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redemption 03

※ 주말을 이용해서 오로라 타자치기를 해봤습니다. 오타 정리는 교회 다녀와서 천천히 할랍니다. 행복한 새해 맞이하시길... ※


사람의 죄책감을 슬쩍 건들인 뒤, 금고에 넣어둔 현금을 몽땅 내놓으라 협박하는 건 사이비 교주나 저지르는 짓 아니었던가.
분을 삭히려 애쓰면서 딘은 영양 부족으로 거칠어진 자기 손톱을 내려다 보았다. 신선한 과일 섭취를 게을리 한 까닭에 하얗게 일어난 각질이 보기가 좋지 않았다. 짜증을 내며 보풀 하나를 잡아 뜯었다. 따끔거리는 통증과 같이 해서 피 한 방울이 살짝 베어나왔다.
제기랄. 여기서의 문제는 바로 이거다. 닉슨은 탄핵으로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샘에겐 당장 내 동생 관둬라 명령을 할 수가 없다.

『강신술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샘.』
『당연히 알고 있지. 촛불 하나 켜놓은 어두운 방에서 영매를 중심으로 둥근 테이블에 모여 앉아 손을 붙잡고「이리 오너라~」주문을 외우는 거잖아. 테이블 위에는 수정 구슬이 하나 있고, 싸한 향료를 피워대고...』
『흐음, 취향이 아니라고 말했으면서 싸구려 B급 영화를 많이도 봤군.』
『그럼 아니야?』
딘은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사실은 그만하면 매우 정확한 묘사야.』

다만 보통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는데 영매의 검은 테이블 위로 올라가는 커다란 수정 구슬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점이다. 손바닥으로 수정구를 어루만지며 워우예 신음하는 건 순전히 소설과 영화에서 굳어진 이미지다. 영업용으로 놓아두면 그럴싸 해보이니까 가져다 놓는 경우가 태반이다. 있어서 나쁠 것은 없다 - 치과 병원에 걸린 프리스턴 대학 졸업장 비슷한 거라면서 마담 라바는 웃곤 했다. 손님에게 신뢰감을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이다.
대신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불러올 망자(亡者)의 정확한 이름이다.

『은행하고 똑같아. 계좌 번호와 예금주를 전표에 정확히 적어 창구에 내밀어야 금고가 열리게 되지. 계좌번호가 맞지 않으면? 금고 - 저승은 절대로 안 열려. 때로「이 자리로 아무 영혼이나 불러보겠습니다」하고 쇼를 부리는 영매들이 있는데 십중팔구 가짜야. 하얀 백지를 지폐 크기로 오려서는 그게 마치 현금이라도 되는 것인양 사기치는 은행 창구 여직원인 셈이지. 죽고 나서도 현세를 멋대로 떠도는 악령이라면 모를까, 저승에서 편히 쉬는 영혼을 불러내려면 제법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만 해. 그 첫 번째 관문이 부모가 내려준 진짜 이름을 호명하는 거야.』

이것을 살짝 비틀어 보자.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은 절대로 영매의 테이블 위로 올라가선 안 된다.

샘의 눈매가 혼란을 담아 살짝 일그러졌다.
『잠깐만 기다려, 딘. 솔직히 그 부분은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무엇보다 영매의 테이블 위로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이 올라갈 까닭이 없다. 마이클 잭슨이 아직도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건만「팝의 황제의 영혼을 이리로 불러주세요」라고 할 정신병자가 과연 있겠느냔 말이다. 혹시라도 그렇게 해달라 요청했다 해도 거기에 응할 영매가 없다. 대신 놀란 목소리로 이렇게 반문할 거다.「지금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와 착각한 거겠지?」그리고는 뒤돌아 마이클 잭슨이 죽어 해외 토픽감이 되었는데 세상에서 달랑 자기 혼자만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할 거다.

『샘? 마이클은 팝의 황제가 아니야. 지랄 육갑하는 아동 성추행범이지.*』
『법은 상황 증거만으론 유죄를 인정하지 않아, 딘. 거기다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 지방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 자체를 취소했다고. 그러니까 마이클 잭슨이 진짜 아동 성추행범이라고 섣불리 단정지어선 곤란해. 아니지, 내가 지금 뭘 떠들고 있는 거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인데... 강신술 자리와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이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샘의 의문에 딘은 대단히 불편한 기색으로 축농증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크응. 그건 말이다... 영매가 다스리는 테이블은 저승과 현세의 교차점이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그 위에서 부모가 지은 이름이 불리워지면 불려온 유령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자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어버려. 자칫하면 유령에게 홀리기 딱인, 차려진 밥상이 되는 거지. 이게 대충 무슨 줄거리인지 너는 알겠지? 샘.』
머리가 좋은 샘은 형의 시큰둥한 말투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깨달았다.
『아이고, 설마?』
『맞아. 내가 미끼가 되었어. 아빠의 의견이었지. 나는 반대할 이유를 전혀 못 느꼈고.』
딘은 불편한 듯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어루만졌다.

