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어어~기부터, 저어어어어~기까지.
사실 어느 정도 규모인지 명확치 않다. 그냥 터무니없게 넓다고 보면 되었다. 까마득히 떨어진 강으로부터 너무 멀어 희게 보이는 산까지가 고쿠로쿠치나와님의 영역이라고 했다.
민속학자이자 괴담소설 작가인 이이지마 리쓰가 먼 친척뻘의 손녀 같은 하나에에게 지명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설명을 해주었는데 발음 곤란한 옛날 이름이다보니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아무튼 지도를 펼쳐보면 센다이 중심부가 아닌, 야마가타 현과 더 가까웠다.
「신사 관계자라면 내막을 더 잘 알 것 같구나. 하지만 말 그대로 내부정보라서 우리 같은 외부인에게 결코 알려주려 하지 않지.」
「일본에는 800만이나 되는 신이 계신다면서 뭔 특급 비밀 취급이래요? 할아버지.」
「특급이니까.」
고쿠로쿠치나와님은 천 년은 족히 묵은 토지 신으로 예로부터 치노후부사야 씨 일족의 숭배를 받았다.
강력한 토지 신을 등에 업고 일족도 몇 백 년에 걸쳐 엄청난 부를 누렸던 모양이다. 번성기에는 일족이 궁궐 같은 집에 살았고, 면장이 굽신거리는 등, 공권력도 감히 손댈 수 없는 위엄이 넘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 위풍당당도 권력의 뒷받침이 없음 맛있는 먹잇감으로 전락할 뿐.
군불에 타들어가듯 서서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다 군부로부터 거액의 사기를 당한 1920년대 후반부터는 지역 유지 타이틀도 빼앗기고 기왓장이 내려앉았다고 한다.
이후 온천개발이나 관광산업 등에 투자하여 나름 재기에 분투하였으나 주춧돌 하나 남기지 못하고 쫄딱 망한 게 쇼와 18년, 그러니까 서기 1943년 9월 14일이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 함락 일처럼 멸문 날짜가 명확하게 남은 건 그 날짜에 당주를 포함하여 무려 여덟 명에 이르는 집안사람이 한꺼번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당주는 피를 토하고 쓰러져 의식불명인 채로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아내는 야산에서 목을 맨 상태로 나중에 발견되었다. 장남은 둔기에 맞아 머리가 깨졌고, 장녀와 차남은 각자 자기들 방에서 목이 부러져 사망했다. 장녀는 거의 목이 잘린 상태여서 거죽 하나만으로 목이 몸통에 붙어 있었다. 유모는 우물에 처박혔다. 밖에서 낳아 데려왔다던 양녀는 유모의 시체 아래쪽에 구겨져 있었는데 유모가 다리부터 떨어진 것과 다르게 양녀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물구나무 선 자세였다. 결혼을 하지 않아 같이 한 집에서 거주하던 당주의 여동생도 9월 14일 사망... 특이하게 이쪽은 오래된 지병 악화로 인한 병사다.
그야말로 긴다이치 탐정의 사건수첩에 등장할 법한 미스테리 사건의 향연이라 세간이 시끄러웠을 법한데 보도통제가 있던 시대인 만큼 신문이나 일간지에 일절 내용이 실리지 않고 묻혔다.
수사도 미진해서 이 끔찍한 학살의 주범은 외부인이 아니고 피 토하고 죽은 당주인 걸로 잠정 결론 났다. 일가족 살해 후 음독자살,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 사업 실패에 대한 감정적 동요, 대충 그런 모양새로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엔 지나치게 피 냄새가 났다.
「누가 범인이었던 거에요?」
「긴다이치 탐정이라면 사망 순서부터 조사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 뒤에, 사실과 다른 부분을 하나하나 밝히고, 동기가 무엇인지, 사건을 촉발시킨 원인을 유추하고 범인을 상상해보겠지.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탐정이 아니라서.」
「그래도 뭔가 알고 계시잖아요.」
「짐작 가는 건 있지.」
「그게 뭔데요?」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거... 반드시 기억해두렴, 하나에. 삿된 것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거래를 제시하면 결코 응해선 안 되는 거란다. 이 할아버지가 대학생이었을 적에 팥빵을 다섯 개 주면 낙제를 면하게 해주겠다던 툇마루 요괴가 있었어. 어땠을 거 같니.」
「툇마루 요괴가 대학교 리포트도 쓸 줄 안데요? 어우야, 능력 좋은데?」
「그럴 리가 있겠니. 대학 강사를 자동차로 크게 다치게 해서 그 학기 강좌를 통째로 날려버리더구나. 삿된 것과의 거래라는 건 그런 거야. 인간이 생각하는 범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어 버리지.」
언덕길의 끝에서 미즈키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 제법 높아!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여요!』
그렇게 스러져 뒤안길로 사라진 치노후부사야 일족의 본가가 있던 자리가 현 카제야마 중학교다.
