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면 참 좋았을 거라 안타까워하며 저 멀리 보이는 인영을 주시했다.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하고 싶었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에 고담 시에서 한 정신병자가 경찰서장을 노리고 소형 미사일을 날린 적도 있었으니 방심은 금물이다. 따지고 보자면 도심 한 복판에서 로켓포를 쏜다는 건 온갖 미친놈들이 다 모였다는 고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만... 이쯤해서 마이클은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난간 앞으로 상체를 바짝 붙였다. 저격용 라이플 정도라면 이곳 스타 시티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둠 속에서 붉게 타들어가는 담뱃불은 완전한 목표물 조준점이었으니까. 깨닫고 나자 우라질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옥상에는 마이클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그들 전부가 흡연자다. 물고 있던 츄파춥스 사탕을 입에서 빼낸 채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몇 명은 이미 자리를 떴고, 채 꺼지지 않은 불빛 두 개가 남아 있었는데 천만 다행스럽게도 냉각탑의 구조물 위치 탓에 반대편 건물에서 저격하기엔 각도가 나빴다. 순전히 우연이었겠지만 명줄이 긴 것이 분명한 행운의 흡연자 두 명은 콘크리트 벽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자기네들끼리 잡담 중이었다. 보나마나 이혼한 마누라 욕에 재혼한 마누라 욕일 거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그들이 등지고 선 콘크리트 벽이 충분히 엄폐물 역할을 해준다는 거였다.
머릿속에서 요란하게 빛을 내며 점등하던 LED 경광등의 기세가 한풀 꺾이자 한숨 돌린 마이클은 다시 전면을 주시했다. 붉은 헬멧의 사내는 선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그건 대단히 좋은 신호였다. 조금 더 안도한 그는 무거워 보이는 금속성 물건이나 부피가 있는 터틀 백의 그림자를 찾았다. 「틀렸어. 거리가 멀어서 전혀 안 보여.」 이쯤해서 마이클은 슬슬 게.을.러.지.기.로. 했다.
처음부터 별 거 아니었다. 그저 오해였다. 아무렴 저격범이 나 지금 여기 있어요~ 이러고 사방이 트인 자리에서 15분씩이나 가만 서있을 리 없잖는가. 그렇다. 저 사람은 그냥 야경을 구경 중인 거다. 그렇게 믿도록 하자. 배경이 생뚱맞은 고가수조 위라는 문제가 양심에 걸렸지만 - 무릇 사내는 여자와 달리 분위기니 낭만이니 하는 종류를 잘 모르는 법이다. 별을 더 가깝게 보려고 무작정 높은 곳에 올라간 것일 수도 있다. 뭉친 어깨의 통증이 작아지면서 긴장이 탁 풀리려 했다. 헬멧 남자는 이따금씩 오른손을 세로 방향으로 흔들었는데 마이클이 보기엔 참으로 익숙한 몸동작이었다. 소위 말하는 삿대질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와 전화 통화 중인 건지도 모르겠다. 동료 경관이 아홉 살짜리 아들을 자동차로 학교에 데려다주는 문제로 아내와 말다툼을 벌일 적에 저런 식으로 팔을 움직이곤 했다. 기분 탓이겠으나 어쩐지 그가 내뱉는 성마른 짜증과 욕설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별안간 붉은 헬멧의 사내가 훔쳐보는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마이클은 이크, 소리를 내며 난간 아래로 몸을 수그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나를 봤을까? 봤을지도. 3초 정도 헤아리고 조심스럽게 목만 길게 뺐다. 『어?』 그런데 없었다. 사라졌다. 말끔하게 지워졌다. 『그새 어디 갔어? 설마. 하늘로 날아갔을 리는 없고.』 그럴 리는 없었지만 혹시라도 투신한 건가 싶어 근심하며 난간에서 몸을 내밀고 아래를 쳐다봤다.
『우왓?! 위험해요~!! 선배!』 리처드 그레이슨은 순발력을 발휘, 난간에 절반 정도 걸쳐 있던 마이크의 몸을 안전하게 잡아챘다. 하지만 그거야 딕의 주장이었고, 뒤로 끌어당겨진 쪽은 오히려 앞으로 확 떠밀리는 느낌에 격한 비명을 질러댔다. 5층 건물에서 추락하면 목숨을 건질 확률은 정확히 50%다. 그 정도의 확률을 가지고 장난치기엔 질이 안 좋았다.
