕궁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기를 꺾는 건 정문의 모양새였는데 정문 입구까지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며 세어보면 무려 108개나 된다던데 이건 사람의 무릎 뼈를 갈아버리는 미친 지랄이었다.
질려하는 내 반응을 곡해하고 길을 안내하던 수사가 기뻐했다. 감탄이 그 감탄이 아닌데 아무튼 좋아했다.

어쨌든 수사는 내가 정문 계단으로 올라갈 신분이 되지 못했기에 이참에 실컷 구경이나 하라며 이곳저곳을 끌고 다녔다. 멀리서 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는 손님들의 모습이 확실히 장관이기는 했다. 비단 옷을 입고 다들 강제 유산소 운동 중이었는데 근엄한 척하고 있어도 겨드랑이에 땀이 차고 있었다.
수사의 말로는 청담회처럼 중요한 모임이 있는 날엔 가마를 사용한다고 한다. 염방존이 친히 입구에 나와 손님을 맞이하고, 황금 가마가 훨훨 날아다니고, 금색으로 옷을 입은 수사들이 주변을 엄호하여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다나.
아무튼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 수사는 나를 데리고 별관처럼 생긴 옆 건물로 들어갔다.

“눈에 붕대는 왜 그런 건데.”
“다쳤습니다.”
“어쩌다?”
“강도에게 당했어요.”
궁예처럼 한쪽 눈을 붕대로 가렸더니 거리 감각이 떨어져 걷는 게 힘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계단을 헛디디고 주룩 미끌어졌다. 난간을 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꼴사나운 장면을 연출할 뻔했다. 한쪽 눈으로만 사물을 보는 훈련을 더 해야겠다 생각하며 이쪽을 흘깃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목 인사를 했다.
안내역할의 수사는 그런 식으로 하다간 해가 져도 끝나지가 않을 거라며 발걸음을 독촉했다.
한참을 빙빙 돌아 호텔 로비 같은 곳에 당도하자 지배인 분위기의 남자가 나를 맞았다.
배가 많이 나와 스스로 발을 닦을 수 없는 풍채의 사내였는데 몸집이 비대해도 동작이 재빨랐다.

“그래서 누구라고?”
“안선준입니다.”
“어디 안씨인가.”
“죽산 안씨입니다.”
“죽산이 어디야. 들어본 적도 없군.”
접힌 종이를 펼쳐 뭐라 적힌 글귀를 읽더니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며 끙 소리를 냈다.
이어지는 건 형식적인 주의사항이었고, 앞으로 당분간 간단한 잡일거리를 하게 될 거 말하며 파리를 쫓는 시늉을 했다.
“유수관! 나는 바쁘다. 나 대신 얘 좀 데려가!”
그러더니 연회용 소반 2천개를 창고로 옮기는 일에 다짜고짜 날 투입했다.
그렇게 금린대에서의 첫날은 짐 나르기로 시작해서 짐 나르기로 막을 내렸다.
다행히 무거운 걸 번쩍번쩍 드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입 갈구기는 딱히 없었다.

“그래서 누구라고?”
“죽산 안씨 안선준입니다. 먼 시골에서 왔습니다.”
“숫자는 셀 줄 알아? 자루 마흔둘을 가져가면 된다.”
다음 날에는 식자재가 든 자루를 주방까지 옮기는 일을 했다. 무가 가득 들어 제법 무거웠는데 다섯 번을 왕복하기도 전에 손바닥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요령부리지 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다시 자루 운반을 시작했다.
“무가 마흔둘이라고? 너는 무가 그렇게 좋디? 내일도 모레도 뭇국 먹고 싶어?”
자루가 너무 많이 왔다고 한다. 그러더니 주방으로 옮겨놓은 자루 마흔 둘에서 열다섯을 빼고 나머지는 제자리에 돌려놓으라고 했다.
“뺄셈은 할 줄 알지?”
어제 연회용 소반 나르던 일은 순전히 맛보기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후임 갈구기였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양손으로 자루를 하나씩 들었다. 전생에서 쓰던 빨간색 고무코팅 장갑이 너무나 그리웠다. 뒤에서 음흉하게 쿡쿡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일이 왜 이렇게 굼떠!”
어제 봤던 사람이었다. 유수관... 그게 직책 이름인지 사람 이름인지 알 재간이 없었다.
“너, 그리고 너! 따라와라.”
그가 나 말고도 다섯 명의 하인을 데리고 연무장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저 앞으로 활 과녁이 있고 풀을 베어 단정하게 정리한 모양이 더도 말고 연무장이었다.
여기서 돌을 주우라는 건가? 나 혼자 어리둥절해 하는데 다들 과녁으로 뛰어가 꽂힌 화살을 뽑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출발선에서 과녁까지의 거리가 한참 되었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크고 무거운 화살을 품에 안고 세 번 왕복하니 진이 빠지려 했다.
한 시진 뒤 일이 거의 마무리가 될 무렵이 되자 다들 개처럼 헐떡거렸다.
나 또한 힘이 부쳤는데 모두가 단합하여 눈치를 줘서 마지막 왕복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겨졌다.
“걷지 말고 뛰어!”
악마 교관이 따로 없었다. 유격, 유격, 구호를 붙이면 딱이다 생각하며 보다 빨리 걸었다.
한쪽 눈을 가린 상태라 뛰는 건 무리였다. 거리 감각이 둔해진 상태에서 뛰면 십중팔구 넘어질 거다.
“못 봐주겠네. 엉덩이 흔들며 뒤뚱거리는 거 봐라.”
소리죽여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 성격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든 말든 과녁으로 가서 화살을 뽑았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 쏘았는지 박힌 간격이 일정했다.

