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39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잔인한 표현 가감 없이 사용합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암살에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일반적으로 범인은 현장에서 빠르게 달아나는 것이 국룰이다.
복면을 사용하여 얼굴을 감췄으니 정체가 드러난 것도 아니다. 공력을 쓰는 수사들은 청하로 방향을 튼 염방존을 따라가 여기엔 마차를 끄는 마부와 하인들밖엔 없었다. 1회 출연 알바비 5만원 지급에 이름도 나오지 않을 엑스트라를 굳이 수고를 들여 죽여 없앨 까닭이...
내 옆에서 가슴을 찔린 하인이 꾸르륵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다. 폐에 피가 고여 익사하는 중이다.
그 옆에선 복면인이 하나하나 급소를 찔러 확실하게 죽었는지를 확인을 했다.
아직 죽지 않은 자가 외쳤다.
“약속이 틀리잖소!”
맨 처음에 내 등을 떠민 남자다.
이상했다. 저 대사는 ‘나는 외아들이고, 집에 늙은 어머니가 계시오! 제발 살려주시오!’ 여야 했다. 저래선 원래 복면인과 처음부터 한통속이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고통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멱살이 잡혀 들어 올려졌다.
“이놈이 맞느냐?”
어째서인지 복면인은 무릎을 꿇고 앉은 하인에게 내 얼굴을 확인시켰다.
부처에게 향을 올릴 기세로 절을 하며 ‘그놈이 맞다.’ 하자 그 즉시 칼춤이 이어졌다. 무엇을 약속받았는지는 몰라도 복면인은 처음부터 그를 죽일 계획이었는지 손속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깟 돈 몇 푼에 열리는 입이라면 살려둘 필요가 없지.”
그렇게 말한 사람은 비어있는 마차를 조정하던 마부였다.
암살자가 마차를 노리고 뛰어내렸을 적에 마부는 재빨리 고삐를 집어던지고 바닥을 굴렀다. 돌이켜보면 잘 짜인 각본대로의 움직임이였던 것도 같다.
정신이 실 가닥 같이 끊어지려는 찰나, 마부와 내 눈이 서로 마주쳤다.
아니, 내 눈과 마주친 건 잘 버려진 단도 날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똑바로 세워진 칼날이 내 눈을 가로로 그었다.

“뭐야. 씨발 것들. 염방존을 노린 거라며...... 야, 이 미친 새끼야! 아악!”
“앞으로 눈은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미리 없앴다. 혀는 필요하다는 게 참 아쉽군.”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나를 거적 같은 것으로 대충 싸더니 다시 나무로 된 궤짝 같은 곳에 넣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내가 들어간 상자가 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만 관은 아니었다. 안에서 다리를 똑바로 펼 수 없어 무릎을 접어야 했다.
“옮겨라.”
우두머리로 짐작되는 자가 명령하자 궤짝이 들어 올려졌다. 이동은 신속했다.

‘염방존을 노린 것처럼 술수를 부렸지만 처음부터 노린 건 나였어. 이놈들 정체가 뭐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하자 궤짝이 크게 요동쳤다.
조용히 하라는 말을 참으로 와일드하게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라면 강도로 위장했을 텐데...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아파 죽겠어! 날 이렇게 잡아가는 이유조차 모르는데 눈도 안 보이게 되고!’
눈꺼풀은 절반이 잘려나갔고 대신 그 자리에 피가 엉겨 붙었다. 상처는 아물겠지만 시력이 돌아올 것인지는 확신이 가지 않았다. 일부러 눈을 망가뜨렸으니 치료를 제대로 해줄 리도 없고, 흉터가 남은 눈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줄지는 알 수 없었다.
눈도 그렇지만 그보다 당면한 문제가 더 심각했다.
궤짝에 틈새가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소가 고갈되고 있었다.
게다가 거적으로 둘둘 말린 상태다.
‘산소부족으로 얼마 후면 기절하겠는데.’
그걸 노린 거라면 칭찬해주겠다. 귀에서 이명이 들렸고, 물 먹은 솜이 코 속으로 가득 들어오는 기분이 들면서 의식의 줄이 뚝 끊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적엔 궤짝에서 꺼내어져 실내로 이동되어 의자에 묶인 상태로 바뀌어져 있었다.
눈이 회복되지 않았기에 공기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분위기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악취가 상당했다. 가까운 곳으로 피가 살점이 썩어가고 있어 도축장인가 생각했을 정도다.
동물을 도축했든, 사람을 도축했든, 청소상태가 매우 불량해서 생리적으로 구역질이 나왔다.
지금의 내 상태를 의식한다면 구토는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역겨운 오물을 한바가지 쏟는 것도 그렇지만 이물질이 기도로 들어가는 날엔 대 참사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까닭은 앉은 의자의 각도가 예사롭지 않아서이다.
손님의 면도를 돕기 위해 뒤로 젖혀진 이발소 의자 같았달까, 비스듬하게 눕혀져 있으니 토하면 필연적으로 구토물 일부가 목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이발소 의자일 리 없으니 고문용 의자이겠군.’
끙끙거리며 의자에 묶인 팔과 다리를 버둥거렸다.
움직임에 따라 철겅거리는 쇳소리가 났다. 중세시절 고문의자처럼 쇠고리에 사지를 고정시켜 둔 것 같았다. 주먹을 쥐고 팔을 움직이자 삐걱거리는 소리만 났을 뿐, 움직임이 용이하지 않았다.

