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신문을 보니까《난 영어를 못해, 버러지가 된 기분이야》라며 우울증에 빠진 대학생들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이게 저에게 닥치면《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도 못해, 읽고 죽으려 해도 팬픽을 읽을 수 없어, 버러지가 된 기분이야》가 됩니다. 황금 어장을 코앞에 두고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는 이 절망감. 배고픔에 몸부림치다 못해 결국은 자체 먹거리를 제작하는 내가 너무 불쌍혀...
요즘 쥰쥰은 검은 별 아래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뭔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굴어도 이해를 해주세요. 메시지 답변도 그래서 전혀 못 해드리고 있습니다. ※


『일단은 볼륨을 최대치로 올려봤어.』
간단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빨간색 막대 그래프를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만들었다.
최대치라는 말에 걱정이 된 딘은 행여 귓청을 일시에 날려버릴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진 않을까 긴장하여 어깨를 바짝 움추렸다. 그게 꼭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난 준비 되었어요. 보세요, 눈을 꼭 감고 있죠? 절대로 아프다고 울진 않을 거예요》라며 허세를 부리는 어린애의 모습인지라 샘은 덧붙여 길게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봤자 노트북으로 다운로드 받은 파일의 길이는 겨우 40초밖에 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어쩌고, 조작방법이 어쩌고 떠들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다. 주사바늘로 찌르기도 전에 상황 종료. 안심하라며 딘의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재생이 끝났다.

상상하던 대포 소리가 안 들렸음이다. 어리둥절해 하며「이게 뭐꼬?」라는 투로 샘을 쳐다봤다. 들을 수 있었던 건 치익- 하는 잡음이 전부. 나를 속인 거냐며 딘이 눈꼬리를 올렸다.
『유령이 내는 목소리는 인간의 귀로는 잘 들을 수 없다 - 라는 아빠의 말을 기억해?』
『음. 채널이 틀리다고 하셨지.』
『바로 그거야. 그래서 돌고래의 보호를 주장하는 환경 단체의 홈페이지에서「돌고래 목소리 들어보기」라는 프리웨어를 다운로드 받았어. 고주파수를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변경해주는 프로그램이야. 머리가 기가 막히게 좋은 보스턴 공과대학 학생이「프리윌리」영화를 무지 재밌게 봤다면서 만든 거라는데 내가 봐도 썩 괜찮아. 조작법도 간단하고, 용량도 그리 크지 않고. 그걸로 딘의 핸드폰에 저장된 음성 파일의 주파수를 조정해봤지. 적당한 채널을 찾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그래도 성과가 있었어. 그럼 변환한 파일을 다시 한 번 들어볼래? 헤드 셋을 도로 써.』

마음을 굳게 먹으세요. 준비 되었나요. 괜찮다 싶으면 오케이 싸인을 보내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핵폭탄 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는 기분으로 엔터 키를 눌렀다.

《추워요.......... 엄마... 엄마?》

이번엔 약간 달랐다. 뱀이 쉭쉭거리는 듯한 노이즈에 섞여 가느다랗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인 것도 같고, 남자인 것도 같다. 어린애처럼 들리기도 하고, 노인네의 탄식 소리 같기도 하다. 쉽게 말해 종잡을 수 없다. 딘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들었어?』
『EVP (Electronic Voice Phenomenon). 전자음성현상.』
『예스. 아쉽게도 상대는 입고 있는 속옷의 색깔을 묻는 변태가 아니었던 거야, 딘.』
『젠장! 이런 좇 같은!』

욕설을 퍼부으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쩐지 그는 대단히 분노한 표정이다.
왜 딘이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지를 모르겠다. 당황한 샘은 펄펄 끓다못해 사방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날려보내고 있는 이놈의 양은 냄비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무작정 뚜껑부터 덮고 봐? 자칫 실수하는 날엔 뜨거운 국물을 뒤집어쓰고 끔찍한 화상을 입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어쨌든 화덕에서 냄비를 내려놓아야...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아이고, 혈압이야!」비명까지 질러가며 뒷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는 딘을 다독거리려 애썼다.

『형? 일단 진정하자. 여기, 의자. 응? 앉아 봐.』
『Shit! 너라면 진정할 수 있겠어? 난 진정 못 해! 아빠나 삼촌, 최소한 아저씨 등등으로 부르기만 했어도 용서해줄 의향이 있었어! 그런데 엄마라닛! 이놈의 자식, 왕소금에 버무려 맛있게 태워줄테닷! 크앗~!』
분노의 원인이 (겨우) 그거였나. 샘은 바보처럼 굴고 있는 딘을 한심하다며 쳐다봤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맞았어, 아들. 사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지.』
딘은 여지껏 벌려져 있는 동생의 근육질 팔뚝을 피해 뒷걸음질을 치며 - 날 안으려는 거라면 맹세코 널 죽여버릴거야 - 위협적인 으르렁 소리를 냈다.

