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공간에서의 육탄전에 임하면서 우리 셋은 저마다 굳게 입을 다문 채 거칠게 숨을 토했다.
언어로 의사표현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밀착이 된 상황이어서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서로를 쏘아보는 시선과 땀 냄새, 그리고 급격히 빨라지는 혈액의 순환 - 락연의 손가락은 깊숙이 베인 수준이 아니라 거의 잘려나갔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도 녀석은 칼날을 손에 쥔 채로 힘을 줘서 타평을 계단 위로 밀어 올리려 했다. 아무리 인간이 아니라지만 고통마저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힘겨루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락연은 자신의 가랑이를 최대한 좌우로 벌려, 눕다시피 한 내가 알까기 식으로 빠져나갈 공간을 만들려 했다.
「무리라고! 무리! 너무 좁아!」
어쨌든 그의 희망대로 어떻게든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고자 기를 썼다. 그래봤자 밟힌 형상이었다. 실제로 머리가 짓눌린 탓에 숨조차 쉬기 어려운 상태에선 마음만 굴뚝이고 움직임은 여의치 않았다. 나는 사실상 락연을 목마 태우고 있었다. 납작하게 짜부러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도망치려는 내 움직임을 눈치 챈 타평은 마음이 급해진 눈치다. 웃웃, 아앗, 이런 식의 괴음을 내지르며 락연의 손아귀에 잡힌 식칼을 강제로 비틀어 빼내려 했는데 흘러내린 체액으로 - 요괴의 피는 인간의 것보다 훨씬 묽었다 - 칼날은 생각보다 쉽게 움직였다. 아차 하는 사이에 높게 들린 식칼이 락연의 목덜미를 향해 빠르게 내리꽂혔다. 퍽, 퍽 하고 살을 찢는 둔한 소리가 연거푸 두 번이나 들렸다.
사람이라면 그대로 숨이 끊어졌겠지만 락연은 요괴다.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음에도 바위처럼 버티고 서서 자리를 비키려 하지 않았다.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 점이 타평을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봤자 휘두르는 칼날은 나에게 닿지 않았다. 좌절감에 절규하던 그는 이번엔 락연의 배를 푸욱 찔렀다.

식칼이 꽂힌 마당에 락연은 나를 향해 눈짓했다.
의미는 분명해서 혼자라도 좋으니 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치라는 것이다.
「못해! 망할 놈의 100둔짜리 덩치가 저 밖에서 문을 막고 서있다고!」
손잡이를 잡고 좌우로 돌렸지만 덜컥거리며 반항했다.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찼으나 요지부동이다. 다급해진 나머지 어서 비키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소극 상은의 손님 맞는 법이라는 건 안쪽에서 칼부림이 나도 두 다리로 꽉 버티고 서서 그 누구든 못 나가게 막는 거였다. 어린애의 목소리로 명령해봤자 귓구멍을 막을 뿐이었다.
『망할!』
도로 문을 등지고 서서 앞을 보았다.
언제까지나 락연이 방패막이가 되어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점차 아래로 미끌어졌다. 타평의 눈이 퍼렇게 인광을 뿜어댔다. 나는 그대로 숨을 삼켰다.

『락연! 문제야. 문을 열 수가 없어.』
『이 자를 막으면서 동시에 제가 문까지 열 수는 없단 말입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선 짐승처럼 밀어붙이고 있는 타평을 막는 것도 한계였다. 찔리고 베인 상처는 이제 여덟 곳이 넘어가고 있었다. 각각의 상처는 매우 깊어서 등 뒤에까지 붉은 얼룩이 빠르게 번져가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문이 열리지 않으니 힘 좀 써보라고 요구하는 건 옳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로막고 선 물렁살 덩치를 어떻게 설득하란 말인가.
주먹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잊고 문짝을 반복해서 때렸다.
설득이 안 된다면 쓰러뜨려야 했다. 하지만 무슨 재주로? 문짝 건너편의 사람을 나더러 무슨 수로 제압하라는 건가.
『락연! 문제야. 저 밖에서 물렁살 아저씨가!』
『뭐라도 좋으니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이쪽에서 살기를 최대한 내뿜어 건너편에 있는 사람을 제압하는 것이다. 가능은 하지만... 실행에 옮기고 싶지는 않다. 물렁살을 쓰러뜨리기 전에 요괴인 락연이 민감하게 반응할 거다. 그렇게 되면 나중까지 상당히 골치 아프게 되어버린다. 아니, 그저 골치가 아팠다 - 라는 말로는 안 끝난다.
머뭇거리자 락연이 외쳤다.
『해요!』

