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로 예식은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별 문제없이 진행되어 마침내 석양이 사방으로 붉게 번짐과 같이하여 모든 행사가 무사히 종료되었다.
《퇴전~! 향락~! 응립~!》
물러가라는 신호에 따라 맨 앞줄에 섰던 이들부터 눈두덩이를 손등으로 누른 자세로 제보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맨 뒷줄에 선 관계로 가장 늦게 입장했음에도 가장 늦게 빠져나가게 된 우리는 얌전히 순서를 기다렸는데, 무료한 건 둘째고 그 와중에도 내 실수를 못 마땅히 여긴 의전관이 슬그머니 다가와 남들 모르게 옆구리를 꼬집는 걸 잊지 않았다. 그게 또 무지하게 매운 손맛이어서 나는 그냥 자지러졌다.
「이놈이 도중에 갑자기 망할 머리를 쳐들어 여러 사람 놀라게 만들고... 사고를 안 쳐 다행이지. 하여간 촌뜨기들은 어디를 가든 꼭 말썽이라니까. 폐하의 용안이 어떤 모습일지 그게 그렇게 궁금하더냐. 흥! 소원은 성취했으니 당장 죽어도 불만은 없겠구나.」
입술도 안 움직이고 소리를 내어 날 책망하는데 뭐라 대들지도 못하겠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소원을 성취하다니.
붙잡고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아니, 이보시오. 저 높은 곳으로 누가 있기는 있었소?!

더듬더듬 물어보자 린청은 가만히 물그릇을 내밀었다. 갈증이 심해 내 머리가 살짝 이상해졌다 여기는 듯했다. 물론 나는 매우 목이 마른 상태였고, 이젠 살았다는 투로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느라 바빴다. 서둘다보니 사래가 들려 기침도 터졌다. 덕분에 입으로 넣은 물이 콧구멍을 통과하여 줄줄 새어나왔다.
『황제? 몰라. 코가 하나 달리고 눈이 두 개인 사람이겠지. 적손의 얼굴은 네가 쳐다봤지, 내가 본게 아니잖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답답하여 가슴을 치니 물 마시고 체한 거냐 안스럽게 쳐다본다. 이걸 어떻게 얘기를 풀어간담.
『적손께서 거기에 계셨어? 분명 계셨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거기에 안 있음 경공법을 써서 지붕 위에라도 올라가셨겠어?』
린청은 내가 무엇을 묻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허둥거려, 안즈. 훔쳐보니 평범한 사람과 달라 이마에 눈이 하나 더 달렸든? 그래서 그렇게 놀랐어?』
『그런게 아니라...!』
『아, 국화 찐빵이다.』

만 하루 동안의 단식이 끝났으니 이어지는 것은 잔치다. 단단히 허기졌던 아이들은 지금만큼은 예절이고 품위고 모두 팽개치고 정성껏 마련한 음식에 팔을 걷어붙인 채 달려들었다. 하수들도 모처럼 신이 나서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부린데다 시장기에 맹물도 꿀처럼 달게 느껴질 터이니 평소 점잔을 빼던 연회당은 시장바닥처럼 소란하기 짝이 없었다.
모양만 좋을 뿐 감질나게 만드는 다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식사 대신으로 삼을 국수며 찐빵이며 고기완자에 잔뜩 눈독을 들인 상태로, 린청만 해도 접시에 옮겨 담은 고기의 가짓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밀가루 반죽에 큰 새우를 넣어 기름에 튀긴 메보는 무려 다섯 개나 집었다. 그러고도 성이 차질 않는다며 굴 즙으로 맛을 내고 양파와 같이 볶은 밥을 주걱으로 푹푹 떴다. 소식을 하는 내 입장에선 이틀 치 식사량이었지만 린청은 당연히 혼자서 전부 먹어치울 거라 했다.
『음, 이건 많이 매운데. 그래서 궁금한게 뭐라고?』
『그.러.니.까!』
『닭요리 싫어해? 왜 접시에 음식을 하나도 담지 않는 거야. 혹시 편식하는 거야? 그럼 못 쓰지.』
『어... 그건. 나도 닭요리는 좋아하는 편이고...』
『오! 그건 집지 마라, 맛이 엄청 짜다. 제국인들은 원래 맵고, 짜고, 단 음식을 좋아하나? 세상에, 단팥을 넣은 이 스란은 왜 이리 단 거야! 설탕 범벅이잖아.』
이래선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다.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배가 되어 나는 발을 동동 굴러댔다.

