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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All Wet 01

※ 골쪽방의 모토는「혼자서도 잘 놀아요」입니다. 감상이나 안부글을 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과 및 방석은 각자 알아서 지참, 리플을 남겨도 극악의 겔름뱅이 주인장이 제대로 답변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니 엉뚱하게 오해하지 말고 공지글 먼저 읽어주긔. 플리즈. ※
※ 슈뇌가 조기 종영 된다네요. 이 일을 어쩌죠. 피켓 들고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나... 끙.
줄거리는 전편에서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 같은 상황이라 먼저 이야기를 읽지 않으면 내용이 뭔지 짐작하실 수 없습니다. 샘희 갈구기 프로젝트,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리에겐 형제가 없다. 그래서 막내가 깽판친다는게 어떤 건지를 전혀 몰랐다.
지금은 그게 어떤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비유하자면 장난감을 사달라 고래고래 악을 쓰며 가게 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눕는 것이다.
텅빈 지갑을 움켜쥔 채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하는 가엾은 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다리를 버둥거리며 간질 발작을 흉내낸다.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기 전까지 마른 걸레질로 바닥을 닦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졸지에 새카만 걸레가 되어버린 바지와 셔츠를 세탁하는 건 어차피 보호자인 어머니의 몫이다. 그래서 아이는 울부짖고, 고함을 지르고, 어떻게든 달래보고자 기를 쓰는 가게 여직원의 목덜미를 손톱으로 할퀴고 본다.
「인형! 곰인형 사줘! 당장 사달란 말이야~!!」
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어미된 여자가 그게 무슨 짓이냐 눈을 부라리든 말든, 주먹으로 한대 치고 싶을 뿐이다.

『샘!』
눈을 부릅뜬 그녀는 화가 치밀어 종주먹을 치켜올렸다.
『얼굴 껍질을 송두리째 벗겨버릴 작정이냐? 세상에, 퉁퉁 부었잖아. 당장 그만둬!』
미친 놈의 자식이 면도를 한 시간째 하고 있다. 독이 올라 시뻘겋게 성이 났고, 한계 이상으로 혹사당한 피부에선 선홍색의 피가 베어나왔다. 그런데도 샘은 입술을 꾸욱 다물고 날을 똑바로 세워 뺨과 턱을 또 긁으려 했다.
『귀가 먹었냐?! 야!』
강제로 면도기를 뺏어들었다. 뒷 목덜미를 움켜쥐자마자 욕실 밖으로 덩치를 내던졌다.
쿵 소리를 내고 샘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산 채로 각을 뜬다는게 어떤 건지 그렇게 궁금해? 그냥 내가 시범을 보여줘?』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낮게 으르렁댔다.
『내가 괜히 털구멍 이야기를 꺼내가지고... 으이그!』
알겠느냐. 막내가 깽판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내 말 들어봐, 샘. 딘이 단순히 털구멍 때문에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한게 아니야.』
『그러니까 음. 딘은... 그래, 휴식이 필요한 것뿐이야.』
『왜 있잖아. 몸에서 열이 나고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지는 거. 지독한 감기에 걸렸을 적에 누가 와서 말을 걸면 짜증이 막 나고 그러잖니. 그거랑 많이 비슷한 거야.』
설득하고, 어르고, 흔들어댔다.
그래봤자 샘은 입을 꾸욱 다문 조가비가 되어 마음에 들지 않는 만사에 전력으로 반항했다.
식은땀이 난다. 서점에 가서「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제대로 구워 삶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구해봐야 할 것 같다. 외동딸로 자라난 리는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러니까 요리도 잘 하고, 세탁도 잘 하고, 살림 끝내줘, 골칫덩이 아이들 비위도 잘 맞추는,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조언 말이다.

『망설이지 말고 방망이로 두둘겨 패.』
여기 육아 경력 20여년의 전문가 조언이시다.
『말로는 못 이겨. 난 한 번도 녀석을 말로 이겨본 적이 없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마음 놓고 이탈한 리의 입술이 바닥을 굴렀다.
이거 뭐야.「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제대로 구워 삶는 법」책은 육아 코너가 아니라 요리 코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비프 스테이크 조리법이 아니라고~!!
눈꺼풀을 깜빡이며 난색을 표했다.
『폭력으로 설득하라고? 이봐! 상대는 네 동생이야. 나더러 손찌검을 하라고 말하는 거야?』
『정 싫으면 의자에 앉혀놓고 차근차근 알아듣게 설명을 하던지.』
『어느 세월에!』
『한 100년 걸리겠지. 그러니까 적당히 손봐주는게 최고라니까.』
그래봤자 주먹을 보인다고 협박에 굴할 녀석이 아니라는게 문제지만 - 샘의 고집이 남다르다는 걸 잘 아는 딘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한 없이 착해빠진 인상과는 다르게 쇠심지 하나는 징그러운 놈이다. 존이 펄펄 뛰며 반대를 하든 말든 기어코 동네 어린이 축구단에 들어가 공을 찼을 정도다. 내일 당장 이사를 가야 한다고 윽박질러도 들은 척도 안 했다. 기어코 집으로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고 난 다음에야 샘은「알았어요, 아버지. 축구는 관둘게요」라고 대꾸했다. 운동화를 신고 밤낮으로 운동장을 누빈지 이미 여섯 달이나 지난 뒤였다.

