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sted at 2012/08/22 11:16
- Filed under 끄적끄적/노아드롭
리스는 언제 나오냐고요? 훗훗훗. (사악한 미소) 나는 사장님 팬입니다. 리스는 나중에 늦게 나와도 괜찮은 거에요. 그리고 여기서 후스코찡은 15세입니다.
『곰 같은 여자가 아니고 괴수 같은 여자야.』 『무서웠어. 오늘은 특히 무서웠어.』 『옥수수 다섯 푸대 당장 물어내, 이러고 고함을 지르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 『핀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데 괜찮아요?』 『얼음주머니 필요한 사람.』 『저요.』 모임이 해산되고 나서도 약간의 인원이 주점에 남았다. 다들 넋이 절반은 나갔고, 일부는 옷차림이 엉망이 되었다. 카터를 진정시키려 했던 애덤의 셔츠 단추는 세 개나 뜯겨져 나갔다. 시멘스키도 술주정뱅이와 드잡이라도 한 몰골이다. 핀치는 머리카락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팔꿈치로 얻어맞은 턱은 아프다 못해 얼얼한 감각밖에 안 남았다. 발길질 당한 곳은 또 어떻고. 속옷이 훤히 보일 지경이었음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게 올라가던 그녀의 늘씬한 다리를 떠올린 핀치는 쓰게 웃었다. 지금도 징조가 그리 좋지 않지만 아침이 되면 보다 훌륭하게 부어오를 것이다.
『어디보자. 흡사 야생 동물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꼬락서니군. 어디보자, 연고가 필요할까?』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신세를 지게 되네요.』 『인사는 됐수. 것보다 요깃거리가 필요하면 얘기해요. 빵과 스프 정도는 서비스 해주지.』 주점 주인인 로버트 소워스키는 넉살 좋게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이곳 2층은 종종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논의 중 언성이 높아져 서로 주먹질을 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로 벌어지곤 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위에서 요란하게 우당탕 광음이 들려도「생쥐 한 마리가 천장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다」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만다. 코피를 흘리며 누군가 계단을 뛰어내려 온다? 싸우면서 철든다. 무시하자. 지금처럼 혼비백산한 무리들이「하마터면 죽을 뻔했어」가슴을 쓸어내려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원래 다수의 의견을 하나로 수렴하는 일은 그만큼 힘든 법이다.
『그래도 핀치 씨는 언행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애덤이 싹싹하게 굴던 평소 태도를 접고 돌연 볼멘소리를 내었다. 『매번 카터 씨의 심기를 긁고 있잖아요.』 『하아... 미안합니다.』 『정말입니다, 핀치. 우리들 중 제법 많은 숫자가 카터의 결정은 늘 옳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어요. 그녀의 도덕적 기준은 대단히 높고, 판단력 또한 뛰어나니까요. 그런 카터가「너는 틀렸어, 너는 잘못했어, 너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 반성을 해야만 해」이러고 반복해서 말하며 화를 낸다면 우린 지적당한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시겠지요?』 『알다마다.』 핀치는 구부린 손등을 사용해 코 아래로 송송 솟아오른 땀을 닦았다. 더위를 느끼지 않았음에도 인체는 땀을 흘릴 수 있다.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믿어주셔야 합니다. 나는 실수를 한 게 아닙니다.』 『핀치 씨가 실수를 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요. 문제는 사실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고요...』 겉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뒤로 생략된 말은 이런 거였다. 아저씨는 어떻게 한 번 휙 쳐다본 것만으로 제트-트랜스 전지가 모조품인지 진짜인지 알아낼 수 있는 거죠. 우리들 중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죠.