『씨발! 간 떨어지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마이클은 주먹으로 그레이슨을 후려쳤다. 그리고 그 즉시 후회했다. 활활한 통증이 손목을 타고 단숨에 팔뚝까지 올라갔는데 두꺼운 철판을 주먹으로 때렸을 적과 흡사한 고통이었다. 입으로만 비명이 터진 게 아니라 손가락 관절도 똑같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우웃! 속에 방탄 조끼 입고 있었냐?!』 『아뇨.』 『그랴, 내 주먹은 솜 방망이다!』 아픈 주먹을 움켜쥐고 입으로 후후 불었다. 그래도 아팠다. 좀 나아질까 싶어 허공에 대고 손을 털어봤지만 화끈거리는 감각은 그다지 변함이 없었다. 도대체 뭘로 만들어진 뭐냐고, 저 가슴 근육은!
『선배가 추락할 거 같아서...』 도와줬는데 얻어맞았다. 짐 들어줬다가 뺨 맞는다던가, 억울한 표정을 지은 그레이슨은 오른손에 폴더형 휴대폰을 쥔 채로 항복의 자세를 취해보였다. 그리고 솜방망이 주먹으로 맞아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가슴이 쓰렸다.
《이 피할 수 없는 개짜증 덩어리야, 이젠 경찰관을 본업삼고 히어로는 휴업하기로 했냐?》 불량 가출 폭력 청소년이 되어버린 동생은 통화가 연결되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윽박질렀다. 『제이, 안녕. 형은 잘 지냈단다.』 매번 모욕과 무시를 당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로 대꾸를 하는 건 그를 사랑해서다. 그 동생이라는 망할 놈은 애정이라는 감정에 대한 보답으로 혐오감을 철철 드러내곤 했지만... 어쩌겠는가, 좋아하는 쪽이 질 수밖에 없는데. 피가 통하지 않아도「웨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진 동생이다. 비아냥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제이슨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는 점이 마냥 기뻤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니?』 스스로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목소리에서 꿀이 떨어졌다. 붙어있지도 않은 강아지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건 덤이다. 《닥쳐. 닭살 돋아.》 『거... 말투 엄청 살벌하네.』 《시끄럽대도. 나 지금 한가롭게 안부 인사나 하려 전화한 거 아니거든?》 『그러지 말고 자주 안부전화 하고 그래라, 제이. 새벽이든 대낮이든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짜증이 나려 하니까 그 입 좀 닥치지?》 핸드폰 너머로 어금니를 깨무는 으득, 소리가 들렸다. 하여간 못 말린다. 사람이 아직 안에 있음에도 건물에 설치한 폭탄을 멋대로 터뜨리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기관총을 갈기는 등, 평소 생활 자체가 폭력으로 점철된 녀석이다. 형에게 입 닥치라고 소리 지르는 건 제이슨에겐 평범한 일상이었다.
《다시 질문하지. 나이트윙은 휴업이냐? 그. 남.자.가. 오늘 네 하는 짓거리를 두 눈으로 봤다면 엄청 실망했을 거야. 네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우면 옴짝달싹 못하는 널 대신해 아스널이 뛰어줬더군. 나 참... 한심해서. 코앞 거리에서 은행 강도가 날뛰고 있는데 넌 경찰서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고작 민원 전화나 받고 있더라? 지금도 마찬가지. 도주한 놈들을 때려잡을 생각은 안 하고 컴퓨터 모니터나 들여다보고 있음 안 되지.》 제이슨이 말하는「그 남자」가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 모르는 바 아니다. 따라서「그 남자」가 누굴 말하는 거냐 굳지 확인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어라, 제이슨. 비난 내용이 너무 상세한데. 혹시 지금 고담이 아니라 스타 시티에 와있는 거야?』 제이슨은 단칼에 부정했다. 《텔레비전 뉴스를 봤을 뿐이야. 내가 미쳤다고 스타 시티에 왜 가.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그렇군.』 딕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인마, 건너편 건물 꼭대기에서 나에게 삿대질하고 있는 거 여기서 전부 다 보이거든?』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에스키모인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시력은 그럭저럭 좋은 편이다. 뭣보다 제이슨은 일부러 그랬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게끔, 그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도 아니라고 잡아떼다니. 『듣는 귀가 있으니 자리를 바꿀게. 기다려.』 창문 블라인드 틈새로 밖을 쳐다보던 그레이슨은 탁 소리가 나게끔 핸드폰 폴더를 닫았다.