『못 봤단 말이야.』
『뭘.』
『황제 폐하.』
『아이고, 그거 억울했겠구나~!! 작정하고 노렸는데 실컷 야단만 맞고 결국 적손의 버선코만 본 거야? 너 진짜 억울했겠다. 게다가 그 망할 의전관이 널 엄청 꼬집어댔잖아.』
우물우물 밥을 씹던 린청이 정말 안 되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 반응도 이해가 안 간다.
애초부터 황제가 그 자리에 있기는 있었느냐고.
내가 봤던 건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내관이 들고 옮긴 깃발이었다.

린청의 입으로부터 튀어나와 내 뺨으로 옮겨붙은 밥알을 떼어내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내관이 깃발을 앞세우고 나타나서 그걸 적손이 앉을 가람막 뒤로 가져가더라고.』
『깃발? 무슨 깃발.』
『그러니까 아까부터 계속 얘기하잖아. 적손은 온데간데 없고 대신 깃발이 있었다니까!』
내 심각함에 덩달아 린청 역시 그 얼굴에서 웃음을 슬그머니 지웠다.
『너 분명 더위 먹었다. 황제 납시오, 이러고 뜬금없이 깃발이 대신 등장했다는 거냐?』
『그렇다니까!』
『너.., 시력이 그렇게 많이 안 좋아?』
『몰라!』
그만할란다. 더 얘기했다간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다.

전해져 오는 옛날 이야기에 이런게 있다.
신라국에 고귀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요술의 비단이 있었는데 그걸 둘째라면 서러울 부자가 엄청난 금액을 들여 다섯 필을 구입해 자신의 의복을 짓게 했다.
그런데 완성된 물건이랍시고 받아보니 상자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여기 들었을 물건은 보물인데 그걸 빼돌렸구나 - 부자는 화가 치밀어 배달을 책임진 하인을 회초리로 때렸다.
하인은 애고 아프다 고함을 지르며 항변한다.
이 고운 빛깔의 외출복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절 꾸중하는 겁니까, 나리.

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건
① 하인이 끝까지 거짓말을 했다. 상자는 처음부터 비어 있었다. 부자는 사기를 당했다.
② 부자는 고귀한 자가 아니라서 신라국의 요술 비단으로 지은 외출복을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그다지 기분 좋은 결말은 아니다.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런가. 요술...이었나.』
신라국의 비단까지는 아니겠으나 그것들 전부가 요술의 일종이었다고 하면 그럭저럭 설명이 된다.
제보전에 나타난 황제는 요술로 만든 허상이었다 - 모두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가운데 내관이 요술 깃발을 재빨리 가림막 뒤로 옮기면 황제 또한 자리를 옮긴 것처럼 보이게 된다. 어쩌면 허기와 탈수로 인한 집단 환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요술이라고 여기는게 적절할 것이다.
『헤에, 뭐야. 그런 거였나. 나이가 있을 테니 몸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단순히 행사 참석이 귀찮았던 거였을지도 모르지. 그래... 이제 이해가 간다. 요술이었구나.』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때리며 스스로 납득하자 옆에서 린청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저것 말하기 귀찮았던 나는 마실 것을 가져오겠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장소를 떠났다.

Posted by 미야

2015/05/18 22:33 2015/05/1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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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5/20 01:31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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