『저어... 딘?』
그런 고집쟁이에겐 설득이란게 아예 불가능하다. 차도르 대용으로 이불을 머리 꼭대기서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나타난 샘에게 설득이 뭐냐고 물어보자. 아마도「설탕 가득」의 줄인말이라고 당당히 대답하지 않을까.
『나, 지금 얼굴 가렸거든? 그러니까 가까이 가도 괜찮겠지?』
앞을 전혀 볼 수 없었던 샘은 더듬거리며 조금씩 앞으로 걸어왔다.
『아윽!』
그러다 이불 끝자락을 밟고 요란하게 뒹굴었다.
딘은「네가 지금 다섯 살짜리 애냐?! 애냐고!」외침을 삼킨 채 천장만 쳐다봤다.
넘어진 채 한참동안 부들부들 떨던 샘은 딘이 대꾸도 하지 않자 네 발로 기어 방을 나갔다.

짜증이 치솟은 리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맘대로 해, 이것들아. 나는 뱀퍼지 맨하탄 초고층 빌딩에 사무실을 차린 심리 상담사가 아니라고. 이런 건 딱 질색이니까 빠질테다. 유치뽕짝으로 싸우는 건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셔.』
『어... 싸우는 거 아닌데.』
『지금 무어라 떠들었나. 안 싸우는 거 좋아하네! 장담하거니와 두 분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거 맞네요. 그것도 영양가 하나 없는~! 그거 아냐? 이혼하겠다고 서로 으르렁대는 부부들도 이런 식으론 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리 남편이 죽도록 밉다고 해도 노트북을 열고「못된 놈, 못된 놈, 못된 놈, 못된 놈... 우라질나게 못된 놈」을 연속해서 타자를 치지는 않는다. 등을 구부정히 하고 앉아 엉뚱한 기계에 대고 화풀이를 하는 모양새도 우습거니와, 오타 없이 1분에 200타를 친다고 위자료가 한 푼이라도 올라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이혼 전문 변호사를 불러 누가 한정판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을 가져갈 것인지를 결정하는게...

『이혼 전문 변호사이신가요.』
『뭐요?! 내 어디를 봐서 변호사라는 추측이 가능한 겁니까.』
정중하게 물어온 샘의 말에 신부는 기겁했다. 버릇처럼 로만 칼라를 만지작대던 그는 덕분에 의자에 앉겠다던 생각도 까마득히 잊었다. 약간 살집이 있는 신부는 곧 얼굴이 푸르딩딩해졌다.
『차라리 운동 기구 세일즈맨으로 오해를 해주시구랴. 하필이면 변호사가 뭡니까. 그 사람들, 천국에선 영 보기 힘든 종류의 사람들이잖소.』
『어... 직업이 변호사인 분이 들으면 한바탕 난리가 나겠는데요.』
『흥! 내 교구민들 중엔 직업이 변호사인 사람은 없으니 괜찮소.』
냉정하게 잘라 말하는 신부를 쳐다보며 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인식이 무지하게 나쁘다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이 방으로 들어온 신부들은 모두 하나같이 샘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탁상이나 옷걸이, 텔레비전 같은 일종의 가구처럼 여겼다. 샘에게 이름이 뭐냐 물어보지도 않았고, 악수를 청하지도 않았다. 시선을 주는 일도 없었다. 하나같이 무뚝뚝했고, 콘크리트 벽 같았고, 공동 묘지에 내려앉은 까마귀인양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래서 샘은 그들이 자신에게 무어라 말을 걸어오지 않는게 차라리 고마웠을 정도다.
하지만 이 통통한 외모의 신부는 처음부터 색달랐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샘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서 샘은「이 나쁜 놈아, 이 나쁜 놈아, 이 나쁜 놈아, 딘 윈체스터 나쁜 놈아...」죽어라 타이핑을 하던 걸 잠시 멈춰야만 했다.

『저에게 무슨 용건이라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
『윽!』
『라고 말할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신부는 당혹스러워하는 샘을 보며 샐샐 웃었다. 걸렸다, 걸렸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게 분명했다. 눈동자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는게 남의 신발 속에 젖은 휴지를 잔뜩 집어넣곤 좋아라 하는 딘을 빼닮았다. 남을 골탕 먹이는게 그렇게 좋냐. 샘은 지쳤다.
『아님 고해성사를 하지 않은게 얼마나 되었느냐 물어볼 것 같소이까?』
『저어... 신부님.』
『어지럽진 않소? 머리에 낙옆이 붙은 것도 아니니 그렇게 흔들 것 없소이다. 어쨌거나 그 두 가지는 꼭 빼놓겠다고 약조할테니 둘이서 잠시 얘기를 나누면 안 될까요.』

