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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fic] Brownie 07

※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씁니다. 먼젓번 글을 읽어주신 분은 레드 썬을 외쳐주세요. ※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한 마리 곰을 보고 리사는 기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느긋한 자태로 의자에 앉아 제과점에서 구입한 초콜렛칩 쿠키를 간식으로 먹고 있었는데 이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① 배우들의 의상을 다루는 사람의 손에 기름기가 묻어선「이 천벌받을 것아! 옷에 얼룩이 묻잖아!」고함이 터지게 되어 있었고,
② 하필이면 들킨 대상이 식충이 제러드여서는「치사하게 숨어 혼자만 먹는 거냐. 같이 나눠먹으면 배꼽에서 풀이 자라나냐. 내놔라, 내놔라~!」비난을 면치 못할 터였다.

리사는 겁에 질려 얼어붙었고, 모르는 사이에 입에 물고 있던 쿠키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얼마 전에 제러드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뿡 소리가 나는 방석 위에 억지로 앉혔다. 소심한 리사는 까무라쳤고, 미리 짜고 있던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장난삼아 그녀의 머리로 팝콘을 던졌다. 그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목젖이 보이도록 깔깔대며 웃던 제러드는 사자처럼 고약했고, 리사는 그 이후로 그를 피해왔다.

『저, 저, 저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속설에 의하자면 곰은 죽은 척하는 사람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 리사는 그 이야기는 코흘리개 아이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일종의 죠크라고 여겼다. 그래서 정말로 곰을 만나면 가방을 벗어던지고 재빨리 나무로 올라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대도시인 토론토 출신인 그녀가 산책 중에 덩치 커다란 엄마 곰을 만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련지를 따져보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아무튼 그녀의 취미는 다행스럽게도 인공 암벽 등산이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이었나 보다. 단단한 나무토막으로 변한 그녀를 제러드는 미처 보지 못하는 듯했다. 코앞에 앉은 멀쩡한 사람을 두고도 좌우를 두리번거리고「여보세요? 젠슨?」이라 외쳤다.

징조가 좋았다. 리사는 자신이 흉악한 곰을 만나고도 머리카락 하나 안 다치는 행운을 누릴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그래서 핸드백 속으로 먹던 과자를 재빨리 숨기고 떨리는 손으로 얼른 입가를 닦았다. 공포심 때문에 여전히 그녀의 갈색 눈은 휘둥글 벌어진 채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쿵쾅거리며 난리를 치던 심장은 약간 진정되었다.
그럼 계속해서 죽은 척하는 거다. 죽은 척... 난 죽었어. 죽은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곰은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거야. 그 멍청한 소리가 나는 방석에 날 강제로 앉히려 하지도 않을 거야. 제러드는 과자를 못 봤어. 내가 과자를 먹고 있었다는 것도 눈치 못 챘어. 그런데... 오, 하느님. 바닥에 떨어진 저 쿠키 조각은 어쩌지.

리사는 그 망할 것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시한폭탄처럼 여겨졌다.
굵은 땀방울이 이마에 맺혔다.

『어? 여기도 없네. 이상하네, 약속에 늦을 사람이 아닌데.』
곰은 머리를 긁었고, 투덜거렸다.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는 혀를 찼다.
이때다 하고 리사는 비호처럼 날아 자신이 떨어뜨린 과자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리~사~ 땅에 떨어진 걸 주워먹으면 배탈나요.』
제러드는 무심하게 말하며 다시 시계를 봤다. 그리고는 우는 소리를 내며 네 다리로 바닥에 엎드린 의상 담당을 그대로 냅두고 밖으로 나왔다.

시곗바늘은 오후 2시를 넘어 이제 15분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봤자 겨우 15분이었지만 제러드는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젠슨은 점심 식사를 각자 마친 뒤에 2시에 만나자고 사전에 약속을 했고, 지금은 그가 대단히 힘들어 하는 아침이 아니다. 늦잠을 잔 젠슨이 까치집을 하고 헐레벌떡 달려올 일은 없으니 분명 뭔가 다른 요소가 끼어들었다.
나 모르는 사이에 일정이 바뀌었나. 그럴 리 없다. 캐릭터 설정상 일부러 짧게 입어야 하는 양복 바지의 치수를 재기 위해 젠슨과 제러드가 의상 담당자들과 만나기로 한 것은 오후 3시. 리사가 덩그마니 혼자 있는 걸 봐선 그쪽 팀들은 아직 모이지도 않았다.

