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형제들의 퇴마 여행기... 였던가,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아빠, 아무래도 나에게 초능력이 있는 것 같아.」
장남의 폭탄 발언에 존 윈체스터는 편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전직 해병대 출신의 이 어휘력 짧은 사내에게는 초능력은 곧「유해함, 좋지 않음, 총으로 쏴서 제거해야 하는 대상 중 하나」등등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존은 보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며 수염이 까칠하게 자라난 턱을 문질렀다. 겉으로는 그렇게 평정을 가장했으나 속에서는「오, 메리! 우리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요?!」비명이 산꼭대기에서 울려 퍼지는 산악인들의 야호 외침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별 거 아냐.』
『아들아! 방금 초능력이라고 했잖어!』
『음... 그게 말이지, 샘이 계집애처럼 질질 짜면서 놀이터 정글짐 속에 숨었는데 그냥 알 수 있었어. 일부러 찾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거기 쭈그리고 앉았다는게 느껴지더라고.』
일주일을 굶기라도 한 것처럼 버터 바른 빵을 허겁지겁 한 입 베어 문 딘은 어쩐지 신이 난 얼굴로「그러니까 아빠, 이게 초능력 맞지?」되물었다.
존은 그 의견에 결코 동의한 적이 없다.
하지만「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게 아니다」정색하며 야단친 적도 없다.
『이 자식이 지금 내 동생에게 뭔 짓을 하려는 거야~!!』
샘은 아스팔트 바닥에 손을 짚은 채 늙은 개처럼 엎드려 있었다.
투실투실한 몸집의 사내는 무릎을 굽히고 그런 샘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건드리지 마!』
쏜살같이 달려가 발길질부터 날렸다.
위대한 한 방이었다. 축 늘어졌던 뱃살이 안쪽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면서 내장마저 찌그러뜨렸다. 필시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 사내는 데굴데굴 구르며 맞은 부위를 손으로 감싸 안았다. 이어 울음소린지 신음소린지 모를 잡음이 도로에 울려 퍼졌다. 아랑곳 않고 다시 주먹을 들어 사내의 옆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꿈쩍도 않는, 크고 완강히 떠진 딘의 눈동자 안으로 이글거리는 살의가 떠올랐다.
『죽여버릴테다.』
다리와 등골의 쿡쿡 쑤시는 통증은 잊어버렸다.
『기다려, 딘. 잠깐만... 그러지 말...』
이쯤해서 뜯어말리지 않으면 딘은 정말로 그를 죽이게 될 것이다.
달리는 트럭에서 내려 비틀거리며 걷던 술주정뱅이에게 친절한 관심을 기울인 댓가치곤 너무 크다. 샘에게 못된 해코지를 하려던 것도 아니고, 수작을 부리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는 악마가 아니다. 나쁜 악마에게 홀린 것도 아니다. 밥을 먹고 똥을 싸는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공포에 질린 사내가 팔을 내밀어 제발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이 날아간 딘은 성큼 한 걸음을 더 가더니 팔을 곧게 뻗어 덩치를 턱을 뭉개버렸다.
기이한 체험이었다. 주변이 어두웠음에도 꽉 쥔 주먹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하얗고 뚜렷하게 그의 눈에 각인되었다. 그것이 참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샘은 입을 멍하니 벌렸다.
『멍청아! 다쳤어?! 다친 거야?!』
『어...』
『다쳤냐고!』
딘의 목소리는 소프라노 가수의 노래처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새미!』
스륵 눈을 감던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꺼운 겉옷 위로까지 피가 번진다. 칼에 찔린 자국으로부터 생명이 빠져나간다. 불러도, 불러도 샘은 대답하지 못한다. 기대오는 동생의 체중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아래로 축 늘어진 팔은 움직임이 없다. 애가 타서 뺨을 쓰다듬으며 열심히 말을 걸어보지만 소용없다. 어둠이 그를 삼켰다.
축축한 진흙 위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멀리서 우레가 친다.
샘을 잃었다. 말썽쟁이 동생이 죽어버렸다. 그들이, 악마가, 악마의 자식들이 그에게서 샘을 빼앗아갔다. 가장 소중한 걸 강탈했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두 팔로 샘을 움켜잡았다.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충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샘을 흔들고, 뒤집고, 다시 흔들어댔다.
『안 다쳤다고 말해, 인석아. 나에게 다치지 않았다고 말해! 말하라고!』
하도 흔들려 머리가 어질어질한 가운데 샘은 가까스로 대답했다.
『다치지 않았어.』
격앙된 딘은 동생의 어깨를 와락 감싸 안으며 익숙한 체취를 힘껏 들이마셨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해피엔딩이 아니다. 샘은 멀잖아 그「격앙된 감정」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마이너스 에너지로 변해 자신의 머리로 유황불처럼 쏟아져 내릴 것임을 알았다. 화가 잔뜩 난 그의 형은 미친개처럼 그를 깨물고, 밟고, 잘근잘근 씹어댈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녀석이 널 납치한 거니?』
난 그저 술에 취했을 뿐이고 - 소리가 쏙 들어갔다. 샘은 최대한 몸을 작게 움츠리고 콕콕 쪼는 시선으로부터 얼굴을 가렸다.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선, 전화도 받지 않고...』
숨 죽인 채 눈동자만 또록 굴렸다.
