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41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삼킨 물을 토하는 거라 생각했다.
입안에 가득 찬 이물질을 뱉어내는 동안 호흡이 어려워 괴로웠다.

이발소 의자에서는 벗어난 상태였다. 엎드린 자세로 정신을 차린 곳은 상투를 푼 채 칼을 쓰고 앉아있으면 어울릴 법한 감옥이었고, 뿌옇게 흐려진 눈에는 온통 검댕밖엔 안 보였다. 어쩌면 눈이 잘못되어 얼룩이라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 요란하게 쿨럭거렸다. 그런데 실제로 뱉어낸 물의 빛깔이 석탄의 색이었다. 온통 뿌옇고 검었다.
기침이 멎지를 않았다. 이제 코로도 검은 가루가 쏟아졌다.
‘그렇군, 꿈을 꾸고 있는 거군.’
코로 가루를 뿜고 있음에도 몸은 가벼웠다. 역시나 꿈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 몸 주변으로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검댕의 존재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검댕은 빠르게 멀어졌다가 봄의 왈츠를 추듯 스륵 돌아 나에게로 돌아왔다. 손으로 가볍게 쥐자 정전기가 일어난 것처럼 따끔했다. 날벌레에 물린 것 같기도 했다. 손을 펴자 날파리처럼 생긴 것이 날아올랐다.

갑자기 카메라 앵글이 바뀌며 시야의 높이가 변했다.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기라도 한 것 같았다.
꿈이라면 가능한 일이기에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덜 회복되어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옥문을 움켜쥐고 흔드는 내 손이 들어왔다. 배추 250근을 한 번에 들어 올리는 괴력에 정체불명의 검은 가루까지 합세하자 강철로 만든 경첩이 둘로 쪼개지며 옥문이 주저앉았다.
큰소리가 나자 경계를 서던 자가 횃불을 들고 뛰어왔다.
가까이 불을 비춰보고는 어째서인지 비명을 질렀다.
검은 가루가 파리 떼처럼 몰려가 그 남자의 얼굴을 덮었고 자지러지던 비명이 뚝 그쳤다.
‘와... 특수효과가 꼭 영화 미이라 같다.’
사람이 저리 죽을 리 없으니 역시 꿈이다. 쓰러진 남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출구를 찾았다.

한쪽은 복도였고 한쪽으로 감옥 같은 공간이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 감옥의 어둠 깊은 속에서 그르륵, 그륵 이러고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소음이 들렸다.
‘이건 워킹데드 1시즌이네.’
가까이 접근하면 썩은 손톱이 달린 마른 여자의 손이 튀어나와 벽을 긁을 것이다.
‘이곳에 죽은 자가 있음! 접근하지 마시오.’ 경고문이 걸려 있음 딱 주인공이 깨어난 병원 장면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원래 꿈은 자각몽이 아닌 이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서 금세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불편한 다리로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시야가 좋지 않아 몇 번을 미끄러졌는지 모른다.
무릎을 찧었을 적엔 제법 아팠다.
‘응? 아프다고?’
허우적거리다 말고 이상하다 생각했다. 꿈에서 넘어지면 무릎이 아픈가?
벽면을 더듬거리며 방향을 잡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쩌면 턱이 아픈 걸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멍들고 어금니가 빠져 얼굴이 퉁퉁 부었다.

계단을 올라가 출구를 찾았다고 여겼는데 막다른 방이 나왔다.
이번에도 검은 벌레가 출동해서 자물쇠를 갉아먹었다. 황제의 보물창고 문지기도 이 벌레들 앞에선 맥을 추지 못할 것이다. 커다란 쇠붙이가 형태를 잃고 추락하자 안에서 희게 눈을 까뒤집은 주시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입고 있는 옷은 단정했으나 피부가 썩어 냄새가 엄청났다. 그런 놈들이 딱딱 턱을 놀리며 내 몸을 씹으려 했다.

