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구름 위의 무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볶은 땅콩 먹어볼래요?”
금린대로 예절공부를 하러 떠나기 일주일 전, 남사추의 처소로 초대를 받았다.
모두의 눈초리가 흡사 곰벌레를 보는 듯하였기에 남사추의 이러한 호의는 가뭄의 단비 느낌이었다.
단짝인 남경의는 사추와 단 둘이서 방에 남으면 좋지 않은 소문이 돈다는 이유로 깍두기 역할을 자처하고 옆에 앉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적은 주전부리였다. 사추가 나 먹으라고 사온 과자도 한주먹이나 쥐어선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밀가루 반죽에 단감조림과 땅콩을 넣어 불판에 구운 과자는 기차역에서 팔던 호두과자 느낌이었는데 크기가 훨씬 더 크고 맛도 달았다. 남사추와 나는 하나만 입에 넣고도 금방 질려버렸지만 먹보 돼지 남경의는 덥썩 물어 세 개를 먹어치웠다. 고소 사람들은 다들 식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얘는 남씨 직계라면서 돌연변이처럼 굴었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아예 봉지를 품에 끌어안고 네 개째를 손에 쥐고 먹는 걸 보니 웃음도 안 나왔다. 그래도 예의를 따져 음식을 입에 물고 있을 적엔 떠들지 않아 그거 하나는 좋았다.
“그래, 단수 양반. 금린대에 공부하러 가서는 아무에게나 결혼해달라고 하지 말라고?”
두 번 씹고 벌써 끝났다. 과자가 입에서 살살 녹는가 보다. 입안 음식물을 삼킨 남경의가 리얼 탄산 100% 음료의 쏘는 맛으로 말했다.
“금릉에게 실수로라도 청혼하면 뼛가루로 변해 운심부지처로 돌아오게 될 테니 조심해.”
네이밍 센스가 괴상한 사람은 세상에 두 명으로 나눠지지 않았다.
슬프게도 금릉과 여란은 동일 인물이었다. 진짜지 사람은 하나인데 본명과 자, 호로 나눠 부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금릉은 이름이고 금여란은 자라고 한다.
“얘가 은근 상식이 부족해서 말이지.”
과자 부스러기를 옆으로 치운 남경의가 종이에 기호를 그려가며 장황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부모와 스승, 매우 절친한 관계, 부부가 아니면 부르지 않는다.
남자가 지학의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되었다고 여겨 자로 부른다.
호는 거처하는 곳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다.
“금릉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니까 하루라도 빨리 자로 불러달라고 우기고 있는 거고.”
마찬가지로 남사추의 이름은 남원이고, 사추는 함광군이 직접 지어준 자라고 한다. 함광군이 밖에서 데려와 아들처럼 키웠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어쨌든 네 입장에서 금릉, 금릉 지금처럼 이름으로 부르다간 경을 친다.”
잘 외워지지 않으면 어른은 ‘나리’ 소년은 ‘공자님’으로 명칭을 통일하라고 꼼수를 가르쳐 주었다.
“아니, 진짜로 얘가 일반 상식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말이지... 금린대에 가서 한바탕 크게 사고 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그러니 외워! 무조건 외워!”
난릉 금씨. 가문의 상징은 모란. 정확하게는 금성설랑모란문.
가문의 종주는 염방존. 금릉의 작은아버지이고 택무군과는 의형제 사이. 두 종주는 사이가 좋다.
“잠깐만. 고소 남씨의 종주님은 가장 나이가 많은 남계인 선생님이 아니었어?”
“맞을래?”
협박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야무지게 꿀밤을 때렸다. 때리면 머리에 잘 들어간다나.
이어 남경의는 이번 대 가주 염방존의 일대기로 전밀(傳密), 복살(伏殺), 결의(結義), 은위(恩威)는 꿰고 있는 것이 좋을 거라며 간단한 설명에 들어갔다.
전밀, 기산 온씨의 집에 잠입하여 정보를 빼내다.