무거운 게 잔뜩 얹힌 상태에서 옥상으로 이어진 계단을 밟고 있는데 문자가 도착했다. 《더 얘기할 것도 없어. 네놈이 계속 미적거리면 내가 해결한다.》 자꾸 이마에 주름이 잡히려 한다. 딕 그레이슨은 양손을 사용해 버튼을 꾹꾹 눌러 답장했다. 《여기까지 와서 은행 강도를 잡겠다고? :) 우리 동생 너무 부지런한 거 아냐?》 제이슨은 간결하게 대꾸했다. 《ㅋ》 이 시건방진... 울컥한 딕이 초 집중하며 답장을 작성하고 있는데 제이슨 쪽이 더 버튼 조작이 빨랐다. 《은행 강도 얘기가 아님. 알고 있잖아?》 그리고 마무리로 엿을 날렸다. 《凸》 그가 대인배여서 다행이었다. 아니면 개념을 물 말아 잡순 동생을 붙잡아 그 잘난 머리 가죽을 벗겨버리겠다며 나이트윙 히어로 코스튬으로 갈아입은 뒤, 스타 시티 뒷골목을 이 잡듯이 온통 휘젓고 돌아다녔을 테니까.
비상문을 박차고 옥상에 도착한 그레이슨은 얼굴색이 변한 채 미친 듯이 단축 번호 5번을 눌러댔다. 신호는 끈질기게 갔지만 동생은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만 받지 않은 게 아니다. 어느새 고가수조 위에서 모습을 감추고 어둠에 스며들어 사라져버렸다.
Posted by 미야
2016/06/12 18:00
2016/06/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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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의 개입으로 은행 무장 점거와 인질극은 극적으로 막을 내렸으나 사건 자체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할 일이 산더미였다. 현장을 수습하고, 증거를 채집하고, 피해 상황을 집계하고, 목격자들의 진술을 받고, 벌써부터 난리법석을 떨어대는 보험사 손해사정사들의 수사 방해를 사전에 차단하고, 개떼처럼 짖어대는 언론을 구슬리며 적당히 응수해주고... 거기다 아스널은 모든 용의자를 때려눕히지도 않았다. 난리 중 방어선을 뚫고 도망한 범인은 적어도 둘. CCTV 화면을 분석하며 도주로를 파악하느라 다들 눈이 벌갰다. 밤이 짧았다.
『위층에서 커다랗게 폭음이 들리더군요. 강도들이 시키는대로 엉덩이를 깔고 바닥에 앉아있었는데 건물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을 정도였어요. 다들 놀라서 말도 못하고 침통하게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지요. 이젠 죽었구나 싶으니까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소크라테스는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빚진 닭 한 마리 갚아달라는 유언이라도 남겼는데 전 아무 말도 못 남기는 거잖아요. 소파 쿠션 안에 50달러 비상금 숨겨둔 건 영원히 비밀로 남겠구나, 젠장. 이러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옆에 있던 여자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더군요. 분위기 진짜 장난 아니었어요. 기둥에 깔려죽는 게 아니라 총에 맞아 죽을 거 같았으니까요. 뭐, 범인들도 심각하더군요. 진압부대가 들어왔다며 몇 명이 무기를 들고 허겁지겁 계단으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그 중에 하나는 이왕 망한 김에 다 같이 죽자며 우리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협박했어요.』
마이클 윈저는 인질로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방금 전 50대 여성의 간단한 인터뷰를 막 마쳤고, 지금은 학자금 융자를 상담하러 갔다가 벼락을 맞은 청년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형식에 맞게 이름과 거주지 주소, 연락처와 생년월일, 머리카락 색과 체격, 피부색 등의 신체적 특징을 먼저 적었고 그 다음으로는 은행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적었다.