제러드는 부르퉁한 표정으로 주차장을 응시했다.
망치와 전선 꾸러미를 들고 가던 마이클이 그를 보고 인사를 했다.
바지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은 제러드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Posted by 미야

2007/11/13 11:18 2007/11/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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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기 2007/11/13 19:41 # M/D Reply Permalink

    리사 어떻게해요~~~ ㅋㅋㅋㅋㅋㅋ 땅에 떨어진걸 주워먹으면 배탈난다는 소릴 제러드가 하니까 좀 이상합니다. 주워먹고도 남을 녀석같아서요.ㅋㅋ 잘 읽었어요 ^^

  2. 미야 2007/11/13 22:20 # M/D Reply Permalink

    파달렉키 어쩌고 씨가 먹을 걸 등한시했다는 점부터 이미 비정상인 거예요. ^^

  3. 로렐라이 2008/02/21 13:47 # M/D Reply Permalink

    어머 리사 ㅠㅠ ㅋㅋㅋ 제라드~ 슬슬 삐져가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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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는 걸까?

가끔 외국 팬픽 사이트를 보면 (그래봤자 검정은 글씨요, 흰색은 알짤없이 바탕인긔라) 등급 표시와 성향 표시는 그렇다 치고 000,000 Words 라는 표현에 눈을 꿈뻑꿈뻑하곤 한다.

- 저기요? 하나하나 세어보는 겁니까? 타이핑한 단어의 숫자가 몇 개인지를?!

원고지 한 장에 평균적으로 들어가는 단어가 대략 몇 개니까 추정하여 대략 이 정도겠거니 하고 밝히는 건가. 감기약 캡슐을 열어 동글동글한 구슬이 600개인지를 세어보았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설마, 그런 득도한 신선에 가까운 경지는 아닐게야.

Posted by 미야

2007/11/12 00:16 2007/11/1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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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델리퀸 2007/11/12 00:27 # M/D Reply Permalink

    MS워드에 도구 메뉴 들어가시면 단어 수 세기 메뉴 있어요. 아래한글에도 낱말수 세기 메뉴 있고요. 웬만한 텍스트 편집기마다 저 기능은 다 있을거예염. 저 콘흥600 캡슐 세어본 적 있어요! 무려 술먹기 게임 벌칙이었던ㄷㄷㄷ... 483개 나와서 뭔가 사기당한 느낌에 막 괘씸해했던 기억나요 으흐흐

  2. 요델리퀸 2007/11/12 00:29 # M/D Reply Permalink

    와아 근데 단어 10만자리 카운트 넘어가는 소설들은 막 분량에 머리가 어찔어찔;

  3. 미야 2007/11/12 16:01 # M/D Reply Permalink

    한글2002에도 글자 세는 메뉴 잇나요. 한참을 뒤져보는데 못 찾겠어요.

  4. 요델리퀸 2007/11/12 22:21 # M/D Reply Permalink

    앗 한글 2002는 안써서 모르겠어요. 근데 아래한글 다 비슷하니까 아마 [파일>문서정보>문서통계] 보시면 글자수랑 낱말수, 쪽수, 원고지 환산매수까지 다 보실수 있을거예염!

  5. 미야 2007/11/13 09:31 # M/D Reply Permalink

    와아아, 발견했어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진짜 원고지 장수까지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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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길바닥 정키들도 그보단 훨씬 잘 하겠다. 샘은 신음했다.
장님이 지폐를 세는 것처럼 엉망이었다. 더듬거리던 허벅지 안으로 바늘로 찔렀다 도로 뺐다 하길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하자 가뜩이나 얇아진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걸 느꼈다.
이년이 지금 우리 형을 고문하는 거야, 뭐야.
경황이 없다보니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게 아니라 그걸 크게 소리내어 외쳤다.
『이년아! 너 지금 우리 형을 고문...』
『닥쳐! 옆에서 자꾸 성가시게 굴면 천당까지 한 번에 날려버린다!』