미끼가 된다는 점에선 별 불만 없었다. 아빠를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확신했다.
단, 존이 새롭게 딩딩이라는 이름을 지어불렀을 적엔 피를 콸콸 토하고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래도 혹시라는게 있으니 출생 신고서에 적혀진 네 이름은 여기선 아껴두도록 하자꾸나.」
존은 어딘지 모르게 즐거운 시선으로 입을 벌리고 경악해 마지 않는 아들을 내려다 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아들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즉석에서 지은 아들의 새 이름을 불렀다.
「자, 그럼 가볼까? 딩딩 윈체스터.」
싫어어~!! 딘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음을 토해냈다. 차라리 토마토 윈체스터라고 불러줘어~!!

이제 이불이 필요하다. 딘은 초췌한 모습으로 어슬렁 일어났다. 잠이나 자자. 지금이 오전 11시라고 해도 상관 없다. 실컷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일어나자. 밥도 필요 없고, 자장가도 필요 없다. 푹 곯아 떨어지고 나서 맑은 정신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거다. 아직도 그를 딩딩이란 이름으로 기억하는 미친 할망구는 깨끗이 털어버리고 침대로 가서 눕자. 전화기에 대고 우는 소리를 잔뜩 늘어놓았지만 어차피 이번에도 그렇고 그런 일일 것이 뻔하다. 그러니까 안녕, 나는 지금부터 잠자는 숲속의 공주다. 백마를 탄 왕자가 다가와 빨리 일어나라 키스하면 주먹으로 걍 패버릴테다.

『디~인.』
샘은 팔을 뻗어 트라우마에 빠져 허우적대는 형을 수면 위로 끌어당겼다.
『형은 남자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공주는 될 수 없어. 허리도 굵어서 드레스도 못 입잖아.』
눈으로 딘의 목과 어깨로 이어지는 근육을 주욱 흝었다. 깊게 파인 드레스의 앞자락으로 납작한 가슴이 살짝 드러났다고 상상하자 머리카락이 삐죽 곤두섰다. 탄탄한 근육으로 도배된 복부와 좁은 엉덩이는 어쩌고? 그러고도 분홍 레이스로 허리 아래를 장식한 채 침대에 드러누워「왕자 사절, 수면 방해 금지,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조속한 실천 촉구」를 주장하시겠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샘은 다리를 벌리고 서서 십자가로 흡혈귀를 위협하듯 아빠의 핸드폰을 딘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가 만약 이대로 계속해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연기하려고 한다면 헌팅 명가 윈체스터의 이름을 걸고 형을 처치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장을 한 형의 가슴으로 말뚝을 박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체온이 3℃ 가량 곤두박질 쳤다.

『도움을 청하는 이 사람은 어쩌고.』
『자기가 판 무덤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신경을 쓸 가치를 못 느껴. 보나마나 강신술을 한답시고 설치다가 이번에도 또 성질 나쁜 유령에게 빙의되어 된통 당하고 있는 걸 거야.』
『그렇게 쉽게 판단하는 거 아니야, 딘. 여러 사람의 목숨이 걸렸다고 하잖아. 나름대로 심각한 상황일게 분명하다고.』
『물론 자기 입장에선 꽤나 심각하겠지. 저번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비슷할 거다. 하지만 그게 어떻다는 건데. 자기가 어질러놓은 건 자기가 치우라고 그래. 왜 그 할망구는 자기가 먹은 그릇의 설거지도 못 해서 사람을 이렇게 귀찮게 만드는 거야, 정말!』

대놓고 짜증부리는 형을 보고 샘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그 뺨이 설탕처럼 부드러웠다. 동시에 속임수가 들어있는 마술사의 모자를 들고 시골 처녀를 능숙능란하게 꼬시는 도시 청년 같았다.
『물론 형은 도와주기 싫다고, 그런 사람은 모른다고 주장할 수 있어. 하지만 이거 알아? 진짜 그랬다간 딘의 실력으론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인정하는게 되어버려.』
딘이 엑- 하는 얼굴로 동생을 쳐다봤다.
『그건 또 무쉰 소리야?!』
『내가 틀린 소리 했어? 여기서 형이 안 가겠다고 버티면《딩딩은 라바의 말 그대로 아직 어려요. 그래서 곤란에 처한 할머니를 도와드릴 수 없어요》가 되는 거야.』
딘은 당황해 입을 다물었다. 샘은 이때다 하고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놀리듯 말했다.
『그렇게 되고 싶은 거야?』
견디다 못해 형이 징징 우는 목소리를 냈다.
『그, 그건 싫어!』
『싫지?』
『으으...』
『그럼 가자, 라스베가스!』
딘은 형의 체면도 말아먹고 무릎을 꿇었다.
동생을 멋대로 질질 끌고다니는 형이라고? 하지만 그 질질 끌려다닌다는 동생이 실상은 형을 가지고 쥐락펴락 하고 있음이다.

