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그의 인생은 화약 냄새 자욱한 연옥이었다. 매일이 투쟁의 나날이었다. 상대방이 주먹을 날리면 딘은 그때마다 발끈해선 맞은 것 이상으로 때리고 보았다. 상대가 노인이든 마피아든 입장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보복은 철저하게 하고 보는 것이 철칙이었다. 왼뺨을 맞으면 상대의 오른뺨을 올려붙였다. 엉뚱하게도 그는 이것이야말로 정의라고 생각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하룻밤 자고나선 훌훌 털고 다 잊어버려야지」생각하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끙끙 앓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거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 고함을 지르며 덤벼든 인간이 제3자가 아닌 샘이었을 경우엔 세 번에 한 번 꼴로 눈 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제끼리의 주먹다짐을 빼고나면 그가 맞대응을 포기한 적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그치만 여자가 따귀를 때린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폭력이라기 보다는 감정의 빅뱅에 더 가까운 그 행동 앞에선 이거다 싶은 답이 없었다. 여자들은 얻어맞은 당사자보다 더 아픈 얼굴로 흐느껴 울었고, 몸을 시계추처럼 흔들어댔고, 수그리고 앉아 입술을 깨물곤 했다. 아무리「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지만 그런 여자를 상대로 손찌검을 할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어깨를 뒤로 떠미는 것 정도밖에 - 그것도 힘 안 주고 살살 미는게 전부였다. 그러면서 딘은 그녀들이 스스로 울음을 그치기를 간절히 바랬고, 기적은 모세가 홍해를 둘로 가르는 빈도로 일어났다.
다행이라면 태어나 지금까지 감정적으로 격앙된 여자로부터 따귀를 맞은게 딱 여섯 번밖에 없... 아니, 방금 전의 것까지 횟수로 넣어 딱 일곱 번밖에 없다는 거랄까.
얼얼한 통증을 호소하는 뺨을 감싸쥐고 펄쩍 뛰었다. 손바닥 도장이 찍힐 거라곤 짐작도 못했기에 놀라움은 컸다. 불온한 공기를 눈치챈 샘이 비누를 들고 욕실에서 뛰쳐나올까봐 큰 소리도 못 내고 그저 도둑이 개 꾸짖듯 입만 뻥끗거렸다.
《왜 때려!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이 병신 같은 새끼. 그걸 몰라서 되물어?》
동시에 짝 소리가 나게끔 두 번째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반대편 뺨이었다.
불이라도 난 것 같았다. 맵고 활활 달아서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아읏! 이게 무슨 짓이야!》
《정신 차리라고 때렸다. 이제 정신이 좀 드냐? 아님 더 때려줘?》
《망할 년. 내가 언제 흰자위를 드러내놓고 기절이라도 했다든?!》
《눈 뜨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그럼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이리 가까이 와. 이참에 내가 확실하게 정신 번쩍 들게 해줄게. 손가락 마디 두 세 개 정도 부러뜨리면 되겠지. 싫든 좋든 머리에서 스파크가 확 튈 거야. 어디보자. 오른손을 망가뜨리면 당분간 곤란하겠지? 자! 그러니까 왼손으로 타협을 보자고. 오케이?》
《리!》
《얼른 목소리 낮춰, 이 등신아! 샘이 안에서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무엇입니까. 수학입니다. 그녀가 일반론에 의거하여 눈짓으로 욕실을 가리켰다. 그 의견을 결코 묵살할 수 없었던 딘은 울분을 억지로 삭히며 짐짓 뒤돌아 섰다.
『샘! 대충하지 말고 빡빡 잘 씻어! 알았냐?!』
안쪽에서 무어라 빠르게 말대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코흘리개 어린애인줄 아느냐, 짜증나게 굴지마라 등등의 내용인 듯 싶었다.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귀 기울여 들은 것도 아니거니와, 타일이 부착된 매끄러운 벽면에 여러번 반사된 단어들에선 자음이 죄다 빠져 있었다. 따라서 의미불명의 웅웅웅, 왕왕왕에서 약간 사정이 괜찮았을 뿐이었고, 그 결과 워너 브라더스의 벅스 버니 만화에 출연하는 멍청한 오리 대피 덕이 비음을 섞은 특유의 목소리로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과 매우 흡사했다. 별 재주가 없는지라 딘은 텔레비전 만화채널로 시선을 고정시킬 때마다 그랬듯이 그게 무슨 뜻인지를 해석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했다. 설령 지금 샘이 한 말이「형이 아침에 먹은 베이글은 실은 땅바닥에 떨어졌던 걸 내가 3초만에 도로 주웠던 거야」라고 했어도 확인 불가다. 지금으로선 샘이 딴 짓을 않고 - 이를테면 문에다 귀를 바짝 대지 않고 착실하게 머리를 감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족했다.
