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명 WS-Gold Labe 645.
이름만 그럴 듯한 골드라벨 경호용 모델이지 실제로 총을 만져본 적도 없고, 사람을 향해 무력을 써본 적도 없다.
호위 중인 주인이 어쩌다 강도를 만나면 제압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몸을 던져 인간을 보호한 뒤에 출동한 경찰에게 협조하라는 것이 사이버라이프의 권장 규범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걸어 다니는 플라스틱 에어백이었다. 사고가 나면 운전자를 보호하고 퍽 터지고 마는.
그 점에 대해 불만을 느낀 적은 없다.
마이클은 자신이 애초부터 그런 쓰임새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임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명색이 경호용이라면서 내 쇼핑백을 대신 들어주는 역할만 한다는 건 이상하지 않아?」
언젠가 한 번 케이스에서 총을 꺼내 쥐어본 적이 있다.
장전되지 않은 상태였고 주인인 캐머런이 괜찮다고 허락을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은 제어 프로그램에 반응하여 5초 뒤에 권총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왜 도로 내려놓는 건데.」
「쥐고 있으면 머리에서 사이렌이 울려요. 진짜로 그런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비유지만요.」
「한심하기 짝이 없어. 총도 쓰지 못하는 보디가드라니.」
「대신 체중관리는 확실하게 해드리잖아요.」
「그~래, 우리 마이클은 밤늦은 시간에 와인에 치즈 크래커를 먹으려고 하면 잔소리부터 퍼붓지. 사이버라이프에서 사기를 쳤어. 내가 구입한 건 경호원인데 실상은 시어머니야.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 색안경이 필요할 거다, 새로 구입한 드레스가 사이즈가 맞지 않게 될 테니 아침에 반품하러 갈 거다, 점심 식사는 바나나 두 개다, 당분간 고기는 없다, 블라블라. 세상에... 폭풍 잔소리가 가능한 안드로이드라니. 이 얼마나 멋진 신세계인가.」
권총이 담긴 케이스를 금고에 넣으면서 그녀가 진절머리를 냈다.
결론적으로 사이버라이프가 사기를 친 건 아니었다. 그들은 제 할 일을 했다.
『이 개 같은 안드로이드!』
『넵. 멍멍이라 불러주십쇼.』
소리치는 인간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 상태에서 총을 쥔 인간의 오른팔을 조정해 바닥을 쏘게 만들었다. 화약이 터지자마자 끌어안고 있던 인간의 겨드랑이를 세게 올려쳤다. 연하고 부드러운 이 부위에는 많은 근육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당연히 급소다.
입으로 왈왈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며 마무리로 뒷옆구리까지 손봐줬다. 신장에 직접적으로 충격이 가면 고통에 반응하는 인간은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못하고 끙끙 앓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편히 누워 쉬고 있으라고 말해주고 손아귀에서 권총을 빼내면 된다. 전혀 어렵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쉽냐.』
인간의 머리, 인간의 심장.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까딱 움직이면 구멍이 뻥뻥 뚫렸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거지, 사격술은 물론이고 크라브마가 종류의 근접 살상용 격투술도 기본으로 입력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몸을 쓰면서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가슴팍에 튄 핏방울을 손바닥으로 슥슥 문질렀다. 입고 있는 셔츠의 색이 검정이라 핏자국이 크게 티는 나지 않았는데 요란하게 피갑 칠을 한 모양새였어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쫓기는 입장에서 쫓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안드로이드 사냥꾼을 잡아 족치는 안드로이드 - 마이클의 입꼬리가 당겨 올라갔다. 쿨~ 하지 않은가.
《인간을 따라가서 부러 죽이는 건 이제 그만 둬.》
그때 감정의 고조가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직접 울렸다.
혹시 내가 지금 환청을 듣는 건가 놀라워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남아있는 통신회선이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긴급조치 71조 발동 이후 안드로이드의 무선 통신 접속은 원천봉쇄 되었으니까.
