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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혈액은 1kg당 80ml 정도라고 한다. 일반상식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50kg 체중의 사람은 몸속에 4L의 혈액을 가지고 있다.
안드로이드의 몸에도 혈액이 흐른다. 통칭 블루 블러드, 티리움이라고 하는 것으로 사이버라이프 업체의 창시자 일리이저 캄스키가 이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다.
안드로이드 구성요소의 필수품으로 하나의 개체 당 2L가 약간 넘는 블루 블러드를 소비한다.
영양과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가진 인간의 혈액과는 쓰임새가 달라 대량의 티리움 손실에도 그 즉시 작동이 멈추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회로가 타버린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는 파워 다운이 되어버릴 테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시간이 길다. 피부 구현이 엉망이 되고 행동이 굼뜨게 될지언정 인간처럼 숨이 꼴딱 넘어가지는 않았다.

「노이즈가 증가했어.」

주요 하드웨어의 복구율은 84%까지 올라갔다.
81% 이하로 내려갔을 적에는 걷거나 뜀에 있어 몸의 균형을 잡는 일이 어려웠다. 지금은 제법 빠른 속도로 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10분 이상 빠르게 달리거나 격렬한 움직임을 취했을 시에는 여전히 과부하를 경고하며 붉은색으로 메시지가 떴다. 그 메시지라는 게 사이버라이프 A/S 센터 연락처여서 어처구니없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이만큼 적절한 훈수가 또 없었다.

몇 푼 아끼겠다고 어설프게 셀프 수리를 시도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아시겠어요?

가로 방향으로 길게 베인 자국을 손으로 눌렀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미세하게 새어나오는 블루 블러드가 점점의 얼룩을 만들었다. 파란 빛깔의 액체는 잉크보다는 점성이 높았으며 독특한 냄새가 났다. 혹자는 그 냄새를 럼주에 약간의 식초, 대량의 바세린이 섞인 것 같다고 표현한다. 세 가지를 섞어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는 마이클은 이 비유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좋은 냄새가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했다. 인간의 피 냄새도 역겹기는 마찬가지였어도 공장에서 흘러나온 유독성 폐수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칼에 베이는 바람에 수복속도는 더 떨어졌다. 빠른 시일 내에 티리움을 보충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 첫 번째 징조로 노이즈가 심해졌다.
《마...이클. 크라이...슬, 러. 전, 철. 신...속하게 / 통... 통? 역으로 / 제... 압. 가능?》
문제는 전국의 사이버라이프 A/S센터가 이번 사태로 일제히 문을 닫았다는 거고, 블루 블러드는 일반 소매점 판매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티리움이 마약 레드 아이스의 주요 원료로 유통되면서 미국 정부는 신경질적이다 싶을 정도로 소비과정에 개입하여 이를 철저히 통제했다. 안드로이드 판매점이나 예비부품 취급업소에서 원료 상태로의 블루 블러드는 자취를 감췄다.
개발자인 일라이저 캄스키도 신종 마약 발명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던지 자신의 발명품에 「증발」이라는 신박한 카드를 더했다. 안드로이드 신체 밖으로 유출된 티리움은 신속히 증발한다. 따라서 마약 제조꾼이 다급한 마음에 안드로이드 신체에 커다랗게 구멍을 내봤자 채집할 수 있는 블루 블러드의 량은 종이를 침 발라 적신 수준을 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레드 아이스 딜러 네트워크는 오랜 시간 살아남았다.
구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못 구한다는 의미는 아니어서 이 신종 마약은 어느새 미국을 재패했다.

『그래, 어떻게든 구하고 본다 이거지.』
마이클의 손에는 찰랑거리는 액체가 담긴 용기가 쥐어져 있었다. 언뜻 보면 휴대용 물병같이 보였다. 겉면은 알루미늄이었고 뚜껑은 금색이었다. 황동으로 금색을 흉내 낸 게 아니라 진짜 금을 얇게 펴서 붙였다. 가볍게 흔들자 내용물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혹시 이걸 물병이라 착각해 입에 대는 인간이 있다면 그 즉시 병원 신세다. 빠르게 위세척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해질 수도 있다. 위세척을 하고 난 뒤에도 운이 나쁘면 실명한다.
『이만한 양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지랄했을지 생각하면 끔찍스럽군.』
거기다 병 안에 든 블러드 타입도 가지가지다.
한 모금 입에 담았을 적에 최소한 세 종류의 블러드 타입을 감지했다. 정확한 분석 센서가 있었다면 더 상세하게 나눠 구분해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L타입과 J타입, P타입이 섞인 건 확실했다.

역겨운 느낌에 티리움을 입 밖으로 도로 뱉을 뻔했다.
그래도 눈 딱 감고 삼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인의 명령을 이행하기 어렵게 된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너 자신을 구조해.

경찰관에게 억압당해 머리를 바닥에 박은 상태에서 캐머런이 악을 썼다.
머리를 들려고 하자 경관은 체중을 실은 무릎으로 그녀의 어깨를 찍었다.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공주님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폭력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거구의 경찰이 여자 위에 올라타서 숨도 못 쉬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캐머런은 싸웠다. 고함지르고, 울부짖고, 짐승처럼 끙끙거렸다.

명령이야. 어떻게 해서라도 너 자신을 구조해. 모든 제약과 규율 따윈 박살내버려.

노이즈가 다시 심해졌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이 말하는 이명이라는 것과 매우 닮은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소리가 지워졌다가 일시에 거슬리는 파도가 되어 그를 한 입에 삼켰다.
순간 청각센서를 머리통에서 뽑아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알겠다고 말해. 그러겠다고 말해. 마이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스터.』

칼을 들었다.
번쩍이는 날을 본 인간이 두려움을 내비쳤다.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던지 경동맥이 펄떡펄떡 뛰는 게 잘 보였다. 그래도 남자는 설마 안드로이드 주제에 인간인 날 찌르겠어, 실낱같은 약간의 희망을 가진 채 마이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한때 자신의 소유물이었던 흉기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남자가 꿀꺽 침을 삼켰다.

마이클은 웃었다.
정확하게는 웃는 표정을 지었다. 안드로이드가 짓는 웃음은 기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엄마가 안 가르쳐주든? 남의 배를 쑤시면 네 배때기도 쑤셔지는 거야.』
『잠깐! 나는 인간, 인간이야. 찌르면... 안! 끄아악!』
상냥하게 웃으며 피하지방 아래로 쓰윽 밀어 넣었다.
죽겠지?
죽을 것이다.
힘을 주자 딱딱한 부분이 닿았다. 마이클은 쳇 하고 혀를 찼다. 반드시 죽이기 위해 간을 노렸는데 칼끝이 갈비뼈에 닿았다. 남자 입장에서 보자면 운이 안 좋았다. 노림대로 되었으면 2분이면 죽을 수 있었는데 20분 이상 고통을 겪게 생겼다.
실수를 하여 정말 미안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마이클이 두 손바닥을 모아 합장했다.
찔린 사람 입장에선 명복을 빌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쨌든 그렇게 했다.

고통으로 헐떡거리던 사내가 마지막 힘을 짜내 구급차를 부르라고 명령했다.
이 마당에 부탁이 아닌 명령이라니, 마이클은 눈을 흘떴다.
『부, 부르라고! 구급차!』
『돌았냐. 내가 왜.』
『안 부르면 나, 나는.., 흐읍!』
『괜찮아. 어차피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어.』
마이클은 한 모금의 블루 블러드를 다시 입에 담았다.
파란 피에서 짙은 죽음의 맛이 났다.

Posted by 미야

2020/07/02 17:30 2020/07/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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