무슨 이야기? 이마를 잔뜩 찌푸린 샘은 쭈삣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종교에 대해서? 아님 신에 대해서?
하지만 신부는 포교 행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정말로 그를 끌고 성당에 가고 싶어했다면「예수님과 고해성사 두 가지는 빼고」란 단서 조항을 먼저 붙이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무엇에 관해서? 세상의 종말과 악마에 대해서? 아님 존 던의 홀리 소네트에 대해서?
싫은 사람에게 붙잡혀 억지로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를 권유받는 심정이었다.
어쩐지 샘은 이 대화를 거절해야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으샤.』
그러나 이쪽에서 싫다고 말하기도 전에 신부는 덥썩 의자에 앉기부터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침묵을 제멋대로 긍정의 방향으로 해석한 신부는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아무래도 홍역, 수두, 볼거리 내지는 전염성 감기처럼 이 대화를 피할 방법은 없는 듯했다. 이웃에게 옮았으니 끙끙 앓는 단계만 남았다. 접시를 가득 채운 칠면조 고기를 눈앞에 두고 샘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목이 컬컬한데 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오? 나가서 커피라도 마시면 어떨까요.』
『안되요. 형을 두고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가차 없는 거절의 말에 신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쪽을 응시했다.
『혹시 뱀파이어가 떼를 지어 공격해올까봐 그러오? 댁의 형님은 리디아님이 직접 보호하고 있으니 큰 문제 없을 것 같소이다만. 커피 정도는 괜찮지 않소? 가게는 그리 멀지도 않아요.』

샘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치고 나왔다.
『뱀파이어는 그다지... 이젠 대항할 방법도 알고 있고... 제가 염려하는 건 다른 겁니다.』
『음?』
『이 말은 꼭 해둬야 할 것 같네요. 혹시라도 형에게 손을 댈 생각이라면 포기하세요. 전력으로 싸울테니 각오하시고요. 맹세하지만 절대로 가만 있지 않을 거예요.』
『에?』
『딘이 괴물로 변했다고 해도 그를 데려갈 수 없어요. 아무도 못 데려가요. 어제의 딘과 다르니 나더러 형제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셔도 듣지 않을 거예요. 그리 아세요.』
『엉?』
『그리 아시라고요.』

마침내 신부는 배를 뒤집어대며 호탕하게 웃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한참을 헐떡였다.
『아이고, 배야~!』
『제기랄. 기분 나쁘네. 뭐가 그렇게 웃겨요?!』
『아니, 그 뭐랄까... 말하는게 동부 출신 아가씨 같아서.』
『뭐요?!』
『그러니까 입술 좀 삐죽 내밀지 마시오. 정말 아가씨 같다니까. 입이 걸걸한 뱀퍼들만 상대하다가 댁 같은 사람을 만나니 세상이 완전히 틀리게 보입니다. 아, 신난다. 그러지 말고 밖으로 나갑시다. 멀리 가지 않겠다고 해도 좋소. 오늘은 날씨가 꽤 좋아요. 햇살을 쬐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합시다. 괜찮죠? 괜찮다고 해요. 맹세하는데 혈압이 높아지지도, 총에 맞을 일도 없을 거요. 일어나요! 맑은 공기를 마시러 나갑시다. 어서!』
그러면서 신부는 뒷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는 닭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시늉을 해보였다.

Posted by 미야

2008/01/06 17:09 2008/01/0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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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맛만쥬야 2008/01/06 18:37 # M/D Reply Permalink

    슈내때문에 핵폭탄 맞은 기분 풀어주시네요!! 새미가 불쌍하면서도 왜 이리 귀여운지 모르겠네요~ 다음편도 너무 기대되요!!

  2. 이즈 2008/01/06 21:42 # M/D Reply Permalink

    정말 슈내소식에 왕창 우울한 마음을 글을 읽으며 달래봅니다..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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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에게 담배가 필요합니다. 천식으로 또 병원에 입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담배가 필요합니다. 욕 얻어먹고 잠수타며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나의 토코쿠키 마을이! 마을이! 마을이~!! 2007년 12월 31일과 2007년 1월 1일은 하루 차이가 아니지라. 그 결과 마을이 초토화 되었습니다.
의.욕.상.실. 단칸방부터 다시 시작.
이요... 네가 그리워. 다시 만나면 붙잡고 절대로 안 놔줄테다. 흑!
울며 불며 쓰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샘이 의자에 앉았다. 팔을 길게 뻗어 TV를 틀었다.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운 환자의 몸에 주기를 찔러넣는 장면이 나왔다. 동생은 잠시「응?」하는 표정을 짓더니 지역 케이블 TV의 채널 번호를 꼼꼼하게 확인한 뒤에 버튼을 조작했다. 화면은 이제 감청색 양복을 단정히 입은 아나운서가「아무개 씨 가게에 불이 나서 물건이 싸그리 탔시유」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샘은 예배라도 드리는 사람처럼 경건하게 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두고 뉴스를 시청했다.