두 팔을 문짝에 대고 이를 악물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암흑의 천지였습니다. 두 눈을 감아도, 떠도 보이는 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내 눈으로 어둠이 천천히 내려왔다.
끝없이 펼쳐지는 건 죽음이 내려온 땅. 거기선 풀벌레마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귀에서 지잉, 이명이 울렸다.
생명 있음에 저주를 내렸으니 나의 외침을 뼈에 새기십시오. 무로 돌아간 민둥산. 잿더미가 되어버린 산하.
눈을 감아도, 떠도 암흑. 영혼의 껍질마저 산산조각이 나버려... 살아도 죽어도 안식은 없습니다.
이 어둠을 느낄 수 있습니까? 당신의 눈에 텅 비어버린 고요의 세계가 보이십니까?

강하게 생각하며 암흑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죽어가는 용. 죽음을 부르는 용. 멸망당한 대지. 생명을 잃은 고향.
그리고 나 자신도 새카맣게 물들어갔다. 이마와 눈두덩이가. 그리고 뺨이. 더 아래까지.
사악하고 불결한 것. 들불처럼 번져나가 저주는 계속하여 확산한다.
그렇게 완벽하다 싶을 정도의 검은색을 만들어 낸 나는 문 건너편으로 투사시켰다.

《그. 둬!》
락연의 몸뚱이가 펄럭펄럭 소리를 냈다. 그는 심히 괴로워했다. 상처 탓은 아니었다. 내가 심연에서 끄집어 올린 오랜 기억 속의 어둠 때문이었다. 그것은 맹독이었다. 숨 쉬기 어려울 지경으로 공기가 무거워지면서 그의 동공이 세로로 가느다랗게 변했다. 뾰족하게 보이던 치아는 순식간에 맹수의 송곳니처럼 길게 자라났고 턱은 벌어져 큰 바위라도 삼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어둠은 불경스러운 것들의 머리 위에서도 권능을 행사했다.
이어지는 건 비명이다. 다만 누가 소리를 질렀는지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타평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문 건너편에 있는 사내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지른 건지도 모른다. 죽음은 만물에 공평하다.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
아이를 밴 여자와 사산한 여자, 새끼를 기르는 짐승과 어린 짐승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야수, 그것들의 종착지.
불결하구나, 불결하구나.
무언가를 뱉어내듯 입을 벌렸다. 겨우 이 정도의 어둠에 머리가 몸뚱이에서 분리가 되는 기분이다. 죽음이 내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영혼마저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그곳으로 끌려가려 했다. 중력 무중력 다시 중력. 심연에서 잠들어 있던 외눈박이가 눈을 뜨기 일보 직전이었다.
《깨어나선 안 된다.》
그 눈알에 손을 대어 서둘러 눈꺼풀을 닫았다.

체중을 실어 문을 쳤다.
《이 문에서 비켜나! 어둠에 닿고 싶지 않다면 비켜! 어둠이 삼키러 온다. 재앙이 온다. 비켜!》

내 뒤에 선 락연의 몸이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마냥 튕겨 올랐다. 그의 등이 혹처럼 부풀어 오르는게 보였다.
식칼을 쥔 손이 누구의 것인지는 더 이상 구분이 가지 않았다. 울부짖음은 이제 절규로 변한 상태다.
이 혼돈은 내가 저지른 것이다. 저들의 영혼에 생채기를 냈다. 오물을 뒤집어 쓴 타평은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그의 눈은 흰자위밖에 남지 않았다. 침이 뚝뚝 흘러 탁한 거품을 만들어냈다.

모든 백성을 참살한 왕이 있었다. 모든 생명을 전부 죽이려 한 용이 있었다.
나는 그 대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대들은 그 답을 알고 있다.

드디어 문이 빼꼼 움직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겨우 두세 발자국 도망치고 바닥에 쓰러진 덩치가 보였다. 사내 또한 입으로 거품을 뿜고 있었다. 충격으로 심장이 멎은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나는 락연의 몸을 끌고 밖으로 나가고자 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기를 쓰고 걸었다. 안 된다. 무리다. 락연의 왼 팔이 길게 늘어져 괴수의 커다란 앞발처럼 변해갔다. 무게 역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이 와중에 날이 부러진 식칼을 쥐고 타평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우리들 뒤를 따라 나왔다. 무릎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음에도 의외로 속도가 빨랐다.
「도망쳐야 하는데.」
락연의 몸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지와는 달리 손가락 하나 까딱이질 않았다.
최후를 예감하며 락연의 몸뚱이를 끌어안고 엎드렸다.
「틀렸어! 끝장이야!」

Posted by 미야

2015/07/28 10:13 2015/07/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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