볼펜으로 빈 칸을 채우는 일을 잠시 멈추고 청년에게 질문했다. 『혹시 범인들 얼굴을 보셨습니까?』 『까만 빛깔의 스키마스크를 쓰고 있었어요. 이 날씨에는 덥겠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죠.』 『모두 몇 명이던가요?』 『안 세어봤어요.』 청년은 손바닥으로 버석한 피부를 문지르며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그래도 다섯 보다는 많았을 거에요.』 앞서 진술을 마친 여성은 손가락을 깍지 낀 자세로 딱 잘라 일곱 명이었다고 대답했다.
『좋아요, 그 다음에는요?』 『에... 총을 든 자가 제 옆에서 훌쩍훌쩍 울던 여자의 멱살을 잡았어요. 죽이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단순히 울음을 그치게 만들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겁하게도 전 멱살이 잡힌 게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순간 여자가 애원하는 시선으로 내 쪽을 쳐다보더군요. 그런데 제가 뭘 어쩌겠어요.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요. 겁도 많아요. 싸움 같은 건 전혀 못 해요. 여자를 놓아주고 대신 남자인 날 붙잡으라는 말은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부탁하고 싶어도 입술에 풀이 발려진 것처럼 딱 붙어서 움직이지도 않더구먼요.』 남자의 뺨이 수척해졌다. 『그래서 눈을 감았어요.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넥타이를 매고 있지 않았음에도 숨이 막힌다며 매듭을 푸는 시늉을 했다. 『쾅 소리가 나자 그 여성분이 총에 맞아 죽었구나 생각했어요.』
천만 다행스럽게도 굉음의 정체는 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아니고 천장으로 반경 1미터의 둥그런 구멍이 뚫리는 소리였다. 깨진 벽돌조각과 같은 부산물들과 같이 레이저로 도려내진 구멍을 통해 아래로 떨어져 내린 아스널은 왼쪽 무릎을 구부린 자세 그대로 활시위에 화살을 세 개를 끼워 넣고는 조준도 채 하지 않고 성급히 활을 당겼다. 『와우! 적어도 제 눈엔 그렇게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눈 깜짝하는 사이에 스키 마스크를 뒤집어쓴 자들이 쓰러졌다. 『무슨 특수한 장치가 되어 있나 봐요. 뭔 놈의 화살이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도 날아갑디다.』 청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평범한 사람이고, 싸움은 쥐뿔도 모르고, 겁이 많다면서 그 와중에 고개를 뻣뻣이 세운 채 다 보고 있었단다. 『옆에서 억, 억, 억! 이러고 쓰러지니까 총을 든 범인이 여자를 방패처럼 세우고 기둥 뒤로 숨으려 했어요.』 천장에서 뛰어내렸던 아스널이 자세를 바로잡고는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찰떡이 벽에 붙는 찰진 소리가 났어요.』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화살은 C자형으로 휘어 날아가 범인의 이마 한 가운데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일반적인 화살촉이었음 머리가 둘로 쪼개어졌을 거야. 뇌수와 파편이 수박 찌꺼기처럼 사방에 날렸겠지. 실리콘 코팅 덕분에 두개골 골절로 끝났지만... 뭔 놈의 영웅이.」 장단을 맞춰주며 고개를 끄덕거리긴 했지만 속으로는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가던 범인을 동정했다. 아무리 여자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지만 꼭 이마를 노렸어야만 했을까. 「나라면 손을 노렸을텐데. 손가락을 전부 날려버리면 방아쇠도 다신 못 당길 것이고...」 겉으로는 뻥긋도 하지 않았지만 마이클은 잠시 그런 생각을 품었다.
작성하던 서류를 대충 정리하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어느새 자정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하품을 참으며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스크레칭을 했다. 오늘 하루는 충분히 월급 값을 했어. 착한 일 했네. 책상 서랍을 열쇠로 잠구고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늘 하던 버릇대로 흠집투성이의 시계 유리판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언제부터 경찰서 옥상이 흡연구역 역할을 떠맡게 되었는지는 불명이다. 4~5년 전에는 화장실이 흡연 장소로 애용되었지만 몇 명의 금연 성공자들이「너구리 소굴이 아닌 장소에서 시원하게 똥을 쌀 권리」를 주장하면서 장소가 변경되었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사실 경찰서 건물 자체가 시민의 보건과 위생 안전에 관한 어쩌고의 규정에 의거하여 법적으로 금연 건물이었다. 따라서 실내 흡연은 엄연히 금지되어 있다.
