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장 키보드가 급한 상황이라 만원짜리 삼보 키보드를 가격만 보고 덥썩 주문했는데 키감이 노트북... 아놔. 이런 실수! 모양은 무척 예쁜데 자판이 납작해서 계속 잘못 누르고 있네요. ※
문득 나 말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저 자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궁금해졌다.
밝은 햇빛 아래 선 락연은 그림자마저 옅었는데 이상하게도 마부는 그와 매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고 똑바로 시선을 마주치기까지 하였다. 오히려 사람이 아닌 말들이 민감하게 굴어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앞다리를 번갈아 움직이며 연신 푸르륵 푸르륵 콧구멍을 떨어 소리를 내었다.
말이 좀처럼 긴장을 풀지 못하자 마부는 말의 목덜미를 반복하여 문질러 달래려 했다.
『이놈아, 오늘 아침 밥도 많이 먹었잖느냐. 왜 배가 고픈 척하고 그래.』
마부는 그걸 다른 방향으로 착각했다. 먹보로 착각당한 말은 심히 억울할 것이다.
『아무튼 사정은 잘 알아들었수다. 허나 우리 도련님이 허락을 하실지 모르겠군요.』
『일단 소주인께 여쭈어 주시겠습니까.』
『큰 기대는 하지 마시오. 저어, 송주 도련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마차의 주인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내가 화급히 외쳤다.
『송주라고? 안 돼!』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마차 주인도 나에게 지지 않으려 애쓰며 크게 외쳤다.
『안즈잖아. 안 돼!』
마부와 락연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헤에, 서로 잘 아는 사이십니까? 묘하게 두 분이서 죽이 잘 맞는데요.』
『내가 버선이냐? 죽이 잘 맞게.』
나는 허겁지겁 달려가 락연의 팔을 끌어당기며 마차에서 떼어냈다.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송주의 마차를 얻어 타자는 거냐. 이쪽에서 사절이다. 차라리 오래 걸어 물집 잡힌 발바닥 껍질이 홀랑 벗겨지는 편을 선택하겠다.
『왜 그러십니까?』
『알 필요 없고. 이리 와.』
『혹시 마부석이라서 싫으신 겁니까. 그래도 그 먼 길을 걸어가는 것보다 훨씬 좋을텐데요. 지금 체면이니 창피니 하는 걸 가릴 때가 아니라고요. 정 부끄러우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면 되잖아요.』
우리가 하는 대화를 마차 안에서 고스란히 엿들은 송주는 콧대를 세우며 재빨리 외쳤다.
『좋았어! 허락한다! 마부석에 타도 좋다!』
남의 불행을 즐기며 깔깔 웃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제기랄, 망했어요. 나는 손바닥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쓸어내렸다.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마부석에 나까지 포함하여 세 명이 나란히 앉으려니 좌불안석이었다.
락연은 내 몸을 번쩍 들어 가운데 앉히고 자신은 엉덩이를 극히 일부만 걸쳤는데 그러고도 힘들거나 불편하다는 시늉도 없이 그저 편안하였다. 정면에서 보면 대단히 기이한 모습이었으리라. 체중을 걸칠 의자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앉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사람이었다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다 단 2분도 못 버티고 무너졌을 것이다. 허벅지 굵기가 아가씨 허리만큼 두꺼운 무관들도 기마 자세를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몰래 훔쳐보는 내 시선을 느끼고 그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안즈 님.』
『불편하지 않아?』
『괜찮습니다. 감수해야지요, 뭐.』
이를 드러내며 웃는데 뾰족뾰족하게 튀어나온 이빨이 부담스럽다. 나는 무릎의 천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내문의 경계를 지나기에 앞서 마부가 질문했다.
『혹시 도련님도 새 옷을 구하러 외궁 밖으로 나가시는 겁니까?』
『옷?』
『사무월 축제에서 입을 옷이요.』
오호라, 그렇게 된 거였군...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날씨가 더운 탓에 마차의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 마부석에서도 송주의 얼굴이 잘 보였다. 녀석은 흥흥 콧김을 내뿜으며 마부의 말을 부정했다. 심지어 손바닥을 폭풍 속 갈대처럼 흔들어댔다.
『저 녀석이 새 옷을 사러 갈 리가 있겠냐. 저 녀석은 내재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알거지야.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낯 두껍게 남에게 빌려 입은 거라고.』
『아이고, 작은 주인님. 그래도 배움을 같이 하는 친우분께 그런 말씀은...』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변방국 출신 거지와 친분을 쌓아 무엇에 써먹겠다고. 차라리 부뚜막 집게와 친구를 하겠다. 집게는 타고 남은 숯이라도 치워주지. 저건 그야말로 아무 쓸모도 없다고.』
그러면서 나 보라며 고개를 픽 돌린다. 우와, 무지 얄밉다.
