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24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일단 옷과 신발을 구입했다.
상인이 지저분한 내 모습을 한 번 쓱 훑어보더니 얕잡아보고 터무니없게 바가지를 씌우려 했다.
그런데 내 속 알맹이가 그렇게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거덩요. 목을 감은 붕대를 풀어 상처를 보여주며 귀신을 잡으러 온 수사가 이렇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떠벌리자 어색하게 웃으며 가격을 도로 깎아줬다.
상인은 소란만 피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서둘러 계산을 마쳤다.

‘수사들이 어검하여 날아가더니 산이 무너지고.’
무슨 노래 제목 같은 이야기가 이미 마을을 한 바퀴 돌았기에 사람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상태로 예민하게 몸을 사렸다.
얼마 뒤, 검을 소지한 수사들이 트럭 크기의 곰 사체를 가져와 가죽손질을 의뢰하자 숙덕거림은 배가 되었다.
‘며칠 전 산에서 엄청 큰 소리가 들렸잖아요? 그때 거기서 잡은 괴물 곰이래요.’
‘깊은 계곡에서 도를 닦던 곰이었는데 산신이 되고자 욕심을 부려 태산의 법기를 훔쳐 달아났다네요.’
‘그런데 진법을 깔고 수행을 계속해도 진척이 없자 사술에 빠져 사람을 잡아먹어 법력을 높이려고 했다는 거에요.’
‘난릉 금씨가 몰려가서 진법을 부수고 곰을 죽였대요.’
‘난릉 금씨가 아니라 운몽 강씨라던데?’
‘금씨나 강씨나. 수진계 사람들이라는 게 중요하지. 아무튼 저 곰을 깔개로 만들 거라네요. 짐승의 몸으로 분수를 모르고 법기를 훔치고 사람을 먹었으니 깔개로 만들어 죽어서도 그 몸을 밟아 벌을 주겠다는 의도래요.’
‘그나저나 가끔 도사님처럼 보이는 분들이 무리를 지어 저 산으로 올라가는 이유가 있었던 거네? 우리에겐 귀한 약초를 캐러 가는 거라고 했으면서. 실은 잃어버린 신선의 법기를 되찾으려고 한 거군.’
‘그런데 난 저 산꼭대기로 사람 먹는 곰이 어슬렁거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숲에 들어가 몰래 숯을 굽던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진 적은 있잖아.’

먼발치에서나마 수레에 실려 작업장으로 떠나기 전의 곰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이 전부 나와 법석을 떨며 구경을 하였기에 앞에서 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깔개로 만들어 죽어서도 몸을 밟는 벌을 주겠다니. 과장이 너무 심하잖아.”
자고로 거짓말이 도는 건 더 큰 거짓말을 숨기기 위함이다.
수사들이 뭔가 중요한 걸 숨기고 짜고 치는 판을 벌렸다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거대한 악이 처단되었고 마을에 평안이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자세한 내용도 모르면서 좋다며 만세를 불렀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조용히 벽계를 빠져나와 약양으로 향했다.
약양은 멀었다. 그리고 길도 순탄하지 않았다.
중간에 행상을 만나 수레를 빌려 타지 않았더라면 매우 고생했을 거다.
“제법 먼 곳까지 가는 거네. 무슨 볼일인데?”
나는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하나 지어냈다. 작은아버지가 장가를 간다고 큰돈을 빌려갔다. 오랫동안 갚지를 않아 독촉하는 서신을 보냈더니 약양에서 남의 집 종살이를 하여 곧 갚겠다고 답장이 왔다. 마침 어머니가 병을 얻었기에 아버지가 나를 보내어 작은아버지를 만나보라고 하였다... 듣고 있던 수레 몰이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구나.”
그러면서 수염이 덥수룩한 턱을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마를 찌푸리더니 잠시 후에 하는 말, 어쩌면 작은아버지가 거짓말로 둘러댄 것일 수도 있단다.
나는 짐짓 놀라는 척했다.
“작은아버지 말씀이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약양에는 남의 집 종살이를 할 만한 큰 집이 없어.”
“듣기로는 상씨라고 큰 세가가 있다고 했는데요.”
“옛날에는 있었지. 하지만 언젯적 이야긴데, 그게.”

이번에는 진짜로 놀랐다.
내가 알던 약양은 큰 마을이었다. 진짜로 거지 꼬라지에 아무것도 없던 소산과 비교하면 거기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장터엔 파는 물건도 많았고, 군것질이나 장난감을 파는 노점도 있었으며, 마을 겉모양도 번지르르하여 기와를 얹은 집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뉘앙스는 완전 쫄딱 망한 동네 취급이다.
잠깐만. 숨을 고르고 잘 생각해보자. 뉴욕 마천루를 구경해본 사람의 눈엔 10층짜리 건물이 코딱지로 보이는 법이다. 수레 다섯을 끌고 가는 행상이면 약양을 두고 ‘남의 집 종살이를 할 만한 큰 집이 없는 곳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겠지? 그렇지? 이런 행상이 소산에 오면 판자촌이라고 할 거야.
눈에 띄게 말이 없어진 나를 향해 수레 몰이꾼이 쯧쯧 혀를 찼다.
“그러니까 돈은 형제 사이에도 함부로 빌려주고 그러는 거 아니야. 서로 의만 상하지.”

이어 그는 어머니 어디가 편찮으시냐 물었다.
기침을 많이 하신다 둘러댔더니 이것저것 폐에 좋은 약초 이름을 언급하며 가격까지 알려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 아이고, 우리 아들과 똑같이 열세 살인데 불쌍해서 어쩌노.”
어디 가서 스물하나라고 말을 하면 큰일 나겠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완전 망했어!!’
천신만고 끝에 약양에 도착하니 오히려 갈 길이 구만리였다.
상씨가 망했다. 쫄딱 망했다.
오래전에 버려진 저택은 폐가 이전에 귀신이 나오는 흉가가 되어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혔고 부적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낮인데도 근처로 사람이 지나가지 않아 주변으로 키 큰 잡초가 무성했다.

“뭐? 상씨 집에서 종살이 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간식으로 먹기 좋은 전병을 팔던 장사꾼이 내 질문을 듣고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 이거 반응 안 좋다. 전병 값을 계산하면서 쭈물쭈물 예의 거짓말을 다시 반복했다.
먼 친척 형님이 장가를 간다며 큰돈을 빌려갔다. 오랫동안 갚지를 않아 서신을 보냈더니 약양에서 상씨네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중이니 곧 갚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답장이 왔다. 형님도 만날 겸 막상 약양에 도착을 해보니...
“속았군.”
다 듣지 않고 전병가게 주인이 말꼬리를 잘랐다.
“상씨 가주 상평이 죽은지가 언제인데. 네 친척이라는 자가 돈을 갚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 거야. 나 참, 풍비박산 난 집안에서 종살이를 한다고 둘러대다니. 돼먹지 않은 사람일세.”
“예? 죽어요?”
언뜻 들은 기억이 났다. 송자침의 말로는 저택에서 벌어진 흉사를 접하고 충격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고 했다. 젊은 가주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 일어나지 못한 건가.

“큰 소리 내지 말고 들으렴. 살해당했어.”
“네??”
“좋은 일도 아니니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아. 아무튼 살해당했어.”
“살해를 당하다니. 무슨 일인데요. 왜요?”
“얘가 진짜! 쉿! 목소리를 낮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름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그 자가 자기 이름을 들으면 저승에서 돌아올 거야.”
누구여 그건. 볼드모트여?!
전병 가게 주인이 개미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이릉노조 몰라? 이릉노조라니까. 상씨를 멸문시킨 자가 이릉노조 위무선이거든. 지금도 이릉노조라고 하면 현문 세가 사람들이 분하고 화가 치밀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잖아. 불야천에서 무려 3천 수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이릉노조 위무선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귀신으로 나타나 상씨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고. 그러니 어디 가서 상씨 집안에서 종노릇 하던 사람을 찾는다며 함부로 휘젓고 다니지 말아. 경을 칠 테니. 전병도 사줬고, 네 신세가 하도 불쌍한 거 같아서 큰 맘 먹고 알려주는 거야.”
“무슨 소리에요. 상씨 집안에 여귀사신을 몰아넣고 공격해서 사람을 죽게 만든 건 설양이잖아요.”
“설양이 누군데.”
“실화냐! 이거 진짜 망했네?!”
아무래도 설양이 만든 음호부를 찾아 이를 증거로 약양 상씨에게 일어난 비극을 증언하겠다던 효성진의 계획은 시작을 해보기도 전에 전부 틀어진 게 분명했다.

귓동냥으로 몇 가지 얻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5년 동안 상씨는 피해복구를 전혀 하지 못했다.
가주 상평은 거대한 무덤으로 변해버린 저택을 제대로 처분도 하지 않고 이사를 간 듯하다.
이게 왜 추측이냐면 이사를 간 곳이 어디라는 게 알려지지 않아서다.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는 말도 있고, 곧 돌아올 작정이라 가까운 곳으로 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무튼 상평이 집안에서 벌어진 흉사에 큰 충격을 받아 앓아누웠던 건 사실이라서 병을 치료할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효성진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이게 왜 설양의 짓이 아니라 이릉노조의 짓으로 뒤바뀐 건데?!’

이릉노조가 사술로 상평에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렸기에 온몸에 구멍이 뚫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 육신과 혼백이 전부 찢겨져 죽었다는 말도 나왔다.
어쨌거나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주 상평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죽었다고 한다. 남은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릉노조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미리 작당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설양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효성진에 대한 이야기도 쏙 빠지고 없어.’
당연히 나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참변의 날, 상씨와는 상관 없는 피해자로 발견되었던 한 시체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품속에서 너덜거려 곧 가루가 되기 일보직전의 서찰을 꺼냈다.
한자를 잘 모르기에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효성진은 나를 진법에 가둔 뒤, 도술로 새를 부려 모두 세 통의 편지를 보냈다.
첫 번째 보낸 서찰은 내용이 길었고, 중간 것은 간결했으며, 마지막 것은 비명처럼 짧았다.
‘함부로 이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읽어달라고 할 수는 없어.’
글자를 읽으면 약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단서를 잡을 지도 모른다.
다만 효성진이 나에게 알린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그 전에 글자를 먼저 배워야 했다.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끝.

Posted by 미야

2021/11/15 13:26 2021/11/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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