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4 : 풀무불의 노래 1

겉 딱지는 슬레이어즈라고 해도 오리지널 성향입니다. 1기 및 4기라고 라벨을 붙인 녀석은 전부 그렇습니다. [죄는 반복된다] 이후로 일부 내용이 연결됩니다. 아차, 이거... 큰일났군. [죄는 반복된다] 글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서관에 없습니다. 기억에 의존하여 주세요. 죄송혀요.
기분전환용 현실도피입니다. 짐짐하신 분은 가볍게 패스~


첫 번째 감상은 덥다.
두 번째 감상은 무지 덥다.
세 번째 감상은 미치도록 덥다.
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나더러 지금 죽으라는 거니.

혀를 내밀고 숨을 껄떡거려도 나무 한 그루 서있지 않은 땡볕에서의 체감 온도는 섭씨 38도를 기록하고 있다. 억 소리도 나오지 않아 눈만 감고 부처님 알라를 찾았다. 여기서 알라가 누구냐고 묻지 말도록. 대답할 기운도 없다. 정 궁금하면 이글거리는 저 하늘 위의 태양에게 가서 따져라.

『여어~ 젊은이. 지금쯤 물을 마시는게 좋을 걸.』
『생각 없어요. 생각만 해도 메슥거려요.』
『그래도 억지로라도 마셔두는게 좋아. 아니면 나중에 기절해서 모래밭에 생으로 파묻힌다.』

초보 여행자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경험일 거다. 사막 기후엔 이골이 난 이부에겐 이까짓 더위는 껌이나 마찬가지지만 초원 지대를 거쳐 성지까지 순례하는 보통의 인간들에겐 생으로 화장당하는 듯한 끔찍한 날씨다. 바위 사이즈의 티카티카 새의 큼지막한 알이 통째로 익어나간다. 보호 장비 없이 함부로 돌아다녔다간 2시간 내로 탈수증을 일으키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맨 살을 내놓으면 저녁에 화상으로 물집이 잡힌다. 징그러울 정도로... 뜨겁다.

이부는 오랫동안 모래 바람을 맞아 노랗게 탈색이 되어버린 눈동자로 사막을 지긋이 응시했다.
낙원은 고사하고 지옥을 그대로 베껴온 듯한 저 풍경이 신이 강림한 땅의 참 모습.
주변에 자리한 모든 생명을 말살하고 나서야 신은 하계를 떠났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생명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따위가 신이야? - 하고 이부는 의심했다.
그래도 참배객들에겐 저 지옥이야말로 살아 역사하는 신앙의 표적이라니 놀랍다.

『메슥거리면 소금 사탕을 입에 넣고 있게. 어지럽다 싶으면 이미 늦어. 주의해야 할 걸세.』
『추, 충분히 주의하고 있어요.』
충분히 주의하긴. 개뿔.
그제야 사탕 봉지를 털어 소금 알갱이를 입에다 넣는 젊은이를 보고 이부는 혀를 끌끌 찼다.
여행 가이드로부터 미리 설명을 들었음에도 곧잘 잊어먹는다는게 문제다. 수분과 염분 섭취를 게을리하면 말 뼈다귀가 될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를 해도 너무 더운 나머지 머리가 백지가 되어버린다. 덕분에 호주머니에 소금 사탕을 산더미처럼 넣어두고, 옆구리에 물이 충분히 든 수통을 꿰고 있음에도 털썩 - 하고 대자로 쓰러지는 여행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갖고만 있음 뭘 해. 입에다 털어 넣어야지.
이부는 눈을 가늘게 하고 피부가 하얀, 외지인이 분명한 청년을 쳐다봤다.
도중에 기절한다에 동전 하나를 건다.

『자, 그래서?』
『그래서라니오?』
『자네, 사제야?』
오랜 여행에 바짓단은 헤어졌다. 그러나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고급품이다. 십중팔구 가난한 농민의 아들은 아니다. 벼루에 먹을 꽤나 갈아댔을 것 같다. 부드러워 보이는 손바닥은 노동을 해보지 않은 손이다. 단정하게 손질된 손톱 역시 곡괭이, 망치, 도끼, 기타등등의 도구와는 담 쌓았다. 거기다 착하게 생긴 외모가 확신을 더한다. 때가 꼬질거리는 옷을 벗기고 사제들의 시에를 뒤집어 씌우면 배경으로 청명한 목탁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이참에 고개를 숙이고 축복을 내려달라고 빌어볼까. 이부는 사람 좋게 웃었다.
『아니면 사제 지망생?』

젊은이는 손사레를 치며 따라 웃었다.
『아뇨, 아뇨. 왕잡니다.』
『응?』
『왕자라고요. 중이 아니라 왕자예요.』
기절한다에 동전을 걸었던 걸 취소한다. 저 정도의 넉살이라면 우물에 빠뜨려도 안 죽는다.
왜냐고? 주둥이가 둥둥 떠오르니까.
마음에 든다. 재밌는 농담에 목젖이 보여라 껄껄 웃어대면서 이부는 청년의 어깨를 쳤다.
오랜 고행과 금식으로 얼굴이 시쳇빛이 된 사제들은 농담이라는 걸 모른다. 그런 인간들을 끌고 사막을 방황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연옥의 유황 향기를 맡게 된다. 반면 이런 손님을 만나면 즐겁다. 물기 하나 없는 자갈 밭에서도 모험가들의 하프를 뜯으면서 생쥐의 노래를 부른다. 라라라 하고 반복되는 하밍 소리에 피곤도 잊는다.
이부는 기분이 좋아져서 티카티카 새의 고삐 조임새를 신나게 잡아당겼다.
예감이 괜찮다. 이번 성지 순례는 썩 훌륭할 것 같다.