복살, 온씨 가주 온약한을 암살하다.
결의, 금씨와 섭씨, 남씨의 종주가 의형제를 맺었다.
은위, 염방존이 선독의 자리에 올라 선독령을 추진했다.
음, 그러니까 제이슨 본 같은 사람이었나 보다. 잠입에 암살에...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외모로 뮤지컬 장르를 떠올리기 쉬우나 실제로는 장르가 느와르인 사람이었다.
“잘 해야 해, 걸람. 진짜로 금린대로 가서 잘 해야 한다고. 아님 너 죽어.”
“응, 노력할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금린대에 도착하기 전에 꾀를 내어 도중에 다른 곳으로 달아날 작정이었다. 운심부지처에서 금린대까지 두 다리로 걸어서 가려면 며칠을 가야 했고, 중간에 강을 건너거나 여장을 풀 일이 분명 있을 터였다. 죄인처럼 묶어 끌고 가지는 않을 테니 사람의 시선을 피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거고, 뭣하면 배에서 뛰어내릴 각오도 했다. 수영을 못해 물을 먹겠지만 익사할 일은 없다. 죽었다고 여기면 찾는다고 법석을 떨 일도 없을 테니 가능하면 깊은 물을 골라 일을 저지를 작정이었다. 나중에 적당한 겉옷가지 하나 흘려보내면 익사했다고 여길 거다.
“뭔가 수상한데.”
남경의가 불경스럽게 나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꼭 그때 같잖아. 박선망 두 개 망가뜨렸던 날! 날이 늦었으니 그만 집으로 가라고 했더니 저런 표정을 짓고 공동묘지로 샜지. 분명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뜨끔하여 볶은 땅콩을 주워 먹는 척하며 시선을 피했다.
“저거! 저거!”
금방이라도 드잡이를 할 것처럼 구는 친구를 도로 자리에 앉힌 남사추는 골치가 아프다는 걸 숨기지 않아하며 이마를 꾹꾹 눌렀다. 언제부터인지 남경의가 나만 보면 감정적으로 구는 것도 문제였지만 딴청을 부리는 나도 문제이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운심부지처를 겉돌며 마치 낯을 가리는 것처럼 굴고 있다는 건 두 사람 다 알아차린 뒤다.
왜 그러느냐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을 회피한 채 실실 웃기만 했더니 이제 더는 까닭을 묻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인내심이 닳고 있었다.
“정말로 사고 치면 안 돼요, 걸람. 요즘 같은 때는 더더욱요.”
이릉노조 위무선 사후 11년.
저승의 왕으로 군림할 것 같은 희대의 네크로멘서가 혹시라도 죽은 자의 모습으로 다시 이 땅으로 현신할까봐 수진계 사람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사후 첫 해,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다음 해,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다다음해, 역시나 별 일 없었다.
“이릉노조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무리가 나타나서 택무군이 신경을 많이 쓰고 계세요.”
10년쯤 지나니 슬슬 진퉁은 잊히고 대신 짝퉁이 나서서 설치기 시작했다.
염방존이 운심부지처로 방문하여 택무군과 상의한 일도 자칭 이릉노조의 제자라고 깝치는 무리에 대해서라고 한다.
“그래봤자 이릉노조의 이름을 내걸어 가짜부적을 비싸게 팔아치우는 사람들이겠지.”
나도 경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간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만났던 도사들은 영력이나 기를 쓰는 재주는 없었고 점수를 후하게 줘도 차력사 느낌이었다. 이릉노조의 초상화를 그려 파는 사람들도 제자를 자처했으나 음호부에 대해 물어보면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냐, 경의. 이번엔 어른들 분위기가 제법 심각한 눈치던데.”
“심각해봤자 저번처럼 피리를 불어 주시들을 덩실덩실 춤추게 하고 싶어 하는 놈들이겠지.”
“농담이 아니라는데도 자꾸 그러네.”