나도 모르게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아무 쓸모없어 정말 미안하다! 귀신대부 무섭다며 북어포를 내던지고 줄행랑을 친 누구처럼 간이 큰 것도 아니어서 나란 녀석은 그야말로 휴지통의 쓰레기! 잡동사니 쓰레기여서 미안하구나! 사과하마!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내 사과의 말에 송주는 놋그릇을 부러진 수저로 긁어대는 듣기 싫은 목소리로 야단을 했다.
『야! 그때 일을 지금 왜 끄집어내! 시끄러워!』
『그 북어포는 잘 처리했니? 제대로 못하면 반대로 부정 탄다.』
『시끄럽대도!』
머리를 마차 밖으로 내민 채 아웅다웅 싸우고 있자니 다리를 지키고 선 수문장이 도깨비처럼 인상을 썼다. 신원을 확인하고 마차를 통과시키는 건 나중이다. 큰 소리를 낸다는 건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문제가 있음에도 다리를 그대로 통과시킨다는 건 업무상 큰 실책이다. 아니나 다를까, 창을 들어 제자리에 서라는 신호를 보냈고 명령에 따르던 마부는 짧게 다듬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도련님들, 이제 그만 좀 진정하시죠.』
마부가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었음에도 마차 뒷좌석에서 송주는 허공 발차기까지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덕분에 마부석까지 좌우방향으로 들썩들썩... 붙잡을 것이 마땅치 않아 나는 눈앞에 보이는 줄을 잡아당겼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자 줄에 매인 말이 보내진 신호를 착각하고 빠르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헷갈려 하는 말을 다시 조정하면서 마부는 식은땀을 흘렸다.
『에라이, 그만들 하시라니까요!』
머리 나쁜 말을 다시 똑바로 걷게 만드는 일에는 수문장까지 손을 걷어붙여야 했다.
쭉 뻗어나간 오대문로를 향해 마차를 돌리기가 무섭게 송주와 나는 다시 영양가 없는 입씨름을 시작했다.
『네 얼굴에 보라색이 어울릴 것 같냐. 절대로 무리!』
『내 피부는 하얗단 말이다. 고귀한 색이 절대로 어울리고말고! 게다가 최신 유행!』
『차라리 연두색 옷을 입지 그러냐. 축농증에 걸린 썩은 콧물 색이라고 다들 좋아할 거다.』
『미친. 그러니까 네놈의 미적 감각은 촌놈의 단계를 넘어 구제불능이라는 거야. 진짜지 변방인들의 감각은 형편없다니까. 지금 뭐라고 했냐. 연두색 옷? 진심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보라색은 어둡고 연두색은 밝다는 거야. 그리고 네 얼굴에는 어두운 색이 안 어울려.』
『그래서 밝은 색 옷으로 골라라? 그걸 조언이랍시고 거기 마부석에 앉았냐. 야, 인마. 공짜로 태워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당장 여기서 내리거나 아님 삯을 내.』
송주가 다시 발차기를 해보였다. 자기 소유의 마차이니 그 내부를 발로 걷어찬다고 해도 내가 무어라 할 수는 없는데 등받이 부분이 충격을 받으니 마부석에 앉은 입장에선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너한테 상담한 내가 병신이지. 당장 안 내려?』
『물어봐놓고 왜 자기가 성질이야. 그리고 내가 뭐라고 하든, 넌 결국 보라색 옷을 고를 거잖아!』
『물론이지. 그 색이 가장 나에게 어울릴 테니까.』
『두고 볼 것도 없다니까, 송주. 진짜지 보라색은 아니야.』
『멋대로 지껄여. 사무월 축제임에도 새 옷도 못 지어 입는 거렁뱅이 주제에. 흥!』
이젠 나도 못 참는다. 작정하고 뒤돌아 앉아 송주를 노려봤다. 노려보기만 했던가, 그 좁은 창으로 팔을 집어넣고 녀석의 옷깃이라도 잡으려고 기를 썼다. 물론 마차 내부는 의외로 넓어 속으로 짧은 팔을 뻗어봤자 허공에서 물갈퀴질이나 할 뿐이었다.
그나마 위안이었다면 마차가 다시 심하게 요동을 쳤다는 거랄까, 송주가 꽥 소리를 지르며 팔걸이를 붙잡았다.
하지만 덕분에 락연이 마부석 밖으로 튕겨나갔으니 더하기 빼기 남는 거 아무 것도 없음.
요괴는 여전히 차분한 몸가짐이었지만 오른쪽 다리만 가까스로 걸쳤을 뿐, 몸 전부가 허공에 붕 뜬 상태였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