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절에 작심하고 귀신 이야기를 쓰는 나... 뭔가 이상하다. ※
딘은 망설임 없이 소금통의 뚜껑을 땄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귀신과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대고 씨불렁거리는 상황에선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소금병을 던졌다. 『이거나 먹어랏!』 하얀 가루가 빛나는 눈송이처럼 휘날리자 줄리의 유령이 곤란한 듯 몸을 뺐다. 잔뜩 찡그린 그녀의 얼굴이 필름이 씹힌 흑백 비디오 화면처럼 윤곽이 흐릿해졌다. 소금이 닿아 노이즈가 간 콧망울로 거뭇한 안개가 떠올랐다. 딘은 멈추지 않고 지포 라이터의 점화 장치를 당겼다. 찰칵 소리와 함께 한줄기 진실의 빛이 어둠을 물리쳤다. 작지만 위대한 불꽃이었다. 줄리의 먹먹한 눈동자 속으로 검은 피보라가 몰아쳤다.
《리들리이~!! 으아아~!! 당신이란 남자는~!!》 악에 받친 줄리의 절규에 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지금 날 남편의 이름으로 불렀어? 그건 진짜 싫다. 사진 속의 리들리 먼치 - 늘어진 삼겹살의 아저씨를 떠올린 그는 무의식중에 배 부분을 더듬거렸다. 최근 스트레스가 늘어 맥주를 지나치게 마시긴 했다. 그렇지만 내일 모레가 되면 스물 일곱 살이 되는 판국에 중년의 똥배를 걱정할 것 같냐. 울상을 지어가며 뱃가죽을 잡아당겨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살가죽이 얕게 잡혔다. 넘치는 지방에 놀라 다이어트를 염려할 단계는 분명 아니다. 『이렇게 날씬한데 내 어디가 당신 남편이라는 거야! 당신, 눈 뼜어?!』
《용서하지 않아~!!》 노성과 함께 단단한 물체가 딘의 다리를 쳤다. 아픔으로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부딪치는 소리를 그리 크지 않았지만 딘은 더 이상 똑바로 서있을 수 없었다. 제기랄, 공구 박스를 사전에 치워두는건데 실수했다. 「왜 저렇게 막무가내인 거야!」 불평을 해도 멈춰줄 것 같지는 않다. 모듬발로 두 걸음, 세 걸음 물러섰다. 그러다 실수로 어린이 장난감 나팔을 밟고 뒤로 벌렁 넘어졌다. 딱딱한 바닥에 정통으로 내던져진 등이 요란한 엠뷸런스 출동 요망 신호를 보내왔다. 컥 소리도 나지 않았다. 허파에 공기 대신 딱딱한 자갈이 가득 들어찬 느낌이었다. 콜록 기침하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팔꿈치에 힘을 주었다.
《조금만 더 빨리 눈치를 채고 병원으로 데려갔더라면...》 기겁을 해서 올려다보니 물기에 젖은 새파란 입술이 보였다. 만화속 스머프의 피부색이다. 볼 위로 새카만 눈물선이 그려졌다. 그걸 구태여 닦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딘은 흠칫해서 나오던 기침을 도로 삼켰다.
《레이몬드를 죽인 건 나야. 당신이 그랬지? 아이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라고. 열도 나고, 토하기도 하는 거라고. 또 뭐라고 그랬지? 그냥 감기일 거라고 했었던가... 아니, 내가 만든 참치 샌드위치가 상한 거라고 했었지. 그리고 날 비난했어. 살림도 못 하는 고약한 여편네라고... 할 줄 아는게 정확히 뭐가 있느냐며 소리를 질러댔지. 리들리... 리들리... 나를 봐. 당신 말을 믿었어. 당신 말대로 나는 못난 여자야. 암에 걸린 내 아기에게 해열제나 먹이고 재웠어. 밤새 토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불렀어. 당신 말대로 내가 레이몬드를 죽였어. 후회한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없어... 그렇게나 어린 내 아기가, 많이 예뻐해 주지도 못 했는데 죽어버렸어. 아아, 나 때문에... 리들리, 리들리... 나를 봐!》 줄리는 금방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악을 썼다. 후회한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 잘못했다고 빌어도 없던 일로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딘은 그녀의 험악한 외침이 집안에 가두려한 그들의 퇴마 의식에 대한 분노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저 말대로라면 이건 완전히 뿌리부터 방향을 잘못 짚었다.