다섯 개의 화살을 품에 안고 돌아서는 순간 쇄애액 공기를 찢는 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렸다.
사람이 과녁 앞에 서있는데 어느 미친놈이 활을 쏘았다.
“아, 미안. 미안.”
말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표정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소년이 어서 비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다시 활에 화살을 걸고 줄을 당겼다. 내가 비키지 않아도 바로 쏠 기세였다. 실제로도 망설이지 않고 쐈다.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명쾌한 탁, 소리가 나면서 과녁 한 가운데로 화살이 박혔다.

“도련님, 그러다 사람이 다치겠습니다.”
유수관이 필요 이상으로 굽실거리며 소년을 만류했다.
“무슨 소리냐. 내가 실수라도 할 것 같으냐?”
“도련님은 실수를 하지 않으시겠지만 저놈은 실수를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이게 무슨 일요일 저녁 시트콤인가 싶었다. 유수관은 비굴할 정도로 손바닥을 비비며 ‘저놈이 놀라 화살 앞으로 뛰어들기라도 하면 낭패다.’ 라고 말을 덧붙였다.
지금껏 별 거지 같은 말을 다 들어봤어도 저 주장은 정말이지 신박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신다면 얼른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금린대에서의 두 번째 날, 금씨 가문의 방계 도련님 금목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나, 하는 짓 없이 미움 받는 부류인가.”
《글세. 운심부지처에 있을 때보다 취급이 더 안 좋은 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밥은 여기가 더 맛있어. 반찬 가짓수도 많고.”
《밥 먹으려고 금린대에 온 것도 아니면서.》
“아냐. 반찬이 맛있으니 섭섭하던 것들이 다 용서가 된다. 간이 알맞게 잘 들었어.”
온서염과 대화를 나누며 버섯조림을 입에 넣자 옆에 앉은 하인이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이러고 쏘아봤다. 모르고 보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이니 미쳤다고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
하룻밤이 지나기도 전에 눈만 다친 게 아니라 머리도 다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빗자루 질을 하면서 온서염과 대화를 나눴더니 소문은 한층 더 빠르게 퍼졌다.

“야, 얼굴에 붕대 감은 놈!”
금목현이 자기를 닮은 사촌들을 데리고 나를 콕 찝어 괴롭히러 왔다.
다들 금색으로 옷을 입었고 미간에 붉은 단사를 찍은 소년들이었다.
나는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용무이신가요.”
“연 날릴 줄 알아?”
“아니오.”
“어릴 적 뭐하고 놀았기에? 됐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 거기서 연을 날려봐.”
그렇게 말하며 각자 활과 화살 통을 챙겼다. 훈련을 하는 김에 이번에는 연을 날려 움직이는 표적으로 삼을 생각인 것 같았다.

금목현의 실력이라면 빗나간 화살에 맞을 염려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같이 온 사촌이라는 녀석들은 어쩐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무슨 놀이라도 하는 분위기로 왁자지껄 떠들며 깔깔 웃느라 바빴는데 무기를 다루면서 집중하지 않는 태도만 봐도 앞날이 구만리였다.
“나란히 쏴서 누가 먼저 연을 떨어뜨리는지 내기를 하자.”
“내기가 되겠어? 여기서 활솜씨가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군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척 봐도 제일 실력이 떨어질 것처럼 생긴 소년이 입술을 내밀고 툴툴거렸다.
“난 아직 움직이는 건 맞추기 힘들단 말이야.”
내가 보기엔 움직이는 걸 맞추기 힘들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활을 다루는 것 자체가 서투른 아이였다. 시험 삼아 줄을 당겨본다면서 뺨에 붉은 세로줄을 긋는 걸 봐선 확실하다. 잘못 튕겨나간 줄에 얻어맞고 악! 비명을 지르자 금목현이 웃겨 죽는다고 난리를 쳤다.
“웃지 마! 재미없어!”
“알았어. 더는 웃지 않을 테니 넌 거기서 구경이라도 하고 있어.”
나머지 소년들이 제각각 활을 걸고 연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벌레를 형상화한 것 같은 연이었다. 바탕이 짙은 녹색이었고 가슴에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활쏘기 연습용으로 쓰기엔 가격이 있어 보였다.
그런 연을 들고 바람을 등진 채 이리저리 뛰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나 연을 다루려면 나름 요령이 필요했다.
“느려 터졌어!”
참을성이 부족한 소년이 발을 동동 굴렀다. 발을 구르는 데 멈추지 않고 위협조로 한 발 쐈다.
근처에도 오지 않고 멀직히 떨어졌기에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비신사적 행위였다.

‘더 늦어지면 표적으로 내 머리를 맞추려 들겠군. 거 참.’
바람을 타고 연이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도 전에 금목현이 활을 들고 목표물을 조준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러다 눈 먼 화살에 맞겠는데?’
금목현을 따라하는 소년들을 보고 있자니 식은땀이 절로 났다.
아닌 게 아니라 집중하지 못한 소년이 제대로 자세를 잡지도 않고 줄을 놓았다.
폼은 엉망이면서 힘은 펄펄 솟는지 화살은 제법 멀리까지 날아갔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온서염의 경고와 거의 동시에 발치 앞에 푹 소리를 내며 화살이 박혔다.

Posted by 미야

2021/12/21 17:11 2021/12/2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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