“흉시를 만들었다면 모를까, 위무선의 재주를 따라한 사람은 여태껏 아무도 없었어. 아니면 위무선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탈사하여 진짜로 돌아왔다는 얘긴데 그럴 능력이 있음 10년이나 걸렸겠느냐고. 그러니 이번에도 죄다 헛소문이고, 어른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이야.”
손을 번적 들고 질문했다.
“경의나 사추는 흉시를 직접 본 적 있어?”
대답 대신 꿀밤을 또 맞았다.
“너는 그런 거에 관심 갖지 말라니까 그러네.”
결론만 말하자면 사추와 경의는 흉시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이릉노조 위무선이 만들었다는 최강의 흉시는 이미 금린대로 끌려가 잿가루가 되었고, 이후 사술비법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 흉시를 만들고자 했으나 재주가 부족하여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었다.
남경의가 주먹으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어디 가서 흉시 본 적 있느냐 묻고 그러면 안 돼. 진짜로! 지~인짜로! 금린대에 가서 흉시 어쩌고 입 벌리는 날엔 너 죽어. 흉시 금지! 귀장군 금지! 온녕 금지! 위무선 금지! 음호부 금지!”
“뭔 금지가 그리 많아.”
“농담이 아니야. 귀장군 온녕이 금릉이 갓난아기 시절일 적에 걔 아버지를 죽였거든.”
“어? 금릉 네 아버지 안 계서?”
“아...... 진짜!!”
“그럼 어머니는?! 혹시 어머니도 안 계시는 건 아니겠지?!”
“미치겠네. 금릉의 어머니는 위무선에게 살해당했어.”
“맙소사. 그럼 내 학부모 면담은?!!!”
“무슨 면담?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군.”
되었다. 어차피 금린대로 갈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어쩐지 어제 먹은 밥이 지금에 와서 체한 느낌이었다.
효성진 도장이 만든 진법이 파괴되었을 적에 금릉은 정신을 잃은 채 계속 엄마 아빠를 찾았다.
위장이 있는 부분을 손바닥으로 문지르자 남경의도 덩달아 속 아픈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금린대에 가서 잘 할 수 있겠어? 내가 진짜 걱정이 돼서 그래.”
“정 힘들면 편지해요, 걸람. 택무군께 말씀드리고 다시 운심부지처로 돌아오게 할 테니.”
“자, 그런 의미에서 복습이다. 흉시 금지! 귀장군 금지! 온녕 금지! 위무선 금지! 음호부 금지!”
“에잇, 귀찮아. 아무렴 까무러치겠냐.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까무러쳤다. 그것도 금린대 그림자도 못 밟아보고서 말이다.
“습격이다~!!!”
약속대로 나를 데려가기 위해 염방존이 자기네 수사들을 운심부지처로 보냈다.
그렇게 금린대로 귀환하려는 수사들과 합류한지 이제 겨우 반나절.
원래대로라면 염방존이 타고 있어야 했을 마차는 텅 비어 있었다. 도중에 그의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가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청하의 섭 종주였다.
염방존은 말을 갈아타고 소수의 수행원들과 같이 청하로 길을 바꿨는데 습격을 계획한 복면의 무리들에겐 그 따뜻한 알림소식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분수를 모르고 선독의 자리에 오른 염방존은 죽어라!”
평소 제이슨 본에게 원한을 품은 무리가 제법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하늘에서 박쥐처럼 퍼덕이며 날아들어 시퍼런 칼날을 마차에 바로 꽂아 넣었다.
“비었잖아!”
습격을 실패했음을 깨달은 복면인은 칼날을 나 같은 잡객과 하인들에게 돌렸다.
벌벌 떨고 있던 하인 하나가 지 목숨을 부지해보겠다며 내 등을 떠밀어 복면괴인에게 바쳤다.
복면괴인이 검을 휘둘렀고 어깨가 스걱 잘렸다.
쓰러지면서 투덜거렸다.
어렵게 탈주계획을 세웠는데 뭐 하나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진짜.
제6장 구름 위의 무간, 끝.
Posted by 미야