순간 욱씬 하고 둔중한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뭐야, 그런 거였어?』 왜 이제야 아이를 병원에 데려왔느냐는 의사의 책망에 여자의 가슴이 무너진다. 시기를 놓쳐 제대로 된 치료조차 어렵다고 얘기한다. 순식간에 아이는 시든 화초로 변해가고 멀건 유동식조차 제 입으로 삼키지 못하게 된다. 고열을 내고 괴로워하는 아이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본다. 자식이 죽어가는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손톱을 물어뜯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다. 망연자실한 부모는 침대에 엎드려 운다. 불쌍한 내 아기,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사랑. 어디로도 날아갈 수 없는 비수는 결국 자신의 심장을 둘로 가르고 내장을 갈가리 헤집는다.
여자의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니, 흐르는 건 썩은 피요, 저주다. 얼굴 전체로 반 미치광이의 히죽거리는 웃음을 띠었다. 순간 엄청난 기세로 망가진 세탁기가 돌격해왔다. 딘은 필사적으로 펄쩍 뛰어 물러섰지만 이번엔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쾅 하고 이마로 불똥이 튀면서 잠시나마 의식이 흐릿해졌다. 대형 쇳덩이에 부딪친 허벅지가 대단히 얼얼했다. 엎어진 모습 그대로에서 딘은 손가락을 까딱거려 바닥을 긁었다. 끈적거리면서 동시에 쇠비린내가 나는 미끌거리는 액체가 손가락에 묻었다. 세탁기에서 흘러나온 기름일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우습게도. 이러다간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보단 촉촉하게 젖은 아빠의 목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네가 형이니까 새미를 잘 보살펴야 한다」 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그럴 거예요, 아빠. 우리 보물단지를 잘 지킬게요. 나는 멋진 형이니까요.
끙 소리를 내며 억지로 상체를 비틀었다. 『이제 알겠어. 왜 당신이 제임스 브리튼을 공격했는지. 그 역시 아들을 지키지 못 했으니까. 내 말이 맞지? 음주운전이나 하는 망나니였어도 당연히 보살펴야 할 아들이었는데 사고로 죽어버렸지. 그래서 당신은 제임스 브리튼에게 벌을 가한 거야.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괴롭혔어.』 같은 까닭으로 딘을 공격했다. 줄리는 그가 새미를 잘 보살피지 못 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 건 딘 본인... 아래 턱으로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딘은 훗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 깊은 속에서 어둠이 부풀어갔다. 숨이 끊길 때까지 소리를 질러대고 싶어진다. 지르고 또 질러서... 목이 쉬어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심장을 죄여대는 덩어리를 뱉어내고 싶었다. 딘은 차가운 공기를 억지로 빨아들였다. 그리고 토했다. 『이거 대단히 화나는 일이지만... 후우, 솔직히 인정할게. 줄리 당신 생각은 하나도 틀리지 않아. 나 역시 제임스 브리튼처럼 나의 빅 베이비를 제대로 지키진 못했어.』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삶을 살겠다던 동생을 억지로 이 세계로 다시금 끌어당겼다. 행방불명된 아빠를 같이 찾으러 가자고 졸라대지만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매일 밤 이불을 뒤집어쓰기 전에 생각해봤다. 정말이지 지독한 형이다. 결혼 반지를 선물하고 싶어하던 동생의 여자가 천장에 달라붙은 채 불이 붙었는데도 못난이 형은 어찌할 바 모르고 보고만 있었다. 도와야 했는데 돕지 않았다. 불 붙은 제시카를 그곳에 내버려 두었다. 그로 인해 동생이 죽도록 아파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위장이 따끔따끔 조여들었다.
결정적으로. 동생으로부터 아버지를 빼앗았다. 딘의 목숨을 담보로... 아빠가 악마와 계약했다. 존은 지옥에 있다. 그 때문에. 딘 때문에.