까칠한 얼굴에 창백한 불빛이 반사되어 한층 더 음영이 짙게 만들었다.
딘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쓰러지게 생겼잖아! 도대체 누구야, 저 말라빠진 콩나물은!」
한 입 베어물곤 외면당한 햄버거는 이미 오래 전에 싸늘하게 식었다. 다른데 정신이 팔린 샘은 그걸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먹은 듯했다.
「또 밥투정이야? 오, 새미... 저놈의 성질머리를 그냥 콱!」

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은 모텔 방을 한바퀴 돌고, 한숨을 쉬었다. 천장을 응시한 뒤에, 핸드폰을 들어 새로 도착한 메시지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관심도 없는 워싱턴 정가 소식과 함께 텔레비전에서 부시 대통령 얼굴이 나왔다. 인상을 찡그린 샘은 코를 만졌고, 거울을 쳐다봤고, 끙 소리와 함께 다시 의자에 앉았다. 순간 허름한 철제 의자가 무거운 체중에 질겁을 하며 야단법썩을 떨어댔다.

이 모든 걸 고스란히 지켜본 딘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 있자... 내가 지금 뭐하고 앉았냐. 이건 완전히 스토킹이잖아.」
샘이 손을 씻는다. 샘이 거울을 본다. 샘이 노트북 전원을 켠다.
몰래 설치해둔 카메라로 은밀하게 사람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투명한 벽, 그리고 투명한 바닥.
딘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건 완전히 악마의 유혹이었다. 동생의 뒷통수, 어깨와 팔, 그리고 하얀 부분이 남지 않도록 바짝 다듬어진 손톱이 비상구의 화살표처럼 점등했다.「종착지는 바로 여기입니다」딘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놈의 망할 화살표 그림을 졸졸 따라다녔다. 반짝이는 입간판은 때로는 화장실로, 때로는 냉장고 앞으로, 때로는 침대로 위치를 옮겨갔다. 그때마다 딘은 낚시줄에 코가 꿰인 물고기처럼 이동했다.

「옳지 않아, 이런 건.」
손톱으로 침대 시트를 깔작대며 긁었다.
「당장 그만둬, 딘 윈체스터.」
존은 늘 동생을 지켜보고 있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장남은 그 명령에 순종했다.
그치만 아빠의 말씀은 샘이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는 걸 빤히 쳐다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존의 명령을 왜곡하는 행위이자 모두로부터 비난받아 마땅한 불알 변태 짓이었다. 쪼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노란 물줄기가 뭐가 좋다고... 딘은 악 소리를 내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눈 돌려, 눈 돌리라고! 아악! 나, 진짜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니.」

표정부터 멍한 것이 나사 하나를 잃어버린게 분명한 샘이 손 씻는 것을 잊었다. 깜짝 놀란 딘은 세면대 쪽을 턱짓하며 부주의한 동생을 나무랐다. 하지만 크흠 하고 목구멍으로 힘을 주어봤자 굵은 솜뭉치가 콱 틀어찬 성대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곧 시야가 검게 변했고, 몸뚱아리로부터 박리된 정신은 뇌를 하얗게 태워버렸다. 명줄이 10년은 짧아졌다. 그는 기진맥진한 몸으로 깊이를 추정하기 힘든 구덩이 아래로 추락했다. 체력이 고갈되는 건 순식간이었고, 딘은 손가락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거덜난 몸뚱이는 침대 시트를 긁는 작은 동작조차 버거워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갗난 아기처럼 누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밖엔 안 남았다. 딘은 패배 의식에 몸부림쳤다.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눈에 고인 눈물을 밖으로 흘려보낼 기운도 없어 울지도 못 한다.

차갑게 가라앉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그를 책망했다. 그 목소리는 기계적이었다.
- 그러고도 동생을 잘 보살피겠노라 맹세할 수 있어? 할 수 있겠어? 넌 정말 쓸모 없는 녀석이야. 아버지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던 건 당연해. 넌 실패자야. 보라고. 네 꼬락서니를 봐. 기력이 쇠진한 노인네처럼 누워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있잖아. 이래서는 샘을 지킬 수 없어. 너도 깨닫고 있겠지? 네 동생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가 없다고.
눈꺼풀을 깜빡였다. 한계 이상으로 차오른 눈물 덕분에 사물이 전부 흐릿했다.
- 하루라도 빨리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해. 샘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새미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 바비 아저씨나 아니면 앨런...
앨런? 주먹이 쥐어졌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면서 이가 빠득 갈렸다.
- 싫어!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서 새미를 못 데려가!

아드레날린이 엉망으로 휘저어놓은 뇌가 꼭대기에서부터 저 바닥까지 출렁거렸다.
맹세코 다 때려부술 것이다. 수납장 위의 물건들을 쓸어버리고, 문짝을 걷어찰 것이다. 딘은 야차의 가면을 쓰고 난동을 부려대는 자신의 모습을「바깥」에서 볼 수 있었다. 완전히 미친 개였다. 앨런의 머리로 총구를 겨누었다. 깨어진 술병과 파편으로 변한 나무 의자가 어지럽게 널린 가운데 그는 비무장의 앨런을 강제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기겁을 한 그녀가 팔을 들고 항복의 제스츄어를 취했다. 잘게 부수어진 유리 조각이 살갗을 파고들어 청바지는 금세 시뻘건 색으로 번져나갔다. 그걸 보고도 딘은 찰칵 소리가 나게끔 총을 장전했다. 눈이 뒤집혀 앞 뒤 구분이 없어졌다. 분노만이 유일하게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서 새미를 못 데려가. 당신이라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아, 앨런.
경고도 주지 않고 무직정 방아쇠를 당겼다.
무릎을 꿇고 앉은 몸이 앞으로 털썩 기울어졌다.