그들 형제는 헌터다. 유령을 잡는다.
『그런 우리들에게 보란 듯이 전화를 걸어? 유령이? 완전히 미친 또라이 짓 아냐.』

이걸 비유로 바꿔보겠다. 여우가 사냥꾼 앞을 어슬렁대며「제발 나를 잡아 값비싼 모피 코트로 만들어 주세요」애원하는 격이다.
『지능이라던가, 판단력, 내지는 생존 본능이라는게 있는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를 여우가 과연 존재할련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머리에 회충이 들어가 살짝 미쳤다고 치자고. 문제는 유령의 머리에도 회충이 들어갈 수 있느냐는 거야. 난 그게 불가능하다고 봐.』
『그러니까 형의 말은... 이게 유령의 짓이 아니라는 거야?』
『당연하지! 세상 천지 어느 유령이 헌터에게「나 잡아봐라~」전화를 걸겠냐. 수배범이 경찰서 앞을 어슬렁거리면 마음을 고쳐 먹고 자수를 하려나 보다 생각이라도 할 수 있지. 이건 두고볼 것 없이 장난이야. 게다가 나는 이런 짓을 저지를만한 엉뚱한 인간을 하나 알고 있어. 컴퓨터 사용에는 누구보다 능숙하지만, 머리가 텅 비었고, 상식이라는게 없고, 약에 쩔었지.』
형이 지목한 용의자가 누군지를 깨달은 샘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맙소사, 애쉬...?』

전화벨이 스무 번쯤 울렸다. 아직 영업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아님 뭔 일이 생긴 건가. 딘은 루미녹스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무남독녀 조가 독립을 선언하고 로드 하우스에서 나간 이후부터 앨런의 술집은 가끔 이런 식으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종업원 애쉬는 애시당초 골칫덩이다. 앨런 혼자서는 일이 버겁다. 그리하여 감독하는 눈을 피해 사건이 벌어진다.
이제 전화벨은 서른 번을 훌쩍 넘어갔다. 또다시 끓는 국물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용암 저리가라로 뜨겁게 달아오른 화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던 샘은「내가 눈치도 없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나」걱정하며 손톱을 씹었다.
거짓으로 화를 내는 딘은 오히려 귀엽다. 단, 그가 진짜로 화를 내면 무섭다. 샘이 임팔라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고 펄펄 뛰는 딘을 피해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났던 건 다 까닭이 있다. 해안가로 200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밀어닥치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대서양 한 복판으로 지름 50km의 운석이 떨어졌어도 이보단 덜 흉악하다. 잡히면 머리카락이 송두리째 뽑힌다. 애쉬는 아마 죽게될 것이다.

홧김에 핸드폰을 집어 던지기 전, 잠에 취한 것이 분명한 애쉬가 가까스로 수화기를 들었다.
《아음냐. 여기는 로드 하우스외다. 게 누구슈...?》
『나다! 네 애미다!』
놀란 애쉬가 헉,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샘의 귀에까지 들렸다.
《어, 엄마?》
『그래! 엄마다!』
딘이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과 같이하여 전화는 뚝 끊겨버렸다.
그것이 자신이 유죄임을 고백한 거나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한 딘은 뚜껑이 열렸다.
『흥! 피한다고 피해질 줄 알어? 이놈의 망할 자식!』
맹렬한 속도로 숫자 버튼을 다시 눌러대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샘은 잠자코 전화번호부 책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장례식장으로 보낼 화환으로 뭘 주문하면 좋을지는 형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그보다 앨런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할지 모르겠다. 하나뿐인 종업원이 죽었는데 이참에 가게 문을 닫고 은퇴하는 건 어때요 - 샘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무리다. 입을 떼기가 무섭게 앨런 여사는 엽총을 꺼내들고 방아쇠부터 당길 거다.

『애~쉬~!!』
《옴마, 딘 형씨 아니쇼. 겁나게 와 그라슈. 징징.》
전화가 다시 연결되자마자 애쉬는 우는 소리부터 냈다. 시작부터 나쁘다.「누가 내 엄마라는 거요. 농담치곤 안 웃겨요」라며 너스레를 떨어야 얘기가 그럭저럭 진행이 될 수 있을 터. 더듬이를 길게 빼고「언제부터 내 짓인지 눈치챘어요?」라는 투로 나오면 빗발치는 기관총에 반드시 바람 구멍이 뚫리게 된다.
바보, 멍청이. 위기시 살아남는 법에 관하여 어드바이스라도 하고 싶어졌다. 샘은 30분간에 걸쳐 무료로 강의를 할 의사가 있었다. 한껏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딘을 보자 매뉴얼은 다시「피에 굶주린 식인 상어를 피해 해변가까지 무사히 헤엄칠 수 있는 법」으로 넘어갔다. 그럼 응원해보자. 죠스의 BGM, 빠밤, 빠밤, 빠밤빠밤 빠라바~ 가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샘은「네가 겪을 고통이 결코 길지 않기를 바래」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옴마! 그런 장난은 치지 않아요.》
잘 했어, 애쉬! 일단 발뺌부터 하는 거야.
《난 그저 조에게 당신 별명이「딩딩」이라 말한 것밖엔...》
그렇다고 지뢰를 밟으면 십중팔구 수족이 잘리게 되지, 이 얼간아.