초대받지 않은 핀치의 손님도 똑같은 말을 했다. 『어떻게 알아차렸지.』 오늘은 운수 나쁜 날이다. 집안으로 들어와 현관문 걸쇠를 잠구던 핀치는 하마터면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쓰러질 뻔했다. 얻어맞아 아픈 부위를 끌어안고 끙끙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더니 이번에는 시커멓게 생긴 밤손님이 거실 정 중앙에서 두 다리를 벌리고 서있었다. 남자는 진작부터 문을 따고 들어와 핀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눈치다. 의자 쿠션엔 눌린 흔적이 있다. 테이블에는 사용한 적 없는 컵이 올라가 있다. 사내는 남의 집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랍도 열어보고 그릇을 꺼내 물도 마셨던 모양이다. 강박증이 남다른 핀치는 바르르 떨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누구십니까.』 『내가 누군지 알잖아. 대장간에서 내 얼굴을 봤을 터인데. 것보다 호미는 안 샀나. 호미를 그렇게 들었다 놓았다 했으면서 지금 보니 빈손이군. 대장간 주인이 실망했겠어.』 『아, 이제 알겠습니다. 거래를 하러 왔던 움무이군요. 그런데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거래는 무사히 종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마을을 떠나 무리로 돌아갔어야 합니다.』 침입자가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흥미로워. 도둑이 나타났다, 이러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제일 먼저 내가 누구냐 정체를 묻는 군. 거기다 중앙의 관료가 사용할 법한 세련된 말투야. 당신, 예상했던 대로 평범한 시골 촌부가 아니야. 집에는 이렇게 책들이 가득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이라니. 자칭 순혈 귀족이라고 떠들어대는 중앙 놈들도 거실에 책장이 있는 집은 드물어.』 그 즉시 핀치는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대신 눈동자는 사내의 동작을 따라 바쁘게 움직였다. 시멘스키는 그들의 무리가 중무장을 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오라클 임펄스 화기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남자도 지금 무장 중일까? 가능성 있다. 거기다 체격이 좋다. 핀치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주먹을 휘두른다고 해도 싸워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다. 오히려 간단히 제압을 당하고 역으로 두드려 맞을 거다. 그리하여 결론, 함부로 덤비지 말자. 핀치는 입구와의 거리를 염두에 두고 집밖으로 무사히 달아날 확률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뒤돌아 문의 걸쇠를 재빨리 풀고, 손잡이를 돌려서... 『허! 상상도 하지 마.』 생각하는게 뻔히 보인다며 움무 상인이 경고했다. 『그대로 당신 몸을 낚아채서 목을 부러뜨릴 수도 있어.』 단순 위협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핀치는 뒷걸음질 치던 동작을 멈추었다. 어설프게 도망치려 시도했다간 저 사내는 진짜로 그를 잡아 죽이려 들 것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낸 거죠.』 『알아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 자네가 대장간으로 들어왔을 적에 머리카락이 곱슬거리는 통통한 체격의 어린애를 먼저 앞세웠잖는가. 그 소년에게 뭔가 아는 내용이 있을 거라 판단했지.』 핀치의 인상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맙소사, 후스코! 당신... 후스코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남자가 진정하라며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허어! 그렇게 쏘아보지 말게. 애들이 소중하다는 건 나도 잘 알아. 난 노인과 여자들까지 목을 따봤지만 어린애는 맹세코 죽인 적이 없어. 그저 아는 것만 털어놓게 약간 손만 봤을 뿐이야. 꿀밤만 먹였다고? 지금쯤 엉엉 울면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 거야. 믿어도 좋네.』 거기까지 말한 스틸스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턱을 빳빳하게 세웠다. 『그러니까 다시 질문하는데... 어떻게 알아차렸지?』
Posted by 미야
2012/08/22 11:16
2012/08/22 11:16
- Response
-
No Trackback
,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601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 Posted at 2012/08/21 13:11
- Filed under 끄적끄적/노아드롭
단풍나무 판자를 깎아서 만든 간판엔「엉클 밥의 주점」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그런데 가게에서 잘 팔리는 주요 품목은 엉뚱하게 맥주가 아니고 푸짐한 햄버거와 샌드위치다. 주인인 로버트 소워스키는 주방에서 특제 양고기 소시지를 굽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의 조카인 애덤은 방실방실 웃으면서 따뜻하게 데워진 쇠고기 스튜를 손님들에게 서빙하고 있었다. 곡식 파동 탓에 대량으로 맥주를 제조하는 일이 금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팔던 주점은 간편식을 파는 음식점으로 그 모양을 바꿔갔다. 과일을 넣어 빚은 술은 아직도 판매가 되고 있었지만 솔직히 과실주는 고급을 따지는 중앙의 입맛이지 이곳처럼 외딴 동네 서민들 취향이 아니다.
