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 라고 적고 우걱우걱 여행기라 읽는다. 진짜지 잘 먹는다. 전생에 굶어 원한이 사무쳤냐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신선한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샘은 호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은 채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된「오우~」소리를 냈다.

보통「유령」이라고 하면 낡고, 오래되고, 지저분하고, 버려지고, 삐걱거리는 폐허를 연상시키는 법이다. 거울 대용품으로 사용이 가능한, 반질거리는 새 수도꼭지와는 아무래도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 더러운 거미줄을 가발 대신 뒤집어쓰고 등장하면 모를까, 샤넬 립스틱을 곱게 바른 유령이라는 건 상식 밖이다.
『일단은 썩 괜찮은... 집으로 보이는 걸.』
수리가 끝난 지붕과 하얗게 칠이 발려진 회반죽, 보강된 나무 기둥들, 새로 짜맞춘 문짝이 세월의 때를 훌륭하게 벗어 던졌다. 얼핏 봐선 새로 지은지 한 달이 넘지 않은 주택처럼도 보인다. 가스 배관에 칠을 새로 했고 마당의 잔디도 보기 좋게 다시 깔았다.
시험삼아 울타리를 붙잡고 좌우로 밀어봤다. 튼튼하게 잘 만들었다. 열 받은 취객이 자동차로 들이받지 않은 이상 허리케인이 불어닥쳐도 끄떡 없을 것이다.

샘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영감이 없다는 건 별도로 치고 수상한 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오염을 막기 위한 비닐 포장은 아직 치워지지 않았다. 정리가 덜 되어 분위기는 산만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적이다.「새 것」의 이미지가 확고부동함이다. 대문 앞으로「임대합니다」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아이들을 두 명 정도 낳아 키우는 중산층 부부라면 좋아라 하고 연락을 취해올 것 같다. 과연 저런 곳으로 유령이 숨어 가냘픈 호흡을 하고 있을까? 신나 냄새에 산 사람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그래서 뒤를 돌아다보며「잘못 짚은 거 아냐?」라고 물었다.
딘은 일단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유보했다.

『뒷마당으로 오래 전에 죽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뿌리가 썩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건물 쪽으로 쓰러졌다고 하더군. 다락을 덮치고 침실 쪽까지 멋지게 망가뜨린 모양이야. 마침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해. 만약 사고 당시 사람이 있었으면 큰일날 뻔한 거지. 천만 다행이었다고 인부들 책임자가 그랬어.』
딘은 손가락으로 지붕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저기가 무너졌다」라고 말했다.
『언제까지고 구멍이 휑~ 뚫린 꼬락서니로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지붕을 고치면서 곳곳을 손봤어. 주인인 캐빈 쉐퍼드 씨는 동네 반대편에 살고 있고, 세입자 부부는 계약이 채 만료되기 전에 근방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더군. 그게 3개월 전이라고 해. 특별한 문제가 생겨 갑자기 떠난 건 아니야. 집에 대한 불평은 없었으니까.』
『음, 그렇다면 직장 문제이거나 아님 부인의 변덕이었겠지.』
『글쎄다. 어쨌거나 자칫하다간 자기 머리통이 지붕과 같이 해서 날아갈 뻔했다는 걸 알고는 놀란 마음에 세입자 남편이 한 번 들렸어. 서른 다섯 정도 먹은 젊은 사람이었는데 체격이 좋더구나.』
『직접 봤어?』
수고들 하십니다 - 하고 정중하게 인사하더라.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고 넌지시 묻더군. 쓰러진 나무에 그네를 달았다가 아닌갑부다 하고 철거했는데 그게 자기네들 책임이 되겠느냐고. 난 일용직 잡부라 잘 모르겠다고 했지.』
『흐응.』
 
여기서 서성이지 말고 가까이 가보자며 딘이 손짓했다.
발에 스친 포장용 비닐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샘은 페인트로 뒤범벅이 된 그것들을 피해 화단 가까이로 바짝 붙어 걸었다. 그리고는 곧 후회했다. 스프링클러 덕분에 물기를 머금은 풀들이 어찌나 미끄럽던지 두 번 정도 어이쿠 소리를 내며 비틀거려야만 했다. 앞장 서던 딘이「조심해, 아가!」라고 주의를 주었다. 못 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샘은 툴툴대며 형의 뒤를 따라갔다.