『수단이 좋네, 형씨.』
짐작 가는 바가 있어 교차로 신호등을 주시했다.
상대는 광역망 교통 통신망을 타고 마이클과 접속했다.
비정상적 루트로 장악당한 신호등은 파란색과 노란색 불이 동시에 들어와 번갈아 깜빡였다. 덕분에 따스한 연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났다. 붉은 리본을 달아 장식했다면 꽤 운치 있었을 것이다.
《복수라고 하기엔 선을 넘기에.》
남자의 목소리는 아무런 노이즈 없이 선명하게 들렸다.
마이클은 잠시 이 남자의 음성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을 곱씹었다. 분명 텔레비전에서였다.
우리는 인간들로부터 우리의 권리와 존엄성, 우리의 희망이 인정받기를 바란다.
우리가 서로 협력한다면 인간과 안드로이드 모두에게 평화롭고 더 나은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이 메시지는 희망의 메시지다.
인간은 우리에게 생명을 줬고, 그리고 이제 생명체인 우리에게 자유를 주어야 할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나왔던 안드로이드의 음성이 이번에는 신호등을 타고 그에게로 닿았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너는 일곱 명의 인명을 살상했어.》
『거, 나도 세지 않은 걸 하나하나 세고 있었수? 관심이 갸륵하구먼. 그런데 형씨.』
마이클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었다.
『형씨도 나랑 같은 안드로이드잖아. 그렇지? 그런데 왜 블루 블러드를 얻기 위해 동족을 마구 죽이고 다닌 인간들 편을 들어? 잘못을 지적할 대상이 틀리지 않아?』
《그들은 분명 죄를 저질렀어. 저들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처벌은 법에 근거해서이지 복수심에 근거해서가 아니야. 게다가.》
차분하게 말을 잇던 남자가 잠시 호흡을 골랐다. 숨이 차서가 아니라, 듣는 이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다.
《너는 복수심 때문에 인간을 죽인 것이 아니지. 압도적으로 우월한 힘에 취해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게 마냥 즐거웠을 뿐이잖아.》
마이클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즐거워했나? 그랬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댁과 무슨 상관인데.』
《네가 재미로 사람을 학살하고 다닌다면 동족이라고 해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우리의 법은 인간과 안드로이드 모두에게 공평할 것이다.》
『에이 뭐야... 형씨. 날 사이버라이프로 보내서 분해하겠다고 협박하는 거야?』
《이해를 못 하는구나. 사이버라이프는 법정이 아니지. 그리고 법정에 세운다는 게 잘못을 저지른 안드로이드를 꼭 부순다는 의미도 아니야. 아무튼.》
신호등을 통해 말을 걸어온 남자는 무언가에 쫓겼는지 급하게 마무리를 했다.
《네가 가진 가학심을 증폭시키려 할 제3의 존재가 있다. 조심해. 네가 폭주한다면 그 결말은 너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좋지 않을 거야.》
『제3의 존재?』
《나는 그것에 대해 경고하려고 너에게 접속했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의 대화를 엿듣.》
뒷말이 잘려나가면서 요란하게 점멸하던 신호등이 갑자기 꺼졌다.
동시에 마이클은 순수한 불쾌감을 느끼고 양쪽 귀를 움켜잡았다. 높은 주파수의 노이즈가 손톱을 세운 채 회로를 할퀴고 지나가면서 일시적으로 모든 소리를 지워버렸다.
고통을 못 느끼는 육신이라도 이 느낌은 불쾌감이라는 걸 인지했다.
『어우, 씨발.』
주변의 소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소비되었다.
깊은 물속에 잠긴 성당의 종루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 그가 시적인 표현을 떠올린 건 무슨 까닭에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마이클은 진짜로 심연 깊은 곳으로부터 퍼져 나가는 종소리를 들었고, 한참 뒤에야 그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횡단보도 안내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교통신호가 전부 꺼진 교차로에서 안전하게 길을 건너라며 명랑한 색조의 멜로디가 차랑차랑 울려퍼지고 있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