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sted at 2007/05/2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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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군부대 이전 반대 시위에서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한 사과문이 올라왔다. 그런데 문제는 <부대이전 예정지로 발표된 동네의 몇몇 주민들이 계획에 없던 돼지를 도살하는 포퍼먼스를 벌였다> 라는 표현이다. 계획에 없었다면 돼지는 누가, 언제, 어떻게 가지고 왔느냐는 것이다. 찢어죽일 생각이었으니까 데리고 온 것이고, 이것은 다시 말해 계획적이라는 얘기다. 아니면 그냥 길바닥에 풀어놓고 꿀꿀거리고 울게 할 생각이었는데 도중에 마음에 바뀌었다? 그렇담 다리를 묶은 밧줄은 땅에서 솟았냐.
- 손바닥으로 하늘 가린다, 야. 누가 봐도 계획적이잖아.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범인이 정신이상이다, 아니다를 놓고 갑을박론이 벌어졌을 적에 논점의 핵심은 바로 <인화성 물질을 구입하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라는 거였다. 계획을 했으니까 인화성 물질을 돈을 주고 구입했고, 이러한 계획성은 정신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영수증 때문에 법정은 가해자의 정신이상 주장을 단칼에 부정했다.
사과문을 올린 건 다행인데 말이지. 그래도 나쁜 짓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지. 퓽. 근세초 유럽에서나 동물 학대를 하면서 흥겨워했지, 현대는 아니라고. 마디그라 축제날 마지막에 고양이를 참살하던 시절은 이미 끝났단 말이야.
Posted by 미야
2007/05/24 15:36
2007/05/2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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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다음 편은《bloody blast》입니다. 애쉬가 죽은데다 로드 하우스까지 불탔으니 설정을 바꾸어야 할 터인데 큰일났습니다. 어허허! 제작진은 애쉬도 살려내라, 살려내라~!! ※
아침이 되기 전까지 주 경계선을 무조건 넘어야 한다.경찰 사칭죄는 심각한 범죄다. 가택 침입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단히 중대한 범죄다. 샘은 그 커다란 손을 호주머니로 찔러넣은 채 등을 둥글게 구부렸다. 자세만 보자면 겁에 질린 고슴도치 새끼다. 근방으로 대화를 엿들을 사람도 없건만 소곤대며 목소리를 낮췄다. 『어때, 딘. 수배령이 내려질 것 같아?』 『아마도. 우리가 진짜 경찰이 아니라는게 들통나는 건 시간 문제야.』
아내는 보란 듯이 기절해있고, 거실 가재도구는 엉망진창이고, 먼지를 뒤집어쓴 시커먼 사내 둘이 옷장에서 튀어나온다. 캐빈 쉐퍼드는 당장에라도 심장마비를 일으키려 한다. 허나 관찰력이 뛰어난 그는 로버트 보이든이라는 가명의 신분증 수첩을 재빨리 기억해낸다. 윈체스터 형제들에겐 행운이다. 「무, 무슨 일이죠, 형사님들?」 딘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이야기를 지어낸다. 「집이 비어있다고 생각하고 침입했던 모양입니다. 중산층 가정집을 재미삼아 부수는 악동들이예요. 질 나쁜 깡패들이죠.」 키 작은 형사가 널부러져 있는 여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키가 큰 쪽은 전화기를 들어 직접 911을 호출한다. 캐빈은 그제서야 긴장을 조금 늦추고 부인의 손을 잡아준다. 「조심하셔야 해요. 침입자가 집안에 있지 않다는 건 확인했지만 그들이 아직 바깥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다시 근방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캐빈 쉐퍼드 씨? 엠뷸런스가 오기 전까지 부인 곁을 떠나지 마세요. 절대로요!」 다행히 캐빈 쉐퍼드는 순종적이었다. 사내는 반드시 그러겠노라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밖을 살피고 오겠다는 두 남자의 거짓말을 철썩 같이 믿으며, 전속력으로 달려올 경광등 소리를 기다렸다.