집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지 현관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조금은 부주의하다 싶은 조처였는데 탁 트인 동네 분위기로 보자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닐지 모른다.
샘은 고개를 길게 빼고 뒷문으로 이어진 기다란 자갈 길로 시선을 돌렸다. 눈에 띄는 거라면 언제 버려진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담배 꽁초가 전부이다. 거기에 EMF 미터기를 가져대봤자 눈금은 요~만큼도 안 움직일 거다.
눈가에 손바닥을 대고 창문을 기웃거렸다. 거실은 녹색 계열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색감은 괜찮은데 조명이 달려 있던 곳으로 전선이 튀어나와 그게 좀 흉했다.

『주변 기전력은 정상 수치야. 건물 내력도 깔끔하고... 카운티 오피스에도 사고가 있었다는 기록은 못 찾았어. 집안에 강도 같은 강력 범죄가 있었다는 기록도 없고. 아직까진 수상하다 싶은 건...』
『이엽!』
『음? 따로 무슨 할 말이라도?』
말꼬리를 썩둑 자른 형을 향해 뒤돌아섰다.
딘은 특유의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들어, 샘. 여기서 이사를 나간 넬슨 씨가 그랬어. 임대 약관에 이런 조항이 있다는 거야. 집안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워서는 안 됩니다. 가족 중에 7세 미만의 아동이 있으면 안 됩니다... 집이 망가질까봐 걱정을 하는 것치곤 너무 예민하잖아. 어린애는 여기에 살면 안 된다니.』
마당에 심은 화초의 종류에 대해서까지 엄격한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우기는 집 주인들이 더러 있다. 규정은 거의 편집증에 가까워 임대차 계약서 두께만 논문집 수준이 되기도 한다. 커튼을 달 적의 주의점, 그리고 창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하는 시간까지 시시콜콜 참견을 하는 것이다. 가구 배치시 벽면에서 25cm 떼어낼 것, 벽에 못질 절대 금지, 거실 내 대형 어항 설치 금지, 정원에서의 바비큐 금지. 심지어 자국이 남지 않도록 침대 기둥에 고무 패드를 두겹으로 꼭 깔아두라 엄포를 놓기도 한다. 명문화된 내용이 어찌나 복잡한지 세입자들은 차라리 집을 사는게 낫겠다며 부르르 떤다.
 
그래도 이건 좀 억지다. 애완동물은 그렇다치고 아이들도 안 된다고?
차별성 조항이라며 고발당할 수준의 요구 사항이다. 샘의 눈이 휘둥그레 벌어졌다.
『헤에. 진짜?』
『넬슨 씨의 부인이 둘째를 임신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나갔던 거래.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중계인을 통해 출산 전에 집을 비워달라고 연락을 해왔다나. 갑자기 그러는게 어디 있느냐고 불평하니까 여기에 분명 싸인하지 않았느냐며 계약서를 들이밀더래. 그래도 속으로 너무 심했다 싶었는지 이사 비용은 집 주인이 전액 부담을 했다는 거야. 와우~! 놀랍지 않니. 캐빈 쉐퍼드 씨는 애들을 무지하게 싫어하나봐.』
『와! 그거 무지 이상하다!』
『그치?』

까닭이 궁금해진 딘은 벽돌을 나르다 말고 잠시 멈추어 서서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넬슨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며 어깨를 으쓱였댄다. 그것으로 얘기는 끝났다. 일용직 잡부 주제에 더 깨물을 분위기도 아니었고, 넬슨은 약속에 늦었다는 투로 짐짓 시계를 쳐다보았다. 이어지는 건 틀에 박힌 이야기였고, 그나마 짧았다.

