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redemption 09

※ 현실 도피로 팬픽을 쓰는 여자. 내가 생각해도 징그럽다... 기진맥진하여 자러 갑니다. 나츠메 우인장 2권에서 수분 부족으로 길바닥에 넙죽 쓰러진 갓파가 나오더군요. 그게 어찌나 제 모습 그대로던지 부르르 떨렸습니다. 여하간 제멋대로 망상, 우르르 컁컁,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글의 내용은 영 아니지만 1월 24일, 딘 윈체스터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


나이가 나이인만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은 전화요금 고지서처럼 밀리는 일 없이 착착 도착하였다. 각종 우편물속에 섞인 부고장의 숫자는 최소한 슈퍼마켓 할인 쿠폰만큼은 되었다. 슬픔이 반복되면 감정은 무뎌진다. 그래서 베버리는 친절하게 자신을 환영해주던 노부인의 사망 소식에 눈가를 촉촉이 적시는 대신,「내 순서까지는 그러면 얼마나 남았을까」에 대하여 차분히 생각했다. 관절염과 혈압 문제가 좀 있어도 의사는 사는데 지장은 전혀 없을 거라 장담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최소 10년은 남에게 민폐 안 끼치고 이대로... 후우.
남의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참으로 이기적인 존재다.
『이런 소식을 알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청년을 향해 손사레를 치고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두 사람 중 까까머리 쪽이 간단하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신발 상자처럼 생긴 종이 박스를 챙겼다.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는 상자였다. 내용물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계단을 밟아 올라오는 동작에 달각 소리를 냈다. 그것이 꼭 깨지지 않도록 신문지로 겹겹이 싼 유리컵의 느낌인지라 가까스로 머릿속에서 지워낸「외판원」의 가능성이 또다시 고개를 슬그머니 처들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중산층이 집결하여 살고 있는 마운틴 로드의 밟고 미래지향적인 동네 분위기와는 다르게 베버리 홀리의 집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바싹 메말라 있는, 이것이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을 적에 샘이 느낀 첫 번째 감상이었다. 그렇다고 보풀이 일어난 낡은 소파나 고물 텔레비전이 시선을 끌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36인치 텔레비전에는 고가의 최신형 스테레오 장치까지 달려 있었다. 혼자서 DVD를 보는 것이 취미인지 거실장으로「구름 위의 산책」,「타이타닉」같은 영화 타이틀이 보였다. 고급 재질의 레이스 커튼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은퇴 후 연금으로 살아가는 60대 노부인의 살림은 그만하면 넉넉한 편이었다.
반면에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나 수가 놓여진 쿠션, 그림 같은 세심한 악세서리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것이 샘의 신경을 건드렸다. 자랑스런 자식들과 귀여운 손주들의 사진을 집안에 하나 가득 진열해두는 것이 일반적인 노인들의 습성이다. 사진들의 쓰나미는 벽을 점령한 뒤에 테이블 위까지 도달하기 마련이다.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아이들이《치즈~♡》를 외치는 소리로 도배되어 있다.
그런데 베버리의 집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이 아예 없었다.

얼굴 쳐다보기가 끔찍스러울 정도로 가족을 싫어했던 걸까.
그럴 것 같지 않다는게 수수께끼였다.
한 달에 한번씩 요양원을 방문하여 아버지의 윤기 잃은 머리를 빗겨주었던 딸이다. 토마스 스테이플러가 자신의 보호자로 지목했던, 아울러 중요한 성경책을 포함한 유품을 모두 정리하여 넘긴 딸이다. 애정이 없었다면 정기적인 요양원 방문은 사실상 쉽지 않다.
원래 가족에 대한 감정은 쉽게 이거다 하고 단정지을 수 없는 거라고 해도 이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상황의 조합은 샘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가족을 사랑했을까, 사랑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어쨌든 더 이상 두리번거리는 건 실례다. 계속 그랬다간 사전 조사를 나온 강도처럼 인식될 것이다.
베버리의 안내를 받아 의자에 앉자마자 샘은 미리 준비했던 그대로《저희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입니다》문구를 반복하여 암송했다. 준비한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딘도 통탄의 표정을 가장했다. 그게 어찌나 감쪽 같았던지 베버리는 이 두 청년이 새로 입사한 직장에서 무척이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구나 짐작하고 덩달아 긴장했다.
순간의 판단 미스로 사업을 송두리째 말아먹은 자식놈 생각도 났겠다 목소리가 약간은 부드러워졌다.
『자, 말해보시구려. 무슨 실수였는데 그려슈.』
『나탈리 윙 여사의 유품을 유족에게 전달했는데 그중의 일부가 당사자의 것이 아니라고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어이쿠.』
베버리가 눈을 뒤집으며 비난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유하자면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유골을 엉뚱한 매장지로 보낸 셈이다. 이래선 대형 사고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절대로 꺼낼 수 없다. 베버리는 두 청년들의 안색이 일주일동안 죽사발도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창백할 법도 하다고 인정했다. 직장에서 맨몸으로 안 쫓겨난게 오히려 이상하다. 아니면 민간 소송 전문 변호사가 희생양이 필요하다며 그들의 퇴직 결정을 방해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사람 살려!》다.

