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22

멘붕왔다. EA-오리진 또 한국에서 대형 사고쳐. 이럴 작정이면 예약은 왜 받냐, 돈 토해내, ㅆㅂ새끼.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화면으로 프리미엄리그 축구 경기 화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맨시티와 사우스햄튼과의 경기. 전반 40분만에야 맨시티의 카를로스 테베스가 선점을 올렸다. 어딘지 모르게 루즈한 경기다. 바텐더는 알아서 텔레비전의 음량을 줄였다. 축구에 정신이 팔린 손님보다는 모바일 접속에 집중하는 쪽이 더 많다. 이런 날은 매상이 적다는 징크스가 있어 달갑지 않았지만 헛발질의 신이 점지한 날은 항상 있기 마련이라 원망도 못 한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반전까지 안 보더라도 결과가 뻔히 보이네요. 이대로라면 맨시티가 이기겠죠? 손님.』
『...』
주문한 맥주는 나 몰라라 하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사내는 바텐더가 자기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다는 걸 눈치를 못 챘다. 심각한 표정으로 잔디밭을 누비는 공을 쫓고 있다. 아니, 공은 뒷전이고 소코어 표기 부분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다. 스포츠 도박사인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기엔 옷차림이 안 어울린다. 그리고 눈빛도 조금 이상하다. 초점이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 벽 너머 다른 공간의 다른 세계를 보고 있다는 투다. 바텐더는 양복 차림새의 남자의 눈앞에서 손바닥을 흔들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주위를 잊어버릴 정도로 집중을 하고 있지만 순수하게 경기를 보고 있는 건 아니다.
『손님?』
양복의 남자는 귀가 안 들리는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이게 다 무슨 일이지.』
양복 자락에서 단추처럼 생긴 작은 물건을 집어올린 핀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게 언제 붙었는지 그로선 짐작이 안 간다. 늦은 오전 무렵에 림보로 나와, 언제나처럼 도넛을 먹고, 우려낸 녹차를 마시고, 자료를 조사하고, 포의 시집을 읽다가, 웹서핑을 좀 하고, 허리가 쑤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번호가 없는 날이라서 존 리스는 아예 림보로 나오지도 않았다. 나가서 마음껏 사생활을 즐기라는 고용주의 권고를 받아들여 모처럼 개인 시간을 즐기는 중이다.
『허어?』
그의 옷에 도청기를 붙일 인간이라고 하면 존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데.
오늘 하루 온전히 어디에서도 마주친 적이 없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
핀치는 벌레의 뒷다리를 잡는 식으로 붙잡은 도청장치에 대고 소곤거렸다.
『자꾸 이러면 월급을 삭감하겠습니다, 미스터 리스.』
분명히 듣고 있으리라 확신하며 그 위로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러고도 짐짐한 기분이 한참이 지나도록 가시질 않아 다음으로는 신발을 벗어 밑창을 살폈다.
초소형 위치추적기를 찾아냈다.
『이건 장난이 아니고 꽤 본격적인데.』
그러자 퍼득 깨달음이 왔다.
『아까 찾아낸 도청기는 눈속임용 더미구나! 다른게 더 있어!』
편집증을 가진 남자는 끙차 기합을 넣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다시 술집으로 돌아가보자.
빈상자를 정리하러 뒷문으로 나온 술집 직원은 시커먼 사람 그림자를 보고 질겁했다. 4개월 전에 강도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어 CCTV를 설치했지만 그런다고 해봤자 카메라는 날아오는 총알을 막아주지 못한다. 하여 주춤거리며 벽으로 붙어 신중하게 게걸음을 했다.
그러나 강도 어쩌고는 기우였다. 양복을 입은 갱이라는 건 없잖아. 안 그래?
약간의 용기가 생겼다. 목을 길게 빼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키가 컸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위를 보고 있었는데 - 허리에 손을 얹은 자세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2층에 사는 누구와 말다툼 중인가?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남자가 고함쳤다.
『일러바치기라도 하는 날엔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점멸하는 CCTV 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보였다.

한산한 시간을 노려 오랜만에 서점을 방문했다.
특별 행사전이 열리는 코너에는 저작권료가 사라진 헤밍웨이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가는 지난 1961년 7월 2일 오하이오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을 쏘아 자살했다. 사후 50년이 지났기에 국제저작권협약에 따라 누구든지 그의 책을 합법적으로 펴낼 수 있게 되었다. 돈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은 저마다 책들을 찍어냈고, 서점들은 그걸 이벤트로 만들어냈다. 같은 이유로 내년에는 헤르만 헤세와 윌리엄 포크너가 폭발할 거다.
뭐, 초판본이 아닌 이상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는다. 표지만 바뀐 새 책은 필요가 없다. 핀치는 행사전 코너를 가볍게 지나쳤다.
서가 한 가운데서 책을 고르고 있던 젊은 청년이 절룩거리며 걷는 그를 보고 옆으로 피했다. 나름 배려하는 자세지만 핀치는 그런 과잉 친절이 반갑지 않다.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옆 칸으로 이동했다.
『찾는 책이 있으신가요, 미스터.』
『도움이 필요하면 번쩍 손을 들게요.』
『아뇨. 손을 들지 마시고 소리를 내어 불러주세요.』
재고가 된 잡지를 정리하던 직원이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원래의 일로 돌아갔다.
『문고판은 어느 쪽이죠.』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직진, 그리고 좌향좌.』
『알아듣기 쉬워 좋네요. 감사합니다.』
천천히 걸어 문고판 쪽으로 이동한 핀치는 일단 좌우방향을 살폈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 후에 신발에서 떼어낸 수신기를 슬그머니 아무 책갈피에 넣었다. 장치는 너무나 작아서 시력이 나쁜 사람이 본다면 벌레로 착각할 수도 있다. 자세한 걸 모르는 서점 직원이 찾아낸다면 모양 나쁜 쓰레기라고 판단하고 치워버릴 것이다.

『핀치.』
《네, 미스터 리스.》
『오늘 하루 뭐 했어요?』
《휴식을 취했죠. 당신은 뭘 하고 시간을 보냈나요.》
옆구리로는 위장용 서류가방을 들고, 한손으로는 개의 목줄을 잡아당기고, 동시에 핸드폰으로 통화를 한다는 건 제법 까다로운 일이다. 힘에 겨웠던지 잠시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저 역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핀치.』
피사체가 움직이지 않으니 좋은 챤스다.
리스는 이때다 하며 야간 모드로 맞춘 카메라의 버튼을 쉬지 않고 눌러댔다.
『저녁은 먹었나요?』
《아직이오.》
『그럼 같이 먹을래요? 저도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눈치다. 핀치가 음, 하고 입술을 안쪽으로 마는 소리를 내었다. 역시 비싼 값을 한다. 이런 작은 소리도 안 놓치고. 만족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디가 좋을까나... 먼젓번에 갔던 로얄 다이너는 어때요?》
『그러죠.』
《그럼 같이 갈까요, 아님 거기서 만나는 척하고 계속해서 제 뒤를 따라오실래요? 미스터 리스.》
하마터면 고가의 카메라를 땅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Posted by 미야

2012/11/13 15:45 2012/11/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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