샘은 본능적으로 두 귀를 막았다.
그렇게 하길 참 잘 했다. 가까운 곳에서 벼락이 쳤고, 지붕이 들썩거렸다. 압정을 밟은 사자는 마구 날뛰었고, 피 냄새를 머금은 가시 덩굴이 사방으로 자라났다. 무섭게 표정이 일그러진 딘은 코앞에 당사자가 있다는 식으로 마구 삿대질을 해댔다. 그러고도 성이 차질 않았던지 붕붕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휘둘러댔다.
『죽고 싶은 거지. 응? 죽고 싶은 거야. 조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고? 하하하, 유쾌하군. 대단히 즐거워. 그러니까 애쉬? 유서는 다 썼어?』
샘은 멀찍이 떨어져 이놈의 성가신 폭풍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도했다.
《지, 진정혀요, 형씨!》
『내가 지금 진정하면 딘 윈체스터가 아니야. 기다려. 금방 달려갈게. 그러니 목을 씻고 몸통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갈 준비나 해.』
《으햣?! 나, 나를 죽이면 당신이 원하는「뱀퍼」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다니까~!!》
『시끄럿! 지금 뱀퍼가 문제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꺼림직스러웠던 모양이다. 높았던 목소리가 살짝 내려갔다.
『그런데... 뱀퍼가 뭐지.』
수화기 저편에서 애쉬가 휘우우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슬아슬하게 소행성이 지구를 비켜갔다. 아차했다간 최소한 10억명의 인류가 사망하고 현대 문명이 완전 붕괴되었을 거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재앙은 유보되었다.

《뱀퍼는「뱀파이어 헌터」의 약어라오. 감옥에서 10년 썩고 나왔수? 그런 것도 모르고.》
『닥치고 주둥이 정돈한다.』
《씨씨. 내가 죄인이오, 내가 죄인이라니까.》
애쉬는 답지않게 비굴 모드로 굽신거렸다.
여기서 샘은 한 가지 사실을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애쉬는 형이 질겁을 하는 딩딩이라는 별명을 조에게만 불어댄 것이 아니다. 협박을 더 하면 그 별명을 알고 있는 자의 명단이 줄줄 흘러나올 거다. 그 맨 첫줄에는 앨런이 있고, 그 다음 줄로는 바비 아저씨가 있고, 그 다음 줄로는... 상상하기가 끔찍하다. 동업자들이 그들 형제를 보고 아는 척을 하면서「어이, 딩딩~!」이라 인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랬다간 대형 유혈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요즘엔 뱀퍼들 숫자가 그리 않지 않다오. 뱀파이어들이 싸그리 멸종했다는 소문도 있고 그러니까. 고든이란 자가 유명하긴 한데 댁들과는 악연이라지? 그래서 고든과 연관이 있는 뱀퍼들까지 빼니까 남는게 하나도 없지 뭐유. 하지만 내가 누구요. 천재 소년 애쉬 아니겠수?》
『그만 지랄해라. 지겨워지려 하고 있다.』
《오메, 무셔... 겁나서 오줌 싸겠수.》
『진짜로 질질 싸게 만들어줄까. 빨리 이름이나 불어!』
《쳇! 알았수. 똑바로 받아 적으슈.「리」라고 하는 자요. 퍼스트 네임, 미들 네임, 죄다 불명이고 나이 및 거주지 역시 불명. 하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뱀퍼예요. 게다가 여럿이선 안 움직이고 단독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 댁들관 아마 잘 맞을 게요. 형씨를 위해 내가 리의 우편 사서함으로 이미 전보를 넣었지. 조만간 그쪽에서 은밀히 만나자고 연락을 취해올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왜 댁들이 뱀퍼의 도움을 필요로 하...》
『끊자!』

딘은 애쉬의 질문을 싸늘하게 자르며 짜증나는 핸드폰을 침대로 던졌다.
그리고는 얼렐레. 생각해보니 미처 캐묻질 못 했다.
『씨잉. 그럼. 장난 전화질은 누가 했다는 거야?!』
그런 딘을 향해 장례식장에 어떤 꽃을 보낼 거냐며 샘이 전화번호부 책을 들이밀었다.


리는 이번 에피소드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미야

2007/04/19 20:05 2007/04/19 20:0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382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635 : 1636 : 1637 : 1638 : 1639 : 1640 : 1641 : 1642 : 1643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96138
Today:
88
Yesterday:
107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