가장 한가한 시간이었음에도 붉게 점멸하는 작은 점이 몇 개 시야에 들어왔다. 부근으로 조명이 거의 없었기에 어둠에 잠긴 그들의 얼굴 생김새를 알아보기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간절한 연기 한 모금을 썩어가는 폐 안쪽으로 집어넣던 경찰관들은 서로에게 굳이 신경을 쓰지 않고 각자의 룰 위반 행위에 몰두했다. 마이클 윈저 또한 목례나 손 흔들기와 같은 행위를 생략한 채 적당한 간격으로 그 속에 스며들어갔다. 멀리서 누군가가 지은 죄를 자복하며 가래 끓는 소리로 콜록 기침을 터뜨렸다.
솔직히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한때 해비 스모커였던 시절이 분명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담배를 멀리하게 되었다. 특별히 금연을 하게 된 계기는 없었다. 귀찮아서 - 이유를 들자면 그 정도였다. 손가락 끝이 누렇게 색이 변하는게 싫었다던가, 잇몸이 약해졌다던가, 구강 악취가 심해졌다는 식의 현실적인 이유를 내걸지 않을 까닭도 없었으나... 담배를 피우려면 의자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세워 옥상까지 가야 한다는 점이 너무나 귀찮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담배를 끊고 난 다음에도 그의 옥상 출입은 여전했다는 부분이다. 「뭐, 여기선 눈치 안 보고 적당히 농땡이를 칠 수 있으니까.」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츄파춥스를 꺼낸 마이클은 흡족한 표정으로 막대 사탕을 입에 물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도로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배기가스 냄새가 맡아졌다. 뺨을 안으로 오므려 쪽쪽 소리가 나도록 단맛 강렬한 사탕을 빨면서 난간에 두 팔을 걸쳤다. 『아유, 이제 좀 살 것 같다.』 모처럼 쌍꺼풀 없는 그의 눈매가 예쁜 곡선을 그리며 구부러졌다.
그의 몫으로 떨어진 서류 작업은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은행 강도의 침입과 동시에 신속하게 비상벨을 울렸던 보안요원이 강도들에게 보복을 당해 흠신 두드려 맞은 탓에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쇄골과 코뼈가 부러졌고 왼쪽 안구의 출혈이 심각했다. 특히 눈 상태가 나빴다. 하필이면 범인이 내리꽂은 주먹이 보안요원의 눈두덩을 정확히 명중시킨 탓이다. 의사는 며칠 경과를 두고 봐야 실명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의료진들은 운이 나쁘면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며 그의 불운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겠노라 약조했다.
「그러니까 사람이 너무 성실하게 굴어도 문제라니까.」 쫍, 소리가 나게끔 사탕을 입 밖으로 빼냈다가 그걸 다시 혀로 살살 굴렸다. 「가족들에겐 이미 연락이 갔을 거고...」 진정제를 투여 받고 침대에 누워있을 환자에게 사건 정황을 따져 묻는 건 강력범죄 전단반에서 할 일이다. 일개 경관인 마이클이 해야 할 일은 사소한 것으로, 범죄 피해자에 대한 치료비를 일차적으로 시에서 부담을 하고 있기에 여기에 대한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예를 들어 의사의 진단서라던가, 피해 당사자의 동의서 같은 거 말이다. 여기서 동의서라 함은 치료비를 지원받음으로 시를 상대로 고소하지 않겠다 약속을 받아내는 걸 의미한다. 물론 그가 근무처인 내셔널 밴코프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건 자유다. 직접적으로 주먹질을 한 범인을 확정하면 놈을 상대로 민사소송도 가능하다. 대상이 시청이나 경찰과 같은 공공기관만 아니면 되었다. 도주한 용의자 체포와는 별개로 경찰국장은 이 부분에도 매우 신경을 썼다.