『맥주 맛이 나는 음료는 있어요.』 『오, 정말이냐?』 『게다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요.』 『절망적인 나날이군. 짜증나. 그게 뭐야...』 시멘스키는 남들이 알아듣기 힘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땀 흘리고 난 뒤에 시원하게 들이키는 맥주의 맛은 뿌리치기 힘들다. 보리가 흉작이라고 해도 이런 건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걍 맥주 맛이 나는 합성 음료? 그런 건 공짜로 줘도 안 마셔. 실망감 탓에 다리도 무거워졌다. 그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자 투웅, 투웅, 이러고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기다란 쇠꼬챙이에 소시지를 다섯 개나 끼운 상태로 소워스키가 뛰쳐나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살살 걸어! 계단 무너져! 계단 무너진다고!』 시멘스키는 이 정도로 건물이 무너지면 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법 위반이라며 꽥 소리를 질러댔다.
2층 은밀한 장소로 이미 제법 되는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관리사문관인 조스 카터를 중심으로 잘 아는 얼굴들이 저마다 심각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나누는 중이었다. 카터는 팔짱을 낀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누군가 장도리 망치를 휘둘러 엄지손톱을 박살냈다는 식으로 이마에 깊은 고랑이 파여 있었다. 게다가 조야한 불빛을 내고 있는 랜턴을 등지고 있는 탓에 그녀의 둥근 얼굴은 관 뚜껑 열고 나온 악령처럼 무섭게 보였다. 시멘스키는 인사를 생략한 채 의자에 앉았다.
『핀치는요. 아직입니까?』 『곧 오겠지.』 핀치라는 이름에 반응, 카터의 뺨이 실룩 움직였다. 개의치 않고 시멘스키가 자신이 물어온 내용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30분 거리 밖으로 나머지 움무 다섯 명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가까이 가거나 말을 붙이진 않았습니다. 자기네 동료가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눈치였고, 중무장이 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고성능 망원경도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 중 한 명이 오라클 임펄스를 어깨에 메고 있는 것도 봤죠. 몸집도 좋습니다. 굴러다니는 넝마주이는 아니라는 거죠.』 『임펄스?!』 『전문적으로 유적지를 뒤지는 놈들인가봐요. 꾼들입니다.』 『좋지 않은데... 이봐, 테이블보를 치워.』
나무로 만들어진 6인용 테이블 위로는 접시라던가, 컵이라던가, 빵 부스러기, 포크와 나이프 종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 상판이 한 장의 커다란 지도였다. 카터가 흰색의 린넨으로 만들어진 테이블보를 걷자 전문가가 칠을 하고 글씨를 새겨놓은 모습이 드러났다. 거기에는 강이 있었으며, 산과 분지가 가득했다. 지난 15년간 하나하나 채워놓은 그들의 보물이었다. 『마을은 이쪽.』 카터의 손가락이 정 중앙에서 왼편으로 쏠린 지점을 눌렀다. 그리고 테이블을 가로질러 오른편 가장자리에는 굵은 물줄기가 그려져 있었다. 지도를 만든 이는 무슨 마음을 먹었던지 강을 검게 칠했다. 『흥정이 끝나고 제트 전지의 값을 계산하던 움무가 - 이름은 아자렐로라고 하더군요. 이쪽에서 살살 구슬렸더니 스틱스 강 이야기를 떠벌렸어요.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그 무시무시하다는 스틱스 강을 건너갔던 사람들이다, 이렇게요.』 『말도 안돼. 썩어빠진 농담이겠지. 그 강을 건넜다가 무사히 돌아온 사람은 없어.』 핸슨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믿을 수 없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 건너편 플레게돈은 무려 30만 명의 노아가 살았다던 전설의 땅이야. 