기진맥진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기온이 높지도 않건만 콧잔등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휴식이라는 걸 구경도 못한 다리가 통증을 호소했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발가락으로 텔레비전 리모컨을 조작했음 소원이 없겠다. 그럼 뚱뚱한 남자가 훌라후프를 돌리며 참치 뱃살을 요란하게 흔들어대는 저질 시트콤을 보며 마구 웃어버릴테다.
『그냥 팔에다 시도하면...』
『그래선 대량 수혈을 못 견뎌.』
리는 어금니를 갈아대며 그 길이가 무려 15cm에 이르는 링겔 바늘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눈앞으로는 속옷 차림새의 남자가 정신을 놓은 채 뻗어있었고, 그녀는 어떻게든 수혈용 카테터를 삽관하는 일을 성공시켜야 했다. 정맥내 공급선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맙소사.
감기는 저절로 낫지만 - 가끔은 그마저 저절로 낫지 않는다 - 뱀파이어 오리진의 피에 오염된 이상 색색의 항생제를 하나 가득 입안에 털어넣는 것 정도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이것이 최선책은 아니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은 뭐라도 해야만 했다.
시간이 더해질수록 침침해지는 시야가 그저 원망스럽다.
「하느님, 의사 놀이는 세 살 무렵에 이미 졸업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전 가운을 입은 환자 역이었지 새드 기질이 있는 미치광이 간호사 역은 한 번도 안 했다고욧~!」
리는 작은 기적을 빌며 두툼한 대퇴부 혈관을 찾아 말 그대로 혈안이 되었다.

문드러지는 비극의 냄새를 맡은 샘은 머리를 놓고 울부짖었다.
『이러지 말고 가까운 진료소에라도 가는게 좋겠어요. 제발!』
『좋아. 딘을 들쳐메고 가자고. 가서 뭐라고 설명할래. 뱀파이어에게 물렸습니다?』
『차에 치었다고 하면 되잖아요! 아님 나무에 올라가려다 사다리에서 떨어졌다고 하면 되요!』
『멍청아. 이 사람의 머리가 깨졌으니 몸속에 있는 혈액 5리터를 최단시간 내에 몽땅 갈아주세요, 하면 그 사람들이「아,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당장 실행에 옮기도록 하죠」라고 대꾸할 것 같아?! 것보단 경찰에 신고해서「우리 진료소로 방금 전에 대단히 수상한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교회의 방화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이러고 떠들어댈 걸.』

물론 그럴 것이다. 의사들은 수상한 환자들이 내원하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할 의무가 있으니까.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샘은 차갑게 말했다.
『총으로 위협하면 되요.』
『뭐?』
『총으로 모조리 쏴죽이겠다고 하면 된다고요.』
『너... 진심이냐.』
『제대로 된 의료 장비도 없이 무작정 덤비는 당신보단 제정신입니다.』
『지금 누가 더 미쳤는가에 대해 시합이라도 해보자고? 관둬. 네가 짱 먹었어, 미스터 콜롬바인.* 난 근처도 못 가. 그러니 우승 트로피는 네가 가지렴.』
신경질적으로 맞받아치는 것과 동시에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제발 이번엔 성공했기를, 그러나 리는 쳇 소리를 내며 어렵게 찔러댄 바늘을 도로 뽑았다.

「젠장! 어쩌면 포기하는게 나을지도.」
그들은 병균 덩어리인 싸구려 모텔 방에서 20분째 전쟁을 치루고 있었고, 가지고 있는 도구라곤 주사기와 바늘, 튜브, 소독용 알콜과 솜, 그리고 수혈용 팩이 전부였다. 이래서는 도중에 쇼크가 와도 전문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다. 혈관으로 자칫 기포가 들어가는 날엔 치명적인 심장마비가 온다. 뿐만 아니다. 백혈구 응집소에 대한 항체 때문에 폐가 급속히 망가질 가능성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4시간 내에 딘은 죽을 것이다. 세균 감염, 빈맥, 알레르기 반응... 넘어야 할 고개가 너무 많았다. 리는 주먹으로 자신의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설령 이 모든 어려움을 운 좋게 뛰어넘었다고 쳐도 어림짐작만으로는 정맥으로 주입되는 혈액의 량을 정확히 조절할 수 없다는 문제도 컸다. 과다하게 쏟아져 들어가는 혈액은 모자름만 못 하다. 이런저런 까닭으로 가뜩이나 약해진 딘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안 되겠어. 샘의 말대로 총으로 의사들을 위협해서...」