 『애들이 살 수 없는 집이라.』
『개나 고양이도 살 수 없는 집이야. 오싹하지?』
『고약한 혼령이 머무르고 있는 건가. 어떻게 생각해? 딘.』
『그건 아닌 것 같아, 새미. 혹시 집안에서 쥐가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듯한 기척은 없었느냐고 물어봤을 적에 넬슨 씨의 표정을 네가 직접 봤어야 하는 건데. 전등이 깜빡이는 증상도 일절 없고, 수도관에서 이상한 소리도 안 났다고 했어. 오히려 살기 좋은 집이어서 이사를 나가는게 섭섭했다고 하드라.』
『단순히 입에 발린 소린 아니었을까? 쓰러진 나무에 그네를 달았다는 점 때문에 손해 배상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무지 걱정하는 눈치였다며.』
『알게 뭐람. 하여간 중요한 건 내가 맨 처음으로 이상한 전화를 받았던게 바로 저 집안에서 였다는 거야. 아직도 생생해. 워째 집의 구조나 모양새가 켄자스의 불타버린 우리 집이랑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전...』

신나게 얘기하다 말고 딘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실수로 금기어를 내뱉었다.
그게 꽤나 속상했던지 딘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가렵지도 않은 머리를 긁어댔다.
그것은 억지로 봉쇄해버린 기억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모양, 벽에 걸려진 사진 액자,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정원의 나무, 벽지의 색, 아기 방에서 들리던 딸랑 소리...「내가 미쳤지」혼잣말 했다. 덩달아 몸을 움찔거린 동생과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애꿎은 현관을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색이 곱절로 짙었다.

『콜록.』
어색함을 감추고저 샘이 기침했다.
엄마가 죽었을 당시 네 살이었던 딘과는 달리 갗난아이였던 샘은 켄자스의 집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기억이 없으니 아무렇지도 않다. 형이 워낙에 끔찍스럽게 생각하니까 덩달아 꺼림직스럽게 여길 뿐이다. 본인 스스로에겐 무섭다는 기분도, 두렵다는 마음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으로만 그 집이 어떠하다는 걸 보아왔고, 아빠나 형의 입으로 설명만 들었다. 게다가 그 설명은 자세하지도 않았다.
겁에 질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자가 울면서 창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걸 환상으로 보았을 적에도「저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 이야길 들은 딘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나서야「어라, 이게 아닌가 보다」싶었을 정도다. 그러고도 옛날 집으로 돌아가보자 당당히 얘기를 꺼내는 것으로 형을 기겁하게 만들었으니 생각이 없어도 진짜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며 딘의 어깨를 쳤다.
『알았어. 여기가 처음 전화를 받은 장소라는 거지?』
『으, 으응.』
『좋아. 그럼 2층부터 올라가볼까?』
조사를 시작하자며 품속에서 측정기를 꺼내든 샘이 계단을 가리켰다.

그걸 보고도 딘은 뒤로 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난 여기서 일할 적에 2층엔 단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어, 샘.』
『에? 망가진 지붕을 고쳤다며.』
『무거운 자재는 도르래를 사용해서 위로 올렸고, 아래층에서도 할 일은 많았거든. 쓰러진 나무를 베어내고 그걸 치웠어. 2층엔 안 올라갔어.』
저 위로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다. 그렇게 온몸으로 주장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흐음, 켄자스 집과 그렇게나 비슷하게 생긴 건가.
어쩐지 내키지 않는 기분이 되어 샘 또한 계단 위로는 다리를 올려놓지 않았다. 대신 계측기를 쥐고 있는 팔을 최대한 길게 뻗어 수상한 기운은 없는지를 살폈다. 그것은 전혀 전문가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다고 괴이한 에너지를 포착할 수 있다면 진작에 그 집은 무너졌다. 당연히 계측기의 눈금은 정상 수치에 머물렀다. 샘은 스스로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돌았지.』
고개를 흔들며 난간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끄응끄응 이 앓는 소리가 들렸다.
『가지 마.』
평소라면 딘은 그런 동생을 향해 제대로 하라며 야단을 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오히려 조사를 방해하려 들었다. 이거, 이거. 조금은 성가시다.
앞으로 그가 보일 반응을 걱정하며 샘이 어렵게 운을 떼었다.
『저어, 아무래도 올라가서 침실 쪽을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역시나 생각했던 그대로다. 딘의 얼굴이 굳었다.
『형?』
『그래. 내가 아무래도 노망이 났다. 인정해. 제 정신이 아니야. 그치만 어쩌라고.』
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 널 다시 데리고 나오긴 싫단 말이야.』

Posted by 미야

2007/04/24 10:06 2007/04/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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