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며칠 동안 잿빛의 나날이 계속되어 스가와라 미즈키는 우울해졌다.
『아아, 하나에 선배, 그리운 하나에 선배. 어째서 당신의 이름은 하나에인 건가요.』
창문 밖으로 상체를 내민 채 로미오와 줄리엣 대사를 흉내 냈다.
하지만 연기력이 형편없다 훈수를 두는 반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봄바람에 맛이 갔구나 비웃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바람이 아직 쌀쌀하니까 빨리 창문 닫으라고 타박하지도 않았다. 그냥 없는 사람 취급이었다.
부아가 치솟은 마즈키는 애들 눈깔이라도 삐게 만들겠다며 교복 치마를 배꼽 위까지 들어올렸다.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다들 본체만체 했다. 반장 하시모토 리코가 침 삼키는 소리를 낸 동급생의 배를 주먹으로 때렸을 뿐이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로 학교에 나오지 않은지 이틀.
그동안 미즈키가 한 말이라고는 매점에서「딸기우유랑 야끼소바 빵 주세요.」라고 한 게 전부다.
이 상태로 2학년이 되면 혀가 굳어 말 하는 법을 까먹을지도 모른다.
위기감을 느끼고 머리를 쥐어뜯었으나 당장 좋은 묘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반 아이들은 미즈키를 더욱 완벽한 투명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정해진 순번에 따라 주번활동을 하는 것까지도 막았다. 칠판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대신 고승처럼 묵언수행이나 하라는 거였다.

『잘 됐다. 손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도와주지 않겠니?』
그래서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가 말을 걸어왔을 적에 미즈키는 깡충깡충 뛰어갔다. 시큰거리고 아프던 발목 통증이 사라져 뛰어도 괜찮았다.
『무슨 일인데요? 뭘 도와드릴까요?』
『새로 주문한 석고상을 미술실까지 옮겨야 하거든. 내가 아레스를 들 테니 너는 아그리파를 옮겨다오.』
살짝 머뭇거렸다. 소묘화 수업 교과재로 도착한 석고상 중 어떻게 생긴 게 아그리파인지 미즈키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악티움 해전 등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이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고, 외국인의 얼굴을 한 석고상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1학년은 수업시간에 수채화 물감으로 정물화를 그리는 중이다. 정물화에 사용한 대상도 원뿔모형에 정육면체 모형이 다였다.

『그쪽의 작은 걸 들어주면 된단다.』
보다 커다란 조각상을 들고 다나베 고우지가 앞장섰다.
남은 걸 들쳐 메고 미즈키가 그 뒤를 따라갔다.

미술실은 어두웠다. 낮에도 햇빛을 가리는 용도의 커튼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 역광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데 방해가 된다는 게 까닭이었다.
방과 후 활동을 위해 펼쳐둔 이젤에 스케치북이 아직 치워지지 않고 올라가 있었다. 훔쳐보니 일회용 카메라로 찍은 풍경 사진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중이었... 미즈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옮겨 그린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사진은 녹색인데 그림은 흑백이었다. 커다란 나무들이 새카맣게 칠이 되어 있어서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뻗고 있음에도 이미 모두 말라 죽어버렸다는 느낌이었다. 먹을 사용하여 그리는 동양화도 아닌데 왜 굳이 흑백으로 묘사한 건지 미즈키의 입장에선 이해가 안 갔다.

『고맙다. 이쪽으로 내려주겠니?』
『네.』
스케치북에서 시선을 떼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석고상을 적당한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림에 흥미가 있니?』
남이 그린 그림을 오래 쳐다보고 있으니까 미술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라고 오해를 받았다.
미즈키는 헤실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손재주가 없어서요.』
다나베 고우지가 그럼 못 쓴다고 일갈했다.
『재능이 없으니 좋아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단다. 마음이 중요한 거지 재주가 중요한 건 아니거든.』
『그런데 선생님. 저 진짜 똥손이라서요. 어느 정도냐 하면 짝꿍 얼굴 그려주기 했을 적에 왜 너 혼자만 초상화가 아니라 추상화를 그리고 있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정도라서. 남의 얼굴을 가지고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항의도 들었고. 지금도 정물화 그리기 과제에 애 먹는 중이고... 이상하게 다들 사과 그림자를 보라색으로 칠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림자는 보라색이 아니잖아요?』

두서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와중에 방이 어둡다는 느낌에 전등 스위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쩐지 일몰 때가 다가왔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간상 해가 지고 있을 리는 없으니 어쩌면 날씨가 흐려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산을 미리 챙겨 등교하지 않았기에 난처했다. 편의점에서 일회용 우산을 구입해도 되었지만 미즈키의 어머니는 아메바처럼 무성생식 하는 일회용 우산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집구석이 좁은 탓이다.