까까머리 말고 고릴라 덩치 쪽이 눈치를 살살 살펴가며 입을 열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구겨진 와이셔츠가 어쩐지 그가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대변해주는 것 같아 베버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서 혹시나 다른 분의 유품과 혼동이 된 것은 아닌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스테이플러씨가 돌아가신 것이 2005년 9월이니까 시기적으로는 맞지 않습니다만, 요양원에서 바로 이웃 호실에 머무셨으니 행여나 착오가 있었던 건 아닐까 염려가 되더군요.』
준비한 검정색의 파일철을 꺼낸 고릴라 덩치는 유족들에게 인계된 물건들의 목록으로 보이는 페이지의 낱장을 넘겨가며 자근자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희는 스테이플러씨의 유품 목록을 미리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중에... 으음, 성경책이 있었지요?』
『있었지.』
『죄송하오나 잠시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그리고 이것도 같이 봐주시고요.』
그러면서 사내는 밖에서 들고 온 종이 박스를 개봉했다.

상자 속에는 성경책과 여성용 돋보기 안경, 그리고 벽에 거는 십자가 장식패가 들어가 있었다.
베버리는 검은 뿔테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올리며 내용물이 뭔지 차분히 들여다 보았다.
큐빅 장식이 달린 안경은 한 눈에 봐도 아니니까 제외하도록 하고... 다른 건 몰라도 상자 속 성경책은 아버지의 유품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어떻게 보면 똑같은 것도 같다. 각국 서점에서 대량으로 팔려나가는 물건이다. 글자가 크고, 주석이 붙었고, 싸구려 금박으로 테두리 장식이 되어 있고... 어느 가정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물건이었다는 점에서「이것은 내 것, 요것은 네 것」이라는 개체 구분은 쉽지 않았다. 자신에게 닥친 일이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님을 깨달은 베버리는 내심 당황했다.

『저희는 데보라 윙 여사의 성경책과 토마스 스테이플러씨의 성경책이 서로 뒤바뀐 것이 아닌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렵지 않다면 둘을 비교해 주시고, 문제가 없다면 이를 증빙하는 이 문서에 직접 싸인도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저어, 시설에 고인의 유품 전부를 이미 기증을 하셨다거나 어디다 버리신 건 아니지요?』
『물론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지.』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냐! 눈에 띄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딘을 본 노부인의 안색이 노랗게 변색되었다.
차라리 안마기를 사달라고 애원하는게 더 낫겠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어루만지며 기억을 더듬었다. 장례식 절차를 끝내고 요양원 직원이 유품을 인계했던 날이 아버지의 유품 상자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한 시대가 종말로 치달았음을 인지한 그녀는 벽장 속에 물건을 그대로 처박아두고 만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 그걸 다시 꺼내려먼 대대적인 붙박이장 정리가 필요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상자 전부를 뒤집어 엎어야 한다. 먼지는 휘날리고, 관절은 아파진다.
그게 싫어진 베버리는 꾀를 냈다.
『그래봤자 성경책이잖수. 그냥 맞다고 서명만 하도록 하죠. 펜을 이리로...』
잘 생긴 까까머리 쪽이 눈앞에서 재빨리 서류철을 치웠다. 그리고 근엄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이런 일은 대충 해선 안 됩니다.』

이런 젠장맞을. 눈앞에서 낙원을 박탈당한 베버리는 어색한 웃음을 팔고 있는 두 청년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봤다. 분노와 절망감으로 진작에 쪼그라든 유방이 팽팽하게 부풀었다.
왕년에 자식 넷을 헤치운 솜씨는 아직도 건재했다. 마음에 들지 않다 싶자 곧바로 치고 나갔다.
『좋았어. 그럼 홀가분하게 팔아치워 이미 집에 없다고 치자고!』
『아이고, 홀리씨. 그러지 마시고 제발 우릴 도아주세요.』
『왜 내가 자네들을 도와야 하는데? 그 까닭을 세 가지로 요약해서 나에게 말해줄 수 있어?』
하나도 어렵지 않다. 딘은 샘에게 눈짓한 뒤,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가능합니다. 세 가지라고 하셨나요. 불쌍해 보였다, 불쌍해 보인다. 젊은 놈들이 직장에서 당장 잘리게 생겼으니 불쌍해서 이 일을 어쩌냐.』
『하아!』
그놈의 기름칠한 혓바닥을 인두로 지지면 딱 좋겠다. 할 말을 잃은 노부인의 표정으로 비웃음이 감돌았다. 더하여 자세한 설명이 불가능한 깊은 혐오감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둥실 떠올랐다.