아직도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롭이 우굴거린다고. 밤이 되어도 대낮처럼 불이 훤하지. 폐품 하나 줍겠다고 들어갔다간 제꺽 목이 달아나게 되어버려. 시체도 안 남아. 설령 운이 좋아 살아서 나온다고 해도 혹시라도 롭이 추적해 올까봐 가장례를 치룬 후 그대로 물에 빠뜨려 하류까지 흘려보내는게 관례야. 아무리 정신이 썩어 빠졌다고 해도 움무들도 그건 알고 있어. 그 강 건너편은 살아서는 못 돌아오는 땅일세.』 『핸슨의 말이 맞네. 중앙이 그 사실을 알아봐. 발칵 뒤집힐 걸. 당장 움무들을 토벌하겠다고 난리가 날 거야. 롭은 아무리 깊어도 물을 건널 수 있어. 롭이 침입자의 발자취를 따라 플레게돈을 빠져나오면 예의 대학살이 반복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지. 롭은 이제 우리 같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만 존재하니까.』 『그치만 우리가 알기로 똑바로 움직이는 롭이 발견된 건 15년 전이야.』 『허! 그래서? 이제는 스틱스 강을 건너도 안전할 거라고?』 『15년은 짧지 않아, 플레게돈 저편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게 뭐야? 부숴진 비행선 엔진만 찾아도 떼부자야. 평생 떵떵거리며 놀고 먹을 수 있다고.』 『비행선 엔진?! 지금 제정신으로 지껄이고 있는 거 맞아?! 우린 지금 죽느냐 샤느냐를 고민하고 있는데 지금 천박하게 떼부자 어쩌고를 떠들어?!』 『왜 화를 내고 그러나, 내가 무슨 틀린 말 했어?』
말다툼이 심해질 것 같은 상황에서 다른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그래서 유혹당하는 것이겠지요.』 여성용 망토를 벗어 팔에 걸친 핀치가 시멘스키와 카터에게 눈인사를 하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색이 붉어져 남의 멱살을 잡으려 들었던 핸슨은 겸연쩍은 표정이 되어 뒷통수를 긁어댔다. 카터는 삐딱하게 손등으로 턱을 괸 자세에서 핀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했다. 말 그대로 잡아먹을 눈빛이어서 핀치는 속이 더부룩해졌다. 『카터 관리사문관님. 좀 늦었습니다.』 『어서 와요, 해롤드 핀치. 이 자리에서 다시 보니 만감이 교차하네요. 난 당신이 빚을 내서라도 그놈의 망할 전지를 사야 한다고 주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설마요.』 『설마가 사람 잡아요. 그러니 말해봐요. 왜 물건을 사지 말라고 의견을 밝혔죠?』
핀치는 예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정교하게 만들어진 복제품이었으니까요.』 『뭣?!』 전원이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핀치는 차분히 설명했다. 『그들은 사기를 치고 있었어요. 새 것처럼 보이는 건 상당히 잘 만들어진 복제품. 녹이 슨 쪽은 오리지널. 두 개를 나란히 놓고 흥정을 하면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고, 진짜는 가짜처럼 보이게 되죠. 그러면 다들 가짜를 사게 되요. 3세기도 넘게 사용된 오래된 사기 수법이에요.』 『엉.』 『아자렐로라는 이름의 움무가 스틱스 강 어쩌고 떠들어댄 것도 자신들의 거짓말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 사기 행각을 중지시키기 위해 빈 껍데기만 남은 거라고 해도 녹이 슨 물건 쪽을 회수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빈 껍데기?!!』 『음... 그것의 값을 얼마 쳐줬나요, 카터 관리사문관님?』
상세한 대답은 생략한 카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손으로 스커트 자락을 움켜쥐고 복숭아뼈를 덮은 치마를 무릎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Posted by 미야
2012/08/21 13:11
2012/08/21 13:11
- Response
-
No Trackback
,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599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 Posted at 2012/08/20 14:09
