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시즌 17화에서 우리 새미의 베드 씬이 있답니다. 훗훗훗...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한 컷이라도 더 찍겠다고 부산을 떨던 스텝들도 결국 포기라는 걸 배워야했다.
안 되는 날엔 죽어도 안 되는 것이다.
액션이 가미되었다던가, 대사가 길다던가, 아니면 미묘한 표정 연기가 필요한 어려운 장면이 아니었음에도 유독히 NG가 많이 나왔다. 덕분에 연출가는 줄담배요, 카메라맨은 입에다 욕설을 매달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배우라고 해도 피가 흐르는 보통의 인간이다. 신 내린 것처럼 기가 막히게 뽑는 날이 있으면 반대로 오늘처럼 죽을 쑤는 날도 있다. 오죽하면 석간 신문을 내려다 보면서 연필로 동그라미만 그리면 되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왜 그렇게 뻣뻣해. 지금 우리가 고등학생 학예회 하는 걸로 보여?!」라는 비명이 터져나왔을까. 이런 날엔 아까운 필름만 날아간다.
『오늘은 바이오 리듬이 최악인가 보네요, 파달렉키씨.』
쥐구멍으로 달아나고 싶어하는 배우를 눈앞에 두고 스텝들이 소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형, 나 좀 도와줘.』
멀직히 물러서서 대본을 읽어내려가던 젠슨은 당장 콧방귀부터 뀌었다.
촬영이 워낙에 오래되다보니 극중 역할과 실제 상황이 혼동되는 일은 자주 생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가 형이라는 거냐? 피 한 방울 안 섞였다, 우린.
젠슨은 탁 소리를 내면서 대본을 접었다.
『오냐, 새미. 이 형이 구조해주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오는 장난엔 별 대수롭지 않게 응해주곤 하는 젠슨이었다.

제러드는 허락도 구하지 않고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안색도 그다지 좋지 않다. 초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양이 나빠지니까 그러지 말라고 미리 주의를 주었음에도 손톱을 이로 잘근 깨물어댔다. 보는 사람 정신 사납게 다리도 맹렬하게 떨어대고 있다.
『이제 사흘 남았어. 나, 어쩌면 좋지?』

끙 소리가 나오는 발언이다.
젠슨은 이 바보 천지의 종아리를 발로 세게 걷어차고 싶다는 욕구를 펄펄 느꼈다.
어제 이맘 때. 이제 나흘 남았어. 나, 어쩌면 좋지?
그제 이맘 때. 이제 닷새 남았어. 나, 어쩌면 좋지?
고민이랍시고 어린애처럼 매달려오는 이 곰 덩치를 땅바닥에 그냥 메다 꽂고 싶을 뿐이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자신의 키가 지금보다 최소한 10cm가량 더 커져야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불가능이라는 걸 알기에 사소한 건 그냥 넘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달력에다 빨간 색연필로 가위표 그려가며 세고 있는 거냐. 한심해서.』
『그치만 형. 베드 씬이라고.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엠마누엘이랑 섹스하는 걸 촬영한다는데 살 떨려서 죽겠단 말이야. 감독님은「괜찮은 거지? 잘 할 수 있지?」라고 물어보시는데「자신 없는데요」라고 어떻게 말을 해! 어휴, 이거 미친다.』
『평소처럼 하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람. 오붓한 분위기에서 여자 친구랑 만나 살갗을 마주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뜨거운 조명이 인정사정 안 봐주고 내리쬐는데 뭐가 오붓한 분위기야~! 카메라는 윙윙 돌아가고 남들 다 쳐다보는데 잘도 분위기 잡겠다~!』

촬영을 망치면 어쩌나 싶은 압박감에 식욕마저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드라마 관련 인터넷 사이트마다「수퍼내츄럴한 뜨거운 정사」,「막내 윈체스터의 화끈한 베드 씬」어쩌고 하면서 난리가 난 상태다. 어쩐지 민망해서 땅이라도 파고 싶은 심정인데 드라마 홍보랍시고 스텝들은 음흉하게 손가락으로 오케이 싸인까지 그려보이는 것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대고 있는 실정이다.
뻘쭘해하는 그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그러는 건지 하여간 심술이다.
『섹시한 여배우가 상대라니까 다들 부러워서 그러는게지.』
젠슨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 사실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제러드를 위로했다.
『남자답게 잘 해내길 이 형이 기도해주마.』

덕분에 제러드의 낑낑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기도따윈 필요 없어. 형은 1시즌 때 이미 해봤잖아. 조언 좀 해주라. 응? 조언 좀 해줘.』
『조언이랄게 뭐 있겠니. 긴장을 풀고 열심히 하는 거지.』
『열심히 하긴 뭘 열심히 하라는 거야. 그건 근육 트레이닝이 아니잖아.』
『그럼 열심히 하지 말고 대충 하던지.』
『젠슨~!!』
나 좀 살려줘, 하고 제러드가 다시금 매달려왔다.

『창피해 미치겠어. 도대체 어떤 얼굴로 상대 배우를 봐야 하는 거야? 서로 홀딱 벗고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라 생각하니까 당혹스러운 거야. 마인드 콘트롤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진짜 애인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어, 어쩌지. 나... 지금 애인 없는데.』
제러드의 하소연에 젠슨은 다리를 꼬며 피식 웃었다.
『저번에 잡지사와 인터뷰할 때 그랬지?《전 아침마다 톰 크루즈의 사진을 보며 마스터베이션을 합니다.》잘 되었네. 상대가 톰 크루즈라고 상상하면 긴장이 풀릴게다.』
『에엑?!』
놀라서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이건 완전 애기다. 참지 못하고 젠슨은 박장대소했다.
『좋잖아, 제러드. 톰 크루즈다.』
『말도 안돼~! 미션 임파서블을 상대로 뭘 어쩌라는 거야~!!』

시끄럽다고 생각한 젠슨이 대본을 둘둘 말아 그의 주둥이를 때리기 전까지, 제러드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다.
앞으로 사흘.
덩치만 큰 아기는 초 긴장 상태였다.


* 언더더로즈 4권을 구입했습니다. 매번 그렇지만 이 책은 무게감이 지독해서 좀 힘들어요.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말로 그 신의 존재가 없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신이 있음에도 세계가 부조리하기 때문에 분노가 치솟아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누군가 그랬는데... 하여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가분은 진정한 로맨티스트라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하여 막강한 분노와 절망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뭐, 저만의 망상일 수도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갈구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Posted by 미야

2007/01/28 22:28 2007/01/28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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