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코가 아닌 오로지 입으로만 호흡하고자 기를 쓰던 샘은 이러한 노력이 두통을 가라앉히는데 과연 도움이 되어줄까를 심각하게 저울질 해보았다. 생각처럼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맙소사, 게다가 눈까지 따끔거렸다. 세안 후 바른 화장수가 잘못하여 눈으로 들어간 듯한 쓰라림이었다.
코를 찌르는 술냄새에 혀를 내두르며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활짝 열어둔 창문으로 신선한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있음에도 허공을 맴도는 알콜의 농도는 조금도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알콜 분자를 파랑으로 염색할 수만 있다면 대서양 바다 한 가운데서 허우적대는 듯한 멋진 경험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반투명한 지느러미를 팔랑대는 멋진 물고기가 될 수 있을 것이고, 흥겨운 목소리로 Under the sea 노래도 합창할 수 있을 것이다. 내친 김에 다 같이 니모를 찾아볼 수도 있으리라.
『엉? 니모를 찾으려면 치과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었나?』
어딘가에서 비디오라도 봤던 모양이다. 줄거리를 떠올린 리가 아는 체하며 한 마디 거들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 아파치족의 마지막 추장을 왜 치과 병원에서 찾누.』
니모를 제르니모라고 착각한 딘이 눈살을 찌푸리며 엉뚱한 소리를 지껄였다.
『지금도 충분히 골치가 아픕니다. 이 마당에 차를 거꾸로 뒤집어지게 만들고 싶진 않으니까 두 분, 조용히 해주세요.』
샘은 최대한 냉정하고 침착하게 되받아쳤다.
남들 눈에는 지금의 그들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돌연 궁금해졌다.
승리를 자축하며 샴페인을 병으로 부어댄 고등학교 축구 선수들? 난장판이 되어버린 대학 졸업 파티에서 사고를 치고 도망쳐나온 범죄자들? 총각 파티에서 고삐가 풀린 신랑과 그와 눈 맞아 달아난 누드댄서? 알게 뭐람. 어쨌거나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보드카 한 병을 전부 머리 위로 부어댄 탓에 얇게 민 밀가루 반죽처럼 음산한 악취가 그들의 몸을 휘감았다. 머리카락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냄새만으로도 취할 지경이었다. 혹시라도 모를 음주단속을 피해 일찌감치 임팔라의 운전대를 접수한 샘은 그런 딘이 가까이 오는 걸 견딜 수 없었고, 때문에 뒷자석으로 강제로 쫒아냈다. 할 수만 있다면 뒷 트렁크 속에 자신의 정신 나간 피붙이를 처박아두고 싶었다. 문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선 이미 트렁크를 점령하고 있는 도끼니, 장총이니, 말뚝이니, 사슬이니 하는 것들을 모조리 꺼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거였고, 그래서 샘은 너그럽고 자비로운 부처의 마음으로 뒷자석으로 타협을 봤다. 딘은 단단히 열을 받아 엿 먹으라는 손짓을 해댔다.
『일단은 찬 물로 머리통을 헹굴 수 있는 곳이 필요할 것 같군요. 모텔을 찾아볼게요.』
백미러로 그놈의 망할 손동작을 봤음에도 샘은 짐짓 무시했다. 대신 조용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나오는 채널을 찾아 라디오를 조작하는 것으로 흥분한 딘의 머리로 하얀 김이 치솟게 만들었다. 그는 그의 형을 화나게 만들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주 정확히 꿰고 있었다. 때마침 라디오에선 존 덴버의「Today」가 흘러나왔고, 샘은 일부러 볼륨을 높였다.
『샘. 기왕이면 모즈볼리 모텔로 가주겠어? 거기에 내 짐과 옷이 있어.』
형제들의 어린애 같은 다툼을 깡그리 무시한 채 리가 말했다. 그녀는 거리의 표지판을 확인한 뒤, 기억을 더듬어 이쪽이다 판단이 서자 운전석 왼편을 툭툭 치는 것으로 차선을 바꾸라 신호했다.
『그러지 말고 말로 해줘요, 리. 나는 귀를 먹지 않았거든요.』
점등하는 신호를 쳐다보며 좌회전을 하기 위해 차선을 바꾸던 샘은 쇠막대기가 요란하게 쨍강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리가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을 걸었다면 그때는 불평의 내용을 바꿔 끔찍한 입냄새를 저주했을 것이다. 요컨대 그녀가 어떻게 해도 나쁘게만 받아들였을게 뻔했다.
맘대로 하라지 - 불손한 태도따윈 요만큼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훤히 드러난 허벅지를 손톱으로 긁었다. 덧붙여 순전히 샘의 신경을 자극하고자 거만한 표정으로 손톱에 낀 때를 후~ 하고 불었다. 의도한 바 그대로 샘은 목구멍 깊이 구룩 소리를 냈다.