바로 그때 움찔, 하고 딘이 반응을 보였다. 깜짝 놀란 샘은 본능적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딘? 정신이 들어?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겠어? 딘?』
『그게 아냐! 이 멍청아! 비켜!』
샘은 잠자는 공주님이 눈을 뜨는 장면 같은 걸 연상했을 것이다. 의식이 없던 사람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깨어나서는 텁텁한 목소리로「목이 말라요, 물을 주세요. 여긴 어디죠?」라고 말하는 것 따위를 말이다. 그러니까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형의 이름을 불러댄 것이리라.
하지만 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알았다. 맹세코 자신하며 말하건데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제물로 바쳐진 어린 자녀들의 몸이 산채로 불살라지는 광경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샘! 저리 비키라고 했잖아! 저리 가!』
지금 이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잠시 잊기로 했다. 그녀는 딘의 몸 위로 재빨리 올라탔고, 엉덩이를 아래로 내려 그의 배를 묵직하게 눌러댔다. 그리고 양 손으로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딘. 부탁이니 너무 멀리 가진 마라.』
죽을 힘을 다해 누르며 그녀가 말했다.

처음에는 눈앞이 흐렸다. 그러다 점차 말갛게 변하면서 어지러움이 사라졌다.
「몸이 가볍다. 와우, 깃털처럼 가벼워!」
딘은 자신이 똑바로 서서 벽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너머로 거울을 보면서 숱이 많고 뻣뻣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는 사내가 있음을 깨달았다. 남자는 올해로 마흔 두 살이었고, 눈과 입가에 생겨난 잔주름이 인상을 중후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고, 이번에 독신자 클럽에서 만난 여자가 그런 그의 모습을 칭찬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래된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빗질에 열중하던 남자는「예이~예」후렴구 부분에서 거울을 보며 윙크했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되려나. 주책맞은 영감탱이.」
딘은 인상을 찌푸렸고,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그때 어디선가 문이 열렸다.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무언의 안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딘은 바람이 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부인이 파스타를 삶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스렌지의 불을 중에서 약으로 조절해야 할 것이다. 다른 냄비에선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맛있는 냄새가 나는 토마토 소스가 익고 있었다.
주방을 가로질러 책가방을 든 아이가 뛰어갔다.
《학교 양호 선생님이 피임 법에 대해 가르쳐 주셨어요.》
《카페테리아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합시다.》
《컴퓨터로 옛날 자료들을 분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물건 값은 30달러 50센트요.》
환한 아침, 그리고 느긋한 오후, 개가 컹컹 짖었다. 어느새 저녁.
여기는 도대체 어디지. 딘은 맨발 차림으로 높은 건물의 옥상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서있었다.
구름이 휙휙 지나갔다. 시야가 더욱 확장되었다.

나는 저 아래까지 단숨에 뛰어내려야 한다. 그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어슴푸레한 저녁 햇살 아래서 콘크리트 건물들은 흡사 말라빠진 해골처럼 보였다. 진작에 멸망당한 고대 바빌로니아, 앗수르, 이집트, 메소포타니아... 손바닥을 활짝 펴서 달을 가렸다. 갑자기 낄낄 웃음이 터져나왔다. 달빛은 그의 손바닥을 고스란히 통과해 망막에 닿고 있었다.
그럼 하나, 둘, 셋. 뛰어내리자.