『알았네! 내가 졌네, 젊은이. 찾아보도록 하지. 망할 성경책! 하여간 끝까지 말썽이군. 우리 아버지가 평생에 걸쳐 교회에 나간 적이 손가락에 꼽는다는 걸 알고는 있수? 심지어 우리들 자식들은 아버지가 무신론자냐 유신론자냐를 두고 싸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그놈의 성경책을 한시도 품에서 떼놓은 적이 없다는 것도 그럼 모르시겠구려. 어쩌다 식구들 중 누군가 그걸 만지기라도 하는 날엔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는 것도 말이야.』
『모릅니다.』
『흥! 당연히 모르시겠지! 딸인 나도 모르는데 생판 남이 뭘 알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베버리는 생각지도 않은 팔다리 펴기 운동을 하기 위해 - 벽장에서 유품 상자를 내리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얌전히들 있으시게. 수상한 짓을 저지르면 빗자루로 때려줄테야!』
거실을 빠져나가기 전에 부인은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형제들을 웃게 만들었다.

토마스 스테이플러는 자랑스런 2차대전 참전 용사이다.
역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훈장도 받았다고 한다.
『그 말을 다시 해석하자면 아버지나 남편으로선 꽝이었다는 얘기가 된다오. 미국이란 나라는 그를 존경했지만 나는 그를 결코 존경할 순 없었지.』
베버리는 내뱉듯이 그리 말하며 먼지가 소복히 쌓인 상자를 윈체스터 형제들 앞으로 내밀었다.
먼지 탓에 재채기를 여러번 해서 그런지 코가 빨갛다.
어쩐지 크게 당황한 듯한 두 청년들을 두고 베버리의 눈썹이 가늘어졌다.
『왜 그딴 식의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그러시나. 원래 존경과 사랑은 별개야. 둘은 같지 않아. 그런 것도 몰라?』
『아, 예...』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가 자녀들을 학대했다거나, 부인을 때렸다는게 아니야. 그치만 말이지. 사람을 죽여본 자는 남을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용기를 잃어버려. 그게 상부의 명령 때문이었든 아니든, 사람을 헤쳤다는 기억이 긴밀한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데 훼방을 놓아버리거든. 덕분에 우리 아버진 누구와도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았어. 부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자식들에게까지 벽을 쌓았지. 사람을 혐오했어, 우리 아버진. 그는 고독했고, 덕분에 우리들 자식들도 항상 외로웠다네.』

《외롭다》라는 말에 반응, 까까머리 쪽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걸 미처 눈치채지 못한 베버리는 입술을 깨물며 상자를 묶은 매듭을 풀었다.
『노인네의 이런 푸념이 귀에 닿지 않겠지. 자네들 세대는 전쟁이 뭔지도 모를테니까. 하지만 말일세. 난 용사니 전사니 하는 것들이 대단히 싫어. 참전 용사? 엿이나 먹으라고 그래.』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사랑은 했지만 절대로 존경할 수 없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먹먹한 검정에 가까워졌다.
『자유니, 이념이니, 정치니 하는 것 이전에 가족이 부숴지면 남는게 하나도 없는 거야. 그래서 나라만 지켜선 안돼. 먼저 지켜야할 것은 가족이야.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중요한 걸 곧잘 망각하지. 그리고 나처럼 죄다 잃어버리고 난 뒤에 후회해. 인간은 어리석어... 그리고 바보야.』

베버리 홀리는 엄숙한 표정으로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버지의 분신을 노려보았다.

성경.
신의 말씀이 기록된 책.

그것을 불안한 표정을 지은 짧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손을 뻗어 잡았다.

Posted by 미야

2007/01/23 21:21 2007/01/2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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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키시스 2007/01/23 21:38 # M/D Reply Permalink

    미야님 안녕하세요. 국내 SPN 동인찾아 산넘고 물건너 헤매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었습니다. (그리고 만세를 불렀..;) 형제가 항상 너무 대놓고 애틋해서 양놈들 정서에도 저런게 있나 싶어 신기해하면서 보던것이 이제 정말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입니다. 소설 잘 읽고 갑니다. 두근두근 다음편을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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