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고 인사하기가 뻘쭘했지만

사무실 관두자마자 쓰던 지갑의 동전 넣는 부분의 지퍼가 망가지더군요.
이게 무슨 징조인가 눈쌀 찌푸렸는데 이번엔 단골로 다니던 책방이 망해서 점포 정리라는 것을...;;
아놔, 이제 만화책 보고 싶을 때 난 어뜩케 하라고.

보통 이런 경우 도매 헌책방에 일괄로 넘기는 법인데 이들 부부는 일단 판매부터 하더군요.
한 바퀴 휙 둘러보고 상태 B+급 음양사 전권 3만 5천원에 주고 가져왔습니다.
들고 나오면서 꾸벅 인사를 했는데 이게 참 되짚어보면 고맙다고 인사할 이야기는 아니네요.

학교 졸업할 적에 어디 쉽게 취업할 상태가 아니니까 책방을 하겠다고 졸랐던 기억이 있어요. 당시에는 아빠도 살아 계셨을 때고 전세라도 저 혼자 살던 집도 있었구요, 어려서 돈 관념이 많이 없었죠. 가게 내는게 뭔지도 모르면서 제가 자주 이용하는 시설이니까 - 그리고 만화라면 도 닦은 수준이었고 - 책방을 하면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엄마가 "차라리 날 죽여" 이러면서 반대를 해서 다행이었달까.
책방 꾸린다는 계획을 접고 대신 해적 만화 만드는 출판사에 취직했었죠. 돌이켜보면 완전 개그.

90년대 초반에는 그래도 꽤 장사가 되었지만 지금은 뭐... 스캔 만화 보는 사람이 대여점에 갈 일이 없지요. 게다가 당시 만화책 가격은 대략 2,50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4,800원 정도이구요. 대여비는 200원에서 300원 고정이니 까딱하면 전기세도 못 뽑는게 당연하죠.
따라서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망해 나가는 걸 보니 좋진 않네요.
농담이 아니라 이 동네엔 대여점이 단 한 곳도 남지 않았어요.

Posted by 미야

2010/10/25 19:54 2010/10/2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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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0/10/26 08:53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elsra 2010/10/26 17:49 # M/D Reply Permalink

    어... 저도 예전에 망하던 만화가게에서 좀 사온 적이 있지요. 당시 용돈이 별로 없을 때라서 아쉬워하면서도 얼마 못 산게 지금도 참 아쉬운 부분... 나중에도 단행본으로 다시 안 나온 작품이 많았거든요.

    그리고... 저도 한때 백수로 수없이 이력서를 내던 시절 (지금도 역시나 백수지만 이력서도 못 내는 시절이고...) 해적판 만화 출판사에 취직될 뻔한 적 있네요 ^^ 되었다면 그 일은 제게 행운이었을지 불행이었을지...

  3. isola 2010/11/01 00:58 # M/D Reply Permalink

    저희 동네의 마지막 책 대여점도 이번달에 문을 닫았어요. 지갑사정이 궁한데 읽을거리가 급할때, 결코 소장하고 싶지는 않은 베스트셀러들을 빌려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요..
    백귀야행 시리즈 18권을 5천원에 사왔다고 아주 잠깐만 희희거렸지, 오갈때마다 책방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재개발 어쩌구 사무실을 보면 씁쓸합니다. 역시 소중함이란 부재에서 온다고.. 당연한 깨달음이 민망하네요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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