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redemption 02

부고장을 정식으로 내지 않았지만《퇴마》쪽으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사이로 입소문은 빨랐다.
존 윈체스터가 죽었다 - 영웅의 반열에 올라 마침내 70명의 처녀들로부터 시중을 받게 되었다며* 쓸데없이 아는 체를 해오는 업계 사람들 때문에 윈체스터 형제들은 한동안 대인 기피증을 앓기까지 했다.「아가리 닥치고 가지고 있는 총의 실린더 청소나 계속 하시구려」- 한 번은 앨런 아줌마의 술집에서 정보를 얻으려던 딘이 참다 참다 못해 냉소적으로 쏘아붙인 적도 있다. 비록 겉모습은 건달 분위기의 청년이라 해도 나름대로 예의을 존중할 줄 알던 그가 유감을 표시한 사람을 한 방에 무안하게 만든 일은 매우 드물다. 그만큼 극한으로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섰다고 보면 될 것이다.

『70명의 처녀들이라니! 망할 것들!』
그날 저녁, 자기 위장으로 술을 3리터나 퍼부어댄 딘은 가로등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
(* 이슬람 종교를 폄하하고자 쓴 표현은 결코 아닙니다 ^^)

아무튼 여기서의 요점은 소문이 돌고 돌아 존 윈체스터가 죽었다는 사실을 다들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 한 달은 존의 도움을 구하는 전화가 꾸준히 걸려왔다. 다음 한 달은 어쩌다 걸려왔다. 그 다음 한 달이 되자 거짓말처럼 벨소리가 뚝 끊겼다. 배터리를 정기적으로 충전하는 행동 자체가 우스워질 지경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기억해내려 하지 않는 전화를 뭐하러 살려둬야 하느냐는 소리가 그래서 나왔다. 소모품은 쓰고 버리면 그만이라는, 그런 면에선 묘하게 부친을 닮은 딘은 더 이상 벨 소리를 내지 않는 핸드폰에서 관심을 껐다. 때문에 샘이 신주단지인양 모셔두던 아빠의 핸드폰을 꺼내 앞으로 공손히 내밀었을 적에도 그의 얼굴엔 감정이라는게 실려 있지 않았다.

『왜.』
정확히는「나에게 뭘 더 바래」이다.
『거기다 핸드폰 악세사리라도 새로 달고 싶어졌어?』
형의 냉소적인 반응을 이미 예상했던 것 같다. 이유를 설명하는 샘은 의외로 침착했다.
『전화가 왔어.』
『뭐?』
『어제 오후에 아빠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었어. 모르고 받지 않았더니 음성 사서함으로 바로 넘어갔더라. 녹음된 메시지가 있는데 들어볼래?』
모양만 질문이고 실상은 명령이다. 이쪽에서 듣겠다고 미처 긍정을 표시하지도 않았는데도 샘은 단축키를 누른 뒤, 딘의 오른손에 핸드폰을 쥐어주었다.
그게 꼭 코흘리개 어린애에게 수저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느낌이라 딘은 이마를 찌푸렸다.
아니, 그것보다 아직까지도 존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게 희안하다.

『누군데.』
『여자야.』
『그건 너무 막연하다, 야. 우리가 아는 사람이야?』
『그게... 잘 모르겠어.』
『알면 아는 거고, 모르면 모르는 거지. 무쉰 대답이 그 따위야.』

불평하며 핸드폰으로 바짝 귀를 가져갔다. 딩동, 신호음이 끝나고《음성 사서함에 메시지가 1건 녹음되어 있습니다. 재생을 원하시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십시오》라는 기계적 안내문이 흘러나왔다. 폰맹이라는 누명을 하루라도 빨리 벗기 위해 딘은 엄마와 아빠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 날의 날짜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입력했다.
맙소사, 손아귀로 땀 난다. 보통은 결혼 기념일이라던가, 소중한 사람의 생일을 써먹는 거 아니었던가.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게 없다고 생각했던 건 순전히 착각에 불과했다. 번호를 입력하면서 딘은 자신이 아버지 존에 대해 절반도 알지 못 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최소한 해병대 시절 군번이기만 했어도 이런 식의 당혹감과는 마주치지 않았을 터. 많고 많은 비밀번호 중에 하필이면 첫 데이트를 한 날짜라니. 장미 향기 가득한 사나이의 순정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진다. 괜히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하고 싶어진다. 존이 엄마 메리와 처음으로 키스한 날... 9월 17일. 그래서 비밀번호는 0917이다.