『게다가 여긴 모텔과 반대 방향이라고?』
그런 악조건 중에 용케도 찾았네, 스스로가 대견스럽다고 생각한 딘은 폭력의 여파로 부어오른 손등을 허공에 대고 흔들어댔다.
『자! 그래서?』
『그래서라니.』
『이 형에게 할 말이 있을 거 아니냐.』
『어...』
『기억이 혼란스럽니? 혹시 머리를 얻어맞았니?』
『그건 아니고... 음...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닌게 그런 얼굴이면 무슨 일이 생겼을 적의 얼굴은 도대체 어떤 거겠니.』
『글세.』
『저치 혼자야? 한 패는 없었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있을수록 공기는 불온해져 갈 뿐이다.
『새미?』
샘은 사태가 얼마나 참혹한 지경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상상해보곤 다리를 오므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딘이 술집에서 빠져나간 그를 다시 찾아내는 일엔 초감각적인 어떤 직감이라는게 필요했지만, 앞으로 30초 뒤에 화산이 맹렬히 폭발하리라고 짐작하는 일엔 예지력이나 초능력따윈 필요 없었다.
지진이 나면 땅은 흔들리는 법.
『저기, 있잖아, 딘... 나는...』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든 도저히 끝마칠 수가 없었다.
딘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변했고, 샘은 공포에 가까운 초조감에 사로잡혔다.
눈치 빠른 그의 형이 마침내 진실이 뭔지 깨달았다.
동생은 술에 취했고, 그는 엉뚱한 사람을 잡았고, 악마따윈 있지도 않았고, 어렵게 작업을 걸던 여자는 이대로 안녕이고, 모텔은 멀고, 위는 쓰리고...
『넌 정말 나쁜 자식이야, 샘! 진짜지 나쁜 놈이라고!』
가끔씩 딘은 키높이 구두에 의지하지 않고도 샘보다 키가 커진다.
『나에게 어쩜 이럴 수가 있어?!』
목소리도 커진다.
『너라는 인간은 날 빼놓고 극장에 가서 인디애나 존스 3편을 봤어! 임팔라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더니 아이팟을 달아 망가뜨리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에 담진 말아야지 다짐했던 것들이 이때다 하고 튀어나왔다.
『그러고도 성이 차질 않아 날 이렇게 골탕을 먹여?!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응?!』
오해다. 샘이 인디애나 존스를 봤던 건 순전히「딘이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영화였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오락영화는 그의 취향도 아니었고,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 틈새에 끼어 홀로 남은 자의 비참함을 만끽하는 건 충분히 괴로웠다. 팝콘이 짜서 눈물이 났고, 늙은 해리슨 포드의 분투에 눈물이 나왔고, 결말부에 생각지도 않은 비행접시가 나와 또 눈물이 났다.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한밤중에 잠든 척하며 날 묘한 눈으로 훔쳐본다는 것도 알아. 흡사 모습 변환자를 상대하고 있다는 투로 말이지. 나라는 존재가 맞나 틀리나 계속해서 뜯어보면서 말이야. 욘석아, 넌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야!』
『제기랄, 내가 그렇게도 귀찮고, 지겹고, 짜증나는 존재냐?』
『틀려!』
딘이 남긴 소지품은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리지 못했다. 누렇게 찌든 속옷과 신발, 그리고 구멍이 난 양말까지 소중히 끌어안고 버텼다. 무슨 수를 써도 딘이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달았지만 도저히 정리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불에 태워버려야지 결심했다가 도로 포기하곤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하소연하듯 팔을 벌렸다.
『그럴 리 없잖아! 내가, 내가 형을 어떻게...』
『시끄러!』
『도중에 말을 자르지 말앗!』
『알게 뭐야! 난 지금 화가 많이 났다고!』
그렇다. 화가 난 사람은 딘이다.
그런데 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샘이 아니라 소리를 질러대는 자신인 듯한 기분이 드는 걸까.
이해할 수 없다. 어째서 샘은 울음을 터뜨리고 - 자기가 잘못한 주제에 - 야단치는 그를 비난에 찬 시선으로 노려보는 걸까. 저 밑바닥으로부터 부아가 끓어오른다. 옛날부터 그랬다. 늘 그랬다. 어느새 화를 내며 펄펄 뛰는 사람은 샘이 되어버리고, 그때부터는 누가 잘못했고 잘못하지 않았는지를 따지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어버린다.
「자알~한다, 딘 윈체스터. 동생을 또 울리셨구먼.」
짜증에 겨워 길바닥으로 침을 뱉었다. 해보나마나 진 경기다. 한 두 해 겪어봤나, 꾹 참고 모텔로 돌아가 이불 뒤집어쓰고 잠이나 자자. 포기하고 샘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아빠? 아무래도 나에겐 초능력이 있는 거 같아.」
콧물 범벅의 동생이 뒤에서 덮쳐올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초능력이다.
『화내지 마, 딘. 나에게 등 돌리지 마. 제발...』
강한 충격이 다가오기도 전에 눈부터 감은 걸 봐선 초능력 맞다.
옴짝달짝 못하게끔 꽉 끌어안긴 딘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