가끔씩 꿈속에서 등을 돌리고 선 샘을 보곤 한다. 샘은 괴롭게 울고 있다. 그럴 적마다 딘은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도와주고 싶었다. 확실히 붙잡고 꽉 껴안아 팔 안에 가두려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럴 수 없었다. 꿈속에서 동생은 단호하게 그를 거부하며 원망의 말을 퍼붓곤 했다. 형 때문에... 다 딘 때문이야. 이 나쁜 놈아. 내뻗은 팔이 도중에서 힘을 잃고 스르륵 떨어진다. 발끝에서도 힘이 빠져나간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용서해주겠니? 잘못했다고 빌면... 도로 웃어줄테야? 몸이 아파서가 아니다.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위로 솟구쳤다. 줄리의 절망... 그것은 곧 딘의 절망이었다.
《아무리 후회해도 용서받을 수 없어...》 그녀가 내뿜은 서슬 퍼런 호흡이 강하게 딘의 뺨을 때리듯이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딘은 자신의 몸을 절반은 찍어누르고 있는 세탁기를 어떻게든 밀어보고자 했다. 힘이 다 해서인가. 망할 것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줄리의 얼굴이 점차 가깝게 다가왔다. 흐릿해진 눈으로 그녀가 딘을 쏘아보았다. 불편한 공허로 가득차있고, 모든 것을 빨아당겨 믹서기로 갈아버리는 잔혹함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눈동자였다. 이제 곧 끝장을 내어버리겠다며, 물에 젖어 쭈글해진 손을 뻗었다.
괴롭다. 주체할 수 없이 감정이 북받쳐 딘은 눈을 감았다.
『그래도 난 당신을 용서해줄게.』 《뭐?》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줄리가 반문했다. 《지금... 뭐라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니까 당신도 듣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해. 다시 말해줄까? 용서해줄게.』 믿기지 않는다며 줄리의 고개가 좌우로 갸웃 움직였다. 《용서한다고?》 『백만 번의 백만 번까지 용서할게. 나에게 그럴 자격이 과연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당신을 용서해줄게. 더 이상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줄게. 내가 간절히 듣고 싶은 말이니까... 당신에게도 말해주는 거야.』 《아아아...!!》 『용서해줄게.』
어둠 속에서 그의 거친 숨소리와 흐느끼는 여자의 호흡이 하나로 동화되었다. 하느님, 하느님... 이렇게나 한심한 우리들도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콧속으로 한가닥 감정이 빠져나갔다.
딘은 다시 라이터를 켰다. 그것은 뭐랄까, 죄를 뉘우치며 바치는 헌신제의 예물처럼 빛났다. 『레이몬드를 떠올려봐. 그 아이가 마지막 가는 길에 당신을 원망했었어? 엄마가 싫다고, 엄마따윈 보기도 싫다고 그랬어? 그건 아닐 걸.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무어라 말해주었지?』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엄마, 울지 말라고...》 『잘 됐네. 당신은 이미 용서받았어.』 《아아...》 『그러니까 웃으면서 가. 눈물 자국을 지우고 아들에게로 돌아가는 거야.』 여자가 주저하며 되물었다. 《가도 되나요...》 『응. 가서 으스러지게 아들을 안아줘.』
메시지 녹음 카드를 펼쳤다. 생일을 축하한다며 밝게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재생되었다. 그 하단부로 라이터의 불꽃을 가져갔다. 처음에는 글자들이, 다음으로는 소리가 지워졌다. 손가락이 뜨거워졌다. 딘은 불 붙은 카드를 바닥으로 던졌다. 줄리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휘어진 가느다란 목덜미가 굉장히 쓸쓸해 보인다고 딘은 생각했다. 여인은 두손을 깍지낀 채 달빛 가득한 하늘가를 상상하며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불타올랐다. 반딧불이처럼 조각조각 빛나며 최후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통곡은 멎었다.
『딘. 의사 선생님에게 안 혼났어?』 『혼났어.』 『무어라 거짓말했어? 지붕에서 떨어졌다고 해도 몰골이 하도 흉악해서 안 믿어줬을 것 같은데.』 『오토바이를 과속으로 운전했다가 쪽 팔리게 도랑에서 굴렀다고 했어. 창피하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빌었더니 간호사가 숨 죽여가며 웃더라.』 동생이 내어민 살구맛 푸딩에 스푼을 힘차게 찔러 넣으면서 딘은 불평했다. 거 참, 구를 수도 있는 거지! 엉덩이에 항생제 주사기를 꽂으면서까지 신나게 웃을 건 또 뭐람. 아무래도 거짓말을 너무 실감나게 했던 것 같다. 앞으론 안전 운전 하시라며「5분 빨리 가려다 50년 빨리 간다」스티커까지 내미는 걸 보고 딘은 현기증을 느꼈다. 망할 스티커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지만 분통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진짜로 바보 라이더인줄 아나. 구역질 나도록 단 맛이 나는 푸딩을 숟가락 채 쪽쪽 빨면서 그래서 딘은 인상을 쉽게 펴지 못했다.