1분 1초가 아깝다. 딘은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서두르자, 샘. 신고를 받고나서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의 평균 시간은 4분이야.』 『재니스는 괜찮을까.』 『내가 살펴봤을 적엔 맥박이니 하는 것들은 정상이었어. 깨어나면 아마 7살 이전의 기억들은 송두리째 날아갔겠지만... 그 정도면 썩 나쁘진 않잖아? 맹장을 도려냈다고 치면 될 거다.』 거기까지 말한 딘은 샘에게 빨리 차에 올라타라고 신호했다.
『내가 운전할게. 형은 지금 다쳤잖아. 지금도 다리를 절고 있고.』 『시끄러.』 『맙소사, 딘!. 그 몸으로 운전을 하고 싶어?』 『하고 싶어.』 『그거 알아? 형은 진짜지, 진짜지 얼간이야!』
결국 샘과 딘은 누가 운전대를 잡을 것인가를 두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어딘지 모르게 학습 능력이 의심스런 딘은 언제나처럼 가위를 내밀었다. 운을 믿는 건지, 아니면 운을 전혀 믿지 않는 건지 그 진의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딘은 지금 대단히 아파보였고, 샘은 형의 운을 좋은 방향으로 전적으로 밀어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럼 네가 먼저. 교대는 2시간 뒤에.』 역시나 아팠던 거다. 별다른 반항 없이 동생에게 선뜻 임팔라의 열쇠를 던져준 딘은 조수석으로 가서 쓰러지듯 앉았다. 방어적으로 팔짱부터 끼는 자세는 몸이 많이 아프다는 걸 의미한다. 딘은 그렇게 하면 고통이 덜하다고 동생에게 가르쳐왔다. 샘은 조수석 수납장 안으로 진통제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허벅지의 피멍은 이제부터다. 처방전 없이 구한 약이라 그 정체가 대단히 수상쩍긴 해도 미리 약을 먹어두는게 좋을 것이다.
『끄응...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고. 과속은 절대 금지야.』 『잔소리는 관두고 이참에 눈이나 붙이지 그래, 딘.』 『안 그래도 그럴 참이야. 그런데 샘? 미리 말해두는데 장난이랍시고 내 입에다 일회용 스푼을 끼워넣기만 해봐.』 『스푼은 안 된다고? 그럼 포크로 대신할게.』 『농담하는 거 아니다, 동생아.』 『나도 죠크하는 거 아니네요. 누구 말이더라. 복수는 달콤하다고. 바이런이 그랬던가?』 『그리고 이런 말도 있지. 인생은 쓰다... 정말 쓰다.』 단단히 경고한 딘은 좌석에 몸을 기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벌써부터 약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노곤함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사탕 포장지가 되어 딘의 얼굴을 감쌌다. 돌풍을 타고 오즈로 날아가버린 도로시가 코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이제 곧 그는 깡통 고철 나무꾼을 만날 것이고, 겁쟁이 사자도 만날 것이며, 요정의 대모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이놈의 저릿저릿한 통증과도 바이바이다. 온몸의 신경줄이 물 먹은 이불처럼 들썩거렸다. 위장에서 녹기 시작한 약이 내부에서 침착하게 작동을 하기 시작하는 걸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순간 뒤로 젖혀진 코로 공기가 들어가면서 한바탕 우스꽝스런 소리를 냈다. 아무리 불가항력이라지만 자신의 두 귀로 그 소리를 들은 딘은 심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의식은 아직 깨어있는데 코를 골고 있다. 맙소사.
『저어, 방금 듣기 민망한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젠장, 샘. 라디오라도 틀어.』
앉은 키가 곱절로 작아진 딘이 짜증을 섞어 투덜거렸다. 별 것도 아닌데 재밌어 하는 동생은 얄밉다. 아니, 사실 그건 얼토당토 않은 착각이었다. 샘은 그렇게 재밌어 하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우울해 보였다. 비가 부슬비슬 내리는 가을 날에 낙엽 그림자를 보고「마지막 입새」의 주인공을 흉내내는 감성 풍부한 10대 소녀처럼 말이다. 저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면 난 사신의 입맞춤을 받는 거야... 건강 검진 결과표가「너무 건강해서 탈이다」라고 말해줬다는 건 새카맣게 잊어먹곤 시한부 환자의 비극을 흉내낸다. 메디아, 오이디푸스, 죄다 덤벼라. 나는 비극의 킹이다. 그 옆으로 식어버린 커피만 있으면 지구 멸망 대 서사시까지도 가능할련지 모른다. 가로등 하나 없는 국도를 달려가며 샘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카피했다.