걱정과는 달리 국냄비가 끓어 넘치지 않았음이 확인되자 딘은 다시 리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알콜 중독자인 남편에게 별거를 선언한 여자처럼 침대 위로 중간 크기의 여행가방을 가볍게 던지고는 옷가지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바쁘게 움직이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다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구겨진 스커트는 그대로 놔두고 벽에 붙여둔 종이들을 모조리 뜯어 한꺼번에 쓸어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그것은 폭풍이었다. 가구에서 서랍을 빼내어 거꾸로 뒤집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콘돔, 헤어 브러쉬, 립스틱 같은 것들이 가방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태고적 홍수가 나서 모조리 쓸려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보고 있자니 범람한 미시시피 강물로 익사한 소의 거대한 몸뚱아리가 흙탕물 속에서 뜨고 가라앉았다가 다시 뜨는 걸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머뭇거린 뒤에야 딘은 입을 열 수 있었다.
『저어... 난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거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며 그녀가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번들거리는 리의 눈빛은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고 있어서 역설적으로 그 의중을 읽어내리기가 불가능했다. 다만 확실한 건 푸른색에서 시커먼 검정색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라는 거였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말이다.
『내 내답이라면 네 뺨따구 양쪽으로 새빨갛게 잘만 찍혀져 있구먼. 거울을 들여다 봐, 딘 윈체스터. 그게 네 요구에 대한 나의 답이야.』
다시금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 것 같다. 리는 애원과 갈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비닐이 뜯겨진 담뱃곽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누군가「피워도 돼」허락만 해준다면 그 댓가로 에덴 동산에 숨겨진 생명 나무를 향해 망할 제초제를 트럭으로 뿌려대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칼을 든 천사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영겁의 저주는 무섭지 않았다. 필더에 이를 박고 회색의 연기를 폐로 하나 가득 빨아대야 했다. 지금 당장!
『아악, 짜증나!』
패스받은 농구공을 드리볼하며 뛰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식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리의 판단에 의하자면 경기 분위기를 훼방놓은 심판은 어떻게든 자신의 바보 천치 같은 행위를 설명해야 옳았다. 지금처럼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머리를 만지며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는 미모의 치어리더에게 엉뚱하게 시선을 주어선 안 되는 거였다.
『뭐야, 진짜~!! 갑자기 겁이라도 집어먹은 거냐? 흡혈귀 녀석들이 떼를 지어 덤벼드는 걸 보니 그렇게 무섭든? 피를 봤더니 세상이 당장 끝장날 것처럼 보였냐고. 법적인 효력을 발휘할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지 않은게 걱정이야? 어디 말해봐, 딘 윈체스터 씨.』
그녀는 눈을 부릅떴고, 성질이 난다며 리바이스 청바지를 바닥에 던졌다. 그 모습은 영화「사랑과 영혼」에서 귀신과 접신하고 경련을 일으키던 우피 골드버그처럼 희극적이기까지 했다.
『도대체 어디서 유추해낸 결론이냐.「이젠 끝장인가봐요, 난 이제 죽음을 각오했으니 대신 내 동생을 잘 부탁해요」라니. 앙?!』
딘은 가렵지도 않은 팔꿈치를 반복해서 문질렀다. 그는 한 여름에 두꺼운 겨울 솜바지를 입은 듯한 어색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뒤로 도망갈 문은 굳게 닫겨 있었고, 앞에선 빗자루를 쥔 분노의 여신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 상황에선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입술을 비틀어 억지로 웃었다. 그러나 눈은 결코 웃을 수 없었다.
리가 다시 재촉했다.
『입이 달라붙었냐!』
『말 할게. 말 한다고! 머리에 세 방이나 총을 쐈어. 무려 세 방이었어. 제기랄, 세 방이나 명중시켰다고. 머리의 반은 날려버렸단 말이다!』
그러고도 사내는 꿈 꾸는 표정으로 똑바로 달려와 임팔라의 지붕을 두드려댔다.
주먹을 마개로 삼아 신음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걸 강제로 억눌렀다. 그러나 어디로도 고정할 수 없는 시선이 불안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까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런 녀석들이 지천에 깔렸다고 생각해봤어. 결국 난 싫든 좋든 냉정하게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러니까 우리가 이 상황에서... 이, 이 상황에서...』
목이 메였다. 딘은 그러길 원하지 않았음에도 말을 더듬었다.