「어디 보자... 이제 자정이 막 지났군. 시간이 시간이지만 응급실은 문 열려 있겠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손목시계를 다시 흘끔거렸다. 야간근로를 끝마친 뒤 퇴근길에 겸사겸사 병원을 방문한다는 계획은 아예 머릿속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러라고 꼬봉을 두는 게지. 흐흐...」 마이클은 리처드 그레이슨을 살살 꼬드겨서 이용해먹을 작정이었다. 양심의 가책? 그런 건 100년 전 곰팡내 나는 중고 서적들과 같이 하여 헐값으로 팔아치워 버렸다. 기분전환, 기분전환. 어깨를 활짝 편 채로 운동부족으로 뻣뻣해진 몸통을 좌우방향으로 휘휘 돌렸다. 어느새 물고 있던 츕파춥스 캔디가 절반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럼 나머지는 짝퉁 딕에게 던지고, 나는 슬슬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근 준비나... 음? 잠깐만.」
어째서인지 길 건너편 건물 고가수조 위에 똑바로 서있는, 사람임이 거의 확실한 인영이 보였다. 고가수조? 담배를 피우기에는 영 적당하지 않은 장소다. 허깨비인가 싶어 눈을 깜빡였다. 더 자세히 보고자 마이클의 콧잔등으로 잔뜩 주름이 졌다. 자살 희망자인가. 글쎄다. 한밤중인데다 거리가 제법 있는 만큼 맨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었다. 지금으로서는 남자라는 거, 그리고 인상적이게도 머리에 붉은색 헬멧을 쓰고 있다는 것 정도의 단편적 지식밖에는 알 수 없었다.
Posted by 미야
2016/06/08 15:43
2016/06/0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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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으로 서둘러 가보자고 주장하는 - 사실은 졸라대는 후배의 뒷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갈겼다. 하여간 젊은 것들은 피가 절절 끓어서 문제다. 마이클의 눈에는 일찍 죽고 싶어 환장한 것처럼 보였다. 『인석아, 블뤼드헤이븐에선 아무도 안 가르쳐주든?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이야.』 젊음과 열정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 사실 그의 생각엔 일을 베베 꼬아놓는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마이클은 이 잘 생긴 후배가 왜 본거지인 블뤼드헤이븐에서 떨어져 나와 엉뚱한 스타 시티에서 헤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여간 저 녀석의 장점은 그저 훤칠한 생김새밖엔 없군.」 나중을 위해서라도 아는 정보통을 통해 넌지시 블뤼드헤이븐 내부에서 저 인간이 무슨 사단을 일으켰는지 파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어디로 가는 건데요? 선배.』 『어디긴 어디겠냐. 서로 가야지.』 『엣? 그러다 강도들이 전부 도망가면요.』 『해피엔딩이지.』 『에엣? 베드엔딩이 아니고요?』 『무슨 소리냐, 너. 은행 건물이 폭파되고 사람들이 다쳐야 베드엔딩이지. 인석은 당연한 것도 몰라요.』 나무라며 채 떼지 못한 눈곱을 정리했다.
유령의 집처럼 고요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경찰서 내부는 오히려 분주했다. 현장으로 다수의 인원이 빠져나가면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이 곱절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흡사 말벌의 공격을 받은 꿀벌의 벌통 같은지라 마이클과 딕 그레이슨을 보고도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깨를 치고 지나가도 미안하다 사과를 하지 않았다. 뭐, 기분은 더럽지만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통증을 호소하는 어깨를 툭툭 친 뒤, 마이클은 글자가 잔뜩 적힌 상황판은 무시하고 벽걸이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섰다.
계획이 어긋나 퇴로가 막힌 은행 강도들은 나름 필사적이었다. 《앞으로 1시간 43분 주도록 하겠다! 헬기와 조종사! 그리고 더블치즈베이컨 피자 열 다섯 판! 사이드 메뉴는 갈릭 트위스터다.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즉시 인질을 살해할 것이다. 제일 먼저 희생당할 어린양은 바로 이 여자다! 이제 1시간 42분 남았다.》 시커먼 스키 마스크를 뒤집어 쓴 범인이 겁에 질린 여직원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통통한 살집의 여직원은 너무 무서운 나머지 끽 소리 하나 내지 못한 채 굵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극적인 효과가 나게끔 비명 좀 질러줬으면 하고 범인이 그녀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찔렀는데 여자는 가엾게도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오히려 숨을 삼켰다. 카메라가 그런 여자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다. 눈물에 마스카라가 번져 흡사 판다 같았다.