『그래도 그만해서 다행이야. 종아리 꿰맨 곳도 금방 아물 거라고 했고.』 『아아.』 『하지만 당분간 엑셀레이터 밟는 일은 무리겠지. 이힛!』 『얌마!』 임팔라는 이제 내꺼다~ 해가며 키득 웃는 동생을 째릿 노려보며 푸딩 포장지를 던졌다. 그래봤자 그의 빅 베이비는 느긋한 동작으로 날아오는 쓰레기를 가볍게 튕겨내고 의기양양해 했다. 사실 그는 형의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었다는 것보단 녹초가 된 딘을 마치 동생인양 끌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만세를 불러대는 것 같았다. 동생과 형의 역할 역전은 샘에겐 대단히 생소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지난 밤엔 모텔에서 출입구 가까이 침대를 재빨리 자기가 차지하곤 가슴을 팡팡 두드려대며 흐믓해 했다.「안전한 방구석으로 들어가고 비켜. 거긴 내 침대니까 당장 내려와!」라고 딘이 호통을 쳤음에도 팔짱을 낀 자세에서 도리질했다.
『그거 알아? 형의 몸이 다 나을 때까진 내가 보스야.』 『잘도 기어 오른다. 새미? 그러다 형에게 한 방 맞는 수가 있어.』 『에이, 어깨가 아픈데 주먹질이 가능해?』 『집념으로 못 할 일은 없어.』 『그럼 그 대단한 집념으로 성질부터 삭히고 자동차 열쇠나 이리 던지셔.』 결국 딘은 끓어오르는 억장을 참으며 조수석에 몸을 구겨넣어야 했다. 『어쩌다 내가 이런 팔자가...』 『좋잖아? 딘 어린이.』 『새미이~! 자꾸 그러면 내일 아침 네 팬티에 겨자가 발려지게 될 걸.』 『그럼 난 형의 런닝으로 고춧가루를 뿌려놓을 거야.』 『어쭈?』 『자자, 그만 투덜거리고 눈이나 붙여. 형이 좋아하는 메탈리카 음악 틀어줄게.』
메탈리카 좋아하네. 불평하며 단단히 팔짱을 꼈다. 약 기운 탓에 졸음이 쏟아졌다. 부릉 하고 엔진 돌아가는 소음이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동생이 운전하는 차속에서 깊은 잠속에 빠져들었다.
아아, 저편에서 줄리가 곰인형을 안은 레이몬드랑 같이 해서 손을 흔들었다.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즐거워보여 딘은 안녕~ 하고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Posted by 미야
2006/12/25 15:30
2006/12/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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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꼬여 비틀거린 것뿐인데 장소가 바뀌어 어느덧 좁은 벽장 속이었다.《졸음에 겨워 잠시 눈 감았다 도로 떴더니 관속이었습니다》버전보다 발톱의 때 정도만큼만 괜찮았다고 할까. 생으로 매장당했다는 공포감에 머리카락이 삐죽 섰다. 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채 감추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장소가 협소한 만큼 어깨를 돌리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건조하고, 어둡고, 좁고, 오래된 좀약 냄새가 나고... 먼지가 소복히 내려앉은 선반 위로「반송 요망」이라는 노란색 스티커가 붙은 상자가 하나 보였다. 사이즈가 맞지 않은 신발을 반품하겠다고 해놓고 아마도 까마득히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아울러 세탁하여 다림질까지 마친 와이셔츠를 포장했을 것이 분명한 투명 비닐이 몇 개, 세탁소에서 가져왔을 일회용 옷걸이가 두 개 보였다. 옷걸이를 잡았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한기가 몰려와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호흡이 빨라져 당장에라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현기증에 어지러움, 구토, 졸도... 샘은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며 정신을 놓지 않으려 기를 썼다. 『안돼! 제발 이러지 마. 난 좁고, 어두운 건 질색이란 말이야!』 순간 천장에 달린 노란 빛깔의 꼬마 전구가 자동으로 팟 켜지면서 시야가 환해졌다.