이러다 이빨 자국 생긴다 걱정하던 찰나 위치가 역전되어 내 입으로 남의 살이 가득 찼다.
이제 살을 씹고 있는 건 걸람, 피를 흘리는 자는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발버둥 쳤다.
‘이게 무슨! 이게 무슨!!’
나는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게걸스럽게 살을 탐했다.
‘살려주시오! 부인! 살려줘!’
문밖에서 어머니가 지키고 서계셨다.
여자는 남편이 산채로 잡아먹히고 있음에도 결코 문을 열지 않았다.
‘상공, 아들을 위해섭니다. 온서염, 내 아들아.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느냐.’
걸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고 씹던 살을 뱉어낸 아이는 까맣게 변한 손을 뻗어 아버지의 맨 살을 더듬었다.
‘명혼을 삼키는 거다. 붙잡고 끌어와 네 것으로 삼으렴.’
어머니의 지시에 아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겁에 질린 아버지가 어떻게든 걸람을 뿌리치려 했지만 아이는 괴물처럼 자신의 입을 아비의 심장이 있는 피부로 가져갔다.

《그만둬. 이런 걸 떠올리고 싶진 않아.》
경고하는 온서염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걸어 다니는 시체로부터 얼른 입술을 떼어냈다.
《그런 건 먹지 마. 여기서 나가.》
온서염의 말대로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된 시체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시체 곁을 방황하던 검은 벌레들이 꾸물거리며 미련을 드러냈지만 내가 다른 길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얌전히 따라왔다. 뒤를 돌아보자 흐릿한 검댕 얼룩이 꼭 도둑놈이 남긴 발자국처럼 보였다.
그 자국이 재밌다고 생각하며 도로 앞을 향했는데 갑자기 벽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창이 튀어나와 내 옆구리를 깊게 찔렀다.

“아?”
벽이 아니라 벽으로 위장된 통로였다.
창을 든 남자가 날카롭고 짧게 휘파람을 불어 동료에게 신호하자 이번엔 검을 든 사람이 나타났다.
이런 일에 대비하여 평소 훈련을 해왔는지 창과 검의 호흡이 딱딱 맞았다.
“흉시야? 이거 흉시냐고. 얼굴이 피범벅이잖아.”
“몰라. 어쨌든 물리면 안 돼. 최대한 벽으로 밀어!”
그러다 검을 들고 있는 쪽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무기를 떨어뜨렸다. 돌아보자 검댕이 그의 얼굴을 빈틈없이 덮고 있었고, 한눈에 봐도 살 가망이 없어 보였다.
창으로 미는 힘이 약해졌다. 흉살을 당한 동료의 모습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팔에서 힘을 빼버린 거다.
옆구리 살이 찢어지는 걸 개의치 않아하며 몸통을 비틀자 창을 든 자의 자세가 나빠졌다.
그걸 기회로 그 자의 목덜미를 와지끈 물어뜯었다.
《먹지 말래도.》
온서염의 잔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눈이 제대로 낫지 않아서인지 소매에 묻은 체액의 색이 붉지 않고 검었다.
아무래도 눈을 찾아야겠다. 불편해서 참기 힘들었다. 잘 보이는 눈으로 갈아 끼워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여기저기를 쏘다니다 미로 같은 구조를 벗어나 운 좋게 출구를 찾았다.

오랜만에 들이마시는 공기가 시원했다.
검댕으로 얼룩진 눈은 빛을 거의 구분하지 못했지만 머리 위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음은 냄새로도 알 수 있었다. 화창한 날이었다. 시각은 대낮이었다. 운심부지처의 문하생들은 지금쯤 몸을 풀고 체력단련을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다만 지금 여기서 빠르게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기 문하생들처럼 체력단련의 시간을 가진 눈치는 아니었다. 소지한 무기의 종류가 압도적으로 창이 많았는데 몸에 금단을 맺고 수련을 하는 사람들치고 창술을 연마하는 자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창은 리치가 길어 일반인들이 익히기엔 좋은 무기지만 영력을 사용하는 무기로는 걸맞지 않았다. 그러니 여기 모인 사람들은 도를 수련을 하는 자가 아니고...... ­
“야, 이 새끼들아! 깜짝 놀랐잖아. 니들은 예의도 없냐. 꼼짝 마라, 이런 말부터 해야지!”
사극 드라마도 안 보는 것들 같으니.
에워싸고 창으로 찌르려 해서 하마터면 고슴도치가 될 뻔했다.
나를 보호하려는 건지 철가루 검댕이 미친 듯이 회오리쳤다.
그깟 석탄 가루라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오는 길에 몇 명을 먹어치운 뒤라 힘이 장사였다.