『저기 있잖아...』 『엉.』 『그렇게 내가 미웠어? 원념이 딘의 생각을 읽고 전화를 걸어댈 정도로... 그 정도로 미웠어?』
이놈이 또 어디 가서 이상한 거 주워먹었어. 한쪽 눈을 슬그머니 올려뜬 딘은 귀찮아 하는 기색을 명백히 하며 끙 소리를 내뱉었다. 엉덩이가 걸려서 불편했다. 조수석 시트 아래로 아무래도 작은 강낭콩 한 알을 숨겨둔 모양이다. 잠을 자고 싶건만. 딘은 정말이지 간절하게 잠들기를 원했다. 『라디오나 틀어, 샘.』 『대답을 회피하는 걸 보니 내가 진짜로 미웠구나.』 『제발 짜증나게 굴지 마. 넌 지금껏 내가 미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니? 엄청 많을 걸. 네 어렸을 적의 입버릇이라는 건「형은 나빠!」였다고.』 『난 10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딘.』 『그래, 10년 전이 아닌 오늘 이야기지. 하지만 네가 임팔라 지붕으로 총알 구멍을 뚫어 놓았잖아. 그래놓고도 내가 널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사치야.』 『맙소사! 형은 나보다 임팔라가 더 소중해?』 『소중해.』 동생보단 자동차가 더 소중하다는 말에 샘이 격렬히 반발했다. 『돼지!』 『뭐어?! 너, 지금 형에게 뭐라고 그랬어.』 『원숭이!』 『야!』 『나쁜 놈!』 『거 봐, 넌 하나도 안 변했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마침내 라디오가 켜졌고, 샘은 한껏 화가 치민 표정으로 정 중앙을 응시했다. 야밤이라 그런가, 그저 그렇고 그런 옛날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이제 좀 낫군. 적당한 소음에 안도해하며 딘은 본격적으로 잠으로 빠져들 자세를 갖췄다. 시야가 너무나 흐릿해서 일직선으로 난 국도가 S자로 뒤틀려 보였다. 앞으로 펼쳐진게 바다인지 숲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난 진심으로 형을 미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거짓말.』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새미 어린이? 거짓말을 하면 똥구멍에 털 나요.』 『옳커니! 바로 증명되잖아. 내 거긴 매끈매끈해.』 『...』 『정말이야. 털 안 났어. 진짜야. 진짜라니까.』 『샘? 이 형은 지금 기가 막혀서 기절하려는 참이야. 나 대신 병원에 전화해 주겠어? 옛다.』 운전석을 향해 핸드폰을 집어 던지면서 딘은 생각했다. 이건 완전히 미친 짓이다. 왜 우리는 지금 말도 되지 않는 주제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거지?