《와... 엄청나군. 아버지의 친우를 그런 식으로 쏴죽일 수 있는 거야?》
싸늘한 목소리가 매캐한 연무를 좌우로 흩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개 망나니.》
단벌이 아닌가 의심스런 체크무늬 재킷을 걸친 바비가 피투성이로 변한 앨런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가까운 조카 대하듯 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바비의 태도는 냉랭했다.
《너의 그런 감정적인 태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꼿꼿하게 선 바비와 앨런이 나란히 합창했다.
《냉정해져라!》

새카맣게 암전되었던 시야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려 했다.
머리를 식혀라. 흥분하지 마라. 무엇이 최선인지를 궁리해라.
꽉 쥐어졌던 주먹의 힘이 풀렸다. 미친 듯이 방망이질하던 심장이 펌프질 속도를 약간 늦추며 그 주인된 자의 눈치를 살폈다. 딘은 쓰게 웃으며 흐느낌을 닮은 호흡을 내뱉었다.
답은 사실 오래 전부터 이미 나와 있었다.
다만 그는 그게 싫어 지금껏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 새미와 떨어지는 거다.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일단은 딘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붙여 샘을 바비 아저씨에게 보낼 작정이었다. 한 달에서 두 달. 그동안 딘은 망할 화재 현장에서 채 타죽지 않고 달아난 뱀파이어 오리진을 끝까지 추적할 생각이었다. 리는「아마도 죽었을 것」이라며 그 대답을 흐릿하게 회피했지만 딘은 그 정도로「아, 그렇습니까. 그거 참 잘 되었습니다」하며 물러설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무덤을 파내 그 뼈에다 소금을 뿌려 태우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끝나지 않는다. 마무리가 엉성하면 나중까지 골치 아프다.
- 몸은 곧 회복될 거야. 리도 장담했던 거니까...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가시 선인장이 빼곡한 멕시코 오지를 끝이 뾰족한 부츠 차림새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꿈꿨다. 양편으로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여자 둘을 꿰차고... 뱀파이어를 사냥한다. 그리고 샘에게 전화를 걸어「난 여기서 떵떵거리며 잘 살테다. 그러니 넌 대학으로 돌아가던지 말던지 맘대로 하렴」장난처럼 쾌활하게 말하는 걸 상상했다.
- 괜찮아. 샘은 강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거야.
원래 남이 참견하던 걸 싫어하던 녀석이다. 대학에 가서도 공부 잘 했다.
- 녀석에겐 내가 없어도 괜찮아. 아니...
침이 말라붙은 입이 아팠다.
- 솔직해지자. 차라리 내가 없는게 샘에겐 훨씬 이득일 걸.

뼈를 갉아대는 깊은 혐오감.
동생을 필요로 한 건 나.
동생을 옆에 두고 싶어한 건 나.
새벽녘에 부득부득 찾아가선 강제로 끌어당긴 것도 나.
그런 주제에 동생에게 총구를 들이민 것도 나.
그런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작별하는 거다. 각자의 길을 가자.
눈을 뜨자 짧은 머리카락의 성모 마리아가 죄인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마를 잔뜩 찌푸린 여인은 똑같이 그 마음으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진심으로 슬퍼 보이는 그 미소에 눈물이 다시금 왈칵 솟구쳤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아름다운 여인은 부드럽게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딘은 그런 그녀의 자애로운 행동이 자신에게 허락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위로받을 자격도 없었다. 딘은 거부의 의미로 천천히 얼굴을 돌려 코로 베개를 세게 짓눌러댔다.

『형?』
풀을 먹인 종이처럼 뻣뻣하게 굳은 목소리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저어... 기분이 많이 안 좋아?』
지져스. 딘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이불을 꽉 끌어안았다.
『샘?!』

샘은 어쩔 줄을 몰랐다. 형은 큰 두려움에 빠져 있었고, 그리고 그 공포의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었다. 겁에 질린 초록색의 눈동자가 한참동안 이쪽을 살피다 이불 안으로 쏙 숨었다. 맙소사. 그는 샘이 주먹을 들어 마구 때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샘은 형의 이마를 쓰다듬기 위해 앞으로 뻗었던 손가락들을 도로 접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딘은 그대로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조바심이 났지만 샘은 물러섰다.

『어, 얼굴... 털구멍 투성이라... 미, 미안... 그, 그치만 나, 면도도 새로 하고...』
『음?』
『나, 거미 많이 닮았어?』
딘은 가만히 추측했다. 이것도 환상인가? 뜬금없이 거미? 털구멍?
현실이 아니라면 조금은 용기가 난다.
딘은 머뭇거리며 동생을 빼어닮은 형상으로 시선을 맞췄다. 화답하듯 샘이 조금 웃었다.