벽걸이 TV의 스피커를 통해 확성기를 든 데이비슨 반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질을 풀어주고 항복하라!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그 즉시 마이클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아니, 그런다고 쟤네들이 착하게 말을 듣겠느냐고. 이 와중에 작정하고 밥 먹겠다는 애들인데.
그렇게 혀를 끌끌 차고 있는데 구석 데스크에서 전화 수화기를 든 채로 딕 앤더슨이 휘익 휘파람을 불어 그의 주의를 끌었다. 리처드 D 앤더슨. 애칭은 딕. 똑같이 딕이라는 애칭을 사용하는 리처드 그레이슨의 등장 이후로 마이클은 그를 원조 딕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원조 딕은 발끈했다. 「내가 원조면 그럼 쟤는 짝퉁 딕이냐?!」 원조 딕으로부터 손가락질까지 당한 짝퉁 딕은 실실 웃던 걸 멈추고 굉장히 기분 나빠했다. 하여 마이클은 두 명의 딕을 리처드 1번, 리처드 2번으로 부를 것을 고민 중이다.
손등으로 턱을 괸 채 딴 생각을 하고 있자 성격 급한 원조 딕이 손가락을 따악, 딱 튕겼다. 『헤이, 마이클! 이리 오라니까. 범인 중 하나가 크레이지 덤프래.』 그럴 리가 없다며 마이클은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뭐? 크레이지 덤프?! 농담이겠지. 45년형 받고 엊그제 감옥에 간 녀석이 은행에 왜 가 있어.』 원조 딕의 눈매가 바늘처럼 가늘어졌다. 『왜 갔겠냐. 아무렴 녀석이 은행 계좌를 새로 개설하러 거기 갔겠냐. 것보다, 너. 서장님 말씀 하나도 안 듣고 있었구나. 사흘 전에 블록 게이블에서 탈옥했다고 전체 집합시켜놓고 주의 줬잖아.』 『어... 음.』 『잘 났어, 진짜. 또 눈 뜨고 졸았구먼.』 수화기를 얼추 턱 밑에 낀 자세로 원조 딕이 그를 향해 수첩과 연필을 집어 던졌다.
수첩과 연필을 던졌다는 건 통화 내용을 대신 받아 적으라는 얘기다. 공짜 비서 취급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은 별다른 저항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괴발개발 급하게 휘갈긴 이름은 모두 아홉으로 이들은 모두 크레이지 덤프의 감옥 동기이거나, 사촌이거나, 동업자이거니,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관계일 것이다. 탈옥 사건에 연류가 되었을지는 아직 확정할 수 없다. 은행 강도 사건과의 연관성도 아직 모른다. 연필 끝을 세워 머리를 긁은 마이클은 그중에서 눈에 띄는 이름 하나를 발견하고 옆으로 점 하나를 꾸욱 찍었다.
루카스 모드. 나이는 서른 아홉. 별칭은 루모. 비쩍 마르고, 들쥐처럼 앞니가 돌출되었으며, 팔뚝에 비키니 차림새의 미녀를 문신한 멍청이다. 열 두살 무렵부터 생 양아치로 시작해서 폭력에, 주거지 불법 침입에, 불법약물 소지죄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다 마지막엔 장물 취급으로 쇠고랑을 찼다. 그게 대략 3년인가 4년 전일 거다.