샘은 두말하면 잔소리라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라스베가스! 심장이 살짝 두근거렸다.
대학 진학 문제로 집을 뛰쳐나온 이후로 늘 금전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그다. 남들이 여행이네, 쇼핑이네, 음주도락이네 하며 신나게 청춘을 만끽하는 동안 도서관에서 책이나 파고 야간 창고 정리 아르바이트로 근육을 불렸다. 덕분에 스탠포드 대학 구내에서 사흘 떨어진 거리를 벗어난 기억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오죽하면 제시카를 포함하여 그의 친구들은 샘이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중증의 방콕족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가벼운 캠핑을 떠났을 적에 보여준 그의 야생 적응력을 보고 다들 눈이 휘둥글 벌어졌던 건 다 까닭이 있다. 도서관에서 엉덩이가 굳느라 버너에 불 붙이는 법도 모를 것 같던 샘이 텐트를 혼자서 치고 나뭇가지를 주워와 모닥불까지 피웠으니 놀랄 노자였을 거다.

「넌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샘.」
같은 학년이자 같은 장학금을 두고 경쟁하던 사이였던 리처드 드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 같이 라스베가스로 놀러가자고 했을 적에 여행은 싫다면서 거절했던 건 도대체 뭐냐. 무인도에서 1년은 살아본 듯한 손놀림으로《여행은 적성에 맞지 않아》라고 말하는 건 앞 뒤가 안 맞잖아.」

적성이 맞지 않긴! 그건 거짓말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샘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와 형을 따라 전국을 방랑했던 것이 버릇이 된 것 같다. 생판 모르는 낯선 도시에서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을 보는 걸 아주 좋아한다. 불빛은 그를 행복하게 만든다. 돌아갈 집으로 안내하는 이정표의 느낌이다. 그립고도 따스하다. 기회만 닿으면 캐나다나 멕시코에도 다녀오고 싶다. 그곳의 야경도 분명 멋질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는 돈이 든다. 샘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신의 방랑벽을 협박, 벽장에 가두어 놓고 그 문짝으로 대못을 박아버렸다.「무전 여행이라는게 있잖아요」라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매일 밤 코피 쏟아가며 법학을 공부했던 몸으로 퍽이나 그런 걸 할 수 있었겠다.

라스베가스! 샘은 손바닥을 비볐다. 리처드가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와 그에게 보여준 사진은 창자를 단단히 뒤틀리게 만들었다. 특히나 1999년에 세워졌다던 베네시안 호텔의 정경은 그의 호기심과 이국에 대한 열망에 불을 질렀다. 세상에, 사람들이 곤돌라를 타고 운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럽의 베니스를 그대로 모방한 작은 도시는 너무도 감쪽같아서 사진 속에 보이는 짙은 초록색의 바닷물이 실상은 대형 수조에 채워진 수돗물이라는 걸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샘을 향해 리처드는「이런 촌뜨기를 다 봤나」식으로 씨익 웃어보였다.
「이것이 현대 미국이란다, 샘 윔체스터.」
그리곤 장학금 쟁탈전에서 패배한 원한을 이때다 하고 풀어버렸다.

너만 가냐. 이젠 나도 간다! 눈에 힘을 주고 샘은 신나라 했다. 베네시안 호텔! 카피된 유럽 속에서 곤돌라를 타고 파란 줄무늬 셔츠를 입은 사공이 부르는 멋진 노래를 감상해 볼란다. 읏샤 소리를 내가며 순식간에 무거워진 가방을 침대 위로 던졌다.

『샘... 넌 이 형이 FBI 공식 수배자라는 걸 깜빡한 모양이구나.』
원한에 사무쳐 딘이 그렁그렁 목 울리는 소리를 냈다.
『거긴 사람들 많은 관광 도시잖아. 라스베가스로 가려면 케니 로저스처럼 수염을 듬뿍 달아야 할 거야. 그것도 아니라면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아이들을 향해 메리 크리스마스~ 이래야 할 걸.』
『그런 끔찍한 분장까지 할 필요는 없어. 괜찮을 거야, 형. 나무 조각을 숨기려면 숲속에 숨기라는 말도 있잖아. 사람들이 무지 많은 동네니까 어쩌면 눈에 더 잘 안 보일 수도 있다고.』
『어쩌면~?!』
좌절감 탓에 딘의 음성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여보세요, 샘 윈체스터! 내가 체포되면 그땐 어쩌려고 그래?!』

그런 걸 짐짓 무시하고 샘은 빙긋 웃어보였다. 형이 이렇게 웃는 자신을 제일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가지런한 이를 살짝 드러내고 나긋나긋한 표정을 지었다.
『가방 안 챙겨? 딘.』
거 봐라. 대륙 침몰이다.
앙 다문 입술이 귀엽다. 찍 소리 한 번 못한 채 돌아선 딘은 동생이 하는 것처럼 자신의 겉옷을 챙겨 가방에 꾸셔 넣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06/12/31 10:04 2006/12/31 10:04
Response
No Trackback , a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242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List

  1. 크림베리 2008/12/26 01:17 # M/D Reply Permalink

    요금 납부는 사라졌네요 ㅋㅋㅋㅋㅋ 샘의 머리는 정말 비상해요~형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자나요~ㅋㅋㅋ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771 : 1772 : 1773 : 1774 : 1775 : 1776 : 1777 : 1778 : 1779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22712
Today:
15
Yesterday:
156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