- Filed under 끄적끄적/노아드롭
시대의 배경은 아득히 먼 미래, 혹은 인지가 불가능한 과거입니다. POI 드라마 설정과는 상관이 없고, 등장인물의 이름과 성격을 일부 빌려왔습니다. 오리지널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이한 광경이었다. 마치 유령 취급이었으니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처녀들이나 입을 것 같은 기다란 망토를 입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온 사내에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두 명은 관심을 드러냈으며, 그중 한 명은 관심 더하기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처녀 시절엔 군인이었다. 여자라고 얕보지 말란 말이야 - 지금은 책상에 얌전히 앉아 태어난 아기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록하고, 생필품 공급을 관리하는 등의 자질구레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여차하면 무기를 들고 악당을 때려잡고도 남을 여자다. 그녀가 정색하고 화를 내면 중앙에서 파견 나온 장관이 쩔쩔맨다는 소문도 있다. 뇌물을 싫어하며, 한 번만 봐주기, 식사대접, 청탁행위 등등이 전혀 안 통한다. 시멘스키가 언급한 「곰 같은 여자」 는 까놓고 말해 조스 카터를 가리킨다. 「융통성이 없고 너무 올곧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카터의 일처리 방식은 환영이지만 가끔은 너무 심하게 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런 성품의 소유자인 만큼 적들도 많다. 대단히 많다. 동시에 카터 스스로가 적으로 간주, 대놓고 미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핀치는 가위나 칼, 호미를 구경하는 척하며 구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그에게로 향하는 카터의 분노는 아직 삭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 전, 보육원에 버려졌던 한 아기가 들짐승에게 물려 처참하게 숨을 거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약간의 뼈와 살점 일부분으로 발견된 아기의 시신을 확인한 카터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게 죽은 토끼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걸 전혀 몰랐기에 - 누가 봐도 감쪽같았다. 그렇게 카터가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음에 통탄해 하는 사이, 핀치는 몰래 빼돌린 아기를 집으로 데려가 더러워진 기저귀를 갈고 죽을 떠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앙 관료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기를 입막음 때문에 죽이려고 계획한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아기를 살리려면 사고로 죽은 것처럼 꾸며야 했어요. 사전에 미리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카터 관리사문관님.」 「시끄러워욧!」 카터는 양손을 사용하여 발목을 덮은 스커트 자락을 우아한 자태로 종아리 위까지 들어 올린 후, 용서를 구하며 땅바닥에 엎드린 핀치를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밟아댔다. 이후 그녀는 핀치만 보면 속이 뒤집힌다는 표정이 되어 이를 갈아댔는데 직접 구운 사과 파이 정도로는 쌓인 울분이 풀리지 않는 듯했다. 「다음엔 초코렛 케이크를 보내야겠군.」 호미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핀치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주방 일에 서툰 남자다. 요리는 어디까지나 취미가 아니며, 케이크 굽는 법은 대단히 까다롭다. 고민에 빠진 핀치를 카터는 으르렁 소리를 내며 노려보느라 바빴다.