이이지마 하나에와 스가와라 미즈키가 빗자루니 걸레니 하는 청소도구를 들고 걸어 올라온 산도 원래 치노후부사야 일족의 소유지였다.
소유자가 몇 번 바뀌다가 지금은 시에 매입된 공유지이고, 산의 일부는 잘려져 나와 1979년 카제야마 중학교 부지가 되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의 입구가 학교 체육관 뒷길인 건 그런 까닭에서다.
『선배. 올라왔던 길과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상점가로 빠르게 갈 수 있겠는데요?』
『그건 포기하는 게 좋아, 스가와라. 옻나무 군락을 뛰어넘어야 하거든.』
가파른 외길에 짜증을 느낀 이이지마 하나에가 보다 편한 길을 찾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뒤져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결말은 항히스타민제 연고 처방이었다.
『스가와라는 옻나무가 어떻게 생긴지 알아?』
『전혀요. 그래도 옻이 오르면 밤나무 잎을 끓인 물로 목욕을 하면 좋다는 건 알아요.』
『오. 그래?』
어머니가 가르쳐주셨어요, 라며 스가와라 미즈키가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선배, 청소를 해야 한다는 사당은 어디 있어요?』
사당은 제례를 지내는 곳이다. 따라서 법으로 정해진 크기는 없을지 몰라도 예식에 필요한 물건과 성인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즈키가 보통의 가정집 크기를 가진 일본식 목조 건축물을 상상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린 건 상식에 의한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겁니다.』
『거짓말?!』
『진짭니다.』
하나에가 어색한 동작으로 뺨을 긁었다. 이해합니다. 나도 처음엔 님과 같은 반응이었어요.
천 년이나 묵었다던, 그것도 속된 표현으로 엄청 강려크 했다는 신을 모신 사당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백엽상 크기라는 건 납득이 어렵다.
열어보면 온도계와 습도계가 들어가 있을 것만 같다. 흰색으로 칠이 되어 있으면 누가 뭐래도 저것은 백엽상이다. 크기와 모양새까지 흡사한데 오로지 색만 검정색이다.
여기까지 잘 따라 와줬던 스가와라 미즈키가 지금까지 날 속인 거냐 표정을 짓고 이이지마를 휙 돌아보았다.
하지만 맹세코 속인 건 없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1학년이었을 적에도 그것은 백엽상처럼 생겨먹었고, 주물 쇠붙이 고리가 달린 양문을 잡아 열면 그 안에는...
『필~통?!!』
주인을 잃어버린 헝겊으로 만든 빨간색 필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거 농담이죠?!』
『질 나쁜 장난처럼 보인다는 건 나도 인정해.』
원래의 신체주물(神體呪物)이 무엇이었는지 하나에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부터 지퍼 달린 평범한 빨간색 필통으로 대체되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물건의 낡기로 짐작해보면 몇 년 내의 최근이다.
콧쿠리님으로 섬김을 받았던 과거 학생이 엿 먹어봐라 이러고 장난을 친 건 아닐까.
필통의 색이 빨간색이니 분명 여학생의 짓일 거다. 남자도 정열의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주장하면 반박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이곳은 이미 오래 전부터 텅 비었다는 점이다.
짐짓 속눈꺼풀을 열고 사당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색이 사라지고, 음영이 반전되어 무슨 현상한 필름처럼 시야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속눈꺼풀을 열었다고 이런 식으로 사물이 뒤틀려 보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속눈꺼풀은 일곱 살이 되면 대부분 저절로 닫힌다. 극소수만이 나이를 먹은 나중에까지 속눈꺼풀을 열어 사물을 볼 수 있었는데 친척 할아버지 이이지마 리쓰의 말대로라면 능력으로 음화 이미지로 바꾸어 보는 일은 하나에가 유일했다.
「요령이 붙기 전까지는 어색해서 엄청 고생했지.」
검정색의 사당은 구름보다 희게 바뀌었다.
그뿐이었다. 요력이라던가 신력이라던가 하는 종류는 터럭만치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분 좋을 정도로 깔끔했다. It's empty.
『얏호! 청소하자~!! 다 끝나면 먹고 싶은 거 사줄게, 후배님. 라멘 먹을까? 아님 아이스크림?』
빗자루를 움켜쥔 미즈키가 태세를 바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오로보로당의 꿀빵!』
집에서 돼지라고 불리는 건 다 까닭이 있는 거였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