어랍쇼. 이건 또 무슨 조화란 말입니까. 어둠이 무섭다고 했더니 손수 불을 켜주는 친절한 유령도 있답디까. 이거, 만우절 농담 맞죠?
기절했다 방금 전에 깨어난 사람처럼 신음했다. 불안한 시선으로 사방을 곁눈질하며 다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다음으로 이어질 극악의 상황을 나름대로 상상하며 이를 악물었다. 머리 위로 석고 보드가 떨어진다거나, 길게 늘어난 옷걸이가 흉기로 돌변하여 옆구리를 찔러댄다거나... 긴장하여 링 위로 올라간 권투 선수인양 두 주먹을 방어하듯 올렸다. 『덤벼라, 귀신아!』 화답하듯 작은 곰 인형 하나가 품 속으로 뚝 하고 떨어졌다.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란 샘은 코가 아닌 입으로 호흡하면서 폭주하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어떻게든 조절하고자 기를 썼다.
《샘! 샘!》 한편 벽장 바깥에선 난리가 났다. 와장창 하고 뭔가가 깨졌다. 이리저리 도망치던 딘이 쌍년, 개년, 어쩌고 하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고 있었다. 이번엔 제법 무게감 있는게 떨어졌다. 샘은 귀를 바짝 세우고 바깥 상황을 살폈다. 금속성의 울림으로 보아 토스터기, 아니면 다리미다. 《걱정할 것 없어. 형이 꺼내줄게! 형이 다 알아서 할테니까~!! 나만 믿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뛰는 모양이다. 딘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가 급속도로 멀어졌다. 《샘! 제발 무사하다고 말해줘! 샘! 임마! 새미~!!》 무거운 가구가 질질 끌리는 기척이 들려오면서 딘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대낮에 미친 개와 붙어먹을 쌍년아! 내 동생을 당장 돌려주지 않으면 맹세코 널 가만두지 않을테다! 네년의 머리통을 두들겨패주고, 십자 드라이버로 거기를 마구 들쑤셔줄 거야! 그러니까 내놓으란 말이닷! 내 동생 돌려줘!! 듣고 있어?! 이 잡년아!》 이어 특대형 주사바늘에 마구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큰소리를 질렀다.
샘은 무서워졌다. 딘이 이성을 잃었다. 이미 화장하여 재가 되어버린 마당에 두들겨댈 머리통이 어디에 남았다고 그런 끔찍한 욕설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벽장문이 쿵 소리를 내며 휘어졌다. 그가 체중을 실어 전속력으로 부딪쳐오고 있다. 이건 완전히 괴수다. 술 취한 코끼리다. 반 미치광이처럼 손바닥으로 벽장을 세게 두드리더니 영 안되겠다 싶었던지 다친 어깨로 쿵쿵 찧기 시작했다. 계속 저러다간 온실 유리창에 날개를 부딪치고 죽은 카나리아가 되어버릴 거다. 그 전에 말려야 한다. 샘은 침을 꿀꺽 삼켰다.
『딘? 제발 진정해! 나는 안전해.』 오히려 너무 안전해서 황송할 지경이다. 여기서 샘은 확신했다. 줄리는 샘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보호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벽장 속에 감췄다. 어둠이 무섭다고 하니까 친절하게 불을 켜주었다. 겁에 질려 앙앙 울음을 터뜨릴까 싶어 장난감 인형도 내밀었다. 『애 취급이라는 점에선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테디 곰 인형을 내려다본 샘은 작게 중얼거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샘의 대답을 듣고 딘이 만세 삼창을 불러댔다. 《어디 다친 거 아니지? 괜찮은 거 맞지? 됐어! 다행이야! 살았어!》 살긴 뭐가 살았냐. 길이 30m의 전나무가 통째로 쓰러지는 듯한 굉음에 샘은 펄쩍 뛰었다. 그것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나 악을 쓰던 딘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는 걸 봐선 제대로 먹혀 들어간 것은 분명하다. 신음 소리도 못낼 정도인가 싶어 벽장문에 귀를 바짝 들이대고 기척을 살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머릿속으로 불길한 검은 색의 잉크가 번져갔다.
