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16

아니되옵니다. 호박떡을 찌어 모두가 나눠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겁이 많아 앞에서는 말도 못 끄내고 소심하게 숨어서 읍소.
어쨌거나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야겠네요. 이게 왜 안 끊기지.


푸스코는 발신자 표시창에 뜬 닉네임에 반응하여 콧구멍을 벌릉거렸다.
그의 입장에선 말보다 주먹이 빠를 것 같은「원더보이」이쪽보다는「좋은 소식」쪽이 더 응대가 쉬웠다.
「좋은 소식」은 성격 탓인지 늘 일정 거리를 두려고 했고, 약간은 냉랭했다. 역설적이지만 지시를 받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가 적응이 더 잘 된다. 친구는 얼마든지 가까워져도 되지만 보스는 가급적 멀리 떨어뜨려 두는게 좋다. 그것이 오랜 공무원 생활로 깨달은 진리다.
나는 뼛속까지 머슴 체질인 건가 -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형사님? 제가 부탁드린 건 잘 해결되었나요.》
역시나 냉랭한 목소리. 푸스코의 콧구멍이 다시 벌릉거렸다.
『ROF12XX 번호판의 파란색 토러스의 주인은 에밀리오 단테라는 사람이었어요.』
《자료를 메일로 보내주시겠습니까.》
『보내드리죠.』
《감사합니다, 형사님.》
보통은 이쯤해서 대화가 끊긴다. 그들은 시시껄렁한 잡담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하늘에 해가 서쪽에서 떠올라 푸스코는 잠깐만요, 이러고 토를 달았다.
《네, 무슨 일인가요, 형사님.》
특별하게 언질을 해줄 정보가 따로 있는가 싶어「좋은 소식」은 휑하니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푸스코는 주저하며 이렇게 물었다.
『이런 거 묻기가 좀 그렇긴한데... 혹시 당신 생일이 다가온 건가요?』
이러고 두 사람 모두 동요했다.
《네?》
『어? 내 짐작이 틀렸나?』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생략한 채 형사는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불륜 장면을 들켰다는 식으로 황급히. 직감이 뛰어난 수사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대기하고 있던 핀치는 부드러운 인형으로 코를 두둘겨 맞은 기분이었다.
내 생일? 지금 내 생일이 다가온 거냐고 물었어?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벌어져 있던 입을 도로 다물었다. 하마터면 침을 흘릴 뻔했다.
그래도 놀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더하여 저 아래서부터 거대한 의문부호가 헬륨 가스를 잔뜩 들이마시고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생일? 누구의?
본명도 잊었다. 계속해서 이름을 바꾸고, 생년월일을 바꾸고, 주소를 바꾸고, 나중에는 얼굴과 몸을 뺀 나머지 전부를 바꿔치기 해버렸다. 그는 유령이다. 살아있지만 어느 의미에선 살아있지 않다. 후, 하고 숨을 불면 날아가 버리는 티끌보다도 못한 존재에게「태어난 날」과 같은 특별한 기념일이 남아있을 리 없다. 서류상 생년월일은 당연히 가짜이고 - 절친이던 네이슨이 꼬박꼬박 챙겨주던 날짜는 캘리포니아 한 마을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가 사흘만에 죽은 한 남자 아기의 사망일과 같았다.

고무지우개가 달린 연필로 키보드 자판을 힘주어 꾹꾹 눌러대던 핀치는 라이오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형사님?』
《어? 메일이 안 도착했어요? 그거 이상하네. 다시 보낼게요.》
지방과 설탕으로 몸집을 불린 그가 온몸으로 허둥거리는 모양새가 고스란히 그려졌다.
『메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음, 음. 별 거 아닙니다. 원더보이가 쌩뚱맞게 웬 요리법을 물어보길래...》
이쯤해서 도중에 끼어들어 형사의 입을 막으려 하는 시도가 발생했다.
《라이오넬?》
이름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에 푸스코가 펄쩍펄쩍 뛰었다.
《역시 엿듣고 있었어. 그럼 안경 씨? 호빵맨에게 직접 물어보시구랴. 그럼 저는 이만.》
형사는 얼굴에서 초록색 땀이 난다며 핸드폰 폴더를 거칠게 닫아버렸다.

더 헷갈리게 되었다. 요리법? 무슨 요리법?
핀치는 지체 없이 연필 끝에 달린 고무지우개를 사용해 키보드를 꾹꾹 눌렀다.
『미스터 리스? 아직 거기에 있어요?』
《푸스코가 착각한 겁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요리법이라뇨?』
《라이오넬 아들이 찜닭 요리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간단하면서도 푸짐하게 만들 수 있는 종류라서 특별한 날이면 아들을 위해 라이오넬이 직접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레시피를 물어봤던 거예요.》
『찜닭? 레시피?! 믿을 수 없군. 당신, 요리를 해요?』
《통조림만 데워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요리법 하나 정도는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요.》
『하아?』
《왜 그렇게 놀라요.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핀치?》
핀치는 당황해서 말을 얼버무렸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잘 하는 요리법 정도는 하나쯤은... 찜닭?』
《나중에 자세히 말해줄게요.》
지금은 길게 이야기를 할 처지가 아니라며 리스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닭요리?』
핀치의 혼잣말에 닭고기 냄새를 맡지도 않았으면서 베어가 고개를 길게 빼고 끄응 소리를 냈다. 사료를 챙겨주었음에도 어쩐지 개는 배가 고프다는 눈치였다.

Posted by 미야

2012/11/05 11:51 2012/11/0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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