샘은 계속해서 우겼다. 『정말이야! 난 형을 진짜로 미워한 적이 없어.』 『호오... 그래? 그럼 넌 내일 아침에 화장실에서 요상한 포즈로 거시기 털을 뽑느라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이 거짓말쟁이야. 네가 닥터 엘리컷에게 당했을 적에 (1x10화-Asylum) 넌 화가 잔뜩 나서 나에게 방아쇠를 세 번이나 당겼어.』 손가락을 세 개 들고 강조했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었어. 알아?』 『나, 난...』 『샘? 이 마당에 가로수를 들이받으면 곤란하지 않겠어? 앞을 똑바로 보고 운전하렴. 그리고 유령에게 조정당한 거니까 횟수에는 안 들어간다는 변명따윈 집어치워. 사람은 누구라도 미워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이고, 그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거지. 그러니까 진짜로 미워한 적이 없다거나, 단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다는 말은 하면 안 돼. 왜냐면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닌 말이니까.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지 않잖아? 마찬가지야. 절대로 미워한 적 없다는 말은 그러길 바란다는 일종의 환상이야. 나는 아빠를 사랑했어. 하지만 미워한 적도 있어. 늘 우리들 생일을 잊어버리신 것이 섭섭했어. A+ 성적표를 받아온 너에게 은탄환 만드는 걸 왜 잊었냐고 야단을 치실 적엔 기가 막혔지. 네가 기말고사 공부를 하느라 정말 힘들어 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들 아버지는 진짜 무신경하다는 걸 깨닫고 조금은 슬펐어.』
그치만 괜찮다. 나쁜 마음은 곧 흘러가버린다. 딘은 감정이라는게 맨발로 달아난 얼굴로 라디오 채널 박스를 톡톡 건드렸다. 『미워해도 괜찮아.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야.』
운전석을 쥐고 있는 주제에 샘은 도무지 앞을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괜찮고 말고.』 『하지만 미움 받는 건 전혀 괜찮지 않아, 딘... 전혀 괜찮지 않다고.』
빙빙 돌아왔긴 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던 건가. 어이가 없어서 딘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마, 딘. 난 심각해!』 『알아. 멍청아.』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딘은 손을 뻗어 동생의 말랑거리는 귓불을 잡고 꾹꾹 눌렀다. 그리고는 한껏 무게를 잡고서 위대한 임금님처럼 근엄하게 말했다. 『뿡뿡.』
샘이 어이가 없다며 입을 벌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 뿡뿡?』 『미친 놈 잠꼬대야, 샘. 그러니 신경쓰지 마.』
청명한 푸른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돌풍은 헛간을 날려버린 뒤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길은 어두웠다. 딘은 눈을 감았고, 이내 그의 의식은 바닥 없는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Posted by 미야
2007/05/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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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원래 딘은 초자연적 존재를 대단히 싫어한다. 아니, 싫어한다는 표현은 차라리 점잖다. 맹렬히 증오하고 있다고 해야 맞다. 아버지 존이 그랬던 것처럼 딘 또한 그런 쓸데없는 것이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이해 못했다. 서점에 들려서는 가죽 정장본의 성경책을 팡팡 두드리며「창세기 몇장 몇절에《하느님이 딸기맛 우유와 카카오버터를 만들다 말고 초자연적인 걸 덤으로 만드셨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는 거냐. 없잖아. 그러니까 이것들은 순전히 제멋대로야. 없애버릴 이유가 충분하지」라며 인상을 쓰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등산로를 한가롭게 뛰어다니던 유령을 잡아 족친 적도 있다. 얼마나 강경하게 사냥에 임했으면 조깅화를 벗어던지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려 하던 유령이 오히려 피해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산탄총을 들고 거침없이 따라가던 딘은 더도 말고 사이코패스 살인자였다. 「쉰 소리! 난 죽어 마땅한 것들을 죽인 것뿐이야.」 샘이 나중에 그 사실을 지적했을 때 딘은 동생이 안드로메다 외계인이라도 되는 양 쳐다봤다.