『저~런. 정말로 왕자인데. 안 믿어주네.』
『하하하! 그러면 나는 시바의 여왕일세. 자, 그만하고 슬슬 출발 준비를 해보지. 여기서 머뭇대며 시간을 보내면 까딱하다 집에도 못 가게 될 걸세. 요즘엔 테라 쪽이 워낙에 시끄럽기 때문에 서두르는게 좋아. 아니면 내란에 휩쓸려 폭탄에 맞는다구. 성지 순례도 조만간 금지될 거야.』

폭탄이라는 단어에 청년이 움찔했다.
『내란? 폭탄?!』
『아아, 이 동네 사정이 워낙에 거칠어서 말일세. 그렇게 되었네.』
그렇게 대꾸하면서 이부는 최종적으로 사막 바위 새의 눈에 가리개를 씌웠다.

성지엔 풀 한포기 나지 않는다. 대신 환몽석이라는 고가의 보석이 나온다.
무채색에 반투명한 이 돌은 무지막지한 고열에 바위나 나무 같은 것이 1, 2초라는 짧은 시간에 녹아서 만들어진 보석이다. 대략적으로 둥글고 시커먼 이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모양만 따지면 볼품 사납다. 그래도 신이 강림하면서 부차적으로 생겨난 물질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만만치 않은 고차원 에너지가 그 속에 녹아 있다고 한다.
돌을 가지고 있으면 환상이 보인다. 더러는 마력이 증폭한다고도 한다. 이부는 믿지 않지만 가사 상태의 사람의 손에 돌을 쥐어주면 소생한다는 말도 있다.
너무 뜨거워 숨 쉬기조차 힘든 땅으로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환몽석을 캐고, 그걸 팔고, 다시 빼앗기 위해.

이부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사람이 모이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나? 다툼이 생긴다네.』
공식적으로 성지는 어느 나라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성지를 오작가작 하는 인간들은 타국의 지배를 받는다. 이게 문제다.
『돈은 권력을 불러. 권력은 다시 돈을 부르고. 이 둘이 짝짜궁하면 아주 골치가 아파. 어중이 떠중이까지 끼어들어 아주 쓰레기통이 되어버리지. 테라는 요즘 난리도 아냐.』

그렇다고 해도 남의 일이다.「생존자 마을」출신인 이부는 다른 마을 일엔 깊게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트롤이 깃발을 흔들며 단체로 지나가도 쳐다보지 말아라 - 라고 그의 아버지는 가르쳤다. 다른 마을에서 학살이 벌어진다 해도 그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남의 일이다. 남의 동네로 흐르는 피다. 왜 그걸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를 내며 진흙탕 게임에 끼어들면 어리석은 원숭이가 될 뿐이다.

『오히려 당신이 성직자 같네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젊은이가 말했다.
『어? 내가?』
『우리의 문제를 대신 처리 해달라 엎드려 신에게 기도만 하죠. 문제는 인식하고 있지만 결코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성직자.』
밝게 웃으면서 꽤나 시니컬한 이야기를 주워 삼킨다. 이부는 눈을 동그랗게 하고 젊은이를 다시 봤다.
순둥이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이부는 조금은 경계하며 젊은 손님에게 방풍, 방사용 마스크를 내밀었다.
사막의 모래 먼지를 뚫고 지나가려면 거미줄처럼 가는 실로 촘촘히 짠 특수 마스크가 필요하다. 이걸 뒤집어 쓰면 대단히 덥다. 그러나 폐에 모래가 가득 쌓여 죽는 것보단 낫다.

『나는 괜찮아. 나는 자유인이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선 혀를 조심하게. 성직자라면 하느님 다음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자네의 그런 발언을 그냥 넘기려 하지 않을 거야.』
『그렇겠죠. 정곡을 찔린 나머지 화내겠죠.』
『화만 낼까. 권위 의식에 찌든 인간들은 자신들의 허물을 꼬집는 말을 용납하지 않아.』
『알았어요, 주의할게요. 충고 고마워요.』

청년은 산뜻하게 말하고 이부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마스크를 뒤집어 썼다. 그러니까 단추를 풀고, 뒤로 넘겨서, 이 부분을 둘로 접고, 얼굴에다... 그러고 나서 곧 후회했다. 누군지도 모를 여러 사람이 번갈아 사용했을 마스크에선 시큼털털한 악취가 났다. 뭡니까, 이건~ 이라 절규하며 재빨리 벗었다. 경악하여 자세히 보니 말라붙은 토사물 찌꺼기도 묻어 있다.
이부를 힘차게 노려봤더니 딴짓한다.
『가끔 사막 썰매를 타면서 멀미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그럼 세탁을 해놨어야지요!』
『그 천은 시노아 타천충의 특수한 체액으로 짠 거야. 물에 넣어 빨면 망가져.』
『그럼 새것으로...』
『비싸.』
싫으면 관두라지, 하면서 이부는 씹는 담배를 어금니로 질겅 물었다.
『그깟 냄새에 성지 순례를 포기할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뭐가 문제야.』
『저어, 그게 말이죠. 뭐가 문제인가 하면...』

대답을 다 못 마치고 젊은이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엉겹결에 이부도 청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더러운 방풍 마스크는 잊어버렸다.
무지막지한 장검을 꿰찬 소년이 태양을 등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Posted by 미야

2006/06/16 12:44 2006/06/1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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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R 2006/06/19 19:54 # M/D Reply Permalink

    세상에. 복제당한 그 아이, 눈알이 뽑혔던 그 아이, 맞죠? 다시 볼 수 있게될줄 몰랐어요. 얼마나 기다렸는줄 몰라요. 미야님의 오리지날 매우 격하게; 환영합니다. 미야님의 세계가 어서 완성되길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한사람입니다.그 이후의 이야기들도 차차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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