『딘! 딘! 제발 살았다고 대답해줘! 죽으면 안돼!』 《으윽! 안 죽었어... 새미. 아무리 내가 나쁜 놈이라도 멋대로 장사까진 치루지는 마.》 『아아,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치만 형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더하기 호흡 소리가 엉망진창으로 거칠어졌다. 이건 흡사 대형 트럭이 줄지어 지나가는 고속도로에 갇힌 작은 사슴 같다. 밤새도록 이리저리 뛰다가 결국은 트럭에 치여... 가슴이 뜨거워짐과 동시에 죄어들었다. 샘은 주먹으로 문짝을 힘 주어 후려쳤다.
『딘! 잘 들어! 여기서 당장 날 꺼내겠다는 생각은 치워!』 《뭐?》 『내 말대로 해!』 《널 두고 가진 않아! 아니, 갈 수 없어! 나 혼자선 안 가! 못 가!》 『날 구하고 싶다면 그래야만 해. 혼자 가는 거야!』 《싫어, 새미! 같이 가! 형이랑 같이 가자! 응?!》
상황이 달랐다면 샘은 마구 웃음을 터뜨렸을 거다. 무서워서 화장실에 혼자 못 가겠다며 어리광을 부리는 일곱 살짜리 어린애의 대사를 읊고 있다는 걸 지금의 딘은 알고 있을까? 『알았다면 쪽팔려서 죽으려 했을 걸.』 샘은 무척이나 피곤한 듯 가냘픈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눈에서 열이 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따끈해진 안구를 지긋이 눌러댔다.
『딘? 캔자스의 옛날 우리집을 떠올려봐.』 《뭐? 갑자기 뜬금없이 그게 뭔 소리여?!》 『내가 위험에 처한 여자의 대한 악몽을 꿨어. 그래서 우리가 어린 시절에 살던 그 집으로 연방요원인 것처럼 속이고 찾아갔었잖아. 기억나? 우리가 초인종을 누르고 집 구경을 해도 되느냐고 인사하자 거기 살던 여자가 우리들 어렸을 적의 사진을 집 정리를 하다 말고 찾아냈다고 하면서 웃었어.』 《아!》 『바로 그거야.』 샘은 벽장문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건너편에 있을 딘도 그와 마찬가지로 문짝으로 손을 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건 확신이었다. 절대로 그럴 리 없겠지만 딘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샘은 눈을 감은 채 나무결을 쓰다듬었다. 이유 없이 손가락이 떨렸다. 『딘? 지하실이야. 우리가 찾던 해답은 지하실에 있어.』
옛날 사람들이 이사를 가면서 필요없는 가재도구 일부를 버리고 떠난다. 만사가 깔끔한 당신은 쓰레기 수거업체를 불러 잡동사니 일체를 몽땅 쓸어가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전화기를 붙들고「기꺼이 그 대금을 신용카드로 지불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굴러다니는 정체불명의 상자를 지하실에 처박아두는 편을 선택한다. 운이 좋으면 쥐들이 몽땅 쏠아버릴 것이고, 그보다 운이 덜 좋아도 곰팡이가 300년에 걸쳐 야금야금 먹어치울 것이다. 행여 박테리아에 내성이 생겨 썩지 않는다고 해도 당장 눈앞에서 거슬리지 않으니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다. 상자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게 뭐람. 구석 자리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없는 물건처럼 취급당하며 모두에게서 잊혀져간다. 안녕, 옛날에 살던 사람들이어. 입주민들은 손바닥을 털고 계단을 올라간다.
깨닫는 바가 있었는지 딘이 쿵, 하고 주먹으로 벽장문을 때렸다. 《알았다, 새미. 형 혼자 갔다 올게.》 『응, 그동안 난 여기서 기다릴게.』 《무섭다고 징징거리면 안된다.》 『형이야말로 무섭다고 바지에 오줌 지리면 안돼.』 《그럼 있다 보자.》 『다녀와.』 그리고 동생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망할 권총을 형이 계속 가지고 있게 할 걸 그랬어.
윗옷의 깃을 꼭 끌어당긴 딘은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 앞에서 잠시 심호흡했다. 절대로 허둥대면 안된다. 허둥거린다는 건 곧 정신이 산만해진다는 것이고, 정신이 산만하다는 건 곧바로 실수할 확률이 커진다는 걸 의미했다. 여기서의 실수는 어쩌다 커피잔에 설탕 대신 소금을 넣는 수준이 아니다. 당연히 술에 취한 평사원이 사장님의 머리 가발에 대한 우스개 소리를 지껄이는 수준도 아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실수다. 그것도 옵션으로 금송아지 같은 동생의 목숨까지 끼어 있다. 이 판국에 과연 도움이 되어줄지 심히 의심스러운 소금통을 꺼내들고 손잡이를 돌렸다. 굳게 잠겨져 꼼짝도 하지 않으면 어쩌나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손잡이는 부드러운 쇠붙이 소리를 내고 옆으로 돌아갔다.