『만약,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하, 하지만 나에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내 동생, 나에겐 무지 소중해. 소중하다고. 아아, 이런 젠장.』
참을 수가 없어져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혓바닥이 콕콕 쑤셨다.
아버지와 약속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동생을 구하라고 하셨다.
그 아버지가, 그 존 윈체스터가 눈물을 보였다.
충격을 받은 아들은 망가진 녹음기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네, 아버지... 네, 아버지... 약속해요, 약속해요, 내 전부를 걸고 약속할게요.
리의 표정이 굳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선 그녀로부터 뜨거운 콧김이 확 뿜겨졌다.
그들은 거의 키스할 정도의 거리로 밀착되어 있었다.
『이 멍청아. 최악의 경우라는 건 말이다...』
리의 손가락이 딘의 목덜미에 닿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접는 그 순간부터가 최악이 되는 거다. 대신 죽겠다는둥, 이 한 몸 희생하겠다는둥 같잖은 헛소리는 집어치워.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죽게 되어버린다고. 그 작은 마음의 틈새가 적으로부터 공격당할 허점을 만드는 거야. 몸에 빈틈이 있으면 그건 커버할 수 있어. 하지만 마음에 빈틈이 있으면 그건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어. 바늘이 들어갈 틈이 있으면 칼이 들어오는 거야. 나는 죽어도 괜찮다고? 웃기지 마. 절대로 아니야. 하나도 괜찮지가 않아. 그리고 그건 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리려는 그 사람에게도 절대로 괜찮지가 않은 일이라고!』
이제 그녀의 손가락은 옷자락을 세게 틀어쥐었다.
『내 말 들어. 고참 선배가 하는 말을 들으라고! 반칙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강하게 생각해. 살겠다고 생각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과 같이, 둘이서 같이! 남극 바다에 빠져도 반드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란 말이다. 암벽 등반을 하면서 밧줄을 놓아버리는 바보 짓은 정상에까지 다 올라가고 난 다음에야 하라고. 절벽 중간에서「도저히 무리인 것 같으니 난 그만 포기할래요」하고 끈을 놓으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76kg짜리 성인 남자를 산 꼭대기에서 미친 듯이 잡아당겨야 하는 내 팔뚝이 너무 불쌍하잖아 - 라고 말을 맺으며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몸을 뒤로 밀쳐내기 전에 쪽 하고 입술이 먼저 부딪쳐왔다.
『내가 못 살겠다. 다 커다란게 징징 우는 소리나 하고 앉았고.』
코흘리개 어린애 취급이 영 껄끄러웠지만 딘은 내색하지 않았다.
『손수건으로 코까지 풀어줘야 하나 속으로 무지 쫄았다구.』
농담을 농담같지 않게 한 그녀는 등을 돌리고 다시 가방 꾸리는 일로 돌아갔다.
『오리진을 상대하다보면 누구라도 질려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말이야, 너희들을 끌고 무사히 가나안 평야를 넘어야 하는 내 사정도 생각해주기 바라.』
오리진? 처음 듣는 얘기다.
나프탈렌 냄새가 진동하는 옷장을 열고 여권으로 보이는 수첩을 챙기던 리는 손가락을 빙글 돌려보였다.
『그래, 오리진... 성경에 보면 최초의 인간은 아담과 하와라고 하지? 그리고 아담은 신으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 동방으로 에덴이란 이름의 동산을 만들고 사람을 그곳에 두고 그것을 다스리게 했어. 그리고 하느님은 흙으로 만들어진 들짐승과 각종 새들을 에덴 동산으로 끌고와 아담으로 하여금 그들의 이름을 짓게 했지. 네 녀석도 헌터니까 이름을 짓는다는게 상징적으로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을 거야.』
『그야 명령을 내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는 뜻이지.』
『바로 그거야.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건 말이야, 딘.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았지만 뱀파이어들도 나름대로 이와 비슷한 전설을 갖고 있다는 거야.』
『에?』
『최초의 뱀파이어의 여자는 아세베스,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의미지. 최초의 뱀파이어 남자는 에티온, 흐려진 물에서 스스로 기어나온 존재야. 처음에는 형체가 없었지만 신을 닮은 아담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생각했기에 그 그림자를 훔쳤어. 그리고 아담이 들짐승의 이름을 지으면 가만히 외워두었다가 남몰래 그 이름을 호명하여 짐승들을 꼬여냈지. 이들이 기원, 뱀파이어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오리진이야.』
여기까지 말한 리는 딘에게 팩스로 들어온 감열지를 들이밀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