『안녕?』
『안녕.』
『오랜만.』
『응.』
『잘 지냈어? 그런데 그런 인사를 하기가 무색하게 모습이 영 엉망이네.』
『딘도 만만치 않아. 꼭 부랑자 같아.』
『이렇게 섹시한 부랑자 있음 나와 보라고 그래.』

같잖은 농담 따먹기에 용기가 났다.
수줍게 웃던 샘은 다시 한 번 더 딘을 만지려고 시도하며 손을 뻗었다.
순간 움찔하며 딘이 몸을 사렸다.
『안돼. 저리 가.』
『딘?』
『.......... 데려다줄테니까.』
『뭐?』
『널 안전한 곳으로 곧 데려다줄테니까.』

딘의 목소리는 대단히 작았다.
하지만 샘은 가까이에서 폭약이라도 터지는 줄 알았다.

『나에게서 떨어져.』

Posted by 미야

2007/12/30 23:57 2007/12/3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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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31 01:08 # M/D Reply Permalink

    헉, 겨우 얼굴 한번 봤는데 떨어지라니...; 새미 충격받겠습니다...;;
    머릿속에서 샘의 퍼피 아이즈 공격이 급 망상되기 시작했어요...

    ... 흠. 역시 샘딘이라기 보단 딘샘의 관계랄까요.

  2. 밤맛만쥬야 2007/12/31 04:13 # M/D Reply Permalink

    맨날 눈팅만 하다가, 오랜만에 나온 Bloody blast에 미친 듯이 좋아하면서 살포시;; 글을 남겨요; 님의 소설은 심금을 자극하는 요소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서 읽고 또 읽어도 너무 좋아요!! 이번편을 보니 다음편에 대한 갈망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어요~후후.이런 아슬아슬한 분위기 너무 좋아효.ㅋ

  3. 와.. 2007/12/31 18:56 # M/D Reply Permalink

    이대로 영영 못보나 넘 걱정했는데,

    아..다행히 다시 글이 올라와서 넘 기쁘네요.

    일단 선리플 후 감상입니다....

    어여 빨리 두 사람... '

    행복하게 해주세요.^^

  4. 이즈 2007/12/31 22:32 # M/D Reply Permalink

    헉!! 떨어지라니...얼마만에 보는 형인데...샘 충격받았군요...ㅠ_ㅠ;

  5. 미모사 2008/01/01 00:06 # M/D Reply Permalink

    앗~~! 기다렸어요~~ㅠㅠ 돌아오셨군요~~(몸은좀 어떠신가요?)
    하지만..딘...흑흑.. 얼마만에 보는 형인데..2
    샘의 충격으로 흐려진 퍼피아이가 눈앞에 보이는듯해요;;

  6. 수수 2008/01/02 20:45 # M/D Reply Permalink

    어어엉.. 넘 오랜만이에요..기뻐여..ㅠㅠ 요즘 휴방이랑 정말 새해가 밝았지만 가슴한 구석은 허전합니다...

  7. 호야 2008/01/06 00:51 # M/D Reply Permalink

    눈팅만 하다가 첨으로 글을 남겨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담편 얼른 주세요!
    불쌍한 새미. 넘 큰 충격을 받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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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통이라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몸살도 같이 겹친 거였어요. 상태 메롱이라는 걸 감안하셔야 할 거예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환자 간호하다 멀쩡하던 사람도 골병 든다고 했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체력 하나는 끝내줘요 큰소리 치던 리도 아흐레 째의 아침이 밝아오자 고개를 떨궜다. 아니. 정확하게는 고개를 뒤로 젖힌 거였지만, 여하간「햄버거 힐 - 그대들은 반드시 전사할 것이다」로 통칭되는 기말고사를 끝마치고 부어라 마셔라 종강 파티까지 치러낸 2년차 대학생처럼 기괴한 자세로 널부러져선 꼼짝을 안했다. 소파 등받이로 기댄 목은 이상한 각도로 꺾어졌고, 허리는 구부러졌다. 다리 하나는 학처럼 접어 가슴 안쪽으로 수납했는데 샘이 보기에 그런 자세가 가능하려면 요가 내지는 발레를 배웠어야 했다. 웰빙이라는 걸 생소하게 여길 그녀가 과연 요가에 흥미를 가졌을 것인가. 그랬기를 희망할 뿐이다. 만약에「요가? 그게 뭐여. 집에서 만든 요구르트의 한 종류야?」라고 반문하는 날엔... 쓴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랬다간 리는 우물에서 걸어나온 사다코의 이상한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사방을 휘저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샘은 그녀의 자세를 편안하게 고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할 자신도 없었다. 거죽은 술통에 빠져죽은 대학생이었을지언정 그녀는 누가 뭐래도 뱀퍼였고,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로 On 스위치가 들어가는 건 잠시 잠깐이다. 이를 다시 해석하자면 섣불리「간격」안에 들어갔다간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을 거라는 말씀.
곤드레만드레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던 존도 담요를 덮어주려 한 장남의 머리를 재떨이로 깨부수려 한 적이 있다. 발자국 소리에 반응하여 공격, 그 다음에는「누가 내 귀한 아들 머리에 구멍 냈어~!!」라고 울부짖고... 나중에 존은 무안해진 나머지「다음에는 나에게 담요를 가져다주기 전에 호루라기를 불거라」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것도 그리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왜냐면 호루라기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재떨이를 들입다 던지면 사람 머리에서 피 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탁상 위로 놓여진 재떨이를 흘깃 쳐다봤다. 생소한 이름의 맥주 회사 로고가 인쇄되어 있고, 싸구려 유리 재질의 그것은 꽤나 무거워 보였다.
샘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드르륵 코를 골고 있는 그녀로부터 일정 거리를 떨어져 안정권 밖에 계속 머무는 편을 선택했다. 선잠에서 깨어난 다음에 뒷목이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해도 어쩔 수 없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하지 않은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피곤에 지친 그녀가 졸음을 핑계로 눈을 붙인지 정확히 40분이 지났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야! 어느 놈이야!』
샘의 판단은 옳았다. 뼛속까지 헌터인 그녀는 반사적으로 재떨이를 움켜쥐고 그것으로 가상의 적을 응징하려 했다. 차마 던지지 않았던 건 전화벨이 두 번 울렸다 곧 끊겼기 때문이었고, 더하여 뭉친 근육으로는 접었다 펴는 동작이 썩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는 악 소리를 지르며 재떨이를 놓쳤고, 껑충 뛰었고, 그 모습에 겁 먹었다는 투로 전화벨이 뚝 그쳤다.
『쳇... 모처럼 달게 자는 중이었는데.』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잠시 뒤에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슈.』
익숙한 모습이다. 존도 같은 방식으로 그들 형제에게 안부 전화를 걸곤 했다.
전원이 꺼진 시커먼 텔레비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샘은 홀로 옛 기억을 더듬었다.