그것이 제법 고소했던 모양이다. 키득 웃으며 동의를 구하려는 듯 딘을 쳐다봤다. 이제 그들은 왼쪽 차선을 타고 북쪽으로 열 블록을 더 올라가면 된다. 그러면 만세, 끈적이는 옷들을 벗어던지고 샤워라는 문명의 축복에 환호할 수 있다.
하지만 딘의 관심은 아까부터 다른 곳으로 쏠려 있었다. 양조장의 대형 술통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듯한 그녀의 형편없는 꼬락서니...가 아니라, 가볍게 다리를 굴러대는 동작으로 자꾸만 시선이 갔다. 처음에는 흘러나오는 라디오 음악에 맞춰 그러는 거라 생각했다. 허나 옆에서 지켜본 결과 노래와 다리를 떠는 동작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음악이 따라따따 딴따라라~ 였어도 그녀는 딴, 딴, 딴, 하고 단조로운 박자로 근육을 흔들었다. 물론 별 것 아닐 수 있다.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무작정 다리를 떠는 거라 생각하면 자연스럽다. 껌을 씹는 것처럼 말이다.
그치만 딘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고 이마를 찌푸렸다.
지금 그녀는 흘러간 추억의 노래가 아닌, 사람의 심장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다.
뭘 생각하는 건지 알겠다며 그녀가 다시 웃었다. 머리를 장난스럽게 한쪽으로 기울였다. 다리를 가지런히 하고, 대신 두 손바닥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는 저려 죽겠다는 식으로 쥐었다 폈다의 동작을 서로 엇갈려 반복했다.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걸 본 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오른손보다 왼손이 약간 더 빠른 속도로 쥐었다 펴졌다 하고 있었다.
『흐응, 아저씨. 눈치 챘어?』
『맙소사. 그러니까... 이게 나고, 이건 샘이라는 거야?』
『이렇게 눈으로 보니 새롭지?』
『정말로 들리는 거야? 청진기도 없이?』
『그래, 어느 정도의 거리 내에선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어. 피가 흘러가고, 펌프질하는 소리가 다 들려. 그리고 그건 의외로 많은 걸 가르쳐주지. 그래서 난 네가 대단히 지쳤고, 멀쩡하다는 말은 순전히 거짓말이고, 짜증이 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얻어맞은 곳이 아파 미칠 지경이라는 걸 알아. 마찬가지로 화가 단단히 난 것처럼 보이는 샘이 실은 네 걱정을 무진장 하고 있고, 네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걸 진작에 눈치챘고, 어딜 다쳤느냐 꼬치꼬치 묻고 싶은 걸 강제로 참고 있는데다, 입고 있는 옷을 몽땅 벗긴 뒤에 직접 연고를 발라주고 싶어 안달이라는 것도 알지. 이건 진짜지 웃기는 일이야.』
운전 중이라는 걸 까마득히 잊었다. 천둥 치는 하늘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투로 샘이 냉큼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벼락이 꽂히는 대지를 본 사람 같았다. 충격을 받아 눈이 커다랗게 벌려져 있었다. 그렇게 종말을 목격한 선지자는 눈 말고 입도 크게 벌렸다.
『지, 지금 뭐라고 했...』
『샘!! 가로수와 충돌하고 싶어 환장했냐?! 앞을 봐!』
딘이 재빨리 고함을 치며 주의를 주었기에 망정이었다. 차선을 벗어나 곡예 운전을 벌이던 임팔라가 덕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기에 맞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리의 손동작은 급격하게 빨라졌고, 딘이 훅 숨을 불어대며 시트에 몸을 기대는 것과 동시에 살짝 느려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여자의 귀엔 정말로 들리는 거다.
아기들의 곤지곤지 죔죔을 멈추고 홀가분하다는 투로 두 손을 무릎 위로 올려놓았다.
이래선 이 여자에겐 거짓말이 안 통하잖아! 딘은 머리가 아팠다. 리 앞에서 거짓말을 하려면 최소한 운동장을 전속력으로 한 바퀴 뛰고 난 다음에 거칠어진 숨을 푸푸 불어가며 해야 들통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단번에 거짓말 탐지기로 빨간 불이 켜진다. 성가시다. 저쪽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이쪽에선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건 꽤나 불공평한 일이다. 누구는 발가벗고, 누구는 격식에 맞추어 옷을 입은 격이다. 어느쪽이 유리한지는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크게 한숨쉬며 욱씬거리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짚었다.
『아이고 골치야. 하여간에 먼저 말해둘게. 샘? 피곤해서 힘들긴 해도 네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그렇게 많이 다치지도 않았어. 생각보다 세게 맞아서 배가 좀 아플 뿐이야.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거다. 약을 바르고 하루나 이틀정도 지나면 다 나을 거야.』
『누가 누구의 걱정을 했다는 거야! 흥!』
바로 이때다 하고 리가 얼른 끼어들었다.