“효성진 도장의 제자님께서 드디어 정신을 차리신 거 같군.”
거짓말 보태지 않고 펄쩍 뛰었다. 아무리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귀는 멀쩡한데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있다는 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기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도 짐작이 쉽지 않았다. 방음설비가 된 음악실처럼 벽이 울퉁불퉁하여 소리의 전달을 먹어치우는 눈치다.
나는 겁을 집어먹은 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알았지만 의외로 상대는 나를 볼 수 있어도 나는 상대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무서웠다.

“거기 누구요!”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게 중요할까?”
스윽, 스윽,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숫돌에 날을 가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전설의 고향 드라마에서 구미호가 나그네의 간을 꺼낸답시고 부엌에서 칼을 가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공포는 배가 되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다는 거요!”
“네가 효성진의 제자라는 것이 중요하지.”
“제자? 누가요. 나? 나 그 사람 제자 아닌데?? 언제부터 내가 제자가 되었지?”
“그래, 어쩐지 그렇게 나올 거 같더라. 처음부터 고분거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
다시 작게 달그닥 소리가 이어졌다. 그게 밥그릇을 정리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니면 치과에서 썩은 이빨 쑤실 도구를 정리할 때 나는 소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물건은 핀셋처럼 가벼운 종류부터 망치 같이 무거운 종류까지 다양했다.

순간 훅, 하고 얼음처럼 찬바람이 불었다. 나는 질겁했다.
“몇 살이지?”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합시다. 제대로 대답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고요... 진짜로 제가 나이를 정확하게 몰라요. 어쨌든 댁에게 최대한 협조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건 알아주세요!”
“그래서 몇 살이지?”
“올해 스물하나라고 하면 믿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헤아려봤을 적엔 그 정도 나이가 됐습니다! 거짓말로 속이려는 것도 아니고,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몇 살이지?”
“아, 진짜! 저에게 왜 그러시는 건데요~~!!”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걸 봐선 제대로 걸린 거다. 상대는 전문가였다.
나는 대충 이쪽이겠거니 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도록 울상을 지어보였다. 효과는 없겠지만 어쨌든 상대방에게 협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나는 숨기는 것도 없고, 감추고 있는 비밀도 없다.

“몇 살이지.”
“스물하나 입니다. 그런데 못 먹고 자라 열네 살이라고 다들 착각합니다.”
“몇 살이지.”
“선생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웃자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저는 어려서 고아로 자랐고, 그래서 나이를 정확히 모릅니다.”
“몇 살이지.”
갑자기 끌려와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정신이 들었는데 상대방은 계속 내가 몇 살이냐 묻기만 한다. 이러면 내가 굳이 대답을 할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이 없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사람의 뼈가 모두 몇 개인지 알고 있니?”
전생에서 퀴즈로 잘 써먹는 의학 상식이다. 206개다.
“그럼 손에는 모두 몇 개의 뼈가 있는지는 아니?”
세어본 적도 없어 모른다. 농구를 하다 손가락뼈를 삐었을 때 엑스레이도 찍어봤지만 몇 개인지는 모른다. 알고 있었어야 하는 거였나.
“손가락뼈는 열네 개. 손바닥뼈는 다섯 개, 손목뼈는 여덟 개란다.”
“꽤 많군요.”
대답하기가 무섭게 엄지손가락이 뚝 부러졌다.
“으하하악, 아륵!!”
“축하한다. 이제 네 손가락뼈가 열다섯 개로 늘었구나.”

이러지 말고 그냥 원하는 게 뭔지 시원하게 물어봐줬음 좋겠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 쳤다. 굳이 기선제압 이런 거 하지 없어도 순순히 다 말해줄 거였다. 뭘 원하는데. 뭘 바라는데. 아니면 그저 고문이 좋아서 이러는 거냐고. 그러지 말고 궁금한 거 있음 다 물어보라고. 팬티 사이즈에 동정 잃은 날짜까지 다 말해줄 수 있다. 나는 지켜야 할 자존심 같은 건 가지고 있지도 않고, 신념이나 신앙도 가지고 있지 않다.
“표정이 왜 그래. 기쁘지 않은 거니? 그럼 손가락뼈가 열여섯 개가 되면 행복해질까?”
“아니오!”
대답을 듣고도 놈은 삶은 닭 뼈 고르듯 손가락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렸다.
이어 우드득 불쾌한 소리를 내며 뭔가가 끊어졌다.
“아으악! 악! 아니라고 했잖아! 아악! 악악!”
“그래, 넌 올해 몇 살이지?”
확실히 알겠다. 이놈은 제정신이 아니다. 사이코다. 내 나이가 몇 살이나 묻는 건 핑계고 내 뼈의 개수를 하나둘 늘려가면서 기뻐하고 있다.

“이유나 좀 알자! 그냥 취미생활로 이러는 건 아닐 거 아냐!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
“여전히 화를 내는 걸 보니 아직 팔팔하네. 한참 즐길 수 있겠어.”
그가 기특하다는 투로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과연 명월청풍 효성진이 제자로 삼을 만해. 그럼 나랑 같이 오랫동안 놀아볼까? 자, 그럼 다시 질문할게. 네 나이가 몇이지?”
“야, 이 개새끼야악~!! 허윽.”
비명 섞인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맹렬하게 두뇌를 풀가동시켰다.

‘명월청풍 효성진의 제자.’
이 사람들은 효성진과 연관 지어 나를 고문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Posted by 미야

2021/12/08 11:59 2021/12/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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