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32

※ 낙서 형식으로 짧게 이어가고 있는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잘 모르는 내용들은 어슬렁 지어냅니다. 그러니 언냐 옵화들은 이게 진짜야 그러지 말긔. ※


만남의 장소를 별이 세 개 붙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정한 건 뜻밖이었다.
남의 이목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었나 - 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일단 별이 붙은 호텔은 보안이 철저하다. 도둑을 예방한답시고 사방에 감시 카메라가 붙어 있다. 기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정장 차림새의 보안 요원이 곳곳을 돌아다닌다. VIP 고객이 투숙하는 날엔 똥파리처럼 달려드는 파파라치를 솎아내기 위해 검색을 강화한다. 덕분에 양복 안쪽으로 권총집을 차고 다니는 위험분자들은 정문을 뚫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카메라를 숨기고 로비를 어슬렁거리는 인간을 단숨에 채어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는 실력자들은 당연히 불법 반입 무기에도 반응한다.

『그래도 선생은 뒷주머니에 베레타 한 자루는 차고 있을 거라 믿고 있소만.』
『아니라고 부정은 안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리스는 명함 한 장을 꺼내어 식탁 정 중앙에 올려놓았다.
앞면은 순수한 백지. 뒷면 또한 순수한 백지.
백발이 성성한 신사의 눈썹이 활처럼 구부러졌다.
『이거 참. 이런 명함은 제법 오랜만에 보는데. 한 8년 만인가?』
신사는 지금 누구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거냐,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에 앞뒤로 뒤집어보던 백지 명함을 양복 안주머니에 곱게 집어넣곤 상징적인 의미로 심장이 뛰는 부위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재밌게도 남자의 그러한 행동에 반응을 보인 건 식탁 반대편에 앉은 리스가 아니라 이웃한 테이블에 앉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었는데 보디가드가 분명한 그들은 테이블보 아래로 감추어둔 소음총을 거두고 그 즉시 주의 및 대기 상태로 들어갔다.

『자, 그래서 존 스미스 씨?』
『존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어차피 가명이니 상관없다 이건가요. 뭐, 좋아요. 존이라고 불러드리죠. 하지만 선생은 나를 미스터 갬브럴이라고 불러줬음 하오. 나보다 스무 살 연하의 사내가 친한 척하며 올리버, 올리버 이러고 부르는 건 용납할 수 없거든.』
『알겠습니다, 미스터 갬브럴.』리스는 좋을대로 하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올리버 갬브럴은 영국인이다. 하지만 국적과는 아랑곳없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의 집은 - 가족이 살고 있다는 의미로 보자면 싱가폴에 있다. 나이는 예순 일곱, 아직 은퇴하지 않은 베테랑 무역 상인이다.
하지만 무역 상인이라는 건 국가에 납세를 하기 위한 위장 신분이고, 실제로는 다국적군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특정 지역으로 비밀 요원을 보내는데 필요한 민간 항공편을 제공한다던가, 불법으로 체포된 특정 인물이 수용된 컨테이너를 배편으로 부친다거나, 부패한 장군과 짜고 분해된 전투기를 다른 국가로 빼돌린다거나... 근래에는 전직 군인들과 비밀요원들을 고용해 여론을 의식하는 정부를 대신하여「작전 대행」서비스 팀을 파견, 공개적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더러운 일들을 일사분란하게 해치우고 있다.
이른바 그는「검은 정부, 검은 군대」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다 그렇지 뭐. 앞구멍이 점잖은 표정으로 밥을 먹으면 뒷구멍은 똥을 싸고 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나 같은 사람이 없으면 세계가 붕괴해버려.』
갬브럴은 세상이 내리는 평가에는 큰 관심이 없다며 의자 등받이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창백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로 리스를 꼼꼼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세를 봐선 오랫동안 밀리터리 훈련을 받은 건 분명하고... FBI? 글쎄.』
『제가 누구인지 궁금합니까. 미스터 갬브럴.』
『사실 그렇게 많이 궁금하지는 않다네. DIA(국방정보국) 직원이라고 해도 나와 무슨 상관인가. 다만 오랫동안 내가 알고 싶어 하던 정보를 가지고 있다며 접촉을 시도했다는게 중요하지.』
그렇게 말하고 갬브럴이 가래 끓는 비참한 소리로 목을 울려댔다.
『그래서 그건 누구였던 거지.』