『쟤가 하는 말, 새빨간 거짓말이야.』
거 봐. 땀이 나도록 뛰고 와서 아니라고 해야 한다니까. 기가 막혀 얼굴을 울그락 붉그락 하고 있는 멍청이 동생은 깡그리 무시한 채 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놈의 귀는 소머즈 귀라도 되나.』
『실례랍니다. 화성 탐사용 전자 장치는 안 달았네요, 딘 윈체스터.』
『천연이라고? 알았어. 그럼 다른 건 없어? 예를 들자면 숟가락을 구부러뜨릴 수 있다거나...』
『내가 유리겔라의 제자였다면 숟가락은 관두고 중요한 나사가 하나 빠진 것이 분명한 네 머릿속부터 손봤을 거다.』
『우주에서 외계인이 쏘아보낸 전파는 들을 수 있고?』
『나사에서 만든 화성 탐사용 전자 장비는 없다니까! 진짜지 그럴 힘이 있다면 네놈 머리를 휘저어... 잠깐만. 머릿속을 휘젖는다?』
뭔가가 마음에 걸렸나 보다. 리는 가만히 입술을 깨물고 한참을 생각했다. 왜 그러느냐 물어봐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복잡한 방정식을 접하고 어려워하는 표정으로 창문 밖 풍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를 침울하게 만든 건 바깥에 있지 않았고, 오로지 기억 속에 있었다.
눈에 띄게 창백해진 얼굴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딘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옆에 있는 사람 불안해진다. 왜 그러느냐니까.』
『별 거 아냐.』
『그런 눈치가 아니니까 그렇지.』
『확실해지기 전까진 별 거 아닌게 맞아. 그보단 내 핸드폰이 어디로 갔지? 전화... 전화...』
갑작스럽게 소동이 벌어졌다. 리는 시트 아래로 손을 집어넣으며 사방을 더듬어댔고 덩달아 딘도 이곳저곳을 기웃거려야 했다. 혹시 깔고 앉은 건 아니냐는 핀잔에 엉덩이를 들고 손수 밑을 살폈다. 그러고도 안되겠던지 다리를 들어올리고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 와중에 리는 10년은 더 지난 것 같은 잡지며 신문지 같은 걸 들었다 놓았다 했다.
『젠장! 이놈의 네모난 플라스틱 덩어리가 어디로 숨었나. 샘, 라디오 볼륨을 낮춰볼래?』
『차를 세울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고...』
『급한 거라면 내 핸드폰을 쓸래?』
『그러지 말고 지금 내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줄테니 전화를 걸어줘. 벨이 울리면 이놈의 망할 전화가 어디에 있는지 단번에 찾아낼... 이런 젠장!』
도중에 말을 멈춘 리는 긴장하여 상체를 벌떡 세웠다.
딘은 걱정스런 기색으로 다시 한 번 더 왜 그러느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칼리아나 술집에다 떨어뜨리고 온 것 같아?』
『그게 아냐! 전방 주시!』
앞을 보라고? 딘은 몸을 앞으로 쑤욱 내밀고 뭐가 보이는지를 살폈다. 어둠에 휩싸인 도로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아직까지는 수상하다 싶은 건 일절 안 보였다. 샘이 도움을 구하려는 듯 형을 쳐다봤다. 거스무레하게 떠오른 키 작은 관목들이 이따금씩 잎사귀를 흔들어댔다. 밤의 비밀을 속삭이는 바람의 내음을 따라 나방 한 마리가 날아갔다.
『형?』
『쉿!』
바로 그때 딘은 100m 앞에서 무단횡단을 시도하는 여자를 발견했고, 썩 좋지 않은 예감에 몸을 떨었다. 역시나다. 길을 건너려던 여자는 갑자기 걷던 방향을 바꿔 도로 한 가운데로 돌아왔다. 나플거리는 하늘색 플레어 스커트가 기가 막혔다. 자살을 시도하려는게 아니라면 남는 건 딱 하나다. 딘의 눈썹이 거의 이마 끝까지 치켜올라갔다. 중앙차선 한 가운데로 버티고 선 여자를 본 샘의 표정 또한 굳었다.
『엑셀레이터 밟아.』
리가 강하게 말했다.
『네?!』
『내 말을 믿어. 저 여잔 사람이 아니니까 이대로 깔아 뭉개버려.』
나더러 그걸 하라고?! 샘은 옆구리로 총이 겨눠졌다는 식으로 펄쩍 뛰었다.
『하지만!』
『망할! 좌로 하나. 우로 둘.』
『더 있단 말이야?!』
『우린 지금 습격당하고 있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 우리가 아웃 당하던가, 아님 저놈들이 아웃을 당하던가 둘 중 하나야.』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무단횡단을 시도하는 여자가 하나 더 늘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