그랬던 딘이... 자신의 바지를 잡은「비정상적 존재」를 용납했다는 건 서쪽에서 해가 떠오를만한 엄청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뭐, 얼굴 표정만 보자면 지구 끝까지 날려버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는 건 분명하다. 허나 분노한 빨간머리 앤이 길버트 그레이프의 머리 정수리로 석판을 휘둘러댄 것처럼 굴어선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것또한 사실이었다. 딘은 영특하게도 그 사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감정 수위를 조절했다.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면서 - 그래봤자 붙잡힌 바지를 빼내려는 것이 목적임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 질문을 던져보았다. 『네가 새미니?』 《...》 『이곳에 혼자 있는 거야?』 딘과 샘이 자리에 있다는 건 어렴풋이 인식은 해도 질문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 빨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히 졸린 것도 같고, 아니면 약에 취한 것도 같다. 생기를 잃은 채 뿌옇게 흐려진 눈은 딘을 그대로 지나쳐 훨씬 더 먼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구릉을 넘고, 사막을 지나, 마침내 깊은 바다를 건넜다. 아이의 눈에서 얼어붙은 파도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건 굉장히 멀리서 들려오는 구원 요청... 한 없이 멀리 퍼져나가 끝끝내 침묵에 가까워진 비명이었다. 소름이 돋으려 했다. 혹시라도 지옥의 가장자리를 구경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연옥의 심장부를?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붓으로 묘사한, 우스꽝스런 짐승과 벌레로 가득찬 세상? 아마도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샘이 황급히 딘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젠 어쩔거야, 딘. 우린 저 아이의 손을 잡아 끌어당길 수 없다고.』 『침착해, 샘.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새미는 오로지 이 안에서만 존재하는 아이야.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은 자연적으로 녹아 없어지기 마련 아니겠냐. 그러니까 얼음통을 뜨거운 햇볕 아래로 끄집어내기만 하면 얼씨구나 만세 - 라는 거다.』 『답답하긴! 뭔 재주로 얼음통을 냉장고에서 꺼낼 건데.』 『넌 바보냐? 냉장고 문을 열면 되지.』
길게 심호흡한 딘이 제일 먼저 결심한 일은 벽에 그려진 헥사그램 문장을 망가뜨리는 거였다. 형제들 사이로 의미심장한 눈짓이 교환되었다. 샘은 어쩐지 그를 말리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러든 말든 소매를 사용해서 끝부분을 지웠다.
『후욱!』 체중이 앞쪽으로 쏠리면서 발이 둥실 들린다는 감각이었다. 아니, 그보단 몸통이 짓이겨졌다고 할까. 누군가 들어다 구석으로 던졌다. 뭐가 잘못된 건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갈비뼈로 불이 붙었다. 세게 눌린 가슴이 트럭에 치이기라도 한 것 같다. 총천연색으로 별이 반짝이면서 통증에 대한 자연적인 신체적 반응으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300kg의 돌무더기에 산채로 깔린 느낌이다. 압박감으로 숨 쉬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떨리는 손으로 벽면을 더듬거리며 몸의 자세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강력 접착제로 고정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노력 끝에 겨우 할 수 있었던 건 콧잔등이 짓눌리기 전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게 전부였다.
『도대체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새미가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 자세로 그를 멀뚱 올려다 보았다. 『젠장. 네 짓이냐?!』 딘은 화가 치밀었고,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는 빙긋 웃었다.
『눈 꽉 감아, 딘!』 측면으로 한 걸음 이동한 샘이 정확하게 소녀의 머리를 노리고 암연탄을 쏘려 했다. 아마도 그것이 샘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인 듯했다. 『자, 잠깐, 잠깐! 부탁할테니 좁은 곳에서 막무가내 발포라는 건 하지 말아줘~!!』 그래봤자 원래 그의 동생은 환장할 지경으로 어른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인석아! 파편에 나까지 맞는단 말이다아~!!』 버럭 고함을 질러대는 것과 동시였다. 귓청이 날아가는 뻥 소리와 같이 하여 깨어진 소금 조각이 고정된 나무 판자 위로 콩알 크기의 구멍을 여럿 만들었다. 판자만 건드렸던가. 재수 나쁘게 옆으로 튕겨오른 몇 개의 작은 알갱이가 딘이 입고 있는 구제 청바지를 뚫었다. 살갗이 헤어지는 독특한 고통에 이마를 찌푸리며 진저리를 쳤다. 『으악! 내 다리!』
의도를 했든 하진 않았든, 아군을 쏘는 건 반칙이다. 딘은 그 사실을 단단히 훈계하고 싶었다. 그러나 샘이 그보다 먼저 선수를 쳤다. 팔꿈치와 어깨를 바닥에 부딪치고 그대로 벌렁 드러누운 딘을 향해 호통을 쳤다. 『제기랄, 딘! 잘도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응?! 이게 냉장고를 연 거냐?!』 『이게 어디서 신경질이야! 조금만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난 고자가 되었을 거야! 내 고환에 구멍을 뚫어놓았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어쩌긴. 셈통이다 노래를 불렀지.』
빗맞긴 했어도 - 여차하면 감정에 휘둘리는 샘의 사격 솜씨는 조만간 교정에 나설 필요가 있었다 - 암염탄의 효과로 새미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등짝을 짜부라지게 눌러대던 손길도 잠시나마 거두어졌다. 나비 표본 액자가 되어 못질까지 당했던 딘은 벽에 기댄 채로 잠시 불편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느긋하게 숨을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샘이 불안한 표정으로 곳곳을 두리번거리며 어둠속에서 도사리고 있을 새미를 찾았다. 딘도 손전등을 고쳐들고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긴장한 탓인지 목덜미를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뻣뻣해졌다. 등은 장작불처럼 뜨거운데 손바닥은 차가웠다. 머리속이 잔뜩 엉켰다. 지하실 어딘가로 그려져 있을 문양을 찾아 아까처럼 망가뜨리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 어쩌면 그것은「실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코끝을 살짝 스쳤다.
「우리들 일은 이런게 문제라니까. A 다음으로 B가 온다는 식의 사전적 지식은 하등의 소용이 없지. G가 될 것인가, 아님 N이 될 것인가는 그때마다 다르니까.」
손으로 뺨을 문지르며 샘이라 짐작되는 어른의 실루엣을 근심에 가득차 쳐다보았다. 주술의 의미를 가진 문양이 파괴되면 될수록 아이가 폭주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딘은 자신이 먼젓번의 행동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끝장을 봐야 했다.
자신의 호흡소리가 증기 기관차를 닮았다고 한탄하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엄마는... 내가 미운 거야? 왜 그래. 왜 나에게 그러는 건데.》 셔츠자락을 누군가 또 잡아당겼다. 숨을 멈춘 채 손전등을 아래로 내렸다. 아니, 내리기도 전에 미움을 가득 담은 강력한 펀치가 얼굴 정 중앙을 가격했다. 무어라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정신이 멍해졌다. 윗입술이 얼얼했다. 《그거 알아? 나도 엄마가 미워...》 연옥을 빼닮은 어둠 한 가운데서 하얀 손이 떠올랐다. 작다. 그리고 창백하다. 그런 것이 딘의 목을 덮었다. 안쪽으로 딘을 끌어당기며 아이는 쉰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나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누가... 엄마냐! 최소한 삼촌이나, 아저씨라고 불... 컥!』
딘은 자신의 목을 틀어죄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바둥거려 보았다. 그치만 질질 끌려가는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그들은 너를 송장 나무 위로 매달아 버릴 거야~♬」라는 다소 불순한 가사의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질까보냐. 상체를 비틀어 억지로 자세를 바꾼 뒤에 신발 바닥으로 벽을 찍어 브레이크를 걸었다. 사실 그건 그다지 희망을 걸어봄직한 동작은 아니었다. 자칫하다간 당겨지는 힘에 의해 목과 몸통이 말 그대로 절단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건 신발이 붉게 칠해진 선을 우연히 가로질렀다는 것이고, 어린이용 크레용으로 그린 것이 분명한 선이 그 즉시 뭉개졌다는 점이었다. 방금 두 번째의 문장을 망가뜨렸다. 딘은 자신이 곧 반대편으로 내동댕이쳐질 것을 짐작했다. 그것도 대단히 거칠게.
《엄마는 나를 미워해.》 시야 하나 가득으로 둥실 떠오른 아이는 대단히 격앙된 모습이었다. 《나를 싫어해... 내가 싫다고 해...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 내가 그렇게 나쁜 아이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찡그린 표정이 누군가를 생각나게 했다. 그 점이 불쾌했다. 『새미.』 《난 엄마를 죽이고 싶지 않아. 난 엄마를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아.》 『새미.』 《그러니까 날 무서워하지 말아줘. 날 싫어하지 말아줘... 잘못했어, 잘못했어! 엄마, 엄마...》 『엉뚱한 녀석일세. 잘 알지도 못하는데 싫고 좋고 할 겨를이 어딨어.』 《싫어해! 무지 싫어해! 나는 느낄 수 있었어. 엄마는 생각했어.「젠장, 새미. 네가 저지른 걸 봐. 네가 뭘 했는지를 보라고」그리고 말했어.「넌 정말이지 골칫덩이야, 새미」고개를 흔들며 말했잖아. 나는 다 들었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어... 그리고 엄마는「너 때문에 너무 힘들어. 이 많은 벽돌을 봐. 이러다 골병 들겠어」라고 했어. 내 탓이라고 했어. 내 잘못이라고, 그래서 내가 밉다고...》 『자, 잠깐, 베이비! 다 듣고 있었다고? 설마, 지붕 무너진 그 집에서? 그 얘기야? 아이고 맙소사... 이제 이게 다 뭔 소동인지 알겠다. 미안, 새미. 죄다 내가 불평하며 중얼거렸 법한 내용인 건 맞는데 말이지... 가만히 듣고 있자니 골칫덩이라고 한 건 아무래도 너 말고 다른 새미인 것 같아. 내가 밉다고 생각한 건 네가 아니라 임팔라 지붕으로 총알 구멍을 뚫어놓은 멍청한 새미야. 곰 덩치인 주제에 손이 엄청 많이 가는 내 동생이지. 네가 아냐. 틀려. 잘못 알았어.』 《추워... 날 미워하지 마, 엄마...》 『으아아~!! 사람 말 좀 들엇! 게다가 난 네 엄마가 아냐! 남자의 몸으로 젖을 물려가며 아이를 키우는 경험은 딱 한 번으로 족하단 말이얏!』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화가 나서 주먹을 아무렇게나 휘둘러댔다. 『멋대로 오해나 하고 말이야!』 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몸을 붙잡고 앞뒤로 마구 흔들고 싶었다. 『나는 미워하지 않아. 새미가 날 다치게 한다고 해도 싫어하지 않을 거야. 설령 새미 때문에 내가 죽게된다고 해도 난 원망하지 않아. 나는 그 사실을 알아. 뭐, 가끔씩 참을 수 없도록 짜증이 심하게 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훨씬, 새미를 좋아하니까 괜찮아.』 새미가 임팔라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날엔 이야기가 살짝 틀어질 수도 있다는 건 별도로 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오해라고. 내가 새미를 무지 싫어할 리가 없잖아.』
아이가 흠칫하며 잡았던 손을 놓았다. 이때다 하고 또 다른 새미가 딘의 어깨를 와락 끌어당겼다. 목덜미로 불어닥치는 샘의 뜨거운 호흡에 미칠 것 같은 불안이 녹아 있음을 알았다. 어쩐지 딘은 뒤집어져라 껄껄 웃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움받을까 걱정하지 말아. 이마에 쓸데없는 주름살만 늘어. 엄마는 언제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법이야.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치잇 하는 부싯돌 소리와 함께 어둠이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새미? 내가 놀라운 비밀 하나를 말해줄까? 사실은 오늘이 네가 이곳에 있어야 할 마지막 밤이야. 너는 일곱 살이 되었단다. 사실은 아주 먼 옛날에 일곱 살이 되었지만... 아무렴 어때. 축하는 언제고 해도 좋은 거니까 상관 없겠지. 그러니까 새미? 늦었지만 너의 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해. 원래대로라면 초를 불어서 꺼야 하지만 이것으로 대신하도록 하자. 이리 가까이 와서 후~ 하고 숨을 불어 이 불을 꺼보겠니?』 《엄...마?》 『무지 쉽단다. 후, 숨을 불어 이 불을 끄렴. 그리고 소원을 비는 거야. 음... 예를 들자면 이제 그만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라던가. 아님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라던가.』 《소원을 빌어요?》 『그래, 소원을 빌어보렴. 무슨 소원을 빌고 싶니? 새미.』 《날 혼자 이곳에 내버려두지 말아요.》 『오케이. 그럼 우리와 같이 당장 밖으로 나가자.』
후우, 하고 아이가 숨을 뱉었다. 생일 축하해, 새미. 딘이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라이터가 꺼졌다.
Posted by 미야
2007/05/20 21:24
2007/05/2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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