딩동~ 하고 재차 연결음이 이어졌다.
《존, 미안하네. 6년 만인가... 그보다 더 오래된 것 같기도 하군. 잘 있었는가.》
잔뜩 쉬어빠진, 걸걸한 목소리의 나이 많은 여자였다. 담배를 너무 피워서 성대에 이상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어둡고 탁한 떨림은 목안에 가득찬 누런 가래를 연상시켰다. 그 느낌이 너무나 더러운지라 딘은「이게 뭐야」라는 시선으로 귀에서 떼어낸 핸드폰을 노려봤다.

어쨌든 녹음된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날세, 라바... 마담 라바 애브리일세. 다시는 날 찾지 말라고 경고했던 말을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부탁을 할 사람이 존 자네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네. 염치 불구하고 또 한 번 부탁함세. 이 늙은이를 도와주면 안 되겠나. 죽을 날이 내일 모레이니 알아서 관 뚜껑 닫으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게. 나야 가면 그만이겠으나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의 목숨이 여럿 걸렸어... 존? 제발 부탁이야. 이리로 와주게. 곤란한 일이... 카악.》
여기서 노인의 호흡이 잠시 끊겼다. 딘은 으이그 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만졌다. 이 할머니, 덩어리진 가래를 뱉고 있다.
《미안, 미안. 요즘 내가 몸이 좋지가 않아서... 의사 말대로 진작에 담배를 끊었어야 했는데.》
폐가 꽉 막힌 듯한 마른 기침 소리가 잠시 뒤를 이었다.
《콜록... 아무튼 급한 일이 있으면 자네 아들 딩딩에게 연락하라고 그 애의 전화번호를 남겼더군. 하지만 난 자네가 직접 와줄 수 없을까 하고 바라고 있어. 여보게, 존. 자네 아들 딩딩은 아직 어려. 그 아이에게 이런 일을 부탁할 순 없네. 이건 엄살이 아니네. 딩딩은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야. 아들이 아니라 자네가 필요하네. 옛날에 내가 살던 집을 알고 있겠지? 사람 살리는 셈치고 이곳 라스베가스로...》

채 듣지 않고 폴더를 탁 소리가 나도록 접어버렸다. 딘은 씩씩거리며 아빠의 핸드폰을 부숴버리려 했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양쪽 눈자위가 뻘겋게 변한 것이 심상치 않았다.
『이 망할 할망구가~!!!』
『형! 제발 진정해! 핸드폰이 망가지겠어!』
『딩딩이라니! 아직도 날 딩딩이라 부르다니!』
그리곤 애꿎은 동생의 멱살을 와락 붙잡았다.
『미리 경고하는데 샘... 너까지 날 딩딩이라 불렀다간 그 날이 네 제삿날이다. 알겠냐!』