때릉때릉 소리가 계속 울리면 전화를 받지 말아라. 아버지는 두 번 신호가 가자마자 전화를 끊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신호가 울리면 그때는 딘이 전화를 받도록 해라.
팩스가 희귀품이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휴대폰 또한 잘 나가는 사장님이나 사용하는 사치품이던 때가 있었다. 그리 먼 옛날도 아니다. 존이 최초로 핸드폰을 구입한 건 1996년도 4월의 일이었고, 1995년 초반만 해도 그들은 공중 전화와 모텔 전화기에 기름 때와 지문을 마구 묻혀대곤 했다.
명심해라. 전화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네 형이다.
왜 형만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거냐 샘이 바락 대들자 존은 이렇게 대꾸했다.
딘은「네, 아버지!」단 한 마디만 하는데 너는「아빠, 거기가 어디예요? 다치신 곳은 없어요? 언제 오세요. 보고 싶어요. 아, 딘이 또 학교 가는 걸 빼먹었어요! 형에게 야단 좀 쳐주세요. 아, 그런데 아빠? 질문이 있어. 닉슨 독트린이 뭐야?」라고 속사포처럼 퍼부어대잖니. 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하다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지 금방 잊어버려.
막내는 존의 설명에 화가 났다. 그치만 반박은 할 수 없었다. 샘이 누구보다 질문이 많다는 건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존의 지적은 옳았다. 샘이 전화를 받으면 수중의 동전이 턱없이 부족하게 된다.

그래도요, 만약 형이 옆에 없음 어떻게 해요. 나 혼자 있을 적에 아빠 전화가 오면요. 네?
괜한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건조해진 피부가 당겨서 아팠다. 왜냐하면... 샘은 손바닥으로 뺨이 얼얼해질 떼까지 문질렀다.
형은 항상 샘의 옆에 있었다. 있어 주었다. 덩그마니 혼자 남겨진 샘이 때릉거리며 울어대는 전화기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형이 옆에 있었고,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도 형이었다. 딘은 형편 없는 솜씨로 샘에게 옷을 입혔다. 아침 밥을 챙겨주었고, 예쁜 여자 아이에게 윙크하는 법을 설명했다. 머리를 빗겨주고, 손톱이 지나치게 길게 자라지는 않았는지를 검사했다. 그는 샘을 혼자 있게 하지 않았다. 결코 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같이 있었다. 같이 있어 주었다.
그것이 형이 할 일이잖아. 널 돌보는 것, 그게 바로 내 일이라고.
샘은 거칠게 신음했다. 그에게로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이제 그만 손 털고 일어나 형의 할 일을 하란 말이야!」소리를 질러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피자를 사가지고 오마.』
뜬금 없이 피자라.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샘은 눈꺼풀만 깜빡거렸다. 지금까지 그들은 전화로 주문 가능한 음식들만 먹어댔다. 그리고 피자 역시 전화로 배달이 가능한 종류였다. 전국에 있는 모든 피자 배달원들이 동시 파업을 일으킨게 아니라면 일부러 그녀가 가게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피자.......... 요?』
손가락에 침을 발라 급하게 눈곱만 떼어낸 리는 새벽을 맞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거리 매춘부처럼 보였다. 샘은 인상을 찡그리며 카펫트 무늬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특별히 추가하길 원하는 토핑이 있니? 샘.』
『바곳의 열매와 흰독말풀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 소리에 리의 얼굴이 걸작이 되었다.
『우와, 그거 무지 스페셜한 토핑이구나. 알았어. 페퍼로니 피자... 괜찮지?』
뜨끈뜨끈한 그 냄새만 상상해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그래도 샘은 예, 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이 말을 했던가. 어제 저녁 해리스 에버뉴에서 교회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용의자가 경찰의 체포에 불응하다 사살되었다고 하더구나.』
카펫 무늬에서 얼른 시선을 떼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예?』
『이름은 찰리 프레슬리이고, 평생 술에 쩔어 건달처럼 살다 간 길바닥 인생이야. 가엾은 사람... 그래도 막판에 자기 몸뚱이 하나 기증하고 여러 사람 살렸으니 분명히 천국 갔겠지.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렴.』
『뭐요?!』
『빨리 좀 알아 들어. 머리 회전이 왜 이리 답답해. 한 노숙자의 사망 원인이 평범한 심장마비에서 22구경 권총 구멍 두 개로 살짝 바뀌었다는 거야. 어차피 고통은 못 느끼니까 상관 없잖아.』
그제서야 샘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얘기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뱀파이어에 의한 살인 사건은 없다는 거다. 시체도 없고, 송곳니도 없고, 피 빨린 희생자도 없어. 알겠어? 그냥 반사회적인 술주정뱅이만 있는 거지.』
리는 한참동안 샘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참. 딘은 안에서 쉬고 있으니까...』
열쇠를 챙기면서 리가 잔소리를 했다.
『얼굴이라도 보겠다며 수선을 피워 그를 힘들게 만들진 마라.』