비명소리가 요란했다. 검댕 묻은 얼굴을 쥐어뜯으며 바닥을 뒹굴던 자들이 칠공으로 피를 뿜었다.
거치적거린다. 비켜라.
똑바로 걸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느라 바쁜 놈 앞에 섰다.
음...... 신장의 차이 탓에 올려다보고 있자니 불쾌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철가루 검댕이 일제히 몰려가 남자의 몸을 강제로 찍어 눌렀다.
“거의 숨을 쉬지 않았...는데, 어떻게?! 분명 그랬는데?! 그리고 그 힘은...!! 허억.”
손이 작으니 손바닥을 활짝 펴도 남자의 얼굴을 다 덮는 건 무리였다. 농구공처럼 가지고 놀다 땅바닥에 드리볼을 해볼 작정이었는데 이래선 무리다. 쯧, 하고 혀를 차고 손을 치우자 손가락 숫자만큼 눌린 자국이 생겼다. 둥글게 눌린 붉은 자국이 연지라도 찍은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니, 그런데 마음대로 웃지도 못해.
내가 웃자 강제로 꿇려져 나를 올려다보던 눈에 공포가 서렸다.
무서워하긴. 나는 물고문도 안 할 건데. 상냥하게 웃으며 덥석 남자의 머리통을 물었다.
비명소리로 귀가 다 얼얼했다.

“이건 꿈이지?”
《응.》
“그리 기분 좋은 꿈은 아니네. 프로이드의 이론대로라면 나는 아직도 구강기 단계라는 거잖아.”
피투성이가 된 입을 닦으며 그렇게 말했더니 온서염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나도 잘 몰라. 교양수업으로 심리학 개론 들은 지도 오래고... 구항남잠생, 구강기-­항문기-­남근기-­잠복기-생식기, 이러고 개굴개굴 염불 외웠던 것밖에 기억 안 나. 그런데 구항남장생 이런 거 몰라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지. 우울하면 치맥이고, 슬프면 노래방이야.”
《치맥이 뭐야?》
“그러게. 치맥이 뭘까. 그게 어떤 맛이었는지 이젠 생각도 안 난다.”

내가 열고 나온 길을 따라 제법 되는 숫자의 주시들이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다들 썩은 내를 심하게 풍겼고 눈은 동공이 없이 흰자만 보였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일까, 아님 가게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일까.
입고 있는 옷의 옷감이 좋은 것으로 보아 생전에 그래도 나름대로 한 가닥 했던 사람들이었을 거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나 시변한 이후부터 오랫동안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놀랍게도 그중에는 여인도 있었고, 나이 많은 노인도 섞여 있었다. 얼굴이 썩어버린 탓에 전부 형제자매처럼 보였는데 어쩌면 생전에도 한 가족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엄마, 이 사람은 아빠, 그리고 저기서 구멍 난 머리통을 맛있게 먹고 있는 건 삼촌...
아비규환이었다. 검댕 벌레들까지 합세해서 서로 먹고 먹히고 난리였다. 쩝쩝 소리가 요란했다.

이제 그만 꿈에서 깨고 싶다. 머리를 주먹으로 툭툭 때렸다.
왜 깨질 않는 거지. 게다가 눈은 왜 이렇게 시리고 쑤시는 걸까.
머리를 들자 물속에 잠수한 채 올려다 본 햇님처럼 일렁이며 반짝이는 밝은 빛이 보였다.
어쩐지 그게 꼭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느껴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Posted by 미야

2021/12/10 17:09 2021/12/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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