제대로 다 받아 적었느냐 물어보지도 않고 원조 딕이 마이클로부터 수첩을 빼앗았다. 예절은 물 말아 잡수셨다. 『내셔널 밴코프에서 가장 가까운 피자 가게가 어디냐고? 씨발, 다들 살판 나셨군. 짜증나 미치겠네. 생각 중이라니까 기다려. 그러니까... 음. 더 빅스가 가까우려나? 맛은 로얄 페퍼가 더 좋기는 한데 은행 강도들 입맛 챙겨주기는 그렇잖아. 그런데 값은 누가 내고. 응? 몰라? 그런 대답이 어딨누. 이 와중에 시청에 문의하리?』 가만히 통화 내용을 엿듣고 있던 마이클이「더 빅스」보다「메모리즈 피자」가 가깝다고 훈수를 뒀다. 『메모리즈가 더 가깝댄다. 거기로 주문을 넣... 응? 콜라에 마취제를 타면 어떻겠느냐고? 그걸 왜 나에게 물어!』 바로 그 때 딕 앤더슨의 시선이 수첩에 찍힌 아주 작은 점에 머물렀다. 한 순간이나마 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딕 앤더슨은 여전히 수화기를 쥔 채로 짐짓 허리를 틀어 자세를 바꿨고, 그것으로 완전히 관심이 사라진 것 같았다. 어차피 쥐똥보다 더 의미가 없을, 흘려 찍은 작은 점이었다. 뭐랄까, 흡사 그건 문장 뒤에 습관처럼 찍힌 마침표와도 같아서 이게 뭐냐 물어보는 쪽이 이상했다.
잠시나마 눈빛이 달라진 사람은 또 한 명 더 있었다. 「뭐지. 두 사람만의 신호인가.」 겉으로는 입 꼬리를 당겨 핸섬한 미소를 짓고 있었음에도 파란 빛깔의 눈동자 위로 살얼음의 냉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블뤼드헤이븐 경찰 대학교를 졸업하고 경찰관으로 근무를 시작한지 이제 겨우 1년 4개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몸 추임새가 그들만의 특별한 신호가 될 수 있음을 짝퉁 - 딕 그레이슨은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바닥을 툭툭 걷어차거나, 입에 물고 있던 이쑤시개를 반으로 부러뜨리거나, 손가락으로 귀를 만지거나 하는 식이다. 버릇처럼 보이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사소한 몸짓이 사전 약속된 동작이라면 얘기가 사뭇 달랐다. 지난 2월에 마피아 조직으로 정보를 흘리는 것으로 적발된 부패경찰들도 비슷한 방식을 써먹었다. 그들의 신호는 테이크아웃 종이컵이었다. 다 사용한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이 아닌 책상 위에 놓는 날이면 그날 밤 늦은 시각에 어김없이 추적하기 힘든 익명의 번호로 전화 통화가 이루어지곤 했다.
생각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마이클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자신의 애송이 파트너로 시선을 던졌다. 『왜.』 『네? 아뇨... 별 것 아니에요, 선배님.』 황급히 변명하며 코를 긁었다. FBI에선 코를 만지는 걸 두고「거짓말에 대한 신체반응」이라고 한다. 당연히 마이클은 속지 않았다. 『아무 것도 아니긴, 인석아. 현장에 언제 가느냐고 묻고 싶어서 좀이 쑤시지?』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며 그가 히죽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 일을 워쩌나, 우짜나... 후후. 눈치로 보아 이미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은데.』 『네?』
별안간 TV 소리가 시끄러워졌다. 리포터가 뭐라고 다급히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화면은 회색의 연무로 온통 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카메라맨이 사래가 들린 것처럼 콜록대며 기침을 터뜨렸다. 《콜록, 켁! 연막탄입니다! 콜록! 방금 누군가 봉쇄된 은행 건물로 접근하... 컥! 케엑!》 그리고 마이클과 원조 딕, 짝퉁 딕 세 사람은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는 화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로빈후드가 쏘아올린 깃털 달린 화살이 아닌, 은백색으로 빛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그것이 갈고리 발톱처럼 생긴 걸 드러내며 매끄러운 벽면을 어렵지 않게 움켜쥐었다. 이윽고 붉은 빛이 점멸하였고 동시다발적으로 화약이 터지는 쾅 소리가 났다. 《모두 엎드려!》 기차 화통을 삶아 잡수신 데이비슨 반장이 경고를 하기가 무섭게 검정색과 붉은색으로 코스튬을 입은 자가 연무 속에서 튀어나와 뚫린 구멍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아스널!」 「저럴 바에야 정문으로 들어가지 왜 굳이 3층 높이에서?」 「피자 주문 넣기 전이라 다행이다. 휴우...」
각자 딴 생각을 하며 세 사람은 벽걸이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Posted by 미야
2016/06/02 10:30
2016/06/0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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