순간 혈압이 치솟았다. 샘은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싸구려 카펫트의 풀린 올의 모양새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저 안에 진드기 많다. 섬유는 세로와 가로로, 그리고 다시 꽈배기 모양으로 얽혀서 하나의 실을 이룬다. 먼지가 쌓이고, 각질이 떨어지고, 우주에서 날아온 미세한 금속 가루가 내려안고... 그 마이크로 코스모스의 세계에선 단 1cm의 거리가 지구에서부터 달 나라 만큼이나 멀다. 참고로 달은 지구로부터 약 38만km 밖에 있다.

주먹으로 무릎을 세게 때렸다. 그것만이 샘이 당장 해보일 수 있는 항의의 방법이었다.
『제기랄! 왜요!』
어째서냐. 왜 형을 보면 안 된다고 막는 거냐. 왜 딘은 날 보지 않겠다는 거지. 송곳니가 자라났나. 아님 눈동자가 노랗게 변했나. 사방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헐떡이는 숨을 토해냈다. 그간 힘들게 억눌러왔던 두려움이 갑자기 폭발하듯 용솟음쳤다. 샘은 어깨를 감싸쥐고 우, 우 하고 꼬리가 왕창 떨어져나간 개처럼 소리를 냈다. 이제는 한계다. 그는 낮이고 밤이고 에디 머피나 우피 골드버그, 레슬리 닐슨이 구르고, 눕고, 날아다니는 코미디 영화를 보며 머리를 희게 탈색했다.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치만 샘은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었다.
맙소사. 만약에 그가 뱀파이어로 변했다면... 하느님.

『워워~! 진정하라고, 도련님. 네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내가 저 안쪽 방으로 선짓국을 퍼 나르는 거 봤어? 동물의 피나, 사람의 피... 게중에 아무거나 봤냐고.』
물론 본 기억은 없다.
『정말 아닌 거예요?』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라도 할까. 날 믿어. 그의 눈동자는 노랗지 않아.』
그래도 불안감은 잠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형은...』
리는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감각의 대혼란 때문이야. 음식을 먹으려는데 테이블로 바퀴벌레가 기어간 궤적이 보이고, 커피를 리필해주는 웨이츄리스가 4시간 전에 주방에서 점장이랑 신나게 붙어 먹었다는 것까지 훤히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상상해봐. 기분이 어떨 것 같나. 무지하게 끝내줄 것 같지? 어느날 갑자기 1미터 밖에 서있는 사람의 털구멍이 죄다 보이는 거야. 타란튤러스 거미의 200배 확대판의 이미지가 네 얼굴이라고 하자. 그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 딘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니?』
『디, 딘은... 그럼...』
샘은 크게 한 방 먹은 표정을 지었다.
『제 얼굴의 터, 터, 털구멍이 끔찍스러워 절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마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리는 점퍼 속으로 팔을 꿰었다.

Posted by 미야

2007/12/16 20:59 2007/12/1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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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2007/12/18 01:12 # M/D Reply Permalink

    무엇보다 기다렸던 작품이네요.

    이번편이 마지막편이라고 들었는데,

    끝이 아닌가보네요.

    근데, 리.....마지막 반전 대사때문에 한참웃었네요.

    터..터..털구멍이라니....

    사실 딘은 샘 털구멍도 이쁘다고 할것같지 않나요?^^;;;;

    미야님 힘내시구...

    어서 우리 딘을 샘과 만나게 해주세요..^^

  2. 고고 2007/12/19 22:04 # M/D Reply Permalink

    아. 딘 너무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면회신청! 샘을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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