칼로 민 것처럼 머리카락 하나 남지 않은 움무 상인은 주머니칼로 손톱을 정리하는 척했지만 이 두 사람의 움직임을 흥미롭다는 투로 곁눈질 했다. 여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 그것이 첫 번째 감상이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비굴해 보일 정도로 존경을 표현했지만 여자는 눈을 부릅뜨고「그냥 쭈그러져 있어!」화를 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가 하라는 대로 벽에 철썩 들러붙었고. 글쎄다. 그들 사이에 남녀 문제가 있었을까? 스틸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모르겠다. 여자는 일단 젊다. 남자는 보다 나이가 많아 50대 중반이거나 후반이다. 나란히 세워놓았을 적에 커플로 보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연애 감정이 흘렀을 것 같진 않다. 그러기엔 물과 기름처럼 서로 반목하는 기운이 너무 세다. 여자가 곰이라면 남자는 작은 강아지 같다. 주머니칼에 붙은 먼지를 후, 하고 바람을 불어 털어내면서 움무 상인 스틸스는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이거 흥미롭군 - 그것이 두 번째 감상이었다.
어쨌거나 토론은 계속되었다. 『작황이 좋지 않아도 저장한 고기는 많아. 물물교환을 할 가죽도 있어. 주판을 튕겨보면 자네도 알 걸세. 그만하면 멀건 죽을 아이들에게 먹이지 않아도 될 거야. 그리고 후스코를 봐. 통통하잖아.』 『식량 사정을 올해만 고려해선 안 됩니다. 내년 여름까지 생각을 해둬야 해요.』 『그건 잘 아는데... 이번만 긴급 재원을 끌어다 쓸 수는 없겠나.』 『지금 지진이 난게 아니잖아요. 롭이 마을까지 내려온 것도 아니고.』 그녀가 언급한「롭」이라는 단어에 후스코를 빼고 나머지 전원이 움찔 몸을 떨었다. 심지어 움무들까지 어깨를 움츠렸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아무도 입을 떼지 못했다. 전원 얼굴 표정이 굳었다.
『롭 이야긴 하지 말지... 불길해.』 액땜을 하는 동작으로 엄지와 중지를 X자로 교차시킨 주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동시에 전원이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중재안으로 망가진 제트-트랜스 전지만 싼 가격에 구입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타닥, 하고 장작 타는 소리를 배경으로 핀치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핀치는 텃밭을 가는데 사용되는 호미를 무슨 영험한 부적인양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한 태도는 한숨이 나올 지경으로 그를 겁쟁이로 보이게 했다. 『우리 마을엔 금화 같은 건 없어요. 그치만 제트 전지는 매우 요긴한 물건입니다. 망가졌다고 해도 어쩌면 부품 같은 건 쓸모가 있을 지도 몰라요. 그리고 또 모르잖아요. 운이 좋으면 땅바닥에 떨어뜨렸을 적에 원래대로 작동할지도.』 수염이 긴 노인이 그의 말을 듣고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자네가 애용하는 자명종 시계가 아닐세. 바닥에 떨어뜨리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저는 그저 제 의견을 한 번 말해봤을 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어.』 주눅이 든 것처럼 보이는 핀치가 입안으로 나머지 단어들을 우물우물 삼켰다.
허리에 손을 올린 카터가 그쯤해서 다시 씩씩하게 좌중을 훑었다. 『좋아요, 그럼 다시 가격을 협상해봅시다. 정상 작동하는 전지는 우리 능력으로는 살 수가 없어요. 허어! 토마스. 불평은 관둬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나는 마음을 굳혔어요. 그렇다면 그 망가진 전지는 얼마에 팔고 싶은 거죠, 움무 상인? 최대한 좋은 가격으로 쳐드릴테니 희망 가격을 말해봐요.』
스틸스는 두 눈을 꿈뻑거렸다. 내가 틀렸네. 저 피부 검은 여자가 위가 아니잖아. 망토를 입은 남자가 갑이야.
Posted by 미야
2012/08/20 14:09
2012/08/20 14:09
- Response
-
No Trackback
,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596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Recent Comments
Site Stats
- Total hits:
- 1018805
- Today:
- 511
- Yesterday:
- 133
Calendar
«
2024/12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