샘은 내심 형을 딩딩이라고 불러보고 싶었다. 여리고 귀여운 느낌이다. 딩딩... 혀를 움직여 입속으로 그 단어를 가만히 굴려봤다. 음, 버릇이 될 것만 같다. 비눗방울의 상큼함이다. 이거 무지 좋다.
순간 딘의 눈초리가 사납게 휘어졌다.
『지금 목 부러지고 싶은 거지? 그렇지?』
하여 일단은 잘 알았다고 대답하며 혈압 오른 형을 달랬다. 화난 딘은 힘이 곱절로 세진다. 잡힌 목덜미가 대단히 아파왔다. 그래서 샘은 남의 얼굴 위로 뜨거운 콧김을 뿜어대고 있는 형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가까운 의자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우리, 앉아서 얘기합시다. 그러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정 뭐하면 차가운 물이라도 한 잔 드시면서...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형은 잘 아는 사람인가봐? 그 마담 로바인가 하는 할머니 말이야.』
『라바.』
그 자리에서 이름을 정정해주고 팔짱을 꼈다. 딘의 짙은 초록색 눈동자가 증오를 담아 새카매졌다.
『Shit! 라바는 우라질 놈의 관광 도시에서 강신술로 장난하며 돈이나 벌던 노친네야. 우리완 완전히 극과 극을 달리는 존재라고 할 수 있지. 누구는 뼈 빠지게 유령을 헌팅하느라 죽을 맛인데 누구는 유령을 불러내어 사람들에게 모자 씌워주듯 하고 있으니 세상 참 불공평하지 않냐? 그래서 아빠도 화가 치밀어 다시는 자기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던 거야. 멋대로 귀신을 불러놓은 주제에 자기 똥구멍을 닦지 못해 뒤로 넘어가버렸으니 상당히 꼴불견 아니냐. 남이 싼 똥을 치우는 기분이어서 아빠도 나도 일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어.』

샘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저어... 그런데 난 마담 라바에 대한 건 기억이 없거든?』
어쩐지 바짝 약이 오른 말투다. 딘은 차디 찬 냉동고 속에서 생선 궤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15분간 찬 바람을 맞기라도 한 것 같은 샘의 태도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넌 그때 겨우 열 여섯이었거든? 여드름으로 한창 고생했을 때니까 당연히 모를 수밖에.』
그 당연히 모를 거라는 표현이 귀에 거슬렸다. 샘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바르락 대들었다.
『그때 내가 헌팅에 끼어들기엔 어렸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단다》하고 말을 해줄 수는 있잖아. 이럴 수 있어? 생각해보니 난 내가 어렸을 적에 형이랑 아빠가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 아는게 거의 없어.』
『얼씨구? 그래서 불만이라고? 이봐, 새미 넌《나는 어제 가게에 가서 I♡NY 라고 글자가 적혀진 검은색 셔츠를 하나 샀습니다》하고 시시콜콜 말하곤 하니? 그렇게 안 하잖아.』
『헌팅과 셔츠 사는 일이 똑같아?』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야.』

딘은 경고를 담아 손가락으로 동생의 가슴을 눌렀다.
『그리고 이거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꾸나. 넌 아빠와 내가 헌팅을 하러 나가는 것도 싫어했고, 헌팅을 하고 돌아온 우리도 싫어했어.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돌아서선「다녀오셨어요」인사 한 번 안했잖아. 식탁 앞에서조차 제대로 말도 않고 말이지. 그런 네게「어제 우리들은 고약한 톨퍼를 둘이나 처리했단다」라고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언제는 기말 고사 시험 준비 중이라며 나랑 눈도 마주치지 않았으면서, 이제는 헌팅에 대해 왜 말을 안 해줬느냐며 불평이야? 너, 지금 대단히 억지 쓰고 있다는 건 알고는 있냐. 형은 허탈해져서 마구 웃고 싶어졌다. 내 동생이 아니었어봐. 진작에 맞아 죽었어.』
맞받아치는 샘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그럼 웃어! 멋지게 한 방 날리라고! 형이랑 아빠가 맨날 다쳐서 돌아오니까 그게 싫었어. 멍들고, 찢어지고, 잔뜩 부운 얼굴로 돌아와서 속상했어. 혹시라도 이러다 영영 안 돌아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해야 하는데 잘도 인상을 펴고 있었겠다. 형이야말로 알고 있어? 이번에야말로, 다음에야말로 정말로 외톨이가 되어버릴 거라고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난 진짜 힘들었어, 딘.』
『Stop.』
이제 의자에 앉아야 할 사람은 샘이 되었다.
기절하기 전에 진정하고 호흡을 가다듬도록 하십시다. 딘은 의자를 손가락질하며 동생을 떠밀었다. 샘은 흥분하면 키가 곱절로 커진다. 평소에도 올려다 보기가 마뜩찮은데 가뜩이나 커다란 녀석이 발돋음을 한 채 지랄까지 하면 자기 같은 평균 사이즈의 인간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 되어버린다. 곰이 두 다리로 벌떡 일어나「어디 죽어볼겨?」라고 하는 것 같아 가끔은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곤 한다. 곰이 휘두르는 앞발에 맞으면 목뼈가 동강이난다 - 아빠의 친구였던 케일럽 아저씨는 우스개 소리랍시고 그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바들바들 떠는 동생을 강제로 의자에 앉혀놓고 딘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좋아. 새미. 진정해라. 숨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지금에 와서 다시 할 얘기 따위가 어딨어, 딘. 난 이미 열 여섯 살 시절에서 졸업했다고.』
『그래도 난 너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어졌어, 새미.』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일이잖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사과하는 건 바보 같으니까 그만둬. 대신 왜 마담 라바가 형을 딩딩이라고 부르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해봐.』
『.......... 야!』