『그러게. 보라색이라니. 그럼 미즈키는 그림자를 무슨 색으로 칠했니?』
선생님이 친근함을 드러내며 물어왔다.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러 되레 경계심이 들었다.
명찰을 보고 알았다고 해도 이름인 미즈키가 아니고 성인 스가와라로 부르는 게 자연스럽다.
이때 퍼뜩 든 생각이 일부 남자 교사들이 여학생을 꾀어내어 은밀한 터치를 시도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거였다. 격려의 의미로 어깨를 툭툭 치는 척하더니 재빨리 손을 내려 브래지어 끈을 튕겼다, 식의 이야기는 어느 학교에서나 괴담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다른 걸 염려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의 동공이 뱀의 그것처럼 세로로 길죽해졌다.

『왜 그러니?』
이제 그는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로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석고상을 옮겨 달라 부탁을 했을 적부터 다나베 고우지였는지 확신도 없다. 그림자가... 복도에 드리워진 그건 사람 형태였던가? 자연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이곳은 학교다. 게다가 아직 낮이다.
『미즈키는 그림자를 어떤 색으로 칠하면 좋을지 아직 고르지 못했니?』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나긋해졌다.
미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검게 칠하면 되는데. 검고, 검게 칠하려무나. 어둠은 고쿠로쿠치나와님처럼 검게 칠하면 된단다.』
『저기요, 선생님.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요.』
『참배를 하러 갔었잖니. 길을 따라 올라갔지? 선생님은 길을 올라가는 네 모습을 봤단다.』
『참배가 아니라 청소하러 갔는데요.』
온기를 잃은 차가운 손이 미즈키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미즈키는 핸드크림 한통을 한꺼번에 전부 바른 듯한 촉감에 질겁했다.
『그래. 거기서 무엇을 보았니.』
『뭘 보긴요. 별 거 없었는데. 정 궁금하면 직접 올라가서 보면 되잖아요.』
『비밀이야? 말해주지 않을 거야? 진짜 그러기야?』
『아니, 비밀이고 자시고 간에! 놔주시겠어요?』

체육관 뒷문을 열고 언덕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그 끝에 검은색으로 칠을 한 온도측정대가 있다.
어린이 키 높이의 관측대다.
양문을 잡아 열면 어찌된 영문인지 온도계는 보이지 않고 대신 빨간색 필통이 있다.

『필통이군.』
고죠 사토루는 한방 거나하게 맞았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런 기척이 없어 헛수고를 했노라 이미 짐작은 했다만, 안이 텅 비어있는 것과 생뚱맞은 학용품이 놓여 있는 건 느낌이 전혀 달랐다.
세상에, 도대체 어떤 멍청이가 여기다 필통을 넣어뒀어?! 장난이라고 치기엔 악질이잖아!

『과거에 뱀 신을 모셨던 사당이라고 하지 않았어? 고죠.』
『그랬지.』
『일단 사당처럼 생기지도 않았다는 건 둘째 치고... 언제부터 필통이 뱀 신이 되었는데?』
『묻지 마.』
『자율안전 인증. 이 제품은 품질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읽지 마.』
『와, 추억 돋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이것과 비슷한 걸 썼었어. 색은 빨간색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학교 부지로 바뀐 탓에 애들이 짓궂은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무리도 아니다. 지장보살의 머리 위로 찹쌀떡이나 귤을 올려놓는 게 애들이니까... 슬그머니 흘러나온 (웃음을 참느라 나온) 눈물을 닦은 게토 스구루는 필통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았다. 주인도 그 존재를 까마득히 잊어 찾으러 올 일은 없겠지만, 혹시 또 아나.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 아저씨가 「내가 말이지~ 어렸을 때 좀 놀아서 말이야~」후렴구를 넣으면서 추억을 뒤쫓아 이곳 언덕길을 터벅터벅 올라올지도 모른다.

『빨간색인데?』
『빨간색 티셔츠를 입는 남자들도 많아. 고죠, 너도 빨간색 운동화 신잖아.』
『하지만 난 빨간색 필통은 써본 적이 없어.』
『넌 아예 학교에 가본 적이 없잖아, 인석아. 너, 신발주머니가 뭔지는 알아?』
『스구루가 날 무시하네. 나도 학교에 가본 적 있거든? 여러 번 갔었거든? 주령이 잘 나오는 곳이라서 퇴치하러 자주 갔었거든? 신발주머니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보다, 얏호? 오랜만이야.』
거기까지 말한 고죠 사토루는 무서운 기세로 언덕을 올라오고 있는 여자애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Posted by 미야

2021/03/17 10:10 2021/03/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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