『후욱...』 맨 처음의 감상은 곰팡이 냄새가 심하다는 것. 두 번째 감상은 어둠으로 인해 움직임이 결코 쉽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모를 행운을 바라며 전등 스위치로 손을 가져갔다. 오오, 전구의 불빛이 층계참과 그 아래의 계단을 비췄다. 그는 뛸 듯이 기뻤다. 두꺼운 합판으로 만든 열 개의 층계참을 내려다보며「내일 당장 교회로 가서 헌금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조심조심 한 걸음에 하나씩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자칫 삽이나 몽둥이가 날아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어쩌면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이 허공에서 다리를 잡아챌 수도 있었다. 넘어져 구르는 날엔 목이 부러진 자기 뿐만이 아니라 벽장에 갇힌 동생도 같이 장사지내야 한다. 긴장감 때문에 호흡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계단을 밝고 바닥에 내려서면서 왼쪽에서부터 오른편을 한눈에 죽 훑었다.
기름을 흘린 얼룩이 있다. 오른쪽 벽으로 플라스틱 재질의 쓰레기통이 있고 등받이가 부러진 의자도 하나 보였다. 작동이 될지 의심스러운 세탁기도 하나 놓여져 있었는데 걸레로밖엔 안 보이는 천뭉치들이 들어간 빨래 바구니와 세트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5년 이상은 지하실에서 썩었다. 『이거 대단히 난감하구먼.』 고개를 돌려 지상의 부드러운 빛을 쳐다봤다. 그래봤자 겨우 계단 10개를 내려왔을 뿐인데 수백 미터는 족히 내려온 듯한 기분이었다. 진저리를 치고 다시 앞을 봤다. 여기서 내가 과연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부르르 몸이 떨렸다. 텅 비어 있는 수납 선반이 대단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젠장!』 넓지도 않은 지하실에서 벌써부터 길을 잃은 것 같다. 사방팔방으로 무대를 휘젖는 무용수처럼 돌면서 주변을 살폈다. 상자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손잡이가 망가진 옷장이라던가... 공구 박스를 하나 찾아냈다. 순철로 만들어진 망치가 있었으면 하고 내심 바랬는데 속상하게스리 상자는 텅 비어있었다. 하여간 무엇 하나 도움이 안 되어준다. 얼굴을 찡그리며 도로 뚜껑을 닫았다. 『어디에 숨었냐, 빨리 나와라.』 밀폐된 공간에서 자신의 숨소리가 한층 더 크게 울렸다.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더 안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옳커니! 전구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비닐 천으로 대충 덮여진 더미가 하나 보였다. 울퉁불퉁한 겉가죽만 보자면 10년에 걸쳐 모은 신문지 더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딘은 그것이 단순한 신문지 더미가 아니라는 것에 100달러를 걸었다. 마침내 찾았다? 동공이 팽창하는 기분이다. 속이 울렁거리는 걸 참으며 비닐을 치웠다.
『빙고!』 밀봉조차 하지 않은 두 개의 상자가 입을 벌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확인을 위해 첫 번째 상자로 재빨리 손을 넣어 맨 위에 놓여진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가족 사진이었다. 손가락을 빨고 있는 사내 아이를 아버지가 안고 있다. 그 옆에서 부인이 웃고 있다. 먼치 일가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 애가 있었어? 눈이 비비며 액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줄리를 닮은 아이다. 쌍커풀에 커다란 아몬드형 눈모양이 제 엄마와 판박이다. 액자를 던지고 다른 물건을 꺼내봤다. 이번엔 벽걸이용 삼단 사진틀이 나왔다.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줄리, 카우보이 모자를 쓴 리들리, 곰인형을 안고 있는 사내 아이... 사진 오른편으로 1992. 8. 18 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아마도 여름 휴가때 찍은 스냅 사진인 듯했다. 줄리는 굉장히 멋지다. 모델처럼 몸매가 늘씬하다. 똥배가 나온 리들리 먼치는 그런 아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대단히 멋적은 표정으로 배를 힘껏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인지라 늘어진 삼겹살은 수습이 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다리를 갈색 머리카락의 꼬마 아이가 기뻐 죽는다 껴안고 있다.