뒷공작을 꾸미는 동생에게 한 방 멋지게 맞았음을 깨달은 딘은 다섯 박자 늦게 숨쉬었다.
금성에서 목성으로 워프하는 것까진 괜찮다. 멀미가 약간 나지만 그럭저럭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화성에서 들입다 안드로메다 성운으로 진출하는 건 반칙이다. 우주 패트롤이 출동, 겁나게 과속한 초광속 우주선에 벌금 딱지를 부과해버릴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 딘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노려봤다가 다시 발잔등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가까운 곳에서 석탄이라도 타고 있는지 이글이글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타고 있는 것은 그의 머리. 양동이로 물을 붓는다고 해서 그놈의 불길이 쉬이 꺼질 것인지가 의심스럽다.

『샘... 이 겁 나는 자식. 처음부터 그걸 노린 거지?』
『노리긴 뭘 노려.』
『이게 누구 앞에서 딴청부리고 있어!』
샘은 순진한 표정으로 벌컥 화를 내고 있는 형과 가만히 눈을 맞췄다.
『왜 딩딩이야?』
『으이그~!!』

6년 전, 딘은 쌀쌀맞게 안부 전화를 끊어버린 동생을 원망하며 불평을 꺼낸 적이 있다.
「아빠, 방금 전에 난 세상에서 제일 치사하고 지독한 악당의 이름이 뭔지 알아버렸어요.」
「그게 누구냐. 닉슨 대통령?*」
역사 시간에 맨날 졸기만 했던 딘은 워터게이트에 대해선 잘 몰랐다.
「닉슨이 아녜요, 그건 샘 윈체스터예요.」

6년이 지난 오늘 날, 유감스럽게도 그 이야길 반복해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악당.
동생이었다.

Posted by 미야

2006/12/29 21:36 2006/12/29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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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리엘 2006/12/30 03:17 # M/D Reply Permalink

    ㅋㅋㅋㅋ 우리 빅 브로 딘에게 딩딩이란 깜찍한 별명을...! 모니터 부여잡고 하트빔 날리고 있었답니다..ㅋ 역시 우리 슈뇌 형제들은 티격태격하는 게 정말 딱인듯!

  2. 써니 2008/02/11 19:33 # M/D Reply Permalink

    딩딩.. 크크크 차마 회사에서는 웃지는 못하겠고 고개숙이고 계속 주문만 걸었다는..
    지금집에서 읽고 엄청 웃고있어요.. 미야님 작명센스.. 크크크 진짜 딩딩이..
    어쩜 입에 쩍쩍 달라붙는 별명이에요.. ^^

  3. 크림베리 2008/12/26 01:10 # M/D Reply Permalink

    딩딩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쓰러져요 ㅋㅋㅋ 아우~ 저도 왜 그런별명이 생겨났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ㅋㅋㅋㅋㅋ 딩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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