오래전 이야기다.
아직 그의 사업이 제 궤도에 올라가지 않았던 무렵, 몸값을 요구하는 인질범들이 그의 딸과 아내를 파리에서 납치했다.
『마누라는 내놔라 하는 유명 모델 출신으로 나에겐 세 번째 재혼한 여자였다네. 스텔라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냐. 그래도 납치범들에게 손가락이 잘린 정도로는 내 마음이 동하지 않았지. 하지만 어린 내 딸은... 이야기가 달라. 달라도 아주 다르지.』
딸이 납치되자 갬브럴은 눈이 뒤집혔다. 아내는 맘대로 해도 좋으니 딸은 무사히 돌려달라고 구걸했다. 덕분에 이야기가 대단히 지저분하게 돌아갔다. 아내의 손가락이나 귀를 잘라봤자 협박이 되지 않는다는 걸 학습한 그들은 대신 어린 딸을 강간하며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아버지에게 보냈다.
호흡이 흐트러진 신사는 가만히 자신의 중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씹었다.
『평생을 그놈을 잡기 위해 애썼지.』
갬브럴이 전직 군인들과 우수한 국가 요원들 수집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도 이것이 방아쇠였다.
정당한 수단만 가지고는 범인을 과녁으로 매달아놓고 총질을 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가 자세를 약간 바꿨다.
『나는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제보를 해오고 있네.』
『하지만 여전히 범인을 찾지 못하셨죠.』
『이제는 지겨울 정도야. 그러니까 존, 경고하는데 현상금을 노리고 거짓부렁으로...』
『말을 도중에 끊어 죄송하지만 저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미스터 갬브럴.』
『음?』
『제가 필요한 건 정보입니다.』
『정보?』
『당신이 고용한 전직 CIA 요원 중 베타 팀이었던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데요. 특히 현장 수습 쪽으로 소개를 해주셨음 합니다.』
『알파 팀도 아니고 베타?』
되물었다가 도중에 멈추고 항복의 의미로 손바닥을 활짝 펴보였다.
이런다고 대답이 돌아올까. 그가 상관할 일이던가.
게다가 듣자하니 소문으로는 AAA급 알파 팀은 자기 맘대로 은퇴도 못 한다고 한다. 뒷일을 두려워한 국가에서 몰래 죽여 버린다나. 그래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요원들 전부가 베타라는 말이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갬브럴 수하의 전직 CIA 요원들은 화려한 수식어로 장식된 이력과는 달리 전부 B급이라는 얘기다.

『잘 나갔던 현장 수습 요원이었던 자를 안전한 장소에서 몇 명 인터뷰하게 해주겠네.』
『감사합니다, 미스터 갬브럴.』
무표정한 얼굴의 리스는 이것이 답례라며 사진 한 장을 백발의 신사에게 내밀었다.
주름지고 검버섯이 핀 손이 그 즉시 굶주린 짐승처럼 사진을 낚아챘다.
『그런데 이게 진짜라는 건 어떻게 알지.』
『어렵지 않죠. 붙잡아 그의 입안을 면봉으로 긁어보면 되니까요.』
『..........』
『당신이 딸의 몸에서 범인의 체모를 찾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음.』
『그리고 따님이 자살한 건 정말 유감입니다, 올리버.』
정정하던 노인의 몸에서 기력이 전부 빠져나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2/11/30 10:38 2012/11/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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