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의 극강을 자랑하는 골쪽방.
인기척 없고, 조용하고, 이불 하나 껴안고 언제까지나 드렁드렁 잘 수 있는 그런 장소라고 생각한다. 과자 까놓고 코타츠에 퍼질러 누워 좋아하는 TV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랄까. 부스스한 머리로 하품하고 돌아다녀도 그만인, 맘대로 버닝에 맘대로 땅굴파기를 반복하며 속옷 아래로 드러난 똥배를 벅벅 긁곤 했다. 게중에 슬그머니 앉았다 쉬고 가는 사람들이 나와도 요컨대 의기투합하여 같은 걸 좋아하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거, 갑자기 무서워졌다. 도대체 이곳의 우물 뚜껑을 말 없이 들었다 놓았다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창백)
- 페이지를 마구마구 긁어대는 로봇의 숫자입니다. 태터는 원래 뻥튀기를 잘 해요
라고 해도 진짜 이해가 안 간다. 내가 아는 고정 출입자의 수는 다섯이고, 어쩌다 항아리에 과자를 넣어 같이 먹자며 마실 나오시는 분이 두 명... 손가락으로 헤아리자면 하루 적정 히트 수는 40 이하여야 맞다.

슬그머니 배를 긁던 손을 내려놓고 주위를 두리번.
내가 잘 아는 지인들이 아닌, 검정 옷을 입은 닌자들이 <여긴 아무도 없는게 맞다니까요> 이러면서 나랑 같이 코타츠에 누워 TV를 보고 있던 건 아닐까 싶어 겁이 더럭 났다.

- 당신들, 거기서 내가 배 긁고 있는 거 죄다 본 거야?!
- 죄다 봤지라.
- 누구세요!
- 신경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계속 하시구랴. 원맨쇼가 참으로 재밌구려.

진짜로 이런 거라면 어쩌지. 상당히 창피해졌다.
우와아... 나, 그간 엄청난 바보 짓을 하고 있었던 거 아닐까.

Posted by 미야

2007/02/15 12:16 2007/02/1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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