『이상하네. 샘이 이들 부부에게 아이가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추측하자면 나쁜 일이 있어 일찍 죽은 아이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 부부에게 아이가 있었다는 얘기가 쏙 들어갔을 리가 없다. 창백한 피부가 다소 병적이었다. 그치만 웃는 표정이 너무나 근사해서 아이가 잘못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뒤뚱거리며 뛰는 아이의 뒷모습 사진도 나왔다. 펑퍼짐한 궁둥이가 너무나 귀엽다. 줄리가 그런 아이를 따라 뛰어가고 있다. 아빠가 호스로 장난스레 물을 뿌려댔다. 밝고 행복해 보인다. 아이를 껴안고 마음껏 뺨을 부비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딘은 가볍게 전율했다.
레이먼드 먼치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엄마와 아빠가.
이들 가족이 지금은 모두 죽고 없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액자를 이리저리 뒤집어보던 딘은 표정을 달리하고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수상한 점 하나 없다고 해도. 만일을 위해 모조리 태워버릴 작정이었다. 내용물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두 개의 상자 모두를 거꾸로 뒤집어 털었다. 상자 속 물건은 애들 장난감과 옷가지가 다수였다. 바람이 빠진 공에다 인형 옷처럼 생긴 청바지. 그리고 작은 운동화가 나왔다. 장난감 노랑 나팔에 섞여 두툼한 두께의 카드도 떨어졌다. 꽃과 케이크 그림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생일 축하 카드인 것 같았다. 딘은 인상을 찡그린 채 카드를 집어들고 좌우로 펼쳤다. 동시에 녹음된 여자의 음성이 튀어나왔다.
《사랑하는 레이먼드, 사랑하는 아들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해피 버스데이 디어 마이 선~♪ 내 사랑하는 아들, 세 살이 된 걸 축하합니다~♬》
한때 유행했던 사운드 녹음 카드다. 작은 칩을 넣어 녹음된 목소리를 수은 건전지로 재생시킨다. 당시엔 기술이 부족해서 1분 이상의 녹음은 불가능했지만 짧은 생일 축하 노래 정도는 가뿐히 입력시킬 수 있었다. 어버이날 축하 메시지라던가, 발렌타인 사랑의 메시지 같은 걸 개인적으로 녹음해서 선물하는게 90년대 초반엔 크게 유행했었다. 값이 만만치 않았지만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선물을 원했던 사람들은 초미니 1분짜리 녹음기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딘은 침울한 표정으로 카드를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 녹음된 젊은 여자의 음성이 다시 반복되어 흘러나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레이몬드... 생일 축하합니다.
저장된 노래 메시지가 끝남과 동시에 지하실 계단참의 전구가 콰직 소리를 내고 깨졌다. 숨을 멈춘 딘은 가까스로 눈동자만 옆으로 돌렸다. 어느새 새카만 어둠이 그의 어깨를 휘감았다. 소름이 팔뚝을 타고 올라와 목덜미까지 점령했다. 후우, 하고 누군가 차가운 숨을 귓가에 대고 불어댔다.
《후회한다고 용서받을 수 있을 거 같아...?》
하느님, 맙소사.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간질여댔다.
Posted by 미야
2006/12/2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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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at 2006/12/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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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좋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왔고, 하우스 박사님 원츄이고, 지난 6월에 샀던 청바지의 허리 단추를 드디어 채울 수 있게 되었고... (만세, 6cm 줄였어!)
그런데도넌고등어자반정리를독촉했다이거지.어쩜.
14편에서 중지된 채 어느새 잊혀졌다는 걸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그치만 나도 놀아야 할 거 아니냐! (버럭!) 연말인데 모니터 앞에 앉아 꼴꼴한 짓을 하란 말이냐?! 기브 앤드 테이크 정신에 입각하여 누나에게 맛있는 당근을 달란 말이다! 저번처럼 젠슨이 결혼 축하노래 부르는 것 같은 거 보내줘어~ 정 뭐하면 새미 누드 합성 사진이라도...
Posted by 미야
2006/12/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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