『돌아와!』
누군가 그를 애타게 불렀다.
『형?! 형! 내 말이 들려?』

들리지 않는다. 그는 딱히 어디로 가야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저 불빛이 호소하는 바에 따라 넓은 마당 너머의 도시를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상한 냄새가 느껴졌지만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간혹가다 자동차가 교차로를 지나갔다.
딘은 보도블럭이 깔린 길을 따라가면서 구름다리 밑을 보았고, 거기서 카드 놀이를 하는 부랑자를 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술병을 끼고 자기네들끼리 사소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패를 돌리면서 살짝 눈속임을 부린 사내가 엄마의 이름과 예수를 거들먹거리며 동료들을 설득했다. 딘은 고개를 길게 뺐다.
게중에 담배를 이 틈새에 문 남자가 인기척을 깨닫고 고개를 위로 들었다.
《아, 유령이다. 이번엔 젊은 남자로군.》
《제발 겁 주지 마! 데니스! 이런 계절엔 오싹해진단 말이야!》
《그럼 자네가 가진 스페이드 에이를 이리 내놓게.》
《네놈 마누라 찌찌를 빨게 해주면 고려해보지.》
《망구 찌찌 따위가 뭐가 좋다고. 그런데 진짜야.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의 유령이...》
다 듣지 않고 딘은 삐죽삐죽 튀어나온 언덕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유령이래. 어쩌지. 아무래도 나... 죽은 모양인데.」
방광의 압박감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그는 오줌을 쌌다.

누군가 팔을 강하게 잡아챘다. 몸무게가 줄어들어 어느새 풍선보다도 가벼워진 딘은 속절없이 끌려갔다. 발이 위로 들렸고, 그는 잘 익은 사과가 나무에서 왜 떨어지는지를 납득하기 힘들어졌다. 중력은 검정으로, 무중력은 흰색으로 뒤집어졌다.
『딘!』
이대로 둥둥 떠서 날아가면 다음으로 내가 갈 곳은 어디지 - 딘은 근심에 잠겼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 천국에 가면 안 된다는 건 알았다. 그리고 그곳으로 갈 자신도 없었다. 그는 너무 많은 것들을 죽였다. 너무 많은 것들을... 그의 새미까지 포함해서.
『돌아와!』
목소리가 외쳤다.
『돌아오란 말이야! 제발!』
하지만 어떻게? 무슨 재주로? 그는 어린애처럼 훌쩍거렸다.

도와주세요, 엄마. 도와주세요, 아빠.

비정상적인 힘이 그의 목을 거머쥐고 무서운 힘으로 들어올렸다. 헝겊 인형처럼 그는 시키는대로 얌전히 끌려갔다. 눈앞으로 섬광이 번쩍였고, 복부와 머리로 무딘 통증이 왔다.
논리정연한 설명까진 필요 없었다. 딘은 자신이 천장에 매달려 배가 갈릴 거라는 걸 알았다.
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남동생의 여자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떡이며 그는 형벌을 받을 각오를 다졌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나는 나의 죄를 압니다. 인정합니다. 나는 유죄입니다.

동생의 초록색 눈이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땅에서 부르는 목소리, 동생이 흘린 피. 신은 묻는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고.
딘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어댔다.
복부가 가로 방향으로 당겨졌다. 홍해를 둘로 쪼개는 의지는 그의 몸을 삼켰다. 당기는 힘은 점점 강해졌고, 마침내 한계점에 도달했다. 돌아버릴 것 같은 아픔에 뒤이어「뚝」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저 아래서 쏟아지는 오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동생이 무아지경에 빠져 두 팔을 벌렸다.
샘이 손으로 밖으로 꺼내어진 분홍색의 내장을 쥐었다.
「날 죽여서 속이 시원해? 딘.」
동생의 목소리는 병적으로 무미건조했다.
「날 죽여서 속이 시원하냐고.」
딘은 기운이 다 빠져 기진맥진한 눈동자로「결코 그렇지 않아」라고 속삭였다.
샘의 얼굴로 비웃음이 떠올랐다.
「형은 늘 나에게 거짓말만 했지. 정말이지 형은 인간 쓰레기야.」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투로 팔을 양쪽으로 힘껏 당겨 딘의 내장을 둘로 끊었다.

Posted by 미야

2007/11/11 21:16 2007/11/1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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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고 2007/11/11 23:25 # M/D Reply Permalink

    어이구우....딘. 이란 소리가 절로 나오네요. 저 뱀파이어 연대기 진짜 좋아하는데, 그래서 더욱더 미야님 글이 재밌네요. 아무튼 드라큘라들이...출연하면 그저 좋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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