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생업이 바쁩니다.


피는 굳어 검게 변한다. 그래서인지 형체를 드러낸 검은 뱀의 어둠에선 쇳가루 섞인 비린내가 진하게 났다.

『드디어 나오셨군.』
『젠장, 생각 외로 크잖아!』
전설에 등장한 괴수 오로치는 이렇게 묘사된다.
「머리는 여덟이고 눈은 빨갛다. 커다란 등에는 나무와 이끼가 자란다. 배는 피로 물들어 붉으며, 여덟 봉우리에 몸을 걸쳐있을 정도로 그 몸집이 매우 거대하다. 성격이 흉악하여 이즈모노쿠니의 고시자토 지역으로 일 년에 한 번씩 내려와 고기가 부드러운 젊은 여인을 먹었다. 이에 딸을 연달아 잃은 노부부가 이를 한탄했고, 우연히 이 모습을 본 스사노오노 미토코가 공양물로 희생될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약조하고 괴물을 죽이러 갔다.」

단순히 과장을 섞어 지어진 영웅호걸 이야기인지, 아니면 괴물이 실재했는지 알 수 없다. 닭이 먼저인지, 아님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
과거 일본 땅에 악어가 살았는지는 그렇다 치고, 일반인들은 전설 속 괴물이 식인악어 비슷했을 거라 추측한다. 가죽이 매우 두꺼운 악어를 잡아다 배를 갈랐더니 잡아먹힌 사람이 나왔다고 말이다.
하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주술사들은 오로치가 단순히 상상력의 산물일 거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인간의 지식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존재가 여전히 많았다.

떨어지는 부산물을 피하며 머리를 감싼 게토 스구루는 답지 않게 평정심을 잃었다.
중학생들을 구조하기 위해 건물 내부에 풀어놓았던 개구리 주령들 전부가 장막의 완성과 동시에 일시에 훼파된 건 둘째다.
몸통이 문에 낄 정도의 거대한 뱀이 머리를 세워 천장을 부셨다.
여덟 봉우리에 걸쳐있었다는 오로치와 비교하자면 새끼 수준이었어도 사진으로 보았던 기네스북에 등재된 진짜 뱀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게 컸다.
움직임도 빨랐다. 주력을 쏘아 날렸을 적에 이미 옆으로 비켜나 있었다. 비늘도 제법 단단해서 이이지마 하나에가 5kg은 족히 되어 보이는 우승 트로피를 집어 들고 세게 집어던졌어도 작은 생채기 하나 남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그걸 운동부 우승 트로피로 잡을 수 있겠느냐고 – 중학생의 목덜미를 잡고 뒤쪽으로 던졌다.

『조심해!』
고죠 사토루가 경고를 날린 것과 동시에 뱀이 몸을 휘게 만들며 바닥을 찼다.
발 달린 공룡이 몸무게를 실어 한바탕 발을 구른 것 같았다.
건물 전체가 울리는 묵직한 진동음과 같이하여 교장실 바닥이 푹 꺼졌다.
세 명 중 고죠 사토루는 아무렇지도 않게 균형을 잡았지만 게토 스구루는 한쪽 무릎이 꺾였고, 이이지마 하나에는 벌렁 넘어져 볼썽사나운 포즈가 되었다.
더하여 뱀이 몸통 구르기를 재차 시도하자 자리한 교장실 바닥에 큰 구멍이 뚫렸다.
동시에 마대자루에 퍼 담아지는 것처럼 온갖 잡동사니들이 구멍 아래로 그대로 쓸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굴러가던 이이지마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며 팔을 뻗었다.
그래봤자 손에 닿은 건 하등 쓸모가 없는, 방금 전 집어던졌던 우승 트로피였다.
축, 1999년 센다이시 중등부 야구 우승.
이딴 거 필요 없다며 악을 쓰던 이이지마가 구멍 속으로 모습을 감췄고, 이루고자 한 목표는 그게 전부였다며 뱀이 움직임을 딱 멈췄다. HP도 바닥이 났는지 주먹질 한방에 그대로 바스러졌다.

『제기랄!』
허겁지겁 상체를 기울여 구멍 아래를 내려다보자 반짝반짝 광이 나는 우승 트로피가 보였다.
같이 떨어진 중학생은 무언가로부터 끌려가기라도 했는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다.
대략의 깊이를 가늠한 뒤에 구멍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내려오자 잔예를 추적할 필요도 없이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이 보였다. 출혈량은 많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피부가 베인 정도일 거다. 그러니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냄새를 잘 맡는 종류로 골라 저급 주령을 꺼내 옅은 피 냄새를 따라가도록 명령했다.
『어서.』
무슨 영문인지 복속되어 자아가 없을 주령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명령을 거부했다.
『따라가!』
평소보다 몇 곱절 강하게 말하자 그제야 쿵쾅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쓸 만한 것들을 미리 꺼내놔, 스구루. 멀리 가진 않았어.』
빛 투과도가 낮은 시커먼 선글라스 너머로 주변을 관찰하던 고죠 사토루가 답지 않은 참견을 해왔다.
주력을 낭비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놈도 아니고 그러라는 말을 꺼낸 사람이 고죠 사토루다.
무시해서 좋을 것 없다 판단하고 일절 말을 삼간 채 전투력이 높은 걸로 주령 셋을 꺼냈다.
그 중 하나는 미와(新酒) 미미미, 이름만 보면 진한 술 냄새 풍기고 있을 이이지마를 찾는데 찰떡궁합이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미와 미미미는 고독이라는 이름의 금지된 주술로 만들어진 주령이다. 커다란 독 안에 천 마리의 지네를 넣어 서로를 잡아먹게 만든 뒤, 딱 한 마리가 살아남았을 적에 이를 항아리에서 꺼내 저주로 만들었다. 제대로 길러 식신으로 부리고자 했던 저주사마저 복속을 포기하고 달아났을 정도로 강하고 난폭했다.
게토 스구루가 그렇게 열두 개의 다리로 엎드려 기어가는 미와 미미미 뒤쪽으로 위치를 잡는 걸 보고 나서야 고죠 사토루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지하통로 안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좁았던 통로는 앞으로 향할수록 나팔관인양 서서히 넓어졌다. 바닥은 더 이상 콘크리트가 아니고 흙이었다.
『...!!』
악의, 또는 살의라고 할 만한 기운이 게토 스구루의 목 부위를 스쳤다. 재빠르게 어깨를 뒤틀지 않았더라면 좋은 꼴은 못 봤을지도 모르겠다. 비켜난 바람이 흙벽을 때렸고, 먼지가 비산했다.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고죠 사토루와 반대 방향으로 뛰면서 미리 꺼내둔 주령을 움직여 방어에 적합한 역삼각형 진형을 짰다. 주령술사이면서도 체술에 강해 근접전에 익숙했지만 신중하게 굴어 나쁠 것은 없다. 무하한의 술식 탓에 두들겨 맞을 일이 없는 고죠 사토루와는 사정이 달랐다. 강 스파이크가 날아오길 기다리는 배구 선수처럼 자세를 낮추고 주령 세 마리를 앞으로 전진시켰다.

압축된 공기가 회전하며 빠르게 내려앉았다.
앞장선 미와 미미미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거대한 부처님 손바닥으로 대형트럭 사이즈의 바퀴벌레를 후려친 모습이 연출되었다. 머리 윗부분부터 갈가리 찢긴 주령은 뭐 대단한 거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채 철퍽 소리를 내고 납작하게 주저앉았다.
「뭐야. 단 한 방에 종잇장이냐!」
기겁을 하고 옆으로 미끄러지듯 굴렀다. 같은 공격이 본인의 머리 위에서 곧장 떨어지고 있음이다.
제대로 맞으면 300톤 중량의 트레이너에 깔린 모양새가 되어버릴 거다. 그렇게 되고나면 주걱으로 살점 찌꺼기를 떼어내는 일도 곤란하게 된다.

검지를 맞닿게 만들어 간단한 인을 맺는 것으로 인력의 상쇄 효과를 불러온 고죠 사토루는 상대적으로 덜 분주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고먹을 입장은 결코 아니었다. 일단 벽과 천장이 무너지는 건 사절이다. 출구는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더하여 본인은 아무 영향을 안 받아도 제대로 지랄하고 싸우면 게토 스구루는 압사당할 거다.
「최대 출력으로 싸우기에는 최악의 장소군.」
아무렇게나 마구 날리는 방식이 아니라 총알처럼 작게 압축한 주력을 정밀하게 운용해야 한다.
손짓으로 권총 모양새를 만든 다음, 이이지마 하나에의 머리채를 움켜쥔 인영을 향해 주력을 쏘았다.
빵야.
멍청한 중학생이 실수로 맞는 일이 없도록,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세밀하게 컨트롤했다.

25층 고층에서 그랜드 피아노가 곤두박질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쳇, 빗맞았어.」
고죠 사토루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소리만 요란했을 뿐으로, 흰자위가 사라진 검은 눈을 가진 자는 팔을 들어 몸을 가린 것만으로 피해를 거의 제로로 돌려놓았다.
「좀 전의 교장실에 나타난 큰 뱀은 미끼고 이쪽이 본체인가.」
기분 나쁜 기척을 가진 자였다. 최초의 감상은 하찮은 생쥐 수백만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있는 것 같았다는 거다. 정통으로 시선이 마주쳤을 적에 수백만의 쥐떼로부터 주목받는 기분이 들어 뼛속까지 불편해졌다.
미키마우스도 너무 많으면 괴기스러워지는 법이다.
「쥐가 아니라 뱀이지만.」
탄창이 거덜 날 일은 없기에 재차 조준하여 연거푸 주력을 쏘아 보냈다.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목소리를 내던 그것이 성을 내었다.
『어르신들에게 건방지게 구는 게 원래 체질이라서. 너무 잘나면 고개가 빳빳해지는 법이지.』
총알처럼 날려 보낸 주력은 일종의 페이크였다. 적의 시선을 훌륭하게 교란시킨 뒤, 공간을 접어 순식간에 앞으로 이동하면서 주력을 가득 채운 손바닥을 그것의 면상에 지긋이 대었다.
지금이다. 무천도사의 에네르기 파를 상상하며 힘을 쏘아날렸다.

《■■□ ■■▲○◇■■!!》
아마도 욕설이지 않을까. 그것이 얼굴을 감싸 안고 인간의 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생각 외로 튼튼했다.
머리를 통째로 날려버릴 작정이었는데 금이 가고 깨졌을지언정 여전히 목 위에 붙어 있었다.


※ 1학년 고죠 사토루는 생득술식만 사용 가능하다는 설정으로 갑니다. 토우지에게 모가지 썰어지기 전이니까요.

Posted